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지리산 양귀비

鄕香 2013. 6. 15. 00:55

<양귀비 / 楊貴妃>

이 화초양귀비 꽃밭은 노고단으로 가는 구례의 지리산자락 초입에 심어져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양귀비(楊貴妃)는 중국 당나라 현종의 愛妾으로 이름은 양옥환입니다. 원래 그녀는 당현종의 18번째 아들 수왕의 부인이었으니 현종의 며느리 였습니다. 현종이 아끼던 무혜비가 죽고 쓸쓸히 나날을 보내던 차에 양옥환이 눈에 띄었는데 워낙에 아들이 많았으니 며느리 얼굴도 제대로 몰랐던 현종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입니다. 이때 현종은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고 양옥환은 22세의 원숙한 여인, 하지만, 이내 아들의 아내임을 알게 되었으니 아무리 황제지만, 아들의 여자를 바로 자신의 후궁으로 취할 수가 없어서 궁에다 도교 사원인 '태진궁'을 짓고 관리하는 女冠으로 봉하여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동안 '양태진으로 불리다가 27세가 되던 해에 貴妃로 책봉하였습니다. 현종은 황후가 죽고 없었기에 양귀비가 실질적으로 황후의 역활을 하였습니다. 양귀비는 아침마다 이슬에 옥가루(玉粉)를 타서 마셨고 땅에서 솟아나는 온천수에 용뇌향을 풀어 놓은 물에 목욕을 했으며 발이 작고 아름다운 미모에 요염한 자태로 현종의 마음을 현혹시켜 젊어서 '개원의 치'라고 불릴 만큼 현명한 군주였던 현종은 양귀비에 매료되어 政事를 등한시 했고 양귀비는 자신의 친척들을 높은 벼슬자리에 앉혀 그 여세로 실권을 휘둘렀습니다. 결국 안녹산의 반란에 의해 수도인 장안을 버리고, 현종과 함께 피난길에 오르지만, 이 모든 환란이 양귀비 때문이라며 양귀비를 죽이라는 신하들의 주청에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황제의 입장에서 귀비를 지킬만한 힘이 없었고 결국 양귀비는 죽임을 당하기 보다는 스스로 목을 매었던 것입니다. 이 때의 나이는 37세 였습니다.

 

 

<양귀비꽃 / 홍 해리 「淸別」1989>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기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넋을 놓는가.

귀 따갑게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

널 끌어안고
만신창이 만신창이 불타고 싶어라.

 

 

<양귀비>

양귀비는 한해살이 풀로 양귀비과에 속합니다. 몸길이는 50~150cm 정도에 5~6월에 흰색 또는 홍색의 꽃이 핍니다. 잎은 어긋맞게 나며, 열매는 달걀처럼 타원형입니다. 분포지는 이집트, 인도, 중국 등 여러 곳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재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덜 익은 열매의 즙을 내거나 상처를 내어 즙을 채집하여 말린 것을 아편이라고 합니다.

 

 

楊貴妃(한자로 볼 때)가 얼마나 곱고 예뻤으면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꽃에 양귀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싶습니다. 楊貴妃와 화초양귀비의 특성을 견주어 봐도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양귀비는 꽃도 이처럼 아름답지만, 그 진액성분도 사람을 환각에 빠뜨리는 마약입니다. 楊貴妃 또한 아름다운 미모와 요염한 자태로 당 현종의 마음을 현혹시켜 나라를 도탄에 빠트렸으니 말입니다. 

  

 

다가서면 관능이고 물러서면 슬픔이다.

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것, 너무 가까워도 멀어도 안된다.

다가서면 눈멀고, 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활활 타오르는 꽃

아름다움은

관능과 슬픔이 태워올리는 빛이다.

<양귀비꽃 / 오 세영 詩>

 

 

<양귀비꽃 / 김 오민 詩>

세상 사람들이 저를 보고 가장 아름답다고 가장 매혹적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더러는 지나치게 화려하여 요사스럽다고 시기하고 질투까지 하는데

누구한테 뽐낸 일조차 없이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요.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이 어디 내 죄인가요.

 

 

2013년 5월21일 구례 지리산 자락에서,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