『평화누리길 제12코스(통일이음길)』
"군남홍수조절지-(4.8km/100분)-로하스 파크-(1km/20분)-옥계리 게스트 하우스-(신망리역)-(12km/180분)-도신리 방아다리-(대광리역)-(6.4km/90분)-신탄리역-(3.8km/60분)-역고드름-(3.8km/1시간)-신탄리역." 31.8km/8시간30분.
참고 / 제12코스(군남홍수조절지-역고드름)는 교통 사정이나 짧지 않은 거리로 볼 때 구간 중간 前의 명소인 '개안마루, 웅소, 옥녀봉의 그리팅 맨, 로하스 파크 등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상세히 탐방하고 옥계리 '게스트 하우스' 에서 1泊 후 나머지 구간 인 역고드름까지 탐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고 좋겠습니다. 또한 역고드름 종점에서는 신탄리역으로 되돌아가기보다는 백마고지역으로 가서 경원선통근열차 연계버스 (동두천역까지 500원)를 이용하는 것이 가깝고 편리합니다.
2019년 현재~2020년 12월까지는 동두천역~연천역구간 복선공사 관계로 경원선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따라서 동두천역 광장이나 소요산역 앞에서 연계버스로 갈아타시면 됩니다. 이때 동두천까지 타고 간 전철표를 연계 버스기사에게 반납해야만 무료 승차 됩니다.


1호선 전철과 경원선통근열차를 이용해 연천역에 도착하여 역전 30m 앞 도로건너편에서 '전곡~연천~전곡'간 운행하는 일반버스55번(09시30분,출발)으로 환승하여 18번째 정류장인 '선곡리회관' 앞에서 하차 300m거리에 있는 군남홍수조절지 앞 제12코스 들머리에 도착하였다. 시각은 09시50분이었다.
안내문에는 전곡터미널에서 55번버스를 타고 19번째 '선곡리회관'정류장(12코스 시발점 '군남홍수조절지'까지300m)에서 하차를 제시하고 있다. 내가 연천역에서 선곡리로 가는 길을 선택한 이유는 전곡방향은 전곡역에서 전곡버스터미널까지 700m를 걸어가서 55번버스를 환승한다는 것과 연천역에서 하차하면 50m이내 거리에서 55번버스로 환승한다는 점이다.
55번 버스(전곡~연천~전곡)로 '선곡리회관'까지 가는 거리는 어느 방향이든 중간 지점이므로 거리나 시간은 거의 같고, 출발시각도 1시간대로 같은 시간대이다.
예로, 전곡에서 오전에는 06시30분, 07시30분, 08시20분, 09시40분, 11시, 12시에 출발하는데, 연천에서도 거의 동일 시간대(07시20분, 08시15분, 09시30분, 10시30분, 11시45분)에 출발하기 때문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던지 아님 연천이나 전곡에서 1泊을 하기 전에는, 서울에서 대중교통 첫차를 이용해도 전곡이나 연천에 도착하는 시간으로는 08시20분 이전의 55번 버스를 탈 수 없다.) *
참고 : 나는 2018년 10월 13일, "구리역(05시49분, 출발)-회기역(06시19분,출발)-동두천역(07시37분, 도착)-경원선통근열차(08시14분,승차)-연천역(08시45분,도착)-55번일반버스(09시30분,승차)-선곡리회관(군남홍수조절지)09시50분 하차 300m, 도보 이동 후 탐방시작-,

08시20분 출발하는 55번 버스를 놓쳐 다음 차(09시40분 출발)를 기다리는 1시간의 여유를 연천읍내를 돌아보는 즐거움으로 보냈다. 아침식사를 못했을 경우 이 시간을 활용하시면 되겠다.
1시간을 기다린 끝에 55번 버스를 타고 선곡리마을회관 앞에서 내려 도로 건너편 다리(선곡교)를 건너 300m 거리의 고개마루턱에 '평화누리길' 제12코스의 '아치 파고라'가 보인다. 들머리이자 경기도의 마지막 누리길(통일이음길)의 들머리이다. 안내표시판은 길 건너 건물 옆 산자락을 가리키고 있다. 탐방은 산행으로 시작된다. 뒤로는 '군남홍수조절지'가 있다.
들머리에서부터 거친 산길이지만,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길이다. 그런데 산으로 오르는 길이 어찌하여 이리 넓은가?
능선에 올라서니 삼거리가 된다. 우측 길은 선곡리 회관 앞 다리 건너 산자락으로 이어진 길이다. 좌측은 신망리까지 산 능선 따라10여 km를 뻗어 이어진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 도로는 일반도로도 아니요 오솔길도 아닌 군작전도로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누리길이란 미명으로 개방되어 있다. 문 정권은 GP도 철책도 군 작전도로도 벙커도 모두 철거하고 개방시킬 정도로, 지구촌에 유일무이한 살인 독재자 김 정은이가 그리도 믿음직한가 보다.
길은 넓고 호젓하다만 오가는 이 없고, 나 혼자 깊은 想念에 젖어 가네.
길은 큰 나무가 없는 구릉을 비켜 가지만, 나는 구릉에 올라가 둘러보고 가야겠다.
큰 나무들 없는 첫 봉우리에 올라 돌아서보니 군남홍수조절지에 눈이 아리다. 북한의 水攻에 대비한 산물이 아니던가!
인위적인 건물이지만,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줌으로 당겨본 풍경이다.
다시 군용트럭이나 장갑차가 다니던(지금은 다니는지 안 다니는지 모르겠음) 널널한 산등성이 길을 거칠 것 없이 유유자적 걸어간다.
갈림길인데, 좌측은 봉우리 정상이다 잠시 올라가보니 좌측으로는 홍수조절댐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마을과 도로가 보인다. 다시 내려와 우측으로 간다.
봉우리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군남홍수조절지로부터 1.1km 지점이다. 목적지 역고드름까지는 27.1km 거리이다.
앞서 봉우리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漣江"과 아늑한 마을 뒤로 산줄기가 너울거린다. 漣江은 임진강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연천군에 흐르는 물줄기는 이 지역 이름을 따 붙여 연강이라 부른다.
