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황석산,거망산(黃石山.擧網山)

鄕香 2017. 8. 13. 11:30

 

며칠 전 황석산성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황석산정상부에 창矛같이 사각뿔 또는 삼각뿔 모양의 3개의 암봉이 황석산정상을 가운데 두고 南과 北에 위치하는 南峰, 黃石山頂上, 北峰 그 사이에 황석산산성이 그림같이 어우러진 모습에 매료되어 홀로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가 오늘 실행에 옮겨 그 사진을 이에 올립니다. 서울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양행 첫차(07시30분)를 타고 안의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10시40분, 시간마다 출발하는 용추사행 지역버스표를 구입하려니 방금 떠났다고, 중간에 인삼랜드휴게소에서 15분 휴식만 안했어도.. 산행시간만 6시간이라는데 산행 후 귀경 차시간은 촉박하겠고 택시기사에게 유동까지 얼마냐고 물으니 7,000원 정도라고 해서 탔더니 우전으로 가면 뭐 어떻고 하는데 사투리에 난청이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알겠다고 했더니 돌고 돌아 우전마을에 내려주며 15,500원, 정해진 시외버스시간안에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가야하니 1분이 아쉬운 때에 돈과 이유를 따질 때가 아니잖은가! 11시10분, 산행시작, 정상 도착 12시 10분, 정상에서 사진 찍고 점심 요기하고 1시간을 보냈다. 거망산을 거쳐 용추사 일주문에 도착하니 16시 20분, 16시 45분 안의행 버스승차, 17시10분 안의도착, 17시20분 서울남부행 버스 승차, 20시20분 남부터미널 도착하여 당일로 황석산, 거망산 산행을 무사히 끝냈다. 산행 소요시간 5시간10분,

 

 

 

<남부버스터미널 함양행 버스시간표>.

 

 

 

<안의 터미널 경내 버스시간표>

 

 

 

黃石山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일대에 있으며 안의면과 경계에 위치 하는 산으로서 높이 1,193m이다. 일찍이 「世宗實錄地理志」(안음)에 "황석산은 縣 서쪽에 있다. 황석산 석성은 縣 서쪽 25리에 있다. 둘레가 1,087步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新增東國輿地勝覽」(안음)에는 "황석산은 縣 서북쪽 15리 지점에 있다. 黃石山城은 석축이며 둘레는 2,924尺이다. 성 안에 시내(溪) 하나가 있고 軍倉이 있다."고 하였다. 

黃石山은 백두대간 줄기에서 뻗어내린 남덕유산 남녘에 4개의 산 箕白山(1,331m), 金猿山(1,353m), 擧網山(1,183m) 가운데 가장 끝자락에 창(鉾矛)끝처럼 솟구친 범상치 않은 바위산이다. 기백산을 북쪽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정상부에는 남봉과 북봉 2개의 꺼다란 암봉을 이루고 있다. 정면으로 볼 때 南峰은 頂上峰보다 더 뾰족하고 길게 뻗어서 마치 칼날(鉾)끝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月峰山(1,279m), 箕白山(1,331m), 掛冠山(1,252m) 등과 함께 영남 호남지방을 가르는 소백산맥의 줄기를 형성하며 南江의 상류 濫溪川의 일부가 發源한다. 황석산에서 거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억새밭을 이루고 있어 가을이면 장관일 것이다. 조선 선조 때 丁酉再亂 당시 왜군에 맞서 끝까지 항거하던 이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임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지조와 절개를 지키려고 바위절벽 위에서 수십길 아래로 몸을 던져 지금도 황석산 북쪽 벼랑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금원산과 기백산 사이는 그 유명한 용추계곡이 있으며, 6.25 전쟁 당시 마지막 빨치산 여대원 정순덕이 1951년 2월부터 1963년 체포되기까지 활동했던 곳이 거망산이다.  

 

 

 

오늘 산행코스와 거리 : 우전기점-(4.4km)-황석산성-(0.3km)-남봉-(0.6km)-황석산정상-(4km)-거망산정상-(4.3km)-용추사일주문. 총13.6km 이다. 


