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가야산, 서성재 우두봉. (伽倻山, 西城嶺, 牛頭峰 )

鄕香 2016. 5. 19. 15:30

가야산은 소백산맥 한 지맥으로 慶尙北道 金泉市, 星州郡, 高靈郡, 慶尙南道  陜川郡, 居昌郡 등 2개 道 5郡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상왕봉(牛頭峰)을 중심으로 두리봉 깃대봉, 단지봉, 남산제일봉,  등의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 아름다운 홍류동 계곡을 비롯하여 많은 계곡이 있다. 특히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8만대장경과 대장경고가 보존되어 있는 해인사가 있고 가야의 혼과 유적이 있는 곳이다.    




2016년5월16일 월요일 아침 07시30분. 제천 출발 성주가야산 백운동탐방지원센타 10시10분 도착, 10시30분 가천분소 체크 통과 상왕봉(1433m)을 향해 산행시작, 안내판에 의하면 가천분소~ 서성재까지 3km (2시간 30분 소요), 서성재~칠불봉1.2km(1시간), 칠불봉~상왕봉 0.2km(10분), 가천분소에서 상왕봉까지 합 4.4km, (3시간 40분 소요), 하산은 상왕봉~서성재까지 1.4km, 1시간, 서성재~백운사지~용기골~가천분소까지2.6km, 1시간30분 소요, 합 4km,(2시간30분 소요,) 총 8.4km, 6시간 10분,을 제시하고 있다. 


가천탐방소 입구를 들어서자 바로 가파른 오름으로 시작이다. 자세가 저절로 고부랑 노인이 된다.



200m 정도 오르니 가파른 능선에 오래된 묘지가 있다. 이곳 지방은 서울 중부와 달리 봉분 앞에 봉오리 달린 쌍떡잎이 3단으로 돋을새김 된 반달형의 판석이 봉분 앞머리에 세워져 있다. 후대에 마련해 놓은 것으로 보이는 상석에는 '孺人 金海 許氏 墓'가 새겨져 있다. 김해 허씨는 김해 김씨와 같이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자손들이다. 그 앞에는 前面에 네잎 꽃모양의 무늬가 돋을새김된 향로받침돌로 보이는 方形의 돌이 세워져 있다. 이런 묘제 방식은 옛 가야국이 지배했던 김해, 고령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겨우 300m 정도 왔을 뿐인데 땀이 온몸을 적시고 숨이 턱을 바친다. 어느새 여름이 성큼 왔는지 32˚C에 이르렀다.



이정표가 있어 바라보니 겨우 600m 지점이다. 안내판 좌표를 보았을 때 상왕봉까지 계속 가장 어려운 난코스인 검은색이었다.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내려다보니 산자락 밑에 백운동탐방소주차장이 보이고 짙은 높음이 덮인 낮은 산들이 끝 모르게 펼쳐져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하늘은 근래에 보기 드문 하늘이건만 시원한 파란하늘과 달리 온도는 여름을 능가하는 날씨다.



서성재로 오르는 등성이 길은 등줄기에 척추마디마다 뿔처럼 돋아오른 공룡  '투오지앙고사우루스'의 등줄기처럼 화강암바위들이 돋아나 있어 손맛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원치 않으면 우회하면 됩니다.



바위와 소나무의 조합은 어디서 보나 짤떡궁합이다. 



소나무는 특히 화강암바위지대에서 싱싱하게 잘 자라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서 너 톤도 넘을 큰 바위들이 축대처럼 쌓여 있다. 이렇게 가파른 능선에 누구인들 쌓을 수 있을까! 오묘한 자연의 신비이다. 이렇게 밝고 바위가 있는 능선은 陽氣가 충천하는 곳이다. 陰氣가 많은 북쪽 깊은 계곡에서 소모될 것을 대비하여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소나무 사이로 바위와 준봉을 줌으로 당겨 층층으로 바라본 풍경이 싱그럽고 기상이 넘친다.


 

소나무 사이 원경을 표준으로 담은 사진.



