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신륵사/神勒寺 (제천)

鄕香 2014. 6. 2. 15:29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월악산 동쪽 기슭 아늑한 곳에 일찍이 신라 진평왕 때 자리 잡은 신륵사는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고찰로 조선시대에 지은 아늑함을 풍기는 극락전과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예스럽고 그윽한 삼층석탑과 아담한 당간지주와 어울리지 않게 큰 산신각, 그리고 나쁜 기운들로부터 불전을 보호하기 위해 극락전 문마다 그려져 있는 기발한 문양이 있습니다. 

 

 

경내는 오랜 세월에 피폐된 흔적만 시름없이 볕을 타고 흐르고 있습니다. 내륙의 깊은 지대에 인구도 적은 소도시마져 멀리 떨어져 있어 인적의 발길이 끊긴 듯이 한적하여 사람의 숨결조차 느길 수 없고 초여름의 풋풋한 자연의 향기만 상큼함으로 심폐를 통해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신륵사 3층석탑/神勒寺 三層石塔> 보물 제1296호

현재의 행정구역상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신륵사 경내 극락전 앞에 보전되어 있는 높이 4m에 1.46m의 정방형 기단 위에 삼층의 몸돌이 올려져 있는 통일신라의 이형적인 석탑양식을 계승한 삼층석탑입니다. 탑의 구조는 간결하며 장중한 양식이 조화를 이룬 정상부에 원형의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으며, 불국사의 석가탑을 방불케 할 만큼 정교하고 장중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981년 4월에 해체 복원할 때 기단내부에서 흙으로 만든 108개의 탑과 2개의 사리함 조각이 발견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상륜부는 고려 때 전남 화순군 천불산 계곡에 천불천탑을 모토(motto)로 세운 운주사에서 볼 수 있는 이형적(異形的) 탑인 원형의 주판알 모양의 탑형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화강암의 탑신은 오랜 세월에 연분홍빛으로 고색의 창연함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탑이 이렇게 나신으로 모진 풍화를 앞으로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신륵사 극락전/神勒寺極樂殿>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이 건물은 신륵사 주존불인 목조아미타여래상을 모신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의 불전입니다. 신라 진평왕 4년(582년)에 처음 세운 古刹,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중창하였으며, 조선 초 무학대사가, 명종 때 사명대사가 중수한 것으로 전해옵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시대에 중수한 것으로 다포식 계통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아미타(阿彌陀如來)는 서방정토에 있다는 부처로 이 부처를 생각(念)하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로 간다고 합니다.

 

 

극락전은 2단으로 단을 올리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는데 2단 바로 아래 마주보는 좌측 밑에 1.5m 정도 높이의 아담한 당간주가 친근감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비록 현판의 글씨와 단청은 칠이 퇴색되어 희미해도 밝은 햇살에 더욱 생기롭고 고풍의 멋을 보이고 있습니다.

  

 

추녀 및 대들보에는 이 건물을 중수와 연관된 글이 편액으로 걸려 있습니다.

 

 

<문양/文樣>

극락전 문짝 마다 하단에 그려진 이 문양은 부처의 상징적인 연꽃과 상서로운 기운의 영기문(靈氣文)으로 조합한 문양입니다. 자비의 상징인 연꽃과 상서로움의 영기는 부드러움과 영특함을 느끼게도 하는데, 그런 덕성스러움과 유연함으로 악귀를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는 하나의 형상을 구상한 것에서, 어떻게 이런 기발한 발상을 했을까 싶어 놀랍습니다. 마치 고 이중섭 화가의 역동적인 흰 소의 얼굴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문양은 하나의 도깨비의 얼굴, 또는 귀면(鬼面)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범접하는 잡귀를 쫓아내어 법전을 보호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뿔을 연상시키는 연록색의 영기와 뿔이 돋아난 언저리에 부성한 털을 세 잎의 연꽃잎으로 표현했고, 붉은 영기를 마주 그려 넣어 머리 선을 그었으며, 푸른 영기를 동그랗게 말아 두 눈을 만들고 그 사이 가은데에 피어오르는 연꽃으로 콧등을 넣어 강인함을 주었고, 연두색과 붉은 두 줄기의 영기로 힘찬 기운을 뿜어내는 콧구멍을 표출하고 그 옆에 3개의 연꽃잎을 옆으로 돋아내서 수염을 표현하는 동시에 경고의 열기를 뿜어내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익살스러움과 힘찬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의 느낌을 상반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귀족이나 왕실의 문장처럼 이 문양이 이 사찰의 문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져봅니다.   

 

 

측면으로 본 극락전 바깥 벽에는 여러 그림의 벽화가 보입니다. 

 

 

<선고용정도/船苦龍艇圖>

이 그림은 비가림 막 아래 가운데 그림으로, 파도가 넘실대는 창망대해를 인용왕보살(引龍王菩薩), 인선관음타(引船觀音陀) 그리고 식별할 수 없는 글자의 보살(추측으로 보건대 引船尾陀菩薩)이 이끄는 용선(龍船)에서 서방교주미타여래(西方敎主彌陀如來)가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고, 중생들이 가득 탄 작은 거룻배(艇)는 용선의 밧줄에 메여 끌려가는 광경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관음보살(觀音菩薩) 세 분이 창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중생들의 거룻배를 천의로 이끄는 장면으로 고난에서 중생을 구원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극락전 뒷곁에 바위가 풍화에 조각조각 갈라지고 무너질듯 주저앉은 모습으로 이 절의 나이를 일러주는  것만 같습니다.

 

 

장중한 맞배지붕이 힘겨워 보이는 이 건물은 절의 중심 전각인 본존불을 모신 극락전에 비해도 그 크기가 밀리지 않을 정도를 크며 절의 규모로 봐도 특이하게 느껴지는 산신각입니다.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인 산신령이 불교에 수용되어 호법신(護法神)이라는 인격성이 부여되었고 호랑이를 산신 자신이나 시자(侍子)로 표현하고 있으며, 화엄성중 104위 중 71위 신장(神將)으로 복을 비는 중생들에게 작복(作福)의 인연을 맺어주는 역활을 하며, '유해경'에서 부처님이 혜안(慧眼)으로 살펴보니 산신들의 능력에 따라 좋고 나쁜 지역을 서로 나누어, 자신이 거주하는 영토를 지배하며 존재하고 있다고 전한다.고 합니다. 

  

 

산신각 뒤에는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바위가 장장이라도 덮칠 기세여서 중압감을 느끼게 합니다.

 

 

 

입구이자 출구가 있는 이 건물은 내외부 구조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천왕을 모시는 사천왕문 같습니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밖에서 본 신륵사의 모습입니다. 우측에 보이는 건물은 아마도 요사체인 것 같습니다. 사찰 경내와는 담장을 두고 별리되어 있습니다.

 

 

신륵사를 돌아보고 나선 길목에 마당처럼 넓은 바위와 바위 뒤로 계곡이 있기에 잠시 쉴 겸 돌아보았습니다.

 

계곡으로 내려가 보니 가뭄으로 일정간 수량이 줄어든 흔적이 바위에 나이테처럼 무늬로 수치를 標示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떠납니다. 너럭바위를 뒤로하고... 언제나 제자리에 안주도 못하고 체념도 못하고 오늘도 나는 길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어느 님의 넋두리처럼 나 또한 찾지도 못할 내 자리를 찾자고 이렇게 헤매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25일. <鄕香享> 

 

<월악산주변탐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