 

여기서 황석산정상까지 2.6km. 난코스만 아니면 1시간이면 충분하겠다. 현재시간 11시10분,

 

 

산악회 리본이 혼자하는 산행에서 때로는 큰 도움일 때가 있다.

 

 

바위에 이끼며 못 보던 수종들이며 풀이 무성하니 원시림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웬 바윗돌은 이리도 많은지 길이 따로 없다. 너덜겅지대건만 우거진 수림 속에서 햇빛을 받지 못하니 이끼에 덮여 있어 설악산귀때기청봉의 너덜겅 같은 대우(?)를 못 받고 있다.  

 

 

원시림 같은 골짜기를 얼마쯤 순탄하게 오르니 그 옛날 피맺힌 서럽고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 피바위 》

일본은 壬辰倭亂에 이어 宣祖30년 丁酉年(1597년)에 다시 침략(丁酉再亂)하여 티 없이 깨끗한 순수를 좋아해 옷마저 하얗게 입었던 우리 白衣民族이 그 하얀 마음에 붉을 피가 흥건하도록 恨에 젖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역사의 한 場이다. 再侵한 왜군 14만 명 가운데 우군 2만7천 명이 그해 음력 8월 16일에 가또, 구로다 등의 지휘로 이곳 황석산성을 공격해 왔다. 이때 당시 안의현감 곽준, 함양군수 조종도는 소수의 병력과 인근 7개 고을의 주민들을 모아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관민남여 혼연일체가 되어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 혹은 투석전으로 처절한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족으로 마침내 음력 8월 18일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왜구와의 격전이 벌어지면서 여인들도 돌을 나르며 부서진 병기를 손질하는 등 적 과의 싸움에 온갖 힘을 다하였으나 황석산성이 함락되자 여인들은 온갖 수모를 당한 후 왜적의 칼날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십 척의 높은 이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꽃다운 여인들이 몸을 던졌으니 이 어찌 한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때의 많은 여인들의 흘린 피로 벼랑아래의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 피맺힌 恨이 스며들어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그 혈흔은 남아 있어 이 바위를 '피바위'라고 한다.

      

 

바위가 뜨기 좋은 사암 또는 층상암 종류여서 그 모양이 마치 구들장을 보는 듯하다.

 

 

여기저기 갈라져 또 다른 형상을 도출한다. 비록 잿빛 하늘이지만 공기는 어찌 이리도 맑을 수 있을까! 서울에서 늘 걱정이던 미세먼지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산중에 보이는 것은 녹색뿐이다. 가끔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원색의 리본이 성황당 새끼줄에 꿰어 놓은 천 같지만 자칫 녹색으로 물들 눈을 치유하는듯하여 원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나쁘진 않았다.  

 

 

고목에 구멍이 뚫려있다. 숲 속 나무들의 외과의사 딱따구리의 집이 분명하다.

 

 

 

조금은 가파른 길을 오르고 보니 반가운 손님이다 바로 이정표님. 정상까지는 1.3km, 들머리에서부터 반은 온 셈이다.

 

 

 

제법 가파르다. 비라도 내리면 내게도 저 동아줄이 필요하겠지

 

 

 

그렇게 자연의 말동무되어 오르니 남문지다.

 

 

  

황석산성 남문지이다. 그 너머 우측의 나무 뒤에 숨은 대봉산이 있을 것이고, 운무에 잠식된채 희미한 윤곽으로 선을 이은 백운산과 장안산이 있을 것이다.

 

 

 

<황석산성 / 黃石山城> 서하면 봉전리 (경상남도 사적322호) 

전체 길이 2,750m, 높이 3m 정도의 황석산성은 안의면과 서하면의 경계인 황석산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듯 쌓은 包谷式 山城이다. 성벽은 돌로 쌓은 곳과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문은 東, 西, 南, 北東쪽에 작지만 門樓를 갖추고 있다. 성안 동쪽의 계곡 주변에서 크고 작은 건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오르는 중에도 壺片과 기와 조각이 눈에 띤다. 현재 면적은 446,186㎡정도로, 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한다.

황석산성은 영호남의 官門으로서 전북 장수군과 진안으로 통하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성 축조형식으로 보아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丁酉再亂 때 함양군수 조종도가 안의현감 곽준 등과 왜적과 싸우다가 엄청난 중과부족으로 순국하기도 하였다.