우측을 바라보니 천수답이 그림처럼 곱다.
한강이나 큰 강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을 앞을 흐르는 강을 고을 이름 첫자를 따서 부른다. 여주시의 驪江, 이곳 漣川의 연강처럼 말이다. 이정표가 둘인데 하나는 평화누리길 푯말, 좀 더 큰 푯말은 이곳 연강나룻길 푯말이다 연강이 끼고 돌아가는 아름다운 강안을 둘러보는 길인가보다.
지난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일반은 다닐 수 없는 軍作戰道路였던 보안상 비밀지역이었던 곳이 통일도 되기 전 북한은 군사적으로 변한 것이 없는데, 군 참호와 전차 배치소가 줄지어 있는 곳을 누구라도 이렇게 걸어가도 되다니.. 문 정권이나 공산당 김정은이를 믿어도 될까! 우려가 된다.
인권도 자유도 없는 북한의 권력들이 문 권력이 말 한 것처럼, 정말 변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한결같이 잔혹하고 오로지 무력으로 공산화를 획책하고 공작하는 작태를 미루어 볼 때 도저히 믿을 수 없기에 그늘에 가린 이 길만큼 걷는 이의 마음도 어둡기만 하다.
산중에 교차로이다. 두 개의 푯말을 보니 하나는 평화누리길 이정표, 다른 하나는 연강나룻길 푯말이다. 따라서 우측길은 연강나룻길이요 직진은 신탄리역을 거쳐 역고드름으로 가는 평화누리길이겠다. 평화누리길- 이름하나 잘 지었다. 진정, 이 도로가 평화를 누리는 길이기를 바란다.
신탄리역 방향으로 1km 가면 옥녀봉의 Greeting Man이 있다고 한다.
전망이 좋겠다싶은 능선을 오른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우측을 바라보니 군남홍수조절지와 임진강 푸른 물과 산자락에 금빛으로 물든 작물이 아름답다.
지금은 '그리팅 맨'이 우뚝 서서 북녘을 향해 정중히 인사하는 옥녀봉(해발206m)이지만, 옥녀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북쪽으로는 산맥들이 휴전선을 향해 너울을 타고 바로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연천평야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와 태풍전망대와 필승교를 지나 미수 허목이 잠든 무덤 앞을 지나 삼곶리로 남하하는 임진강 푸른 물이 흐른다. 그 강을 따라 민통선이 시작되고 더 옛날에는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이 땅을 빼앗기 위해 고구려 군이 남하하던 길목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옥녀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멀리 우뚝 솟은 산성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북쪽 朔寧(삭녕)에서 뻗은 산맥이 상리 솟을봉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으로 내려온 산줄기에는 남자의 정기가 흐른다고 하여 군자산이라 하고, 오른쪽으로 내려와 봉긋 솟아오른 봉우리에는 여자의 정기가 흐른다고 하여 옥녀봉이라 불렀다. 옛날에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질만큼 지역 주민들이 신성시했던 이 옥녀봉은 삼국 시대부터 한국 전쟁까지 치열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옥녀봉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옥녀봉 정상에는 테뫼(머리 띠)식 石築 城이 있었는데, 이것을 옥녀봉산성 혹은 옥계리산성이라 부른다. 이 산성은 6세기 이후 신라가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에는 주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邑城과 비상시 도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 높지 않지만 사방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망루의 필수요건을 갖추고 있어 1차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후방을 지키는 2차 방어선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도 평화누리길 따라 오는 내내 요새로서의 중요성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능선을 따라 군작전통로가 나 있고 작전로 요지마다 전차나 포대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평화누리길이란 이름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니...
앞 봉우리(옥녀봉)를 줌으로 당겨보니 허리 굽혀 인사하는 하얀 인물상이 보인다. 바로 저곳에 세계평화의 메카를 꿈꾸며 설치미술작가 유영호氏가 설치한 작품 Greeting Man이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는 기사에 의하면 설치 미술가 유영호 작가는 지구촌의 분쟁지역에 소통과 화해를 메시지로 전하고자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그리팅 맨을 설치했다고 한다. 2012년 지구 반대편인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처음으로 설치한 후 강원도 양구군 해안面에 2호, 서귀포에 3호를 설치하였고, 이곳 연천군 옥계리 산 옥녀봉에 설치한 '그리팅 맨'은 역대 최대의 크기로 10m가 넘는다고 한다. 스카이블루 색상의 이 거인은 지척의 거리를 두고 있는 북녘땅을 향해 15도 각도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있다. 작가는 애초에 남북이 서로 마주보며 인사하도록 구상하였으나 북녘에 설치 작업은 숙제로 남아 있다고 하는데, 방송을 통해 본 남북 분위기가 진실이라면 작가 유영호씨의 구상은 성사되겠지만, 꿈 같은 일이겠다.
향기로운 나무와 풀, 기분좋은 흙 냄새를 맡으며 신탄리 방면으로 길 갑니다.
개안마루 삼거리이다. 좌측으로 개안마루전망대가 있고 곧바로 가면 신탄리 방면이다. 300m 아래 강가에 있는 전망대를 들려보고 다시 이 자리로 와야 하겠지.

熊淵을 내려다보며 옥녀봉으로 향해 가면, 문득 임진강과 군남댐이 한눈에 들어오는 널찍한 마루에 닿는다. 시원스러운 전망 때문인지, 근처에 '장님이 눈을 떴다.'는 개명고개가 있어서 인지, 여기 사람들은 이곳 삼거리를 '눈이 탁 트인다.'는 뜻을 지닌 '개안마루'라고 부른다.
줌으로 당겨본 연강나루이다.
《開眼마루》
이름 그대로 눈이 탁 트이는 개안마루고개에서 내려다 본 전경이다. 좌측으로 연강 웅연 강안위에 설치된 전망대로 곡선을 그리듯 휘돌아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그 끝에 전망대가 시리도록 파란 연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50만 년 전 이 땅에 인간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렵게 성취한 평화는 이내 탐욕과 정복욕으로 깨지고 침략당했다. 하지만 이 땅을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한반도의 覇者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영웅의 역사는 언제나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삼국간의 치열한 접전도,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지리한 줄다리기도 그리고 한국 전쟁 당시분단의 비극도 모두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이 땅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이다. 발아래 강줄기는 나뉘었어도 고개를 들어 보면 하늘은 여전히 하나다. 휴전선을 넘어 남으로 유유히 달려 내려온 임진강 물길처럼, 서부 휴전선 아래 첫 '평화누리길'인 이곳에서 통일과 평화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자.
