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촉촉이 내리는 티옌무 사원으로 가는 길가 모습을 버스의 창문을 통해 봅니다. 후에 시내의 어느 초등학교 수업 후의 모습입니다. 이곳 역시 우리나라 부모와 다름없이 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합니다. 수업을 마친 아이를 데리고 가기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전용우의를 입은 부모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거나 교정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에서 살가움을 느낍니다.
좁은 도로에서 버스를 스치듯이 지나가는 특별한 우의를 입은 오토바이 행렬이 이색적입니다.
티얜무 사원 앞에 흐르는 흐엉강(香江)의 모습이다. 강물이 넘칠 것만 같이 수량이 풍부하다.
《 티옌무 사원 》
흐엉강(香江)이 내려다보이는 길가 언덕의 티옌무 사원은 내리는 이슬비로 인하여 이끼 낀 유서 깊은 사찰건물들이 촉촉이 젖어 더욱 고풍스럽고 장대한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두개의 단으로 이루어진 계단 중간에 네 개의 방형의 높은 기둥이 세워져 있고 기둥의 금빛 전면에는 한자로 부처님의 법어가 있다.
팔각 복연탑(福緣塔)은 1884년 응우엔 왕조 제4대 티에우찌 황제(재위1841~1847) 때 세운 높이 21m에 벽돌로 쌓은 7층탑인데 탑의 각 층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그러나 탑문은 굳게 잠겨 있어 볼 수 없었는데, 이 문을 열어 놓는 날은 1년에 단 한번, 석가탄신일에만 탑문을 열어 놓는다. 복연탑 좌우에는 범종각과 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복연탑(福緣塔)은 베트남 언어로 "탑프억유옌" (tháp phước duyên)이라고 하네요.
1715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 비각 안에는 거북형의 비 받침대 위에 2m 정도 높이의 碑가 세워져 있다.
교자상에 거북을 올린 모습의 대좌 위에 세워진 비문의 내용은 '티옌무 사원이 베트남에 불교를 선양한 功績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法鼓라고 볼 수 있는 북이 걸려있는 건물이다. 복연탑 앞마당 귀퉁이에 있다.
복연탑 뒤에는 우리나라의 사천왕전이라 할 수 있는 三門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있는데 각 문 안쪽 좌우벽에는 四天王像처럼 표현된 神將像이 모두 여섯像이 浮彫되어 있다. 복연탑과 三門 사이에 세워진 비석의 碑文은 티옌무 사원이나 복연탑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좌측문의 안벽에는 대자비(大慈悲)라는 현판이 있고 우측 문에는 대지혜(大智慧)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가운데 문에 영모사(靈姥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사찰의 이름이 아닌가 싶다. 알아보니 티옌무(Thiên mụ)라는 베트남 말은 한자로 천모사(天姥寺)인데, 영모사(靈姥寺)는 어떤 까닭에선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바뀐 이름이다.
여섯 神將이 浮彫되어 있는 三門을 나서니 정면에 우리나라의 대웅전이라고 볼 수 있는 本殿이 있고 좌우에 삼문에 부조된 신장과 같은 모습의 신장이 각각 셋씩 모셔진 건물이 있다.
중국 後梁 때 契此(계차)라는 이름에 定應(정응)이라는 스님이 비대한 몸에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일용품을 담는 베로 만든 자루를 메고 지팡이를 들고 좋고 나쁨과 날씨를 점쳤다하여 일명 布袋和尙(포대화상)이라고 불렀던 스님의 형상이 부처와 삼존불 앞에 있고 그 위에 "영취고봉 峰高鷲靈 " 현판이 달려있다. 지혜로운 수리는 높은 곳에 자리한다.
布袋和尙 뒤에는 유리상자안에 모신 불상과 그 뒤에 모셔진 삼존불 역시 유리로 만든 틀 안에 모셔져 있다. 거대한 해수관음보살을 모신 사찰 대웅보전과 그곳의 여러 불전에서 보았던 방식인 만큼 베트남 불교의 전통이 아닌가 싶다.
"영치고봉(峰高鷲靈) " 현판이 걸려 있는 영모사(靈姥寺)의 本殿 우측에 있는 신장을 모신 곳이다.
영모사(靈姥寺 티옌무(Thiên mụ)의 本殿 우측에 있는 신장을 모신 곳이다. 가운데 신장은 부처의 手印을 표현하고 있고 우측의 신장은 오른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왼손은 주먹을 쥔 모양으로 무릎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나라의 사천왕상과는 다른 표현이며 더구나 좌우로 각각 세 분씩 모두 여섯 분이 모셔져 있다.