가야산은 온전히 화강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등성이에는 갈라진 바위가 주를 이루고 있어 타고 넘으며 기묘한 형상에 매료되어 힘든 줄 모르겠다.  

 

 

만 가지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바위들이 솟아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를 말하길 萬物相이라고 부른다더라.



산을 가꾸고 자연을 지키는 사람들, 큰 암석 둘 사이에 작지 않은 돌을 그저 가볍게 척척 쌓은 듯이 길을 낸 그 솜씨 또한 자연을 닮아간다.



얼추 다 올라서서 얼굴을 디밀고 보니 그 안에 상어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봉들이 줄지어 나를 기웃거리고 있네.



댓돌인양 딛고 들어서니 이런 上上峰에 아방궁이 따로 없다. 어깨에 진 짐을 내리고 보니 사면이 철 따라 살아 움직이는 아름다운 그림이요 6자 이 몸이 午睡를 줄길 수 있는 마당이요. 밤이면 네 별 내별 헤아릴 수 없이 엮어 담을 천상의 침상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북창을 열어보니 넘어가야할 뾰족 산이요.



옆벽을 보니 여차하면 금시라도 덮칠 듯 내려 보고 있는 나한상이요.



뒤를 보니 범상치 않은 和尙의 얼굴에 기겁을 했소.



東窓을 열고 보니 산들이 河海와 같으니 만물이 소생하는 太古의 子宮이 그림 같이 펼쳐져 있소. 이 모두가 上上峰의 하룻밤 꿈이로소이다.



상상봉을 내려와 한 고개 앞에 이르니 서성재가 2km 밖에 있다는 안내의 말씀.

 


상상봉 아방궁 北窓에서 보았던 상어이빨 같은 뾰족한 봉우리로 가는 길은 아주 큰 섬돌로 징검다리를 놓고 환대를 하는구려.



징검다리를 건너고 보니 펼쳐진 준봉들 앞에 버티고 선 뾰족한 산세에 그만 질리지 않을 용기가 없더이다.



앞을 가로 막고 선 이 바위를 어떻게 넘은 줄도 모르게 정신 없이 넘었다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神仙이 나박김치 깍두기를 담그려는지 바위를 무 자르 듯 썰어 놓았네.


 

저걸 어떻게 넘지 그냥 발만 구르며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하! 이런 구세주 같은 구름다리도 있었네.



큰 바위 사이로 돌을 놓아만든 계단도 운치가 있어요.



아름다운 바위들은 못생긴 철조계단도 멋스럽게 포용하여 조화를 이룬다.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일백년 가까운 세월에 모진 비바람 눈보라를 견디며 스스로 다듬고 가꾸어 틀어지고 절묘하고 멋진 모습으로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나니..



어렵게 보듬고 한 봉우리를 넘고 보면 보듬고 달래야할 산이 산 너머 산이네.



험악한 산을 보듬고 넘다보면 마음이 갈갈해지죠. 그럴 때마다 고개를 돌려 대자연의 평온에서 안정을 담는다오.



그 솔방울, 참 싱그럽고 예쁘기도 하네.



구석기(打製石器) 같은 바위 봉우리들이 있는가 하면 신석기(磨製石器)같은 바위도 있네. 먼 곳에 구석기, 가까운 곳에 신석기, 거참 시대별로 배열도 잘 맞춰 전시 했구나!

 


너를 타고 넘을 때 힘은 들었어도 그 만큼 정도 들어 다시 뒤돌아 네 모습을 본다.



저 오르는 돌단들을 넘어서면 천상일까 구천일까..




오르고 보니 온갖 물상들의 총집합체 萬物相입니다.



만 가지 像이 모여 너무도 혼잡하니 모퉁이로 돌아가시라며 구름다리가 안내를 합니다.



이 바위는 속을 모두 내주었나 봐요.



맑은 공기, 햇살에 반짝 빛나는 이슬만 먹고 살아서 잎도 꽃도 봉오리도 정갈하고 아름답습니다. 깊고 깊은 뒤채 아씨마냥 정숙한 기품마져 서렸습니다.