 

 

 

나는 오솔길 따라 성벽을 따라 정상을 향해 정답게 가고 있다.

 

 

 

성벽은 계곡으로 가려나 보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包谷式 山城은, 마치 띠를 두르듯 정상부만을 에워 싼 퇴뫼식 산성과 달리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계곡을 포함하여 넓게 쌓은 산성이다.

 

 

 

포곡식 산성은 지형에 따라 산성도 오르고 내린다.

 

 

 

마치 제방처럼 골짜기를 가로 막기 위해 내려간다.

 

 

 

황석산산성은 계곡을 가로 지르고 있다.

 

 

 

산성은 저대로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 능선 따라가겠고 나를 이끄는 오솔길은 방향을 달리하지만 정상에서는 다시 만나리라. 

 

 

 

이리가도 정상, 저리가도 정상이란다. 거리도 같다고 한다. 어디로 갈까... 우측으로 들어섰다.

 

 

 

평평하고 꽤 너른 지대이다. 그 옛날 황석산성 내의 건물터가 분명하겠다. 분지처럼 아늑하니 바람 한 줄기 없다. 땀이 옷을 흠뻑 적시니 몸은 물을 달라고 보챈다.

 

 

 

거북바위로 가는 길과 정상으로 가는 분기점이다. 모두 600m 앞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상 인근에 거북바위가 있는 봉우리가 있다.

 

 

 

여기서부터는 가파른 오름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리본 중에 구리산악회 리본이 보인다. 동향인 나를 기다렸느냐! 많이 반가웠다.

 

 

 

계단식으로 돌이 쌓인 길이다. 풍금으로 생각하며 치고 오르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심심산천 외로이 피어 있는 꽃인가 소박한 너의 모습 내 가슴을 태웠네. 그리움에 날개 돋쳐 산 넘고 물 건너 임 찾아 사랑 찾아 나 여기 왔노라. 외딴 곳에 피어난 이름 없는 꽃인데 찾아주는 그대는 정녕 나의님인가 어린 가슴에 꿈꾸던 그 사랑이라면 반겨 맞아 받드오리 따르 오리다." 3절은 생략하겠다. 고등학교 시절 익힌 이항일과 박재란의 노래로 알고 있다.

 

 

 

이런 길은 가팔라도 오르는 재미도 있고 힘든 줄 모르겠다. 풍금의 건반을 치는 기분이니까..

 

 

 

이곳이야말로 원시림이요 밀림이 아닌가! 야호~~! 어려서 본 정글북이 생각난다.

 

 

 

아까부터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아 돌아서서 보니 남덕유산이 내 등에 타고 있었다.

 

 

 

그렇게 주절거리다 보니 또 성문이다. 네가 동문인가 보다. 황석산정상은 100m우측이란다.

 

 

 

황석산성에 올라서서 우선적으로 정상을 올려다 봤다.

 

 

 

내가 올라온 황석산성 동문 맞은 편의 이 문은 택시를 안 타고 버스를 탔다면 유동마을로 해서 저 문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다음에는 저 문으로 들어설 것이다.

   

 

 

좌측을 보니 황석산성너머로 범상치 않은 바위봉우리가 돌아서 앉아 있다. 

 

 

 

황석산성 성벽위에서 황석산정상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보인다. 정상 뒤로 봉우리 너머로 거망산으로 가는 능선길이다.

 

 

 

내가 가야 할 길 반대 편 바위봉우리를 올라가면서 돌아서서 정상을 본다. 黃石山頂上峰 뒤 北峰너머 운무에 덮여 희미한 산이 거망산이고 우측으로 보이는 희미한 산 너울은 擧網山(1,183m)에서 金猿山(1,353m)과 箕白山(1,331m)으로 이어지는 남덕유산 남녘줄기이다.

 

 

 

황석산 정상부에는 남봉과 북봉 두 봉우리가 있다, 황석산정상 너머 거망산 방향으로 북봉이 있고 마주보고 있는 봉우리는 남봉이다. 정상과 북봉을 거쳐 거망산으로 가려면 먼저 남봉을 올라가 보고가야 유리하다.  지금 오르고 있는 이 봉우리는 남봉이다.

