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내연산12폭포 중 8폭포

鄕香 2013. 7. 29. 16:36

아침에 눈을 뜨니 방안이 환하게 밝다. 늦잠을 잤나 싶어 벌떡 일어나 시각을 보니 06시경, 그런데 달포가 되도록 흐린 날씨에 비가 내렸고 어젯밤만해도 안개비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하게 촉촉이 내렸기에, 어쩐 일이지 싶어 창밖을 보니 하늘이 파랗게 자지러진다. 아 얼마 만에 보는 파란하늘인가 싶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사계절에 삼한사온이 있던 지난날의 우리나라의 기상이 아니다 싶은 요즘의 기후에 장마가 더 이상 장마가 아닌 雨期로 생각이 들기에 오늘 내연산을 우중산행을 하리라고 당연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 쏘니 오히려 무더울 날씨에 겁이 난다. 여기서 56km 떨어진 내연산, 산행길이 어떤지 모르는 초행이니 서둘러야 하겠다.

 

 

아침밥을 지어 먹고 배낭을 꾸려 숙소를 나오니 어느새 08시, 어제저녁까지도 보이지 않았던 차들이 여럿 보인다. 이곳은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과 맑은 계곡이 어우러져 있고 인근 바닷가와 싱싱한 해산물이 있는 지리적으로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어 여름이면 피서지로 맞춤한 곳이다.  

 

 

어제저녁과 아침에 칠보산휴양관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대진해수욕장과 고래불해수욕장을 끼고 달리는 7번 국도에서 파란하늘과 바다에 매혹되어 그 시원함을 담았습니다. 어떻게 저리도 파랄 수가 있을까! 그건, 끝도 없을 깊이이겠지요. 

 

 

내연산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산뜻하여 정갈하다는 생각이듭니다.

 

 

산, 그 이름만으로도 벅차 오르는 느낌이 그 산만큼 다가옵니다. 계류의 맑은 물은 그 속살까지 내어 주는 투명함으로 그 깊이도 알 수 없는 드넓은 하늘을 한 몸으로 다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포용력을 보입니다. 마치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 마음처럼...  

 

 

내연산보경사라는 현판이 걸린 첫 번째 일주문입니다. 바로 뒤에 사찰입장권매표소가 있습니다.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두 번째 일주문입니다.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들어가는 세가지 禪定, 즉 공해탈문, 무상 해탈, 무작 해탈을 말합니다.

 

 

 

<보경사>

절구경이라면 같은 곳을 몇 차례 봐도 마다 않는 내가 절을 그냥 지나치는 데는 이유가 있지요. 오늘 내연산 정상과 12폭포 모두를 답사하려면 일정이 빠듯하기도 하지만, 작년 여름 이곳에 왔을 때 내연산은 못 오르고 보경사만 보고 갔기 때문입니다. 

  

 

보경사 옆에 계곡과 계곡의 물길을 돌린 수로를 끼고 들어선 내연산 들머리.

 

 

내연산은 초행이라 여기까지 오면서 코스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자세한 약도가 있어 다행스럽습니다. 그런데 코스를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수봉-내연산- 신지봉- 향로봉까지 산행을 하고 12폭포 모두를 탐방하기에는 거리와 시간적으로도 친구에게는 무리가 아닌 불가능이었습니다. 더구나 장마로 날마다 비가 내리다가 모처럼 날씨가 좋으니 그 동안 내린 비로 습도 높은 지열과 뜨거운 열기에 기진하여 체력소모가 크겠습니다. 산행이야 늘 하는 것이니 오늘은 계곡이란 주제로 계곡만 탐방하는 일정으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ㅎㅎ 

" 잠깐 귀 좀 빌려요.(실은 전적으로 친구의 강압으로 어쩔 수없이 따랐지요. 마음이야 떨떠름하지만, 얼굴에는 하회탈 중 양반가면을 쓰고..) "ㅎ"는 하하. 흐흑. 허허가 될 수 있으니, 이 ㅎ는 즐거움인지, 슬픔인지, 기가 찬 어이없음인지는 보시는 분의 몫입니다.