서쪽 능선의 모습.


천상의 祭壇인가 봅니다. 그런데 그 앞에 품새도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버티고 있습니다. 둘이 저리 어울리는 걸 보면 알 수가 없어요. 돌이 좋아서 일까, 소나무가 좋아서 일까!

   


서성재西城嶺, 아직도 1.2km라니 1시간은 족히 더 걸리겠지요. 가는 길이 이리 험하니..



만물상 봉우리를 지나는 중에 있는 바위봉우리 모습. 뭔지 몰라도 팔짱끼고 서 있는 폼입니다.



녹색공룡 등에 뿔이 돋아 있는 모습으로 내 발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 가지의 물상들이 모인 곳을 향해 아직도 웅성거리며 오르고 있습니다. 나는 그 번다함을 피해 내려가는 중인데..



만물상에서 바라본 앞에 우뚝 선 봉우리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그래도 저리 부르고 있으니 어쩌겠어요! 가야지요.



허참! 대열에 법의를 입은 스님도 보이시네. 두억서니 같이 생긴 녀석도 올라갑니다. 과연 萬物相의 집합입니다. 

 


방금 넘어온 만물상 봉우리의 상층부를 돌아본 모습입니다.



만물상 볼만하죠? 



만물상과 거쳐온 등성이 모습.



<상아덤/嫦娥덤>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 56-2번지.

가야산은 대가야의 시조설화가 서린 산으로 예부터海東의 10승지 또는 조선8경의 하나로 이름 높은 산이다. 이곳 상아덤은 달에 사는 미인의 이름인 嫦娥와 바위를 지칭하는 덤이 합쳐진 단어로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 神 이비가지夷毗訶之가 노닐던 전설을 담고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최치원이 저술한 석이정전 釋利貞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가야산의 여신 正見母主는 하늘의 신 夷毗訶之와 이곳 상아덤에서 부부의 연을 몆었다. 이후어여쁜 옥동자를 낳게 되는데, 첫째는 아버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어 뇌질주일惱窒朱日이라 이름하였다. 둘째는 어머니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달과 같이 갸름하고 흰편으로 뇌질청예惱窒靑裔라 이름하였다. 이 두 형제는 자라서 형 뇌질주일은 대가야(現고령)의 첫 임금인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이 되고 동생 뇌질청예는 금관가야(現김해)의 첫 임금인 수로왕首露王이 되었다." 상아덤은 기암괴석의 봉우리로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물상萬物相 능선과 이어져 있어 최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參照)



바위들을 쌓아 놓은 듯 등성이를 이루고 있는 대가야의 시조 상아덤'의 능선.



상왕봉 일대를 바라본 풍경입니다. 상왕봉 아래 연둣빛녹색의 饗宴이 펼쳐진 모습이 마치 잔디처럼 매끄러운 감촉의 느낌을 줍니다.



모나지 않고 선이 굵은 이 바위들의 구성에서 정감을 느낍니다. 마치 이중섭의 그림 중에 아이들이 뒤엉켜 노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서성재는 상왕봉으로 오르는 길과 백운계곡을 거쳐 백운동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길로 갈리는 삼거리입니다. 이제 700m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1.2km 거리에 있는 상왕봉에 올라갔다 다시 서성재로 내려와 백운탐방지원센터주차장으로 갈 생각입니다. 



기이한 모습으로 쌓아놓은 듯한 바위 봉우리 측면 소나무 있는 쪽에 새끼악어 한마리가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마뱀 같이 보이기도 하고 새끼악어 같기도 한데 바위에 붙어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만물상을 지나 상왕봉으로 오르는 바위능선 옆 풍경입니다. 갈라진 저 산봉우리가 오랜 세월 풍화되면 무너져 내려 너덜겅이 되겠습니다.  


 

상왕봉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대.



바위가 서로 버팀목이 되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듯 보입니다.