 

 

 

봉우리에 올라서서 바라본 원경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 안의면과 그 너머 산세의 모습 운무에 또렷이 볼 수 없는 원경이 아쉽다. 다만 약간 우측 마을 가운데 희미하게 보이는 젖무덤 같이 봉긋한 봉우리는 망월대이고 운무에 싸인 산들은 지리상으로 볼 때 망월대 뒤로 우두산과 비계산이 있겠고 우측으로는 두무산 오도산이 있겠고 그 너머로 황매산도 있을 것이다. 

 

 

 

南峰의 봉우리는 좁고 큰 바위가 줄지어 이어져 있고 위험하다. 그렇지 않아도 남봉 끝머리에서 돌아서서 바위를 안고 돌다가 산양 오줌 냄새에 취해 그만 이마를 바위에 부딪쳤다. 아프다 그래도 피가 흐르지 않아 다행이라 하겠다.

 

 

 

정상 반대편으로 이어진 황석산의 두 봉우리 중 하나인 남봉 너머 능선을 보고 다시 이 자리로  와서 북봉으로 가야 한다 .

 

 

 

코뿔소처럼 생긴 봉우리이다. 그런데 바위봉우리에는 산양들의 배설물이 널려 있다. 나처럼 바위 좋아하는 산양들의 놀이터인가보다.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서서 뻗어 내린 능선과 덕유산 줄기의 모습을 본다. 바위능선이 좁지만 끝머리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서 정상으로 가야한다. 이 멋진 바위능선을 외면하고 갈 용기가 없다.

 

 

 

칼날같은 남봉 끝자락에서 바라본 정경이다. 雲霧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 희뿌연 저 산줄기는 함양의 대봉산 줄기가 맞겠다.

 

 

 

앞자락에 또 바위능선이 보인다. 저기까지 가고 싶지만, 참자! 너무 늦으면 차편이 끊기겠다. 외박은 싫어! 정면으로 대봉산이 우람하다.

 

 

 

 어떤 분은 산에 가면 주변 산들을 꿰고 있다. 저 산은 무슨 산, 이쪽 산은 무슨 산 등 등 나는 아무리 들어도 건성이다. 그냥 산이 좋아 가지만 사실은 나무와 돌과 풀과 시내와 온갖 움직이는 것들이 품어내는 신비로운 화음과 맑은 숨결, 바람과 구름이 좋아서 그 들의 순수함과 오묘함이 좋아서 그 품이 좋아서 닮고 싶어서 갈 뿐이다.   

 

 

 

황석산정상을 향해서 다시 돌아가는 중이다. 바위능선이 좁고 위험한 만큼 재미도 있다. 산양처럼 뛸 수는 없을까! 내가 서 있는 앞 봉우리는 南峰, 가운데 황석산정상 뒤로 北峰이 삼형제처럼 나란히 정겹다. 북봉 뒤로 연계 산행할 거망산이 좌측으로 이어지고 우측면 끝으로 금원산이 잇고 있겠다. 

 

 

 

 돌아가는 길에 아쉬워 남봉의 바위능선을 다시 뒤돌아보고..

 

 

 

남봉에서 마주본 황석산정상과 그 뒤 북봉도 그 생김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 너머 좌측 봉우리는 거망산이고 우측 아득한 산세는 금원산과 기백산이다. 

 

 

 

이제 남봉의 마지막 바위봉우리로 다가가는데 자연이 빗어놓은 수반이 있다. 아니 양들의 물동이인가 비바람에 닳고 닳아 깨진 물동이 같구나!

 

 

 

구유통 같기도 하지만 수억년의 더께가 참으로 고풍스럽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양인가! 돈도 뭣도 관심 없다. 그저 자연과 돌 밖에..

 

 

 

기념으로 산양의 신성한 배설을 담았다. 긴 남봉을 가고오는 동안 바위에 밴 산양의 향기롭지 못한 오줌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제 하나 남은 바위봉우리만 넘어가면 황석산성이고 정상에 오르게 되겠지!

 

 

 

황석산성에 이제까지 없던 왠 여인? 설마 날 기다리는 것인가! 오해하지 마세요! 난 지금 기백이 넘치는 南峰에 반해 바라볼 뿐이라고요!