   

 

왼쪽 길 돌다리 건너 서운암이 있고, 오른쪽 길은 12폭포나 내연산과 향로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른쪽에 물줄도 시원하게 흐르는 수로가 있는데, 왼쪽은 이 우기(雨期)에도 바닥이 다 드러난 계곡을 끼고 산책로가 하얗게 열려 있습니다.

 

 

수로는 어느 사이에 보이지 않고, 맑은 물을 머금은 계곡만 이 모습이 참 내 모습이란 듯이 졸졸졸 맑은 소리내며 해말간 얼굴에 수많은 반짝임으로 웃으며 조잘조잘 반깁니다. 

 

 

암각화가 있는 반구대처럼 단애를 이룬 햇살 하얗게 물든 바위면에 나뭇잎들의 음영이 바위에 그림처럼 수를 놓았습니다.

 

 

수정처럼 맑은 물을 보기 좋을 만큼 품에 담은 계곡 여울진 곳, 모처럼 내린 햇살에 물결도 즐거운 양 편린처럼 반짝이며 흥겨워 합니다.

" 냇물이 졸졸 너의 집이 어디냐 숲속이냐 땅속이냐 저 바위틈이냐~~♬ "

 

 

곡선미도 아름다운 나무들의 군무에 나의 눈 즐겁고, 그 이파리 하늘을 덮어 따가운 햇살을 가려 주며 신선한 한줄기 바람 또한 살랑대니 이 느낌, 이 행복에 절로 눈물이 난다. 어찌 이 고마움 세상 모두에 뜨거운 감동 어찌 없으리요.  하늘이시여, 조상님이시여...

 

 

겹겹산중계곡에서 어느 뫼가 문수이고,

어느 뫼가 신선인지 나는 몰라라.

그저, 보고 싶고, 보고 잡은 것은

깊고 깊은 곳, 신비로운 계곡뿐인가 하노라.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저 바위아래 걸어가는 길손을 보는 내 마음, 행여 돌덩이라도 떨어질라 움츠러듭니다.  

 

 

산자락을 끼고 도는 길은 다시 계곡으로 들어서고, 저만치 눈에 들어온 첫째 폭포.

 

 

<상생폭포/相生瀑布>

 

 

두 줄기로 떨어지는 이 폭포를 지금은 함께 산다 는 의미로 상생폭(相生瀑)이란 이름이 통용되고 있지만, '쌍둥이 폭포'란 의미의 쌍폭(雙瀑)이란 명칭이 오래 전부터 쓰였답니다. 1688년 5월에 내연산을 찾은 정시한(鄭時翰1625-1688)의 산중일기(山中日記 : 현재 고려대 중앙도서관 所藏)에 보면 이 상생폭포를 사자쌍폭(獅子雙瀑)이라고 적고 있는데, 그 당시에도 '쌍폭'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산중일기 : 정시한(鄭時翰1625-1688)이 2년 6개월에 걸쳐 원주 본가를 출발하여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명산 고찰과 작자의  일가칙척을 두루 방문한 후 원주 본가에 돌아올 때까지의 일들을 상세히 기록한 일기 >

 

 

제 1 상생폭포 위의 모습. 암반 가운데가 볼록하게 솟아 있어 그 양편으로 물 줄이 갈려 두 개의 폭포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쌍폭 상류쪽 풍경.

 

 

제2 보현폭포 표시판.

 

 

보현폭포 위로 가는 계단.

 

 

<2.보현폭포/普賢瀑布>

이 폭포의 이름은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 보현암(普賢庵)에 근거한 것이라고 합니다.

삼면이 바위로 된 단애로 둘려져 있는 沼 가운데 보이는 바위에 마치 참호(塹壕)처럼 가파른 수로가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그 수로로 물이 흘러 떨어지는 폭포입니다.  

 

 

보현폭포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沼)의 주변 모습, 마치 통로처럼 보이는 좁은 바위협곡에서 물이 곤두박질치듯 흘러내립니다.

 

 

폭포위로 올라가 협곡처럼 좁고 깊게 패인 홈으로 물이 흘러 떨어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폭포 위 소(沼)의 모습입니다.

 

 

<3. 삼보폭포>

폭포라기에는 그 모습이 아담하고 작아 주변 암반의 모습과 아울러 아름다운 계곡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삼부폭포 주변 경관.