이곳은 고려 말부터 손꼽히는 절경으로 알려져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1742년 10월 보름날 임진강 뱃놀이에 끌려나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당대의 정점을 찍은 화가 겸재 정선이다. 당시 양천 현령으로 있던 그는 경기도관찰사 홍경보의 청으로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에 배를 탔는데, 마침 연천 현감이던 시인 淸泉 申維翰(신유한1681-1752)이 있었다. 지금의 경기도지사 격인 경기도관찰사가 당대 최고의 시인과 화가를 한자리에 불러 임진강 풍류에 나선 것이다.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에 바라보니 1녀2남이 열심히 텐트를 접고 있다. 전망대에서 야영을 했나보다. 야영장으로 그만한 자리도 없겠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 한 폭이 나를 맞이한다.
경기도관찰사 홍경보는 얼큰한 취기에 의지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연천현감 신유한은 시 한 수를, 겸재 정선은 이 날 두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이 바로 〈우화등선/羽化登船/우화정에서 배를 타다.〉과 〈웅연계람/熊淵繫纜/웅연나루에 배를 대다.〉이다.
《개안마루전망대》
이곳 전망대가 있는 절벽아래는 임진강 물길이 굽이도는 곳으로 세찬 물결에 의해 파여 물이 머물러 있는 沼가 있다.
" 임술년(1742년)10월 보름 연천현감 신주백(申周伯,신유한)과 함께 관찰사 홍상공(洪相公, 홍경보)을 모시고 우화정(羽化亭) 아래에서 유람하니, 소동파의 적벽 고사를 따른 것이다. 신주백이 관찰사의 명으로 글을 짓고, 내가 또 그림으로 그려 각자 한 본씩 집에 소장했다. 이것이 《연강임술첨/漣江壬戌帖》이다." 겸재 정선의 화첩인 '연강임술첩'에 실린 글의 일부다. 여기에서 이르는 연강은 연천군 지역에 흐르는 임진강의 별칭이다. 연천의 '漣'자는 '물결이 일다'라는 정취 넘치는 뜻을 지녔다. 아름다운 물의 고장 연천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매우 상징적인 글자이다. 이런 뜻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특별히 연천지역에 흐르는 임진강을 연강이라 달리 이름 붙여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이 별칭만큼이나 임진강은 연천 지역에 이르러서는 사뭇 다른 강인 양 물줄기의 모양이 달라진다. 북에서 남으로 흘러오던 임진강은 연천군에 들어서면서 서쪽으로 그 흐름을 바꾼다. 그리고 유장했던 강물은 때론 급하게 구비를 돌고, 때론 완만하게 평지를 흐르며 사람과 산과 평야를 아우른다. 그런 연강의 모습이 풍류의 대가였던 조선 선비의 눈에도 달라 보였던 것은 아닐까!
걸음을 멈추고 웅연을 바라보노라면, 270여 년 전 정선을 태웠던 배가 지금이라도 지나칠 것만 같다. 조선 선비들이 사랑한 웅연은 지금도 고즈넉한 기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풍류란 한가로운 이들이 즐기는 놀이가 아니었다. 보름달빛 아래 임진강의 정취를 누린 풍류의 주인공은 당대의 현직 관료이자 화가요 시인으로,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들이 보름달이 훤히 밝은 가을 밤, 임진강에 배를 띄우고 노래와 시와 그림으로 자연을 예찬하며 하나가 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치열한 삶의 경영을 위해서 였을 것이다. 그들은 서책만큼이나 여흥을, 좋은 사람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진정한 절제요, 균형의 한 삶이라 여겼고, 이를 실천할 줄 아는 이가 참 선비라 생각했을 것이다.
개안마루에 서서 발밑을 보면 강줄기가 거대한 푸른 용의 몸짓으로 서쪽을 향해 휘돌아 움직인다. 오른 편에 길게 누워 있는 작은 섬이 유장한 강물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이렇게 물길이 돌아나가는 河回 지형은 귀한 인물이 나고 만사가 형통하다 하여 명당으로 꼽힌다.
그중 많은 수량이 휘돌다 보면 강바닥이 우묵하게 파여 물길이 머무는 沼를 이루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웅연' 또는 '괴미소'라고 부른다.
다시 신탄리로 가기위해 개안마루턱 능선으로 오른다.
개안마루에서 다시 한번 전망대와 웅연을 바라본 풍경이다.
개안마루를 떠나면서 돌아본 정경이다. 이정표와 개안마루 표지판이 양 옆에 서있는 나무숲에 싸인 길이 내가 온 길이고 우측 밝은 길이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이다.
연강물빛에 하늘이 물들었나 두 빛깔이 똑같다.
현무암지대와 옥녀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바위를 좋아하는 나는 현무암지대를 택했다. 漣江邊에 현무암이 있는 줄 알고 아름다운 강가 풍경을 떠올리며...
봉우리를 돌아가니 볕 화사스런 곳에 율무가 영글고 있다.
온통 돌밭이다. 무더기로 모아 놓은 돌들은 응회암 같은데, 이곳이 현무암지대라고 하는 곳인가?
또 한 고개마루턱에 올라섰다. 거리만 표시된 이정표만 있다.
고갯마루에 서서 갈 곳을 바라보니 앞서와 같은 완만한 구릉에 아낙네 없는 콩밭에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앞서 돌무지 있던 곳과 비슷한 지형인 이곳에도 돌들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이 일대가 현무암지대인가보다.
콩밭에도 현무암이 솟아있다.
콩밭도 곱게 단풍들고 길도 예쁘니 따라서 내 눈도 고운 물들어 빈 가슴을 채우네.
지나온 자리 돌아보니 능선에 고갯길, 명주실처럼 가녀리고 콩밭은 아낙네 없어도 여전히 곱다.