조망대에서 바라본 상왕봉 아래의 풍경이 빛깔에서 부드러운 감촉 같은 느낌에서 아늑하고 이리 편할 수가 없네요. 그냥 눕고 싶은 그런..



조망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풍경 험하지만 그 험함 기묘한 바위와 아름다운 원경들이 모두 앗아가고 미련만 가슴에 담아 줍니다.



거칠지만 악하지 못해 천상 착할 수밖에 없는 사내 같은 상왕봉도 좋지만, 이렇게 연둣빛 녹음을 바라보는 아늑함에 더욱 행복합니다. 저 펼쳐진 연록의 장원을 보노라면 그 아늑함 다시는 뵐 수 없는 엄마의 품속 같거든요. 이제 저연록의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펼쳐진 연둣빛 장원에 푹 빠져 아늑함을 만끽하였던 연록의 숲속을 꿈길처럼 걸어갑니다. 



서성재에서 바로 백운동계곡을 거쳐 주차장으로 가면 어렵지 않게 산행을 마칠 수 있겠지만, 상왕봉을 저 위에 두고 돌아가기에는 왠지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 높은 곳 1.4km를 갔다가 다시 이 자리로 오려면 2.8km의 험한 길에서 쉽게 생각할 거리가 아닙니다. 현재 시각은 2시20분을 지나고 있는데 망설이다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어 상왕봉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서성재 / 西城岾》

서성재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古代 伽倻山城의 西門이 위치해 있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가야산성은 칠불봉에서 발원한 용기골 계곡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져 있는 상아덤, 東城峰 능선을 이용하여 築造된 包谷式 산성으로 성 안에 물이 풍부하고 활동 공간이 넓으며 외부 노출을 방지해 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대가야의 도읍지 고령과 불과 14km 거리로 전쟁시 首都를 방어하는 요충지였으며 왕이 이동할 때 머므르는 離宮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성재에는 현재 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으나 10m가 넘는 넓은 공터와 허물어진 성벽의 규모와 석재를 통해 門址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안내판은 서성재에서 상왕봉까지 왕복 2시간10분을 게시하고 있습니다.





서성재에서 휴식과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상왕봉을 향해 옮기는 발길마다 눈도 마음도 즐거운 연록의 나무 사이로 번지는 햇살마저 좋은 기운으로 생기를 줍니다.  




푯말은 상왕봉까지 1km를 가리키고 있지만, 왕복 2km에 오르는 길이 수월치 않아 보입니다. 



듬성지게 철쭉꽃이 햇살같은 미소를 피워내고 있습니다.



전문등산가나 오를 만큼 험악한 지대는 어김없이 철조계단이 설치되어 힘은 들지만 잠시 쉬며 주변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장치도 있어 한결 안전하게 오를 수 있음을 감사하며..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령의 아름다운 遠景입니다.



다음 조망공간을 향해 계단을 오릅니다.


서성재에서 20분을 걸어올라와 도착한 중봉입니다. 



중봉 밑에서 둘러본 주변풍경입니다.



중봉 밑에서 둘러본 주변풍경입니다. 모진 비바람 엄동설한에 몸부림치며 살아온 세월이 줄기와 가지에 휘고 틀어진 기이한 형상으로 남아있습니다. 



고령 쪽 지나온 곳을 내려다보니 잔디밭처럼 아늑한 나무숲과 톱날처럼 날카로운 봉우리가 연이어진 능선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성주 방향으로 바라보니 철광석으로 이루어진 尖峰들이 창끝처럼 솟아 있습니다.



상왕봉과 칠불봉을 올려다보니 험상스럽기가 伏魔殿이 따로 없네요.



칠불봉과 상왕봉으로 오르는 철조계단 앞에 표시판에  300m, 500m임을 알려줍니다. 서성재에서 여기까지 거리는 900m, 35분이 소요 되었습니다.



드디어 상왕봉과 칠불봉이 마주보고 있는 중간 능선에 오르기 직전입니다. 좌우에 죽은 소나무가 범상치 안은 모습으로 七佛峰의 수문장인 양 나를 훓어 보는 것 같아 죄많은 몸 무섭습니다.