 

 

제4폭포를 향해 가는 길입니다. 폭포를 찾아 가는 길이고 보니 지속적으로 계곡을 옆에 끼고 가거나 또는 계곡바닥을 길 삼아 가는 코스입니다.

 

 

길바닥에 금빛풍뎅이 한 마리, 그 번쩍임에 나는 깜짝 놀랐네, 눈 부시다 네 모습, ~~~ ♪ ♬

길바닥에 황금풍뎅이 한 마리, 그 황홀함이 나의 눈길 붙잡네, 아름답다 네 모습. ~~~ ♩

 

 

<선일대/仙逸臺>

신선이 학을 타고 비하대(飛下臺)로 내려온 뒤 이 봉우리에 올랐다가 선경에 취하여 내려오지 않았다 하여 붙여진 명칭 '선일대', 정상부에 절터가 있다고 하며 아직도 옛 기와 깨진 조각과 토기편이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

 

 

<4. 잠룡폭포/潛龍瀑布>

아직 승천하지 못하고 물 속에 숨어 있는 용 이란 뜻으로, 폭포 아래는 거대한 암봉인 선일대(仙逸臺)를 낀 협곡인데, 여기에 용이 숨어 살다가 선일대를 휘감으면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선일대에 잠룡의 승천 전설을 뒷바침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울창한 나무가 있는 벼랑을 사이로 마치 용틀임하는 모양새로 하얀 폭포줄기가 보입니다. 

 

 

잠룡폭포 상부(上部)의 모습입니다.

 

 

<5. 무풍폭포/無風瀑布>

바람을 맞지 않는 폭포라는 뜻을 준 것은, 폭포 아래 30여 m에 걸쳐 암반 위를 뚫고 형성된 아주 좁은 바위틈으로 물이 흐르다보니 이런 명칭을 붙인 것 같습니다. 주변의 관음폭포나 잠룡폭포에 비해 폭포의 높이가 짧고 규모도 작아 '폭포'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계(溪)를 붙인 무풍계(無風溪)라는 이름을 쓰기도 합니다. 

 

 

폭포 옆 암벽에 정조임금 때 관찰사(지금의 도지사)를 지낸 김의순(金義淳)의 함자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김의순은 조선 후기 안동 김씨 문중의 세도정치의 기초를 다진 김조순의 문중 인물입니다. 김조순은 조선조 선조 이후에 퇴계 이이(李珥)를 시조(始祖)로 하는 기호학파의 한 사람으로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의 4대손으로 순조의 장인이기도 한 인물입니다. 문장이 뛰어나 초계문신(抄啓文臣)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기호 지방의 인물로 이루어진 기호학파는, 이황을 시조로 하는 영남학파와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폭포 앞 바위에는 韓末 어사 이도재(御史 李道宰1848~1909)가 계미년 3월에 음각으로 새긴 이름자가 보입니다.

그는 충신으로 외무.학부대신 등을 거쳤으며, 1904년 6월 일제가 황무지개척권을 강요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김종한(金宗漢) 등과 함께 농광회사(農鑛會社)를 신설하여 개간사업을 하고, 광업 등 국내의 모든 이권에 대한 외국인의 침탈을 막으려 노력했습니다. 1907년 시종원경으로 있을 때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의 양위를 결정하는 어전회의가 열리자, 병을 이유로 입궐하지 않았고, 고종이 결국 양위하게 되자 박영효(朴泳孝)·남정철(南廷哲) 등과 함께 평양에서 올라온 시위대 제2연대의 호응을 얻어 그해 7월 20일 고종의 양위식을 기회로 매국 각료들을 모조리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탐지되어 미수에 그쳐 그 주동자로 체포되었습니다. 시호는 문정(文貞)입니다.

 

 

관음굴(天然窟), 비하대(飛下臺),감로담이 있는 곳입니다.

폭포 서남쪽 암봉 정상부에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1711~1781)이 명명하였다고 전하는 刻字가 있습니다.

 

 

<제6 관음폭포>

관음굴과 관음폭포 우측위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연산폭포와 감로담이 있고 그 위 봉우리가 비하대입니다. 