내 가는 꽃길 가에 참으로 아름답고 표현할 길 없는 자연의 예술품이 섬세하고 우아한 자태로 내 마음을 앗아가네.
누가 내 가는 길에 꽃을 휘 뿌려 놓은 듯이 심었을까! 고운 꽃길에 황홀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노라
벼랑 같지 않은 벼랑길도 있구나!
오솔길은 다시 등성이의 군작전도로로 편입되는 곳이다. 중간지점마다 이렇게 아치 파고라를 세워 논 것인가 아님 새로운 길로 접어 들 때 세운 것인가..
아치 파고라를 통과해 나오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한적하고 널찍한 길이다. 이 길은 앞서 현무암지대로 가는 길과 옥녀봉으로 가는 길로 갈라졌던 길이 각기 옥녀봉과 현무암지대를 거쳐 다시 합친 것이다. 여기서 옥녀봉까지 300m이다. 그리팅맨의 인사도 받고 옥녀봉도 둘러보고 전망 경관도 보고 가야하겠다.
옥녀봉 입구는 말끔한 공원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상입구에 오르니 그리팅 맨이 정중한 인사로 맞이한다.
타이틀 :『인사하는 사람/Greeting Man』
작 가 : 유영호
크 기 : 7×7×10.8(h)m
재 질 : 알루미늄 주물, 우레탄 컬러
"안녕하세요!"
나는 그리팅맨(인사하는사람)입니다. 제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사를 할 때 행하는 자세입니다.
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입니다. 만일 우리가 길에서 우연히 마주 칠 때 인사 없이 지나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면 관계가 만들어지고 친구가 됩니다. 인사는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 서로 다른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 국가와 인종의 벽을 넘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작점이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입니다. 나아가 자연, 우주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과의 관계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2012년 한국으로부터 지구의 정 반대편에 있는 우루과이 몬데비데오에 처음 세워져 우루과이 사람들에게 인사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고 있으며, 한국의 양구 해안 마을과 제주도 서귀포에도 서 있습니다. 2016년 1월 태평양과 대서양과 북미와 남미를 이어주는 세계의 다리라 일컫는 파나마 운하로 유명한 파나마시티에서 문명교류의 역사를 기념하며 세계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멕시코와 페루, 브라질 등 북, 중남미는 물론 실크로드와 아프리카, 유럽 대륙에도 세워져 한국 인사가 가진 겸손과 존중,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입니다.
이제 나는 한반도의 중심이자 선사시대로부터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무대였던 연천에 왔습니다. 특히 제가 서있는 옥녀봉은 예로부터 신성시 되던 장소로서 옥녀봉을 차지한 자가 한반도를 지배한다는 역사적인 요충지이자 50만 년 전 한반도에 사람이 살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기억하는 땅입니다. 삼국시대 각축지의 중심지로서, 현대 한민족의 비극이자 아픔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국의 분단된 현실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습니다. 남북의 화해는 서로가 진심으로 인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인사하는 마음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이자 세계인에게 전하는 인류 평화를 위한 강렬한 희망의 노래입니다.
옥녀봉에서면 남과 북으로 조국의 산하가 파도처럼 펼쳐지고 사방으로 거침없이 뻗어가는 장쾌한 기상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로 열린 명당 옥녀봉에서 나는 앞으로 지구상의 여러 장소에 세워지게 될 그리팅맨의 중심으로서 세계를 연결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겸허한 자세로 인류와 우주를 향해 깊은 감사의 마음과 평화의 인사를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2016년 4월23일 작가 유 영 호.
옥녀봉에서 그리팅맨이 인사하는 방향이다.
그리팅맨의 뒤쪽 헬기장 있는 방향이다.
동북방향 멀리 고대산이 보인다.
그리팅 맨의 인사를 뒤로 하고 옥녀봉을 내려간다.
다시 아치파고라 있는 자리로 되돌아와 '로하스 파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이렇게 호젓한 길을 혼자 가다보면 얼마 전 작고하신 최희준 님의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두 개의 진지가 불과 5m 간격으로 붙어 있는 전차나 포진지입니다.
저 나름 군사비밀 일 것 같아 올릴 생각 없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일반에 공개 노출되어 평화누리길이란 명칭으로 탐방로가 된 지금 더 이상 군작전도로의 가치를 상실한 마당이라 올립니다.
길가에 흰 표식은 陣地의 고유번호일 것이다.
2009년에 조성된 연천군의 로하스 파크는 이 지방의 특산물인 콩으로 장류 사업과 숙박 및 주변 광광지를 개발하여 지역경제 및 발전을 모토로 한 사업이었으나 부진하여 중단 했다가 다시 옆 넓은 부지에 새로운 공사를 시작하여 진행 중에 있습니다.
'로하스 파크'
하산 중 내려다본 로하스 파크의 전경이다. 한옥 옆 넓은 터에는 사업부진으로 중단 되었던 '로하스 파크'가 거듭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로하스 파크'
시설은 전통한옥체험, 장류공장, 통나무 펜션, 생태습지산책로 등이 있으나 현재는 중단되어 있다 빠른 시일 내 개관되어 이 지방 특산물인 콩으로 담근 경기도 지방의 구수하고 맛깔스런 전통 醬類의 맛을 느껴 보고 싶다.
수백개의 크고 작은 장독과 멋진 한옥이 어우러져 한국 고유의 멋과 정서의 풍미가 있다.
자연생태습지산책로 입구의 모습이다.
생태습지산책로 입구에서 바라본 정경이다. 전통한옥 아래 장독들이 있고 그 아래 좌측은 주차장이 있다 자연습지산책로 바로 앞은 휴식 및 놀이공간인데 사업부진으로 중단되어 주변 시설물과 화단 및 휴식공간들은 잡초에 덮여 있어 안타깝다. 빠른 시일에 거듭나서 이 지방 발전을 위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습지공원을 끼고 돌아나가는 평화누리길이다. 이 길을 외면하고 습지산책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데크로 만든 습지관찰로가 무성하게 자란 갈대에 덮여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잘 가꾸어져 있던 습지공원이 자연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꾸미기 위해 많은 노력과 연천군 재정을 들인 흔적이 곳곳마다 뚜렷한 모습에 보는 이의 가슴도 아프다.