 


현재 시각은 오후3시21분, 서성재에서 여기까지 꼭 1시간이 所要 되었습니다.



1433m의 七佛峰

가야산 일대의 지질은 화강편마암 및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조각으로 쪼개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가야산은 정상의 형세가 소머리 같다하여 우두산牛頭山, 사철 눈이 덮인 것 같다하여 설산雪山, 코끼리 형상을 닮았다 하여 중왕산象王山, 이외에도 중향산衆香山, 기달산怾怛山 등 여러 이름이 있었다고 증동국여지승람 제30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이름은 우두였습니다. 이 산의 정상부가 소의 머리처럼 생겼고, 오랜 옛날부터 산정에서 행하여지는 산신제의 공물을 소에 바치고 신성시하여 왔습니다. 가야산이 있는 합천·고령 지방은 1,2세기 경에 일어난 대가야국의 땅으로, 신라에 멸망한 뒤로 처음에는 대가야군으로 불렸습니다. 따라서, 이 산이 대가야 지방을 대표하는 산이며 가야국 기원에 관한 전설도 있는 까닭에, 옛날 가야 지방이라는 역사적 명칭에서 가야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교가 들어온 후 가야산을 불교의 연관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상왕봉과 칠불봉 이름에서 주봉 상왕봉의 ‘상왕’은 《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도의 불교 성지 부다가야(Buddhagaya) 부근, 부처의 주요 설법처로 신성시되는 가야산에서 이름을 가져 왔다는 이야깁니다. 또한 불교가 전래된 뒤 범어(梵語)에서 ‘가야’는 소를 뜻하고, ‘가야산’은 불교 성지이므로 ‘가야산’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가야산은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신앙의 대상으로서, 고려팔만대장경판을 간직한 해인사를 품에 안은 불교성지로서, 그리고 선인들의 유람과 수도처로서 이름을 떨쳐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야산은 민족의 생활사가 살아 숨쉬는 명산이자 영산(靈山)이라 일컫을 만합니다. 이중환의 <택리지> 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旱災·水災·兵禍 등 三災가 들지 않는 영험함을 들어 명산으로 불렸습니다. 결국 ‘가야산’이라는 명칭은 이 지방의 옛 지명과 산의 형상, 산악 신앙, 그리고 불교 성지로서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慶尙北道 星州郡 伽泉面 法田里 山 162 番地.



伽倻山 頂上 七佛峰 1433m 標石 뒤 산줄기와 全景은 성주군이 동북쪽으로 내려다 보이고 백련암과 加山(692m)쪽으로 뻗은 남쪽 능선과 남산제일봉 바위 능선의 기암 절벽을 이룬 절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칠불봉에서 내려본 경관입니다.

칠불봉에서 바라본 풍경.

칠불봉에서 바라본 풍경.

칠불봉에서 바라본 상왕봉.


칠불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중간에 내려다본 만물상과 연이어진 산봉우리들의 모습.

 


칠불봉에서 상왕봉으로 이어지는 200m거리 중간에 있는 철조다리.



칠불봉과 우두봉 사이의 길.


우두봉의 모습.




우두봉 측면으로 돌아 올라가는 길.


가야산 우두봉



《우비정/牛鼻井》

천泉 자自 금金 우牛 비鼻 공孔 통通, 천天 장將 령靈 액液 치寘 롱巃 종嵷,

우물이 금우의 콧구멍 속으로 통해 있으니, 하늘이 신령스런 물을 높은 산에 두었도다.

당倘 능能 일一 삽揷 청淸 천穿 폐肺, 경頃 각刻 편翩 편翩 원遠 어御 풍風.

혹 한번 마신다면 청량함이 가슴속을 찌르니, 순식간에 훨훨 바람타고 멀리 날아가리라.


롱종巃嵷 : 산이 높고 가파름, 편편翩翩 : 새가 빨리 나는 모양, 어풍御風 : 바람을 탐.