경북팔경 : 관음폭포, 문경의 진남교반, 청송의 주왕산, 구미 금오산, 봉화 청량산, 영주 희방폭포, 의성 빙계계곡,(1933년 대구일보에 의해 선정한 刻字가 있습니다.)

  

 

<학소대/鶴巢臺> 외봉으로 솟은 암봉으로 신선을 태우고 내려온 학이 둥지를 틀고 머문 곳이라고 합니다. 그 위쪽에 계조암(繼祖庵)터가 있었음을 옛 기와편과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어 이를 입증합니다.

 

 

관음폭포 옆 떨어진 곳에 마련된 콘크리트철조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올라가면 구름다리 건너 비밀스레 숨어있는 감로담과 연산폭포가 있습니다. 그 연산폭포가 이뤄 낸 감로담 물이 다시 절벽으로 떨어지며 관음폭포를 이뤄냅니다.

 

 

좌측 아취형 수로가 있는 콘크리트 길은 비하대로 올라가 나머지 4개의 폭포로 이어지는 길이고, 우측 계단은 연산폭포로 연결된 구름다리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여기서 저는 관음폭포만 보고 연산폭포는 뒤로 미루고 비하대를 거쳐 은폭포로 바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귀로에 연산폭포를 봤습니다. 따라서 사진에 기록된 시각의 차가 있습니다.  사진을 폭포의 순차대로 올리느라 시각의 두서가 바르지 못함을 말씀드립니다.

 

 

<연산구름다리>

 

 

연산폭포가 있는 곳으로 놓인 연산구름다리입니다.

 

 

<7. 연산폭포/延山瀑布>

내연산(內延山) 열두 폭포 중 그 규모나 아름다움에서 당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폭포입니다. 연산이라는 명칭은 내연산에서 내자만 뺀 것으로, 정시한의 '산중일기'에서는 내연폭포(內延瀑布)라 하였고 '삼폭포(三瀑布)' 또는 '상폭포(上瀑布)'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삼폭포나 상폭포는 상생폭포에서 연산폭포에 이르기까지 큰 세 개의 폭포(상생,관음,연산)가 있다고 보고, 상생폭포를 1폭포 또는 下瀑, 관음폭포를 2폭포 또는 중폭(中瀑), 연산폭포를 3폭 또는 上瀑으로 부른데 따른 결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높고 긴 폭포에 비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좁고 폭포 중간을 가리는 바위 때문에 온전히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로담도 일부만 보이는 군요.

 

 

연산폭포를 내려와 비하대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기 전 관음굴과 폭포 앞에서 연산폭포와 감로潭이 숨어있는 곳을 올려다 본 경관입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비하대(飛下臺)이며, 연산폭포 상층부입니다.   

12폭포 중 7개의 폭포를 지나 이제 8번 째 폭포인 은폭포로 가는 들머리이기도 합니다.

 

 

100여 계단쯤 오르니 바로 비하대(飛下臺)입니다.

 

 

비하대(飛下臺) 뒤로 뻗어 올라간 계곡의 모습입니다. 은폭포에서 내려온 溪流는 이렇게 연산폭포에 도달합니다.

 

 

연산폭포 상층부의 형태입니다.

 

 

암반에 이렇듯 깊은 沼를 만들고, 이 소에서 넘친 물은 다시 용틀임을 하며 구비치며 낭터러지의 절벽을 타고 감로담으로 떨어져 연산폭포를 이룹니다.

  

 

용틀임으로 흰 거품을 물고 구비쳐 내리 흐르는 물줄기 그 아래 구름다리 건너 비밀스레 숨어있는 감로담과 연산폭포가 있습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니 연산폭포는 암벽에 숨어 보이지 않고 구름다리입구 계단과 관음폭포의 하얀 물줄기만 보입니다. 

 

 

다시 등산로를 따라 은폭포로 가는 길입니다. 길목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을 보니 대부분 대구와 경북지방 산악회의 표식입니다.  

 

 

계류를 따라가는 길은 때로는 벼랑길도 있어 험하기도 합니다.

 

 

바위와 맑은 시내가 흐르는 이 모습이 소금강을 닮았습니다.