연천군은 이 시설들을 재정비하려면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할텐데..
이제 저 쉼터 옆길로 습지를 벗어나 신탄리를 향한다.
12코스에서 처음으로 차도에 들어섰다.
마을복지회관 및 경로당과 함께 평화누리길 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이 있는 복합건물이다. 12코스는 다른 코스보다 하루에 탐방하기에는 그 여정이 길다. 그 점을 고려한 것 같다.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런 장승의 모습에서 내 삶을 본다.
옥계교 건너자마자 좌측 둑길로 들어서 옥계천 따라 100여m가다가 우측으로 꺾어 마을로 들어서가다 차도를 가로질러 다시 마을로 들어서 산골짜기를 타고 다시 산등성이로 오른다.
차도를 건너 다시 들어선 마을이 끝나고 골짜기로 들어서는 시발점이다.
산자락을 끼고 오르는 길은 옛 시골마을길처럼 온기가 배어나건만 스며드는 건 한적한 고요 뿐 발길의 흔적조차 느낄 수 없네.
정적에 다시 마을로 돌아갈까 싶어 뒤돌아서니 마을은 이미 아득하다.
이만한 자리면 농가 서너 채 있을 법도 하건만, 그 따습던 가슴들 이 아늑한 자리 다 버리고 어디로 떠났단 말인가!
아무리 둘러보고 찾아봐도 빈 가슴 채워 줄 뽀얀 연기 피어오르는 옛 시골집은 찾을 수가 없네.
산으로 오르는 길이 꿈길마냥 포근하다.
꿈길도 잠시, 거칠고 험한 길에 참나무로 발처럼 앞을 가린 가파른 계단이 숨은 듯이 도사리고 있네. 이 계단을 올라 등선에 올라서면 필시 큰 도로가 있을 것 같다.
고개마루턱에 올라서니 예상대로 능선은 군작전도로가 나있다.
길인지 헐벗은 능선이지 아무튼 感情 없는 대로를 걷는 기분이다.
큰 나무 없는 곳에서 거쳐 온 곳을 줌으로 당겨본 풍경이다. 골짜기 아래 지나온 마을 그 너머 가로수 옥계천 그리고 게스트 하우수 너머 옥녀봉 산줄기 그 아래 漣江이 흐르고 熊淵과 겸재 정선의 이야기가 연강 따라 흐르고 좌측으로 더 가면 군남홍수조절지가 있으리라-
길 따라 가는 길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포진지가 도열해 있는 길을 예비역 기갑병장이 사열하듯 걸어간다.
그래도 이 길은 기갑부대 예비역 병장이 걸어가는 일에 불만은 없을 것이다.
"가슴에 빛나는 삼각형 마크는 국군에 자랑이다 무적 전차병 뜨거운 젊음을 철갑에 담고 전우와 전우 간에 의리에 산다 싸우자 이기자 조국을 지키자 천지를 호령 할 지상에 왕자! 지상에 왕자!" 구릿빛 얼굴에 노란 머플러는 국군의 희망이다 무적 전차병..
상리 ┬형 갈림길이다
우측은 망곡공원과 읍내리 (군자산 등산로) 방향이다. 좌측은 청화산과 신탄리로 가는 길이다.
이정표의 가리킴대로, 좌향 앞으로 유격구호에 발 맞춰 앞으로 갓! 하나- 둘- 셋- 넷- , 하나 들 셋 넷, 하나둘셋넷 하나둘셋넷-
행군 간에 군가 한다! 군가는 기갑교가, 군가시작 하나 둘 셋 넷- "세기에 빛나는 육군기갑학교 자라는 그곳은 상무대이다 배우고 또 배워 힘을 길러서 숭고한 전통을 이어 받들어 나가자 전차야 전진을 향해 세기에 깃발을 뻗어 나가자! "
좌측은 군작전도로 우측은 하산길이자 신망리역으로 가는 길이다.
바로가는 길은 이정표도 모르는 길인가 보다. 이정표 가리킴 대로 우측으로 간다.
이제 산행에서 마지막 내림길이다. 이 길만 내려가면 들판과 차탄천 따라가는 방죽길이 대부분이겠다.
산등성이에 은폐된 군사작전도로를 이용한 평화누리길은 이제 마을을 거쳐 차탄천 둑길로 이어진다.
어느새 가을걷이 끝낸 논이 황금빛 풍성함을 잃고 쓸쓸하고 허탈한 모습이다.
파란하늘과 금빛나락을 배분한 산줄기와 가로수- 이 아름다움에 텅 빈 가슴속에 삶의 의욕과 기쁨이 차오른다.
도로건너 들녘너머 경원선 철길과 3번국도 그리고 길가 집들이 한 선을 긋고 그 너머 산자락 아래 차탄천의 푸른 물줄이 5억만년 전의 사연을 감을 줄은 모르고 풀어가며 흐른다.
아스팔트도로를 100m정도 걸어가니 들녘으로 평화누리길은 접어든다.
마을을 지나가도 인적은 없고 견공의 공허한 울림만 간헐적으로 울린다.
다시 한 시절 추억이 설긴 경원선 철길과 평행을 이룬 도랑을 복개한 콘크리트길을 회상에 젖어 걸어간다.
2018년 10월13일(토요일) -鄕香-
평화누리길 제12코스는 교통편과 탐방거리가 길어 1일 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10월11일과 10월13일, 2회에 걸쳐 신탄리역까지만 탐방을 마쳤습니다. 10월11일(수요일)은 12코스 중간지점인 신망리역~신탄리역까지, 10월13일(토요일)은 '군남홍수조절지~신망리역'까지입니다. 중간지점인 신망리역에서 신탄리역까지를 앞서 탐방한 것은 교통편리 때문입니다.