영모사(靈姥寺 / 티옌무(Thiên mụ)의 本殿 뒤로 가는 길이다.
영모사(靈姥寺 / 티옌무(Thiên mụ)의 本殿 옆 모습.
解憂所 앞 나무의 열매. 成人의 큰 주먹만한 크기이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열대 식물들은 나무도 크지만 열매도 크지만 색다른 모양이다.
티옌무 사원은 1601년에 다음과 같은 전설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붉은 저고리와 파란치마를 입은 신령스런 여인”天姥 티옌무 (Thiên mụ)이 이 언덕(현 사찰)에 나타나 주민들에게 “君主가 나라의 번영을 위해 이곳에 불교사원을 지을 것.”이라고 전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곳의 통치자가 ‘신령한 여인’을 위한 사원을 세우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통치자가 응우옌호앙(阮潢 1558~1612)으로 19세기 베트남을 통치한 응우옌 왕조(1802~1945)를 창시한 임금 응우옌푹아인(阮福暎)은 그의 후손이다. 이 사원은 응우옌 왕조와 이런 관계로 황실에서 관리했다고 한다.
사진은 법당건물 뒤 정원의 모습이다.
<水蓮>
사원 안 맨 끝 넓은 잔디정원을 앞에 두고 있는 하나의 탑이 있다. 寺院 경내가 다 그렇듯이 자연스럽고 잘 꾸며진 주변이 아름답다. 이 사원은 현재 동승들에게 교육을 하는 학교로 활용되고 있다.
탑의 주인공을 알길 없었는데, 인터넷에서 '모산재' 님의 블로그 "존재의 따스함"에 의하면 티옌무 사원의 저명한 주지 석돈후 화상(釋敦厚 和尙)의 묘탑이라고 한다. 또한 1963년 6월11일 지구촌을 놀라움으로 몰아넣었던 충격적인 '燒身供養'을 벌인 "틱꽝득" 스님의 유해를 모신 곳은 아닐까! 라고 소신을 올린 글을 보았는데, 당시 내 나이 19살 때 朝夕刊으로 나오던 조선일보기사를 통해 알았던 그 '소신공양'의 스님일 수도 있겠다는 공감이 든다.
이 팔각6층탑은 기단은 卓子모양 위에 화엽을 돌린 臺石위에 탑신은 팔각의 모서리마다 서구식 기둥을 조각하였고 팔각앞면은 문이 있고 다른 면은 액자형틀로 처리된 몸돌 위에는 각진 마루 끝에 우리나라 탑의 귀꽃처럼 형상을 알 수 없는 장식을 한 팔각지붕을 탑신과 함께 6층으로 조성한 탑으로 안정감이 있다.
탑을 둘러보고 돌아서본 넓은 잔디정원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노랑꽃화분 사이 사각으로 꾸민 연못이 보인다.
우리나라 사찰의 대웅전이라 할 수 있는 본존불을 모신 불당의 뒷마당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분재보다 훨씬 큰 많은 분재들이 전시회라도 여는 듯이 놓여 있다.
베트남의 소나무인가 보다. 기묘하게 틀어지고 휜 나뭇가지에 길이와 모양도 뚜렷한 솔잎에 포피마저 멋진 우리나라 소나무를 닮은 듯하다. 그러나 얼기고 성글은 이파리에 나무 등걸이나 가지의 포피가 확연히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가지에서 뿌리가 아래로 늘어진 나무분재. 이 나무는 다낭 마블마운틴과 후에전통마을에서 분재가 아닌 거대한 모습으로 보았던 나무이다.
티옌무 사원 정문주변의 삼문과 복연탑이 보이는 풍경이다.
사원에 들어온 정문이 아닌 측면의 작은 문으로 티옌무 사원과 작별을 하는 중이다.
사원의 담과 호젓한 길이 사람의 기척마저 없으니 더욱 적막하다.
길가 나무에 달린 열매마저 보고 싶을 때도 있으리..
2016년 2월25일, 후에 티옌무 寺院.
'◈ 세월에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11. 다낭 하이번고개 길가 풍경 및 해안도로 풍경,.손짜 영응사 해수관음보살. (0) | 2016.03.27 |
---|---|
베트남10. 황궁 후에성. (0) | 2016.03.25 |
베트남 8 (응우 옌 왕조 제 4대 뜨득 황제 겸능) (0) | 2016.03.18 |
베트남 7 (랑코 비치, 카이 딘 황제릉) (0) | 2016.03.14 |
베트남 6 (다낭 바나 힐, 케이블카) (0) | 2016.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