《우비정/牛鼻井》

우두봉 정상의 이 牛鼻井은 그 모양이 소의 콧구멍 같이 생겼다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계곡에서나 사는 무당개구리가 못 안에서 여럿이 유영하고 있었고 알이 여러 군데서 확인 되었습니다. 1430m나 되는 바위봉우리에 이런 작은 못에 물이 샘솟는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우두봉(상왕봉) 정상의 모습,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합니다. 보이는 곳은 뿔의 부분이고 내가 선 우비정의 부분은 코와 입이겠습니다.



우두봉(상왕봉)에서 바라본 칠불봉의 모습.



<가야산 우두봉1.430m/ 伽倻山 牛頭峰>




우두봉을 내려가는 길입니다.


우두봉아래에서 내려다본 경관.


우두봉 정상에서 내려와 중봉으로 내려가기전 철조계단 앞에서 서쪽의 능선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두리봉, 단지봉, 수로산, 대덕산을 거쳐 그 장쾌한 모습이 덕유산에 이른다고 합니다. 



상왕봉을 내려오는 철조계단에서 바라본 중봉.



중봉을 지나 철쭉꽃 핀 쉼터 앞.


서성재 100m 앞 숲길에서



다시 서성재에 이르렀습니다. 오후2시20분에 이곳을 출발한 후 우두봉과 칠불봉을 거쳐 다시 이 자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5시07분, 2시난33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쉴새없이 바로 백운동탐방지원센터 주차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백운사지/白雲寺址>

이렇게 음습한 곳에 절을 지었으니 번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백운사 옛터 축대위에 나무만 무성합니다.



《백운암 터 / 白雲庵址》

성주군 수륜면 산 56-2번지에 위치한 이곳은 백운암이 있었던 자리로 가야산에 있던 사찰에 부속된 암자 중하나로 추정된다. 그러나 백운암지의 창건 시기와 폐사 시기는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알 수 없으며 조선시대의 기와와 자기편이 다수 확인되는 점을 미루어 보아 조선시대까지도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계곡과 접해 2단의 석축을 쌓아 평탄지가 형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장대석을 이용한 계단지의 흔적이 보인다. 또한 계곡과 인접한 곳에는 맷돌 1기가 보이며, 빨래 등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샘터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외 별도의 건물지 관련 유구와 유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암자터의 앞 남서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는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와 하늘 신 이비가지가 노닐던 전설을 담고 있는 상아덤이 보인다.  (자료:한국의 사지)



골이 깊고 숲이 우거져 계곡에 물이 풍부합니다. 陰氣가 높아 바위마저 음습하여 寒氣마저 느낍니다. 밝은 등성이 오를 때 축적한 양기가 소리 없이 소진되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니 그 차가움 뼛속까지 저려 기겁을 했습니다.




이제 탐방관리소까지 1km 정도 남은 곳입니다.



《가야산성/伽倻山城》

성주군 수륜면백운리 산 56-2번지 일대는 칠불봉에서 발원한 용기계곡 좌우로 만물상과 東城峰 능선을 따라 包谷式으로 築造된 산성이 있는데 이를 가야산성 혹은 용기산성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산성의 남문이 위치해 있던 자리로 규모나 위치로 볼 때 산성의 주 출입구로 사용된 곳으로 보입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수량을 배출하기 위한 수문이 있었다고 판단되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산성은 대가야의 수도를 방어하는 요충지이자 왕의 離宮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산성으로써의 의미가 높습니다. 이 산성은 계곡과 주변의 산세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한 포곡식 산성입니다.




바위와 돌이 청회색에 이끼마저 덮고 있어 주변의 분위기가 으스스 합니다.



남문성곽의 일부모습입니다.



오늘 산행은 백운동주차장-만물상능선-상아덤(서장대)-서성재-칠불봉-상왕봉-서성재-백운사지-백운계곡-백운동주차장, 약8km입니다.






2016년 5월16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