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을 떠나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안동을 거쳐 영덕으로 가기위해 제천톨게이트로 가는 길가의 산들이 허리에 구름띠를 두른 멋진 모습에 매료되어 달리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담은 풍경입니다.
아침 이내(서늘한 기운)를 가르고 달리는 차창밖, 나뭇가지 사이로 스쳐가는 산들의 모습이 열기를 뿜어내는 듯 합니다.
제천 남쪽 톨게이트, 이 길로 들어서서 한 5분 정도가면 단양 땅, 산세가 준엄하고 아름답습니다.
이곳 제천과 단양에 걸쳐있는 장군봉, 신선봉이 연이어진 금수산(錦繡山)은 본래 백암산(白岩山)이었으나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비단에 수놓은 듯 곱고 아름답다' 하여 붙인 이름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나는 乙酉 닭띠, 12지신 중에서 유독 날개를 가진 짐승, 그래서인가 소위 말하는 역마살 바람 끼가 있는가 보다. 산이 좋고, 저 산위를 오락가락 하는 구름이 좋고, 바람타고 정처 없이 부유하는 민들레홀씨가 좋다. 생리가 이러하니 자연 나다니기를 좋아 하고, 그 모두를 몰고 다니는 바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렇게 앉아서 책보고 끼적거리기도 좋아한다. 닭은 12지신 중에 머리위에 벼슬을 가진 놈이기도 하다. 그 멋진 벼슬, 누구나 선망하는 벼슬, 닭은 만물에 새벽을 열어주고 알리는 신성한 동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닭띠, 오늘도 친구와 달랑 둘이 걸림 없이 뻥 뚤린 도로를 달려간다. 새벽을 열고 바람을 가르며..
구름 띠를 보니 생각납니다. 등산 다니며 아이처럼 흥얼대던 노래, 그 노래나 하나 부를까요?
갑자기 소나기 내리는 한 여름풍경을 경쾌하게 잘 표현한 재밌는 노래입니다.
"산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모자 벗겨오지,
이놈! 하고 물벼락 내리셨네, 천둥처럼 고함을 치시네,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네. 하하하하 웃으시네.
웃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구름모자 어디로 갔나요. 바람결에 날아갔나요.뒤춤에 감추셨나요.
뒤춤에 감추셨나요~~. "
늙으면 시세말로 '아이 같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60세 넘어 한 갑자 넘기면 쪼그라진 얼굴, 잘남도 못남도 없고, 가방 끈 길다 짧다 따진들 무엇 하며, 지난 세월의 벼슬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냥 모든 것 떨어내고 태어난 해의 甲子를 다시 맞았으니 다시 환생한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그리 살아야지요. ㅎ
금수산 줄기...
재작년 한 여름, 나 홀로 금수산을 등산하려고 얼음골로 들어섰다가 초행에 잘못 들어서 험하고도 험한 신선봉 쪽으로 돌다가 그만 탈진하여 고생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안개비 내리는 날씨가 산행하기는 참 좋은데..
이 장소는 남제천에서 안동방향의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잠시 휴식을 위해 들린 단양휴게소 건물 뒤 쉼터입니다. 옛날 쓰던 각종 일상도구와 아울러 야생화를 심어 꾸며 놓은 야생화공원입니다. 이 휴게소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똬리 모양으로 감아 돌아 오른 봉우리 위에 조성된 휴게소소입니다. 대부분 고속도로가에 있는 다른 휴게소와 달리 산봉우리를 휘감아 도로를 내고 그 정상에 휴게소를 차린 까닭이 있습니다.
이 휴게소는 동쪽으로 소백산, 서쪽으로 금수산, 남쪽으로 칠성산, 북쪽으로 장군봉에 싸여 있는 그 중앙에 위치하며, 풍수지리학적으로 옥녀금반(玉女金盤) 명당이라고 합니다.
"옥녀금반(玉女金盤)"터란, 옥녀가 금쟁반을 두 손으로 받쳐 든 형국으로 자세가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고 주산의 좌우로 마치 옥녀가 두 팔을 벌려 감싸 안은 연봉들이 빙 두르고 있으며 내부는 둥글고 평평한 형세를 이루고 있어 아주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옥녀가 금쟁반을 손에 받쳐 들고 있는데 금으로 만든 쟁반에 담을만한 물건 또한 아주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 되어 부귀지지터라고 합니다. 옛날부터 많은 풍수지사 지관들이 이 터를 잡기위해 다녀갔지만, 중앙고속도로 준공(2001년12월14일,오후4시30분)으로 단양휴게소가 옥녀금반 명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아기자기 꾸민 꽃밭과 생활도구들을 보니 옛날 초동시절 방학이면 가던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 (지금의 성남시 모란) 외갓집과 그 동네의 모습이 시나브로 떠오릅니다.