 

 

 

버스를 탔다면 유동마을을 들머리로 들어섰을 성문을 바깥쪽에서 기념으로 담는다. 우전마을에서 올라와 내가 들어선 성문과는 서로 등을 마주하고 있다.  

 

 

 

황석산정상을 오르면서 올라갔다 되돌아온 남봉의 모습을 잠시 보았다네.

 

 

 

황석산정상으로 오르는 봉우리의 모습은 그냥 큰 바윗돌을 쌓아놓은 형국일세. 

 

 

 

 

황석산정상에는 하눌님이 계신가 날 살리려 파란 동아줄을 내려주시네. 호랑이야 안녕!

 

 

황석산정상은? 누가 묻거든 풀도 나무도 못사는 그냥 바윗덩어리를 쌓아 올린 크고 큰 돌무지라고 말해주오

 

 

 

산세를 희롱하는 구름을 바라보며 北峰과 그 뒤로 이어진 능선따라 거망산을 바라보네. 擧網山너머 횡으로 이어진 金猿山과 箕白山, 그 아름다운 순수를 향해 구름과 바람만 벗 삼아 자연의 한 티끌되어 향기처럼 간다네.

 

 

 

정상, 그 뒤편에서 능선 따라 보니 거망산은 잘리고 橫으로 늘어선 저 산 너울은 금원산과 기백산이라하겠네. 누군가는 黃,擧,金,箕 네 산을 連繫縱走했다는데 거리는 얼마나 될까! 나도 가고 싶다. 당일치기는 어렵겠고 無泊二日이면 되겠다.

 

 

 

정상에서 사방의 원경을 보는 중이다. 산행 중의 別味가 아닐까!

 

 

 

 구름과 노닐고 있는 저 산이 금원 아니면 기백이겠다.

 

 

 

황석산정상을 내려와 북봉을 바라보며 우측으로 들어섰다.

 

 

 

 황석산정상을 내려와 옆으로 끼고 돌아가니 황석산성이 황석산정상과 北峰 사이를 잇고 있다.   

 

 

 

뒤돌아서서 다시 황석산정상을 바라본 모습이다. 아까 혼자 날 쳐다보던 그 여인 저 일행이었네.

 

 

 

바라본 황석산의 모습은 槍矛의 끝날 같은 사각뿔 모양이다.

 

 

 

황석산을 바라보고 있는 묘지 하나, 황석산의 氣를 후손에 내려주십사는 바람이 있었을까!

 

 

 

거북바위 뒤로 능선과 봉우리가 험난하다. 설마 저 봉우리를 넘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이미 넘어온 황석산정상과 남봉입니다.

이 사진을 보니 아쉬움이 있다. 저 거북바위위에서 보는 원경은 어땠을까!

 

 

 

황석산성은 칼날같은 北峰으로 이어지고, 길은 가파른 산허리를 끼고 로프에 의지하며 우회해야만 하는 이 봉우리(北峰)는 어떤 형상이기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없을까!

 

 

 

얼마나 험하고 난이하기에 우회하는가 싶어 올려다 보다가 그만 기죽고 말았다오. 그냥 수십 길 절벽!

 

 

 

우회하여 가는 길이 이럴진데 북봉의 반대편은 중국의 棧途같은 시설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직벽이겠지요, 북봉은 칼날처럼 좁고 양면이 절벽인가 봅니다.

 

 

 

가다보니 이렇게 시골 뒷산길 같은 길도 있더이다.

 

 

 

탁현으로 가는 첫째번 하산길이다. 황석산정상을 올랐다가 '안의~용추사'간 운행되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최단거리 코스이다.

 

 

 

나는 탁현으로 가는 하산길을 스치듯 지나간다.

 

 

 

뒤돌아서 보니 두 봉우리가 쇠뿔처럼 보이네.

 

 

 

당겨보니 바짝 세운 진돗개의 두 귀를 연상시킨다.

 

 

 

노랑빛깔의 버섯 두 송이, 노랑색 버섯으로는 아는 것이 꾀꼬리버섯 뿐인데.. 네가 그 버섯이니?

