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베트남 8 (응우 옌 왕조 제 4대 뜨득 황제 겸능)

鄕香 2016. 3. 18. 12:32

후에 시에서 7km 떨어져 있는 두옹 수안 투옹마을의 반니 엔 산에 있는 응우옌 왕조 제4대 뜨득 황제(嗣德帝)의 겸능(謙陵)으로 186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867년에 완성하였다. 베트남의 오랜 전통에 따라 효자는 어버이의 묘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뜨득 황제는 사후 돌볼 자식이 없어 스스로 자신의 陵을 설계하고 공사도 친히 감독하였다고 한다. 시인(詩人)이기도 했던 뜨득 황제의 陵은 앞 호수를 안고 우뚝 솟아있는 뛰어난 축조물과 호수를 비롯한 주변의 경관을 한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펼쳐 놓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뜨득 황제陵은 謙陵이라고 하며, 이 사진은 정문인 무겸문(務謙門)을 안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이 호수는 뜨득 황제의 陵 앞을 둘러쌓은 듯이 꾸며져 있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르우키엠' 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호수이다. 애당초 뜨득 황제는 이곳을 행궁으로 築城한 것이었으나 황제가 임종할 시에 子息이 능묘를 마련해주는 제도가 있어 後嗣를 이어줄 자식이 없는 뜨득 황제는 스스로 이 행궁을 자신의 陵으로 꾸몄다고 한다. 르우키엠호수를 끼고 돌을 쌓아 축조한 이끼 낀 고풍스런 축대 옆길은 호젓하고 그윽한 분위를 자아내고 있어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뜨득 황제陵 앞 르우키엠호수의 풍경입니다. 1996년에 복한 건너편 호숫가에 殿閣은 충겸사(冲謙謝)라고 하는데, 뜨득 황제가 비빈과 차를 마시고 시를 지으며 즐기던 곳입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섬으로 건너가는 곳에 계단식으로 지은 유겸사(兪謙謝)라는 정자에서는 뜨득 황제가 낚시를 즐기던 곳이 있습니다.    



뜨득 황제의 능으로 가는 길목 좌측으로 돌계단 위에 공지가 있고 폐허가 된 건물이 보입니다.



뜨득 황제 능으로 가기 전 옆에 계단이 있고 그 계단 위에 으슥한 문 안에 음습한 이 건물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나 방치했거나 미처 보수를 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변이 으스스 하여 문 안쪽은 들여다보기조차 망설였던 곳입니다. 



뜨득 황제 능 앞에 있는 르우키엠 호숫가의 정자의 측면 모습으로 이 계단식으로 지은 유겸사(兪謙謝)라는 정자에서는 뜨득황제가 낚시를 즐기던 곳이라고 합니다.    



뜨득 황제 능 앞 건너편의 르우키엠 호숫가의 또 다른 전각의 측면 모습, 이 殿閣은 1996년에 복원된 충겸사(冲謙謝)라고 하는데, 시인(詩人) 뜨득 황제가 비빈과 차를 마시고 시를 지으며 즐기던 곳이다.



뜨득 황제陵의 담장 모습.



르우키엠호수 좌측은 뜨득 황제의 능이 있고 호수 좌측 언덕에는 또 다른 陵들이 있습니다. 애당초 행궁으로 成築한 때문일까. 陵이라기 보다는 궁전의 뜰처럼 호수와 아담한 동산, 수많은 갖가지 나무와 꽃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아늑함이 풍기는 아름다운 정원과 같은 곳입니다.



정문 방향으로 바라본 르우키엠호수 정경. 물길따라 쌓아올린 이끼낀 축대가 인상적입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뜨득 황제의 비각을 정면으로 그 좌우에 석상들이 있습니다. 석상 중 문무인석은 크기가 아담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키가 153cm정도로 작았던 뜨득 황제는 생전에 자신보다 키가 큰 인재는 등용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를 문무인석에도 반영한 듯합니다.



정면에 비각과 그 안에 뜨득 황제의 공적비(우리나라의 신도비)가 있고 그 좌우로 문인석 무인석이 쌍으로 배열되고 그 옆에 말과 코끼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측에 배열되어 있는 석상들의 모습. 가이 딘 황제陵과 달리 호위무사상(護衛武士像)이 없고 또한 문무인상의 크기가 옆에 서서 기념사진 찍는 여인의 키와 비슷할 정도로 작습니다. 



<뜨득황제공적비각>

陵의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 안쪽에 비각이 있고 그 좌우에 방첨탑(方尖塔오벨리스크)이 세워졌고 문신상 2, 무신상 2, 말 1, 코끼리 1마리 식으로 좌우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뚜득 황제의 업적을 새겨놓은 묘비석입니다. 이 비는 그 무게가 20톤이나 되는 것을 하노이 부근 '타인호와'에서 옮겨오는데 4달이 걸렸으며 그 거리가 400km라고 합니다.  



뜨득 황제의 신도비라 할 수 있는 황제의 일대기를 기록한 碑와 비각으로 측면에서 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능묘에서 망주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方尖塔은 비각의 좌우에 있는 좌측탑으로 오벨리스크라고 합니다.



뜨득 황제는 스스로 비문을 쓸 때 자신의 잘하고 못함을 사실대로 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능묘에서 망주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方尖塔은 비각의 좌우에 있는 우측탑으로 오벨리스크라고 합니다.



뜨득 황제 공적비 뒤에서 바라본 陵門 앞의 전경입니다.



비각을 돌아 뒤로 가면 '티에우키엠'이라는 반원의 연못이 있고 그 연못가의 길을 따라 돌아가면 능묘로 들어가는 2층의 높은 陵門 이 있는 앞에 이릅니다.