제천과 단양에는 유난히 장승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장승도 많고 솟대도 많습니다. 또한 이 지방 사람들은 말이 적고 속을 내 보이지 않아 심중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 그 연유는 삼국시대부터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지역은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접경지역으로 하루아침에 백제도 되었다가 신라도 되고, 고구려가 되니 그런 지역적 특성으로 처신에 따라 첩자로 몰려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에, 자연히 말을 아끼게 되고 속내를 함부로 내 보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그리 살다보니 관습이 되어 오늘 날에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즉 의중을 떠보기 어려운 품성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불안정한 환경에서 안녕을 기원하는 토속신앙도 발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살아남기 위한 방책으로 신중히 처신한 것이 오늘날 답답할 정도로 그 성품이 고착화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 근거로 단양 온달산성과 단양 적성산성 내에 세워진 신라적성비의 내용을 들 수 있습니다.
단양휴게소를 출발한지 20여 분만에 풍기톨게이트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소국도를 이용하여 느림의 미학을 십분 활용하여 주변을 구경하며 안동을 거쳐 울진으로 갈 생각입니다만, 운전대 잡은 친구 맘대로 갑니다. ㅎ
지방도로로 가다보니 郡 또는 面마다 길가에 심은 꽃들이 각양각색입니다.
이곳은 뚱딴지꽃 비슷하기도 하고 해바라기 별종 같기도 한 노랑꽃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그런데, 뚱딴지꽃은 뭐냐고요? 아, 거 있잖아요. 돼지감자, 그 돼지감자꽃이 뚱딴지꽃이랍니다.
(반변천/半邊川)
반변천은 일월산(해발 1,219m) 동쪽 윗대티 부근에서 발원하여 3개 邑面을 지나 13개의 支川과 합류하는 지방 2급하천으로 그 길이가 109.4km 라고 합니다. 발원지에서 남쪽으로 흘러 일월면 장군천을 만나 차츰 강의 형태를 보이고 영양읍을 지나 입암면 남이포(南怡浦)에서 동천과 합류하면서 수량이 풍부해지고 깊은 소(沼)를 형성하며 영양군 마지막 지점인 입암면 홍구리를 뒤로 하고 청송군(靑松郡)을 지나 임하댐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낙동강의 동쪽 原流입니다.
수정같이 맑은 물에서만 사는 산천어, 열목어가 산다고 누군가 알려준 반변천, 그 반변천의 수정같이 맑은 물이 이처럼 흙탕물이 되었으니 산천어는 어디로 숨었을까! 아니면 서울 탁한 공기를 피해 시골로만 숨어다니는 나처럼 어디로 피신했을까!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큰 내(大川)라 기록되어 있는 반변천은, 태백산맥의 남북방향을 따라 깊은 협곡을 이루며 흐르는 감입곡류(嵌入曲流)형으로 하천주위에 평야를 형성해 풍족한 농산물을 제공하고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청록파 시인 조지훈 등 여러 문인들을 탄생시켰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생태계 寶庫로 영양고유의 토종어종, 수달 및 희귀동식물의 서식장소 등 생태적으로 건강한 하천으로 이 땅을 묵묵히 흘러가고 있는 英陽郡民의 젖줄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반변천은 이 지방의 소중한 문화요 역사이고 환경이기에 반변천의 보전만이 영양군의 꿈꾸는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라 여기고 소중히 가꾸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물은 문화를 창출하고 생산과 번성을 가져다 주는 것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요 만물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저 안개비 내리는 봉우리의 연록색의 나무들이 너무 예뻐서 달리는 차창으로 담았는데 화면의 풍경은 별루죠?
안개 자욱한 저 골짜기 안 고개 넘어 일월산에는 옛 금광이 있습니다. 지금은 자생화복원사업의 하나로 공원으로 꾸며 그 이름을 '일월산자생화공원'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안개비 내리는 고개를 넘어서니 굽이굽이 내림길, 저 아래에 반변천이 발원한 대티골이란 푯말이 있고 <일월산자생화 공원>을 알리는 또 다른 이정표가 보입니다.
