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베트남11. 다낭 하이번고개 길가 풍경 및 해안도로 풍경,.손짜 영응사 해수관음보살.

鄕香 2016. 3. 27. 16:38
이슬비인지 보슬비인지 뽀얀 안개비인지 하염없이 내린다. 하이번 고개를 거쳐 랑코비치에서 이국의 바닷가 모래알도 밟아보고 파도의 간지럼도 받아보고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손짜 영응사의 하얀 대리석으로 빗은 해수관음보살을 뵈러가는 길가의 풍경을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훔쳐본다. 삼 모작을 한다는 베트남의 논의 모습이다. 겨울인데 벼가 자라고 있다.
 


공동묘지인지 가족묘지인지 모르지만, 건축물도 보이는데 위패를 모신 것 같다. 묘와 함께 있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하이번 고개로 가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산을 휘돌아 올라가는 그래도 먼 거리인데, 저렇게 남녀가 스쿠터나 오토바이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 생각으로 대부분 다낭을 가는 베트남사람들이겠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스쿠터를 세내어 여행하는 경우도 간간히 보인다.  

   


한 가족인가 본데 안개비 내리는데 어디로 가는 걸까! 비록 오토바이를 타고 가지만, 그 모습이 참으로 화목해 보인다. 그래서 아름답다.



수업을 마치고 동무와 같이 자전거로 gogo sing sing 달린다. 그런 너희가 참 부럽다. 차창유리에 코딩을 했는가 보다 사진이 파랗다.



삼단 검은머리 여학생들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흰 아오자이를 걸치면 정말 멋진 월남아가씨.. 



확인은 안했지만 묘지가 납골묘 같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가 점차적으로 납골묘가 늘어난다. 왠지 마음에 안 든다. 정해진 땅덩어리에서 매장 묘나 자리 차지하기는 매일반이다. 오히려 자연만 더 많이 훼손될 뿐이다. 앞으로는 묘를 써도 묘를 돌볼 후손이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수목장이 훨씬 좋겠다.



묘마다 십자가가 있는데 교인들의 공동묘지인가, 베트남은 王陵들도 알록달록 치장을 많이 하여 엄숙함이 없다. 그런대도 아름답다기보다 보기에 안 좋다. 우리나라의 왕릉 또는 조상의 묘를 보면 엄숙한 분위기에 깊은 멋과 경건함이 잔잔한 물결처럼 흐른다.    



강인지 바다인지 달리는 차창으로 보니 알 수가 없다. 물가 주변이 보기에 곱지 않다.

 


이제보니 마을 저편이 바닷가다 모텔도 있고 주점도 있다.

 


뽀얀 건 바다와 하늘이다. 하이반 고개마루턱에 이르렀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고갯길은 산자락을 넘어가고 있다.



고갯마루에 낡고 수상한 건물이 있다. 이 마루턱에서 저편 봉우리에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간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요새(要塞) 같은 저 수상한 건물부터 봐야겠다.



무슨 성터 같다. 둥근 원탁 같은 건물 옆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이 신혼여행 중인가보다.



어, 그 신랑신부가 원반 같은 시설물 위에 올라갔네. 마치 멋진 조각상을 보는 듯하다. 나란히 쳐다보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신부의 드레스는 하얀 구름에 녹아내린 듯이 상반신만 보인다. 신랑신부여 그 마음 그대로 처음같이 아름다운 꿈처럼 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여기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줄리엣인가! 그 아래 아치형 문 위 대리석에 "海雲關"이라는 글로 보아 성문임을 알겠다.   


18~19세기에 프랑스의 영향이 끼친 서구식 요새의 성문과 성벽이 있었을 것이다. 성벽은 무너지고 없지만..



해운관(海雲關) 측면으로 이층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해운관 안쪽 모습이다. 위쪽 능선에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바위가 있는 곳인데 뽀얀 구름이 덮여 바다가 하늘인지 구름이 바다인지 분간이 없다. 이 해운관이 있는 고개를 하이번 고개라고 하는가 보다 '하이번'은 바다와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구름과 연무로 보이지 않던 바다가 점차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를 타고 자 바닷가를 거쳐 해수관음보살이 있는 영응사로 간다고 한다.  