 

 

이런 계곡으로 난 길을 조금도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었지요.

 

 

정원에 꾸며놓은 연못처럼 시냇가 옆 바위의 모습입니다. 고였는지 스며나는 물인지 물이 담긴 구유통 모양(石槽)에는 금붕어라도 놀고 있는 양 착각이 듭니다. 

  

 

침식(寢食)되어 마치 굴처럼 생긴 곳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군요. 

 

 

한참을 올라 왔건만, 이제야 푯말이 보입니다. 관음폭포에서 은폭포까지의 길이 좀 거리감이 있다 싶습니다. 아직도 1.2km나 남은 걸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여정에 행여 지루하실까 싶어 이렇게 주변 사진을 부지런히 담아 올리오니 기득하지 않은가요? ㅎㅎ

   

 

돌바닥 시냇가 작은 바윗돌 사이사이 억새풀이 소담스럽습니다. 억새꽃이 하얗게 피는 가을이면 참 아름답겠지요.

 

 

아이처럼 홀라당 벋고 뛰어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곳도 많은데, 그 넘의 나잇값 하느라 참고 또 참습니다. 나이 들어감도 서러운데. 행동에 따르는 제약마저 나이숫자 만큼이나 늘어나는 것이 인생..

 

 

이번에는 이정표가 아닌 거리표시가 없는 안내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은폭포에 얼추 다 온 모양입니다. 조금 멀다싶어 좀 쉬어갈 참이었는데..

 

 

길이 따로 없고 계곡이 길입니다.

 

 

<8. 은폭포>

드디어 도착한 은폭포, 원래는 여성의 陰部를 닮았다 하여 陰瀑이라 하다가 상스럽다하여 은폭(隱瀑)으로 고쳐 불렀다고도 하고 용이 숨어 산다 하여 흔히 '숨은용치'라고도 하는데 이에 근거하여 은폭(隱瀑)으로 불렀다고도 합니다.  

 

 

은폭포 위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청하에서 유배살이를 했던 조선 인조 때 부재학을 지낸 유숙(柳潚)이 이름지었다는 한산대(寒山臺)와 습득대(拾得臺)라는 두개의 바위가 있습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재생이라며 숭모하던 중국 당나라 때의 도인(道人) 한산과 습득의 형상을 한 큰 바위입니다.

 

 

은폭포에서 떨어진 물줄은 여울을 이루고 포말을 일으키며 재갈재갈 조약돌을 다듬으며 흐릅니다.

 

 

많은 비는 상류의 모래자갈을 쓸어와 깊고 푸른 沼를 메워 자갈밭을 만들었습니다.점심을 먹고 오늘은 은폭포를 회기점으로 하여 돌아서기로 했습니다. 다음 폭포인 제9 복호1.2폭포까지의 거리가 3.9km나 되니 갔다가오려면 약8km가 됩니다. 다시 여기 은폭포에서 보경사주차장 까지 가려면 시간적으로나 거리상으로도 힘든 거리여서, 여기서 돌아가자는 친구의 말에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8번 째 은폭포을 마지막으로 다시 계류를 따라 보경사 들머리로 되돌아갑니다.

   

 

벼랑에 길이 길인지 그냥 벼랑인지 곡예도 서슴지 않는 것은, 그래도 넉넉한 시간에 여유를 즐기며..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낯익은 연산폭포 상층부인 비하대 뒤 계곡에 도착하였습니다.

 

 

발의 피로를 풀기위해 계류에 발을 담그니 물고기들이 땀의 염분냄새를 맡고 모여 듭니다. 그 앙증스런 입으로 피부를 쪼아 상큼한 자극으로 즐거움을 줍니다.

 

 

 

석회질이 많은 이곳 계곡의 바위들은 이렇듯 오랜 세월에 빗물과 물에 녹아 오만가지의 기이한 형태로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바위가 침하되어 생긴 굴입니다.

 

 

연산폭포 상층부로 비하대 뒤에 있는 계곡입니다. 은폭포에서 되돌아 관음폭포를 거쳐 연산폭포를 보고 보경사 옆 들머리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2013년 7월16일 경북 내연산 계곡에서,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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