<일월산자생화 공원>
이 공원은 1939년부터 일제가 우리 강산의 광물수탈을 목적으로 일월산에서 채굴한 금, 은, 동, 아연 등의 선광장 및 제련소로 운영하던 지역으로 종업원 수가 500여 명에 달하였고 인근주민 1200여 명이 살았으며 1939년도에 전기도 공급된 곳으로 번성하였으며, 해방 후 우리나라 사람에 의하여 계속 운영되었으나 채산성 악화로 1976년도에 폐광 된 후 금속 제련과정에서 사용한 비서(As), 청화소다(NaCn)등 화학성 독성물질로 오염된 광미와 폐광석 등에 의한 토양오염으로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땅이 되었으며, 오염된 침출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어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채로 30년간 방치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늦게나마 영양군에서는 2001년도에 폐광지역 토양오염방자사업 일환으로 32억원을 투자하여 오염원을 완전 밀봉하여 매립한 후 공원부지로 조성하였고, 2004년도에 8억원을 투자하여 각종 편의시설 설치와 일월산에서 자생하는 우리꽃을 식재하여 일월산 정기와 더불어 자연이 숨쉬는 휴식공간으로 전국 최대규모의 야생화공원으로 조성하였다고 게시하고 있습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안개에 싸인 두 산봉우리가 여인의 젖무덤처럼 예쁘게 봉곳하구나, 지금의 모습을 찾기까지 그 얼마나 인고의 세월이었을까, 네게 나를 묻고 싶은 아련한 그리움이 솟아 오른다.
일월산자생화공원은 이지역의 희귀한 향토자원식물을 보존하고 방치된 국토를 살아있는 땅으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생태환경 교훈과 일제 수탈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식재한 야생화는 64종 113,000본이며, 수생 및 수변식물 11종 6,000본이 번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리는 보슬비에 함초롬히 젖은 꽃이 지난 일제의 수탈로 황폐했던 곳을 생동하는 기운으로 본연의 자연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純綠의 자연, 이름 모를 잡초들이 무성하여 꽃을 피워 죽음의 땅을 보듬고 있는 것에, 우리 조선의 어머니들이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풀뿌리처럼 굳게 뿌리를 내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그 숭고한 모성을 보는 듯해서 제법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었던 그 감동의 시간들이 이제 또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나비도 벌도 원추리꽃도 그 생기로움 참으로 아름답구나!
<영양 구 용화광산 선광장>
선광장이란 광물과 폐석을 선별하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광물처리기술은 삼한시대(마한, 진한, 변한)를 거쳐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896년부터 외국인들이 한국의 광산 자원을 수탈하였고, 특히 일제강점기 때에는 대량으로 채광된 원석을 처리할 수 있는 선광기계도입 등 기술 발달과 그 연유로 대대적인 수탈이 이루어졌습니다. 선광(選鑛)이란 채굴한 원석을 주로 기계적, 물리적, 물리화학적으로 폐석과 유기광물로 선별하여 광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선광의 주요작업은 분쇄, 분리, 선별, 탈수 순으로 행해집니다.
이 용화광산의 선광장은 산자락을 따라 약 15~28도의 경사를 가진 계단형태로 조성된 얼마 안 남은 근대 선광장입니다. 1939년부터는 약 40여년간에 걸쳐 일월산에서 채광된 광석은 이곳 선광장으로 운반되어 금, 은, 동, 구리, 아연 등을 제련하던 현존 국내 유일의 선광장입니다.
높고 깊은 이 산골짜기에 연록의 잎새들, 노랑들꽃 아름다운 곳에, 비를 대동한 구름이 낮게 잠식해 옵니다. 제법 옷도 촉촉이 젖어 서늘함을 느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다시 돌아본 옛 선광장( 選鑛場)의 주변에 피어난 원추리꽃이 안개비에 촉촉이 젖어 있습니다.
상처투성이였던 이 대지를 치유하고 아물려 준 원추리, 네가 아마도 진정한 들꽃이겠지..
산림과 농경은 인류를 살리는 보호자요 지혜입니다.
이곳 수비면 도로가에는 원추리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 야생화가 수비면을 상징하는 面花임을 알리는 듯합니다. 원추리는 관상용으로도 좋지만, 약용으로 나물로, 국거리로 쓰이는 식물이며 이렇게 조경으로 활용하니 이질감 나는 외국종을 심는 것에 비해 더 아름답고 친근감이 솟고 외화와 국비도 절약되고 정말 좋지 않습니까?