 

 

 

 

 

조릿대 무리 가운데 바윗돌 하나 너도 생명을 키우고 있구나! 무수한 이끼와 바위솔에 살갗을 보시하고 있구나!

 

 

 

키를 넘는 동굴 같은 잡목사이길이 시원함과 긁힘을 동시에 베풀고 있네. 

 

 

 

작은 봉우리의 모습이다.

 

 

 

거쳐야 할 봉우리를 담는다. 목적을 위한 과정이기에..

 

 

 

온통 짙은 녹음으로 덮인 봉우리 중턱에 뾰족하게 솟은 바위가 신비롭다. 

 

 

 

세 바위는, 아이를 업은 지어미와 지아비가 마주보고 있고, 그 아래 바위는 이별이 아쉬워 서로 끌어안고 석별의 정을 나누는 박달도령과 금봉이 같기도 하고, 다시 보면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안아 올려 바라보시는 모습 같고..

 

 

 

나무는 온산을 덮었지만 육산이 아닌 바위골산이다. 오랜 세월 부식토가 쌓이고 나무가 자라고 다시 부엽토가 덮이고 이렇게 순환하여 숲을 이루고 무성하다. 흙은 짙은 흑갈색이다.  

 

 

 

두 번째 삼거리입니다. 장자벌로 하산하는 길로 '안의~용추사' 간 시간마다 운행하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나는 그냥 지나갑니다. 거망산정상을 향해서..

 

 

 

낮은 봉우리의 정상을 넘어..

 

 

 

바위골산에 검은 빛 부엽토가 쌓여 이룬 숲이 자못 육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큰 봉우리에서부터 바위에 이르기까지 이리저리 금이 가니 보기도 좋은 문양이 되었다가 어느 한 쪽이 떨어지거나 빠져나가면 기암괴석이 되었다가 무너져 내리면 너덜겅이나 돌멩이로 변신하겠지. 

 

 

 

아까는 허리를 넘는 참억새가 서정없이 종아리를 할퀴더니 이제는 조릿대가 얼굴을 할키려 든다.

 

 

 

능선으로 가는 길과 우회하는 길로 갈라지는 곳이다. 능선으로 가는 길은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바위가 여기저기 솟아나 있고 잡목이 무성하여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다소 위험하여 우회길이 생긴 것 같다.

 

 

 

능선로와 우회하는 길인데, 만나 합치기까지의 거리는 100m정도이다. 나는 능선으로 들어섰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리저리 원경을 볼 수 있다. 바람도 있고..

 

 

 

뽀얀 운무 속에 금원산과 기백산이 아련하다. 가을 쯤 저 두 산을 찾아볼 생각을 한다.

 

 

 

 

파란하늘의 뭉게구름은 상큼하고 아름다운 꿈을 주지만, 운무로 뽀얗게 덮인 대기는 왠지 우울하다. 보고 싶은 산맥의 너울도 따라서 암울한가보다. 어렴프시 바라보니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 우두산 비계산 등이 그라프를 그리며 키 재기를 하고 있다.

 

 

 

마치 활화산을 보는 느낌이다. 수없이 담기는 잠자리를 보니 이제 가을로 들어서는가보다.

 

 

 

 

 

오후가 되니 원경도 제법 보인다. 세상을 덮던 운무도 이제 지쳤는가보다. 오른쪽 가깝게 거망산이 느슨하게 엎드려 있다.

 

 

 

당겨보니 거망산의 이름돌(標石碑)이 보인다. 주변 산에 비해 그리 높아 보이지도 않고 그냥 능선 같은데.. 

 

 

 

완만한 언덕 같은 느낌을 주는 거망산, 이 일대에서 6.25전쟁 때 남편 따라 빨치산이 되어 활동하던 정순덕이라는 여대원이 전쟁이 휴정되어 12년이 되도록 잡히지 않아 토벌군경을 애를 먹였었다.