보이는 길은 이 하이 번 고개를 향하여 왔던 길이고 바다는 구름과 하나가 되어 어렴풋이 구분이 될까 말까..



하이 번 고갯마루에 있는 사당이다. 베트남에서는 조상의 혼령을 이렇게 모신다. 시내 모든 건물 안이나 또는 문 앞에 작으나마 이런 모양으로 모셔져 있다.


측면에서 본 전체모습이다.



기념품이나 옥으로 만든 제품을 파는 점포와 여행자들이 타고온 차량이 내려다보이는 하이 번 고개의 모습이다.



트럭에 돈(豚)이 가득 실려 있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이 번 고개의 풍경이다.



출발하기 전에 버스에 앉아서..



항아리모양의 미케해안을 보며 달리는 차창에서 찍은 사진이다.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훗날 이런 풍경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산위에서는 안 보이던 바다가 내려갈수록 잘 보인다.



달리는 차에서 코딩한 차창을 통해 담은 사진이니 이해하시고 봐주세요.


미케해안의 모습


달리는 차에서 창으로 미케해변을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든다.



해변을 끼고 가는 이 길은 '보응우옌잡' 해변도로이다. 베트남 도로 이름은 베트남 독립에 길이 남을 공을 세운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보응우옌잡'은 베트남 장군으로 이곳 다낭 출신이다. 잡 장군은 해방군 총사령관으로 195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끌어내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를 일궈낸 베트남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호치민' 다음가는 인물로서 103세의 일기로 2013년에 운명하였다.



다낭의 미케해변에서 버불마운틴(오행산)인근 논느억 해변을 지나 호이안 끄어다이 해변에 이르는 800리(30여 km)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은 포물선을 이루고 있다.



정지신호등 표시가 우리나라와 다르지만 적색은 같다.



금도대주루(金都大酒樓)간판을 보고 주점인줄 알았는데, 식당이다. 이 주루에서 점심으로 월남쌈밥을 맛있게 먹었다.  




손짜반도을 바라본 미케해변이다. 점심을 먹고 이곳 해변에서 잠시나마 바닷물에 발을 적셔보는 시간을 즐긴다.  



바닷물 가까운 모래밭에 쓰레기를 먹는 펭귄이 이색적이다.


 

미케해변 건너 손짜반도 산중턱에 하얀 점 하나 무엇일까?



구름이 덮고 있는 산중턱에 하얀 석상이 보인다. 망원으로 당겨보았더니 바로 해수관음상이다. 저곳이 영응사가 있는 곳이며 잠시 후 가볼 곳이다.



사십대 여인들 아직은 파도처럼 싱싱하여 보기도 좋다. 젊음 그 하나로 형태나 생김 모습에 상관없이 그냥 아름답다.



티끌 하나 없이 순백의 모래를 보니 옛 금호나루 앞 무시막강 건너 샛강 사이의 모래섬의 펼쳐진 백사장이 떠오른다. 그 티 없이 맑고 순수하던 어린 시절 서러웠던 즐거웠던 그 모든 추억들이 그립다.



이역만리 타국 베트남에서 나를 태우고 다닌 버스, 그 이름도 낯설지 않은 '경주정보고등학교'란다.



손짜반도 중턱에 위치한 '영응사' 버스에서 내린 주차장 한편에 모로 누워 있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부처, 주차장 가에 누워 계시네. 이직 모실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가보다. 어째든 영응사에서 처음으로 맞은 부처님은 누워 나를 맞아준다.



줄기와 가지마다 털을 성성하게 늘이고 있는 나무, 난생처음일세.



해수관음보살상 뒤 산뜻한 사찰의 풍경. 건축한지 오래되지 않았나 보다.



주차장이 사찰 뒤 측면에 있다보니 차에서 내려 사찰 뒤로 들어설 수밖에 없고 해수관음보살도 뒷면부터 보게 된다.



해수관음상 뒤에는 일정하게 일직선으로 창이 보이는데 이는 불상내의 공기의 압력을 순환시켜 내부의 온도를 외부의 온도에 일정하게 유지하여 온도 차이로 인한 균열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일층 전면은 5칸 2층은 3칸 건물 대웅보전의 모습이다. 맨 위 중앙에 如來所都 그 우측에 靜佛國土 좌측에는 佛光普照라는 현판이 나란히 걸려있다.