 반달처럼 생긴 '티에우키엠'이라는 연못을 돌아서 뜨득 황제 능의 정문이랄 수 있는 능문으로 가는 중입니다. 길 양 쪽에는 분재모양으로 사각형 틀에 가꾼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습니다.  



반달모양의 연못을 돌아가다가 옆 담장너머를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보이는 담은 후궁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던 弊殿이 있는 담장입니다.



반원형의 연못인 '티에우키엠' 앞에 있는 백양목처럼 희고 멋진 나무입니다. 그 앞에 황제陵 권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문 좌우로는 능을 보호하는 우리나라 왕릉의 곡장(曲牆)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담장이 둘려져 있습니다.



황제의 무덤이 있는 문을 들어서니 전면에 능묘를 가린 壽자 문양을 중심으로 자기편으로 조합한 문양으로 치장한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뜨득 황제의 石廓陵의 모습입니다. 사면을 잘 다듬어진 네모난 돌로 쌓은 석곽에 우리나라의 팔작지붕 비슷한 蓋石을 덮었는데 용마루에는 용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엄청난 비석과 대단한 능을 많은 인력과 경제력을 동원해 조성했을 이 능에는 정작 뜨득 황제의 시신은 도굴을 염려하여 알 수 없는 다른 곳에 묻혔다고 한다. 그 알 수 없는 무덤을 만든 인부 200여명은 비밀을 유지할 목적으로 모두 살해되었다고.. 이러한 일이 사실이라면 심미안과 詩心이 깊은 황제의 진심은 어떤 것일까..     



가림막은 카이딘 황제陵 계성전(啓聖殿)을 꾸민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가운데 壽자 문양을 중심으로 磁器片 등을 붙여 꾸몄습니다.



뜨득 황제陵을 뒤로 하고 능묘문을 나와서 돌아본 모습입니다.

 


문설주에 표현된 문양의 형태입니다. 온갖 무늬가 청화로 그려진 백자기 조각들이 보입니다.



뜨득 황제능을 둘러보고 다시 반달모양의 못 앞에서 뒤돌아본 전경입니다.



르우키엠호수 주변 모습입니다. 방형의 화분?에 심어놓은 나무와 탐방온 사람들의 모습. 



삿갓모양의 베트남 모자를 쓴 아가씨들의 모습이 귀엽다 싶어 그 느낌, 기념으로..



르우키엠호수 건너편 다른 황제의 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르우키엠호수 양쪽 가에는 돌로 마치 성처럼 쌓았습니다. 뜨득 황제 능 뒤에는 '레티엔아인 황후'의 능이 있고, 조금 더 가면  뜨득 황제의 양자로 응우옌(沅王朝) 왕조 제 7대 황제 끼엔푹(재위1883~1884) 황제의 사당과 능이 있습니다. 끼엔푹은 14세의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올라 8개월만에 사망합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인이 많습니다.



이 계단 위에 뜨득 황제의 위패를 모신 궁전으로 들어가는 첫 문(謙宮門)입니다. 이 건축물은 본시 행궁으로 건축한 것인데 능묘로 만들었답니다.



작은 누각을 겸하고 있는 三門으로 이 건물은 겸궁문(謙宮門)니다. 행궁으로 사용할 당시 황제의 집무실 겸 침전이었던 화겸전으로 들어가는 궁문이었습니다. 용마루에는 수많은 용의 형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三門으로 건축한 겸궁문(謙宮門)을 거쳐 들어선 뜰 앞에는 황제의 위패를 모신 화겸전(和謙殿)이다. 이 건물은 □ 형태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의 기와의 모양은 중국과 거의 같다. 



□형 건물 앞은 화겸전(和謙殿) 뒤는 양겸전(良謙殿) 오른편은 명겸당(鳴謙堂) 왼편은 온겸전(溫謙殿)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붕의 기와는 중국 영향을 받아 작고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모습으로 크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기와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화겸전(和謙殿)은 뜨득 황제의 행궁 집무실이었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자신의 위패와 황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되었습니다.



양겸전(良謙殿)입니다. 화겸전과 양겸전 사이 좌우에는 명겸당과 온겸전(溫謙殿)이 있는데, 뜨득 황제의 행궁 때에는 명겸당은 공연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하며 온겸전은 황제의 물품을 보관하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화겸전 뒤 양겸전은 뜨득 황제의 침전이었으나 지금은 황제의 모친 '뜨즈' (慈兪 황태후)의 사당이 되었습니다.



시각을 확인하니 현지 안내원과의 만나기로한 시간이 넘어 명겸당과 온겸전은 사진도 못 담고 뒤돌아 나왔습니다.



가이드를 따라 다음 목적지인 '후에 황궁'으로 발길을 옮기며 순간순간 담은 호수의 풍경입니다.  



호수에 떠 있는 부조화분



뜨득 황제의 능에서 호수 건너편 충겸사라는 전각으로 건너가는 세 개의 아취형으로 이루어진 다리의 풍경입니다.



뜨득 황제의 능역과 다리와 동산의 풍경입니다.



호수 가운데에 있는 섬의 모습입니다. 이름은 '띤키엠'.



外牆과 內牆 사이에서 본 자작나무처럼 하얀 皮로 싸인 크고 멋진 나무의 모습.



능 출구 옆에 있는 우물의 모습. 손잡이를 돌려 홍두깨 모양의 도르래에 줄을 감아 두레박에 물을 담아 올리는 형식이 이채롭다.   



우물 안 모습. 벽돌을 정연하게 정사각형으로 쌓았다.




2016년 2월 25일 <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