 

 

 

 

 

 

산청군 삼장면 내원마을에서 태어난 정순덕은 10대 후반에 결혼했다. 6.25동란 당시 조선인민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 남편 성석근이 인민군을 도왔다가 국군이 다시 수복하자 국군을 피해 조선인민유격대(빨치산)에 입대하여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활동하자 1951년 2월 겨울옷을 챙겨들고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가 남편과 20여일을 같이 지내다가 송석근이 사망하자 유격대에 합류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1963년 11월12일 새벽 생가 근처 내원골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고 함께 활동하던 남성대원 이홍이는 사살되었다. 당시 함께 활동하던 남성대원 이홍이와 함께 마지막 빨치산으로 신문방송은 대서특필 되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이후 정순덕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가 1985년 석방되어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 사는 관악구 '만남의 집'에서 살림을 맡았고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그때까지 비전향으로 남아 있던 長期囚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때 정순덕은 정순택 등과 양심선언을 하였는데 '자신의 전향은 고문과 강요가 동반된 전향 공작에 따라 전향서에 강제로 도장을 찍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전향을 취소하고 북한으로의 송환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고향이 대한민국 경남지역이고 전향서를 쓴 적이 있다는 사유로 송환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후 4년 후 2004년 인천에서 사망했던 마지막 빨치산이었다.  

 

 

 

거망산(擧網山1,184m) 오르는 길은 여러 곳이고 오르는 길이 大同小異 하겠다, 우전마을에서 황석산을 거쳐 거망산으로 가는 능선에는 조릿대와 억새와 잡목이 빽빽이 들어차고 길을 분간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거망산정상 아래 이르면 산세가 넓고 따라서 순박한 모습이어서 마음도 느슨해진다. 뾰족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황석산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황석산이 기개 높은 선비라면 거망산은 후덕한 안방마님이랄까.. 

 

 

 

앞 봉우리 능선 길은 봉우리에서 태장골로 하산하여 용추사 일주문 버스 종점으로 가는 길이고 봉우리에서 계곡 능선을 타고 가다 좌측 월봉산으로 갈 수 있고 우측으로 가면 금원산을 거쳐 기백산으로 갈 수 있다. 기백산 정상에서 용추사 일주문으로 내려 올 수도 있고 계속 능선을 타고 '안의'로도 갈 수 있다. 

 

 

 

白頭大簡에서 갈려나온(支脈) 소백산맥이 덕유산과 남덕유를 솟아 올리고 다시 남덕유산에서 뻗어내린 산세가 月峰山을 거쳐 소위 말하는 箕,金,擧,黃이다. 옹골차게 빚어 놓은 네 산 끝머리 황석산을 두 개의 尖峰으로 치솟아 놓고 맺었다. 이 네 산이 이룬 깊은 용추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용추계곡을 지나 지우천을 이룬다.   

 

 

 

거망산정상에서 거쳐온 능선을 바라본다. 다시 정상아래 지장골로 들어서 용추계곡의 용추사일주문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야겠다.

 

 

 

지장골로 내려가는 들머리이다. 이제부터는 오름이 없는 계곡으로 가는 내림길 뿐이다. 길이 미끄러워 우천시는 태장골로 하산하라는 통제되는 길이다. 용추사일주문까지 4.5km 과연 어떤 길일까? 

 

 

 

키 큰 나무 아래 조릿대가 퍼져있다. 저 조릿대 겁나는 녀석들이다. 생명력이 질기고 번식력이 강해 다른 풀들이 살아남지 못한다. 국가차원에서 어떤 조치가 있어야하겠다. 

 

 

 

죽은 나무들이 썩어가고 이끼 입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조잘되는 그대로 깊고 깊은 계곡이다. 길은 조릿대와 이름 모를 잡풀들이 잠식하여 찾기조차 어렵다.

 

 

 

보는 그대로 사람의 발길 없었다는 듯 나무도 바윗돌도 異口同聲으로 내게 말한다. 속세의 한 티끌이 여긴 왜 왔니!?

 

 

 

하늘을 덮은 골짜기는 어둡고 음습하여 많은 생명들이 번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 숲에 그 이정표로다! 태고의 숲 속에 너마저 고풍스럽다.

 

 

 

이리저리 앞서 갔을 사람의 발길을 찾아 헤맨다.

 

 

 

물이 안 보이던 계곡에 물이 흐르고 자연 그대로의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다. 식수는 남아 있지만 손을 모아 받아 마셔보니 달기도 하고 씁쓰레하기도 하다.