5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대웅보전 1층 사찰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가운데 문 앞에는 커다란 청동향로가 있고 문설 위에는 현판 '靈應寺'가 걸려있다. 그 좌우 문설 위에 각각 '海衆安和' '禪門鎭靜'이라는 현판이 있다.



영응사 현판 아래 문설주를 들어서니 바로 財福의 상징인 배불뚝이 布帶和尙이 전면에 있고 그 뒤에 삼존불이 안치되어있다. 삼존불 위 벽에는 중앙에 '大雄寶殿' 그 좌우로 '法輪常轉'과 '佛日增釋'이라는 현판이 있다. 베트남 다낭의 사찰들은 삼존불상 앞에 포대화상을 배치하는 것이 법식인가 보다.



이층의 지붕마루에는 용의 형상도 없이 단조로운 용마루에 처마 끝만 날아갈듯 날렵하다. 사찰이나 왕궁이나 지붕이든 기둥이든 그리도 흔하디 흔하던 용 한 마리 없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장서가 들어찬 책장이 둘려져 있는 가운데 청동으로 주조한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이 건물도 용마루나 기둥이나 계단 난간석에 용무늬조각이나 형상이 배제되어 있다. 스님들의 종무소인 듯한 곳인데, 견공 한 마리는 계단 가운데에서 午睡를 즐기고 있는데 또 다른 녀석이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스님들의 일상적인 장소일 것이다. 무척 평화로운 곳이다.



사찰 안에는 화려한 조각을 새긴 의자와 탁자에 사진과 그림액자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접견실이나 종무실이 아니겠는가 싶다.



삼존불 앞에 배치된 포대화상(布帶和尙)은 약1천년 전에 마로 짠 포대를 두르고 시주를 구하고 세인의 길흉화복(吉兇和福)을 예시하여 주었으며 사후(死後)에는 사람들로부터 미륵불로 추앙받던 선승(禪僧)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덕성스런 얼굴과 불룩한 배(腹) 익살스런 모습으로 표현하여 사찰에서 모시고 있다.



높이 67m의 이 해수관음보살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살상이라고 한다. 이 해수관음보살을 건립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월남전쟁이 막바지에 있을 당시 월남의 패배를 눈앞에 두고 부패한 월남정부에 협력한 사람과 가족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 지배에 협력한 부유층 등 친불파 14,000여명이 금은보석을 챙겨 보트를 타고 탈출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중 살아남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크게 성공을 하여 조국으로 돌아와 당시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비극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 절과 관음상을 세웠답니다.  



사람들의 고통을 자비로써 모두 거두어 주고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보듬어 준다는 '觀世音菩薩' 



해수관음보살상 내부의 모습이다.



삼존불과 제단이 있는 앞에서 젊은 사람들이 무언가 소원을 기원하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의 복련좌 아래 원형의  기단 안 법당의 모습이다.



正殿인 영응사 대웅전 앞 넓은 앞 마당에는 좌우로 18나한이 배열되고 여백에는 아름답고 멋스러운 수많은 분재들이 놓여 있다.



본당 앞 좌측에 배열되어 있는 나한들의 모습이다. 제각각 그 모습이 다르고 표정이 다르다. 



우측에 나열된 한 羅漢의 모습으로 지그시 내려다 보는 소박한 모습을 띄고 있다. 



우측에 나열된 나한 중 하나로 노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못 가운데 용이 감싸고 있는 복련좌대에 앉은 포대화상을 중심으로 기암괴석과 꽃이 배치된 모습이다.



관음보살과 정문 사이에는 포대화상이 있다. 관음보살은 오른손에는 靜甁을 바쳐 들고 왼손은 미타정인 彌陀定印을 하고 얼굴에는 자애로움이 은은하다. 정병에는 늘 감로수를 담고 있으며 감로수로 중생의 고통과 갈증을 해소시킨다.



영응사 정문이다. 문 바깥은 21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응사문에서 바라본 미케 해변, 의 모습이다. 논느억 해변, 끄어다이 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이다.



어느 건물의 벽화를 담은 모습이다. 하얀 백색의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긴 머리의 순결한 여인 빨간 전통모자 논 (nón)이 정점을 찍었네.



2016년 3월26일 (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