도로변에 이렇게 우리 것을 살리고 고단한 방랑길손에게 좋은 느낌을 주신 수비면 관계자여 고맙습니다. 수비면 부라보~~'
안개구름도 쉬어가는 고즈넉한 산자락에 아늑한 마을, 그 앞 옥답이 정겨워지니 옛 왕십리와 용두동비행장과 그 언저리의 논들이 그립다.
논도랑에서 삼태기로 미꾸라지를 잡던 시절, 절로 아른거린다. 고향의 이름은 그 자리에 있건만, 그 자리에 가보면 고향은 없으니 이 어찌 실향민이 아니리오.
그냥 차를 멈추고 저 마을을 찾아 들어 이집 저집 들어가 보면 어릴 적 동무 길용이도 준표도 천식이도 있을 것만 같고 남몰래 좋아했던 은자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자꾸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러나 어쩌랴 내 심경을 엿본 듯이 친구는 더욱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주어 내 심경을 곤두박질치게 하네.
<고추장승>
옥녀당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장승이 세워져 있는데 한쪽(수비면쪽)에는 영양에서 세운 것이고, 다른 한쪽(영양쪽)에는 수비면에서 세운 장승입니다. 이 고추장승은 수비면 쪽에 수비면을 향해 세운 영양군의 장승입니다.
<옥녀당/玉女堂>
고개마루에 당집이 하나 있는데, 이 당집은 조선 영조 때 영해부사로 근무하던 黃씨 성을 가진 사람의 '옥녀'라는 딸을 기리는 옥녀당이라는 이름의 당집입니다.. 당시의 영양은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갖지 못하고 영해부에 편속되어 있었는데 옥녀는 아버지 영해부사의 명(부탁)으로 영양관아(수비면)에 중요한 공문서를 전달하러 왔다가 영해로 돌아가는 길에 이 우주령에서 갑자기 병이 들어 나졸들이 급히 구급약으로 치료를 하였으나 하루만에 객사하고 말았답니다.
이에 본실리 주민들이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옥녀의 넋을 위로하고 공을 기리기 위하여 옥녀가 죽은 이 고개에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웠으며, 매년 정월 보름날에 祭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옥녀사당은 1995년 수비~온정간 도로공사 때 시멘트블록 건물로 이전 개축되었으나 민속자료로서의 원형복원을 염원하는 지역주민의 건의에 의하여 현재의 건물로 복원되었으며 2002년 5월에 옥녀무덤에 묘비석을 세우고 주변에 조경공사를 실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옥녀의 무덤을 벌초를 하면 득남을 하거나 작은 소원 하나씩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와 득남을 원하는 부인들이 남몰래 와서 벌초를 하였으며 무덤이 길목에 있어 고개를 넘는 나그네와 지역주민들의 정성스런 관리로 후손이 없으나 묘의 보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장승들은 수비면의 안녕을 지키는 장승들로 영양쪽을 향해 세웠습니다. (내가 가는 방향)
<구주령/九珠嶺>
꼬불꼬불 휘어 틀어진 99구비를 때로는 구름을 타고 때로는 구름을 안고 아슬아슬 맘 졸이며 휘돌며 내려갑니다.
봉긋한 봉우리들 다정함에 구름도 머무는 산자락,
아기자기 오손 도손 정다운 산골마을,
연록으로 물들인 문전옥답,
내 고향처럼 정감 서린다.
구름은 그림쟁이, 심술이 나면 조분거리고, 기분 좋으면 사분사분 그린다.
반시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굽이굽이 아흔아홉 굽이를 내려왔건만, 빨리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렇게 험준한 준령과 주변의 아름다운 비경에 젖다보니 금세 백암온천장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백암산 들머리이기도한 백암온천장입니다.
백암온천장입니다. 여기서 돼지 닮은 먹성으로 참 맛도 없는 점심을 잘도 먹었습니다.
영덕근처 학곡2교차로를 통과 중이니 목적지에 얼추 다 온 셈입니다.
오전 8시30분 제천을 출발 ~ 오후 1시 35분에 칠보산자연휴양림에 도착, 5시간의 여정이었습니다.
이틀 밤을 즐겁게 휴식할 산림휴양관 A동입니다. 방은 이층 오른쪽 두 번째 베란다와 창이 보이는 방으로 고래해수욕장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조망을 겸비한 방입니다.
제천~영덕 "칠보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2013년 7월 15일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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