 

 

 

계곡은 차츰 넓어지고 바위도 많아지고 물도 많이 흐른다.

 

 

 

길은 다시 산허리로 올라선다.

 

 

 

 제법 말끔한 이정표가 나를 안내한다. 안내는 고마운데 아직도 지장골 입구가 1km가 넘느냐!

 

 

 

다시 발길을 옮기는데 이제까지 지나온 길만 같다. 이정표가 말끔해서 길도 좀 길다울 줄 알았는데..

 

 

 

나무들 우거진 숲속 계곡을 내려 왔는데 온몸이 땀으로 끈적이고 모기는 사정없이 달려들어 바늘 같은 입으로 콕콕 찌르고 바람은 어디론가 바람이 나서 없고 그냥 작은 폭포아래 아담한 沼로 뛰어들까 싶었건만 그 버스 시간독촉에 얼마나 망설였던가!

  

 

 

이제 이 계곡과 이별의 시간이다. 이 계곡은 1천m가 넘는 기백산, 금원산, 거망산, 황석산 네게의 산이 아우러져 빗어낸 용추계곡 上谷이다. 이 자리에서 계곡을 따라 100여m만 내려가면 용추폭포인데 길은 우측 위 도로로 이어진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계곡 쪽을 보니 지금과 달리 바위들은 눈부시도록 하얗게 반짝이고 피서객들이 수영복차림으로 물놀이가 한창이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려고 하니 가파른 벼랑이어서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었다.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그 중간지점에서 얼핏 폭포 상부를 보았기에 내려가서 계곡을 역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볼 수 있겠다 생각하고 그냥 지나 쳤는데..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보니 용추폭포까지는 100여m 인데 갑자기 억수가 쏟아지고 머뭇대고 있는 동안 버스는 도착했다. 오늘은 네가 내게 보이기를 허락치 않는구나! 다음 기백산 찾을 때는 네 모습을 보여 줄 거지?

 

 

 

《 장수사 조계문(용추사 일주문)/長水寺曹溪門(龍湫寺 一柱門) 》

長水寺는 신라시대의 元曉와 義湘을 비롯해, 조선시대의 舞鶴, 西山, 四溟 등 여러 高僧이 수도한 이름 있는 절이었고 龍湫寺는 원래 장수사에 딸린 작은 암자였다. 6.25전쟁으로 장수사가 일주문만 남고 全燒되어 1959년에 중건하면서 이름을 용추사로 바꾸었다. "德裕山長水寺曹溪門"이라고 쓰여 있는 일주문 현판만이 장수사의 흔적을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주문이 그렇게 크지 않은 보통의 맛배지붕으로 만들어진데 비해 이 일주문은 화려한 多包系 八作지붕의 양식을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기둥 간격4m, 직경 1.2m가 넘는 튼튼한 기둥에 떠 바쳐진 일주문은 그 규모가 매우 장대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의 지붕 때문에 기둥이 오히려 작아 보일 정도이다. 혀를 말아올린 듯이 길게 뻗어 나간 장식들은 기둥 위에서 구름과 연꽃으로 피어오르고 기둥머리의 봉황조각은 길게 돌출된 서까래와 함께 처마선을 타고 올라 천상 세계가 바로 여기라고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아마 이곳에서부터 부처의 극락세계가 시작된다는 종교적 의미를 상징적이면서도 장엄하고 화려한 구조로 표현한 것 같다. 

 

 

 

 

 

 

 

 

얼마나 오랜 새월이면 너처럼 고졸해 진단 말이냐 !? 나무도 바위도 세월이 흐르니 하나 같은 모습이다. 나무의 樹皮나 바위의 표면이나 구분을 할 수 없네. 

 

 

 

여기서 용추사로 백여 m 올라가면 용추폭포가 있건만 이제까지 없던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버스 올 시간은 다가오고 아쉬워 어쩔 줄 몰랐었지. 용추폭포는 다음 기백산과 금원산 찾을 때 보자고 마음을 달랬었지..  

'안의~용추사' 간 운행되는 버스 종점이다. 시각은 4시31분이다. 11시10분에 산행시작 했으니 5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사진 찍은 시간을 감한다면 산행시간은 더욱 짧겠다.

 

 

2017년 8월11일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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