* 경의선통근열차 시간표 *
10월11일(목요일) <신망리역-방아다리-대광교-신탄리역>
구리역(경의중앙선06시09분)-회기역(도착06시24분,출발06/39분)-동두천역(도착07시27분)-경원선통근열차(출발08시14분)-연천역(08시42분도착)연계버스환승(08시47분)-신망리역(08시57분도착) 09시 탐방시작-
철길을 끼고 그 옆에 3번국도를 대동하고 기찻길 옆길 갑니다. 기찻길 옆 허술한 집들 앞을 지나가노라니 나도 모르게 동요가 흥얼거려집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서울흥인국민학교 2학년 때 배워서 23년 후 어린 딸에게 불러주던, 나에겐 잊혀지지 않는 아린 동요입니다.
100여m를 동요만 부르며 가는데 리본이 기찻길을 건너가자고 합니다.
철길을 건너 국도를 건너 차탄천 가까운 밭에 蕪菁이 하도 싱싱해 담았을 뿐인데.. 아름다운 비너스의 하체가 어찌 그 속에 있었을까! 나는 진정 몰랐던 일입니다.
싱싱한 무청에 생기 받고 단숨에 차탄천 방죽으로 달려왔습니다.
차탄천으로 흘러드는 샛천의 다리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마치 시멘트토관을 진열해 놓은 듯이..
차탄천 양 방죽 따라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습니다. 춤을 추듯 한들한들 거리는 코스모스만큼이나 설렘 많던 소년 시절 엄청 좋아했던 꽃이어서 일까 마음 설레고 발걸음 사뿐합니다.
드넓은 차탄천은 잡초들의 천국입니다. 한줄기 가는 물줄기가 명맥을 이어 제법 빠르고 세차게 흐르는데 마치 큰 비단뱀처럼 잡초를 휘저으며 기어가는 듯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차탄교까지가 6.4km라는데, 이 가을 안에 가봐야 할 곳이다. 차탄교에서부터 하류쪽 9km거리에 걸쳐 주상절리는 물론이고 판상절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는 지질학적 寶庫이기 때문이다.
차탄천 방죽길가에 단풍과 더불어 가을을 대변하는 색색의 고운 코스모스가 소솔바람에 한들거리며 즐거움을 안긴다.
평화누리길은 와초橋 앞 도로를 횡단하여 차탄천을 따라 뻗어 나간다.
여러 작은 봉우리가 모여 하나의 큰 봉우리가 된 멋진 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길가에 코스모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마음과 발길 경쾌하고 나 저절로 노래 부른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방죽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가며 쳐다본 차탄천 물가 바위절벽이 범상치 않다.
줌으로 당겨보니 판자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하다. 길을 벗어나 강가로 내려가 살펴보기로 했다.
차탄천의 판상절리는 유명하다 차탄교를 지나 한탄강으로 합수되기까지 운집해 있다 아쉽게도 이곳에서 하류 쪽으로 6km 이상 떨어져 있다. 평화누리길 상류 둑을 걸어가며 기대를 가지고 혹시나 싶었는데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이렇게 볼 수 있어 즐겁다. 이곳의 판상절리는 차탄교 하류 쪽에 운집해 있는 물고기 비늘형태의 판상절리와는 달리 판자을 쌓아놓은 형태이다.
판상절리를 뒤로 하고 다시 방죽 코스모스길 따라 한들한들 걸어간다.
꽃도 곱고 물도 고우니 보는 마음 또한 곱다. 꽃과 같이 곱게 나비 같이 춤추며 아름답게 살자 이제 내 나이 14살이 아니더냐
물빛이 저리도 곱구나 바로 에메랄드 빛깔이네.
물빛도 참 곱다. 에메랄드빛인가 옥빛인가..
3번국도 대광교 앞에서 평화누리길은 둑 아래로 내려간다.
대광교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걸어온 길을 뒤돌아서서 바라본 풍경이다.
3번국도 대광교 아래 차탄천변으로 내려가는 평화누리길
길은 차탄천 둑으로 다시 올라서서 차탄천과 나란히 뻗은 지방도로에 합류된다. 좌측은 경원선 철길이다.
물길은 돌리기 위해 쌓은 둑의 곡선이 예쁘다. 직선으로 쌓으면 물살을 바로 받아 무너지기 쉬워 저렇게 물길이 주는 압력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받아 돌리기 위해 둑도 따라 저리 유려해졌겠지..
이 고장 관계관과 주민들이 생활하수나 축산으로 인한 폐수관리를 잘 했기에 저리 맑은 玉溪川을 가질 수 있겠다 싶으니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 그 분들의 노력에 고마움을 드리며 맑고 청량한 물빛과 환경을 기쁨으로 즐겁게 담는다.
맑은 물 흐르는 곳에 원형의 시설물이 있다 그 위에 오리가족이 일광욕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다.
12코스를 일산과 고양구간인 4.5.6.7.8.9 여섯 코스는 자전거를 가지고 탐방을 하였고, 1.2.3.10.11.12 여섯 개 코스는 걸어서 탐방을 했다. 탐방은 걸어서 하는 것이 피부로 자연을 접속하며 그 소중함과 생각과 느낌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에 기쁨을 더한다.
때로는 나만의 길인 것처럼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길을 걸어갈 때 참으로 행복하다. 길가 한 포기 풀도, 나무도 눈에 띄는 곤충도 산과 들과 수정처럼 맑은 물도 끝도 없을 저 푸른 하늘과 그림쟁이 구름도 이 모든 삼라만상들이 진리요 삶의 표상이요 스승이고 벗이 되어 준다.
무밭에 싱싱한 이파리들을 보는 내가 흡족하여 고마움으로 바라본다. 땀 흘러 가꾼 이 따로 있는데..
나는 이 지방의 산은 신탄리에서 가까운 고대산 밖에 모른다. 내 발길 차탄천 따라 신탄리로 가는데 저 산줄기도 차탄천을 끼고 신탄리로 이어져 가고 있으니 고대산도 저 산줄기의 한 부분이겠다.
(보막교)
대광리로 들어서는 다리이겠다. 평화누리길은 차탄천을 외면할 수 없으니 보막교를 건너자마자 다리 아래로 내려갈 것이 분명하다.
보막교 중간에서 옆을 바라보니 또 다리가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보막교 이전에 사용하던 다리인가보다 다리는 노후되어 있고 양 쪽 입구에 진입방지턱이 보인다.
거쳐온 방향(신망리)의 풍경이다. 산천은 이리 아름답건만, 권력을 추구하는 인사들은 어찌 그리 추악한지, 진정한 다스림은 모르고 군림하고자만 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는 눈은 없고 그저 사마귀 같은 눈만 가졌나 보다.
맑은 물속 조약돌들이 물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주고 있다.
보막교 끝머리 우측 이정표에 다리 우측으로 내려가라는 표시가 있다.
차탄천 방죽이 아닌 둑 밑 하천 바닥길로 간다.
교각은 여기저기 균열이 있고 상판으로 하늘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인도교가 아닌 철교 같다
하천바닥이라도 제법 번듯한 시멘트포장도로이다. 한참 걸어가다 제방 위가 궁금하다 길일까 이 둑 너머 어떤 풍경이 있을까?
둑으로 올라가보니 젖소를 키우는 큰 목장이 있다. 거름 냄새가 구수하다 이제야 평화누리길이 왜 하천 바닥으로 가는지 ...
대광리 대광교 앞에서 평화누리길 리본은 가던 방향(우측 제방)의 둑길과 다리 건너편(좌측 제방)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차탄천 양 둑 중 어느 곳으로 가도 된다는 표시이겠다. 나는 다리를 건너서 건너편 둑으로 가기로 했다.
다리를 건너와서 대광리 마을 방향을 담은 풍경이다.
이제는 아까와 반대로 우측에 차탄천을 끼고 우측 제방과 풍광을 보며 걷고 있다. 이곳 대광리역에서 신탄리역까지는 4.4km가 된다고 한다. 신탄리역에서 역고드름까지는 3.8km 1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문제는 역고드름에서는 교통편이 없어 다시 신탄리역으로 돌아와야 한다. 어쨌거나 우선 신탄리역까지 가봐야겠다.
리본! 네가 1코스부터 열두 코스를 날 이끌고 다니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이제 평화누리길 열두 코스도 끝나가니 풍경 좋은 이곳에서 기념이라도 남기자꾸나!
구름이 많다보니 풍경도 우울한가 보다 그늘이 졌다. 우측으로 고대산이 우뚝 솟아있다.
발길을 옮기기 전 뒤돌아보니 방금 내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너온 대광교가 우두커니 서있다.
길 따라 가는 길가 주변이 나무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나 절로 신명납니다. 누가 보아도 좋지만, 혼자여서 더욱 좋습니다. 입은 어느새 노래를 부르고 몸은 막춤을 춥니다. 탱고도 좋고 블루스도 좋지만, 혼자여서 더욱 좋은 막춤입니다. 이런 자연에서는 동요가 제격이지요. 어린 딸과 부르던 수많은 동요들,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노래를 부릅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누나의 손등을 간 질러주어라."
"구름이구름이 하늘에다 그림을 그림을 그립니다 노루도 그려놓고 토끼도 그려놓고 동생하고 나하고 풀밭에 앉아 떠오르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바라봅니다. 구름이구름이 하늘에서 재주를 재주를 부립니다 노루도 재주넘고 토끼도 재주넘고 동생하고 나하고 풀밭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바라봅니다~~"
'눈 감기도 발 달려 이리저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이리저리 찾는다.' 짝!짝!짝! 우리 아기 참 잘 했어요~~♥
『달마중』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비단 물결 남실남실 어깨춤 추고 머리 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타면 달밤에 소금쟁이 맴을 돈단다.
아가야 나오너라 냇가로 가자 달밤에 달각달각 나막신 신고 도랑물 쫄랑쫄랑 달맞이 가자.
아가야! 네가 참 많이 보고 싶구나!
나지막한 산자락 모여든 골에 제법 크지만 예쁜 건물 하나, 양지바른 고향 둔덕에 고즈넉이 앉아있는 고향집만큼 눈에 밟힌다.
우리의 아이들이 지내는 군부대생활관이라오, 우리 지난날 幕舍생활을 생각해 볼 때 저만하면 마음 놓고 보낼 수 있지 않소?
(노박덩굴)
약용, 식용, 버릴 것 없는 식물입니다.
지난 여름 큰 물에 그만 주저 앉았나 보다.
저 쌓인 자갈 좀 봐! 여기저기 손길을 기다고 있네.
좌측 산자락이 끊긴 절벽의 모습입니다. 돌을 좋아하다보니..
어째서 사는 이 끊겼나? 비닐하우스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삶이란 이리 덧없는 것이 더냐 ! 보는 내가 서글프고 마음 아프다.
굽어진 길 그 선 너무 예뻐서..
콩밭은 물이 들어 예쁘고 길은 물길 따라 가녀린 여인의 몸매처럼 예쁘다.
금빛나락들이 수평을 긋고 하늘의 구름과 산과 色調의 對比를 이룬다.
길은 수많은 사연을 담기도 하고 늘어놓기도 한다. 내 발자취의 흔적도 내게는 달랑 추억 한 장 떼어주고 그리되리라..
삼색의 비준을 맞춰보니 할 말이 없다. 어찌 자연의 조화를 어림이나 할 수 있으랴
온전한 저 잠수교가 내가 건너야 할 다리인가 보다 어느새 알고 우뚝 솟은 고대산은 나를 마중 나와 반기는가 !
옛날 소싯적에 광주 외가에 가려면 기동차를 타고 광나루로 가야 했다. 동대문 밖 창신동 맞은편 기동차종점으로 가려면 오간수다리를 보게 된다. 그 오간수다리를 여기서 보는 듯하다.
이만한 그림이면 내다 팔아도 밥은 먹겠다.
내 가는 길을 구름은 어찌 알고 저리 앞서 가느냐! 내 너를 사랑하는 그만큼 너도 내가 좋더냐?
좌측 물막이 안 냇가 산자락, 그 자태가 자못 심상치 않다.
아담한 현무암절벽에 곤지처럼 붉게 물든 단풍이 곱고 쪽빛 소가 풍류를 자아 낼만 하다.
내 이제까지 여주 이천쌀만 먹었는데, 이곳 연천에 와보니 비록 '이중환'의 '택리지'에서처럼 여주 .이천만큼 좋은 토질은 못되어도 물 좋고 공기 좋은 이곳 청정미에 마음 끌린다.
황금빛 찬란한 저 벼를 털면 금쌀이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황금빛에 물든 눈 사물이 모두 금으로 보이기에 맑은 물에 눈을 씻고 솜처럼 부드러운 구름으로 물기를 찍어 냈다오.
지나온 황금들녘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도 포물선을 그리며 한 맵시 한다.
신탄리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밭에 심은 파가 그대로 예술이다
마을에 들어서도 고요하고 한적하다. 도무지 사람을 볼 수 없다. 이제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 많은 농작물은 누가 가꾸었단 말인가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시가지가 보고 싶어 큰 길로 나와 봤다.
산세가 높고 장대하지는 않아도 몽돌처럼 둥근 작은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여러 능선들이 주봉을 향해 모여드는 형국이다 산주름도 숭굴숭굴 아늑한 느낌을 주고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많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골목안이 말끔하다. 60년대 서울 뒤골목 안 풍경를 느낄 수 있는 모습이라 하겠다.
신탄리역을 바라보고 있는 골목길이다.
신탄리역에서 제12코스의 최종착지인 역고드름까지 3.8km에 1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역고드름에서는 택시 이외 교통편이 없어서 다시 신탄리역으로 되돌아와야 하므로 7.6km에 2시간 소요된다지만 나는 기록성 사진을 찍어야 하니 좀 더 걸릴 것이다 현재 오후3시, 아무리 빠르게 갔다 와도 오후 5시30분 쯤 이곳 신탄리역에 도착할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적으로 마음 내키지 않아 역고드름까지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한다. 오후 한낮의 역전거리이건만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내가 유령의 도시에라도 온 것인가!
우측은 고대산 들머리, 역고드름으로 가는 길은 좌측 마을로 들어섭니다.
마을을 6-70m지나가면 철도종단점입니다.
신탄리역 철도종단점에서 역고드름까지 3.7km거리는 연장구간입니다 이 구간은 좌측에 맑은 시내를 끼고 철길 따라가는 사색의 길로 이어집니다. 걸어가는 길은 콘크리트 포장도로여서 다소 아쉬운 감 있지만 중간 중간 굽어진 곡선이 아름다운 길입니다.
(신탄교)
추수를 끝 낸 논에는 짚단이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물용으로 트랙터를 이용해 큰 덩이로 만들어 비닐포장 한 것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습니다.
우리 어려서 과천 개울에서 송사리 잡고 물장구 치고 놀다가 두꺼비 집 짓던 모래밭을 온전히 옮겨다 놓은 듯합니다.
철길 밑 굴다리 지나 왼쪽으로 들어서면 이제까지 우측에 있던 철길이 좌측에서 평행을 이룹니다.
우측 산자락에는 보기와 같이 백색의 석영 바위들이 군데마다 있고 강한 오석들이 널려 있습니다.
곡선이 아름다운 길입니다.
좌측의 철길은 육교로 오르며 차츰 벌어져 갑니다.
냇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듯 길 정말 예쁩니다. 좌측에 철길은 터널로 들어가고 나는 우측 곡선이 아름다운 길 끝머리 우측 역고드름 언덕으로 들어설 것이니 그곳이 바로 역고드름 솟아나는 동굴입니다.
철길은 저 터널을 통과하여 백마고지역에서 숨을 고르고 월정리역을 향해 다시 달려 갈 것입니다.
갈림길입니다. 이정표를 보니 직선으로 200m 더 가야 종점이라고 합니다. 우측 길은 역고드름으로 들어서는 길입니다. 우선 역고드름을 탐방하고 종점으로 가야겠지요.
원만한 언덕을 30m정도 오르니 역고드름 앞 넓은 주차장입니다.
역고드름은 주차장 우측 끝 낮은 능선 아래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터널 천정 여러 곳에서 물이 빗줄기모양으로 간헐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고대산 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이 터널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서울의 용산과 원산을 잇는 공사를 하던 중 미국에 의해 패망하여 중단되었는데, 6.25전쟁 때 북한군이 탄약창고로 활용하다 미군의 폭격을 받게 되었고 그 폭격으로 터널 위쪽에 생긴 틈과 독특한 이곳의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역고드름이 생성되어 진다고 한다.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에 걸쳐 길이 100m, 폭10m의 터널 바닥에는 크고 작은 역고드름 수백 개가 솟아오른다고...
역고드름 터널에서 주차장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역고드름에서 나와 200m정도 걸어가니 경기도 평화누리길 마지막 종착지이다. 인증박스와 함께 6.25전쟁 때 폭격으로 단절된 경원선 폐철교가 교각과 함께 전시물처럼 남아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교각을 검은돌을 다듬어 탑처럼 쌓아 올려 전시된 예술품을 보는 느낌이다. 또한 이곳은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선으로 백마고지역으로 이어지는 평화누리길 제13코스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폐철교의 예술성에 매료되어 신탄리역으로 되돌아가려던 발길을 철원방향으로 옮기고 말았다. 그곳의 교통상황이나 코스의 성격을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모한 모험을 나선다.
다리 건너편은 강원도 땅이며 길목에 제13코스 안내판이 지키고 서 있다.
폐철교 앞에서 온통 검은 돌(현무암)이 깔려 있는 차탄천 계곡을 바라보는데 100여m 떨어진 곳에 상판 없는 교각이 보인다 미완성으로 남은 저 교각은 위치적으로 보더라도 역고드름이 생성되는 터널로 이어가려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휴전선 459km(155마일) 중, 경기도 12코스 189km와 역고드름 연장구간 3.7km 탐방을 마칩니다.
현재 강원도 평화누리길 구간은 1구간(평화누리길 제13코스) 만 개방되었고 나머지 구간은 준비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평화누리길 패스포트》
이 밥상은 연천역 앞 길 건너 공주식당의 제육볶음으로 값은 7천원. 국은 북어뭇국, 제육은 국내산 암퇘지 먹을 만 합니다.
2018년 10월 11일 (수요일)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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