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갈 기념관>
초가지붕 모양으로 꾸민 이 건물이 흰 것은 아마도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한 민병갈 박사가 어머니가 흰 목련꽃을 좋아한 것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 건물 안에는 나무를 사랑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재능을 기부하여 만들어 진 민병갈 기념관에는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님의 정신과 철학 그리고 끊임없는 사랑이 만들어 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태산목>
태산목은 1년 내내 잎을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5~6월에 붕새의 알 같은 탐스런 봉우리에서 흰 꽃잎이 조금씩 벌어지다가 여러 날 후에는 꽃잎이 뒤로 젖혀지는데 그래도 쉬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태산같이 꿈쩍도 않고 꽃잎은 거멓게 암갈색으로 변한 채로 나무에 매달려 있답니다.
<게스트 하우스>
천리포수목원은 심신의 힐링을 위해서 며칠 또는 일정 기간 머물 수 있도록 여러 형태의 숙박시설이 있는데, 이 건물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다정큼나무집>
이 한옥도 게스트 하우스 중 하나입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숙박할 경우 다시 태어나면 개구리가 되고 싶다던 민병갈 박사의 남다른 생태계 사랑이 숨쉬는 숲과 연못의 다양한 곤충과 늪지생물들을 체험하고, 하루 두 번 썰물 때에는 계절에 따라 바지락, 홍합, 굴, 파래 게 등 갯벌체험이 즐겁고, 낙조보며 산책하기 등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민병갈기념관 옆 뜰>
<가죽잎털꿩나무 "바리에가툼"/Variegatum>인동과
<독일가문비나무"레펜스"/Repens> 소나무과.
이 독일가문비나무는 줄기가 땅에 붙다시피 낮게 벋어 자랍니다. 자라등껍질처럼...
<배롱나무>
줄기가 배배 꼬여 마치 간지럼을 타고 있는 듯 보이는 배롱나무의 꽃은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진한 분홍색 또는 흰 꽃이 무려 100일을 간다하여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고 하며, '자미'라고도 부릅니다. 매끄러운 줄기 가운데 흰무늬를 손으로 긁으면 나무 전체가 흔들린다고 하여 '간질나무' 또는 간지럼나무'라고도 합니다.
(南向으로 본 연못)
민병갈기념관 앞에 있는 이 연못은 천리포수목원에 있는 연못 중 가장 크고 아름답습니다.
<여유로운 情談>
사람은 아름다운 마음을 지닐 때 자연이 됩니다.
<연못과 장명등>
<석등/장명등>
이 석등은 그 모양에서 충주 수안보면 미륵리사지에 있는 미륵불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몇 해 전에 미륵사지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석등의 화창을 통해 뒤에 있는 거대한 미륵불을 담은 사진입니다. 참고로 올렸습니다.
<닛사>
이 나무는 물을 사랑한 친절한 꼬마요정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가지를 아래로 향하는 독특함 때문에 연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북향(北向)으로 본 연못>
연못의 수면에 수놓은 듯 펼쳐 있는 수련, 그 수련들이 연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밀어를 나누며 내게도 속삭입니다. 언제 또 오시겠어요?
천리포해변과 낭새섬, 수평선과 잔잔한 물결의 고요함이 마치 안단데의 음율처럼 느리고 아늑하게 가슴으로 스밉니다.
붉은 이파리의 어린 삼색참죽나무들
정처 없는 여행을 위해 한 가닥 바람을 기다리는 민들레 홀씨, 내가 너를 닮았네.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여 스스로 한국인이 되신 민병갈 박사, 그의 업적과는 달리 입구 한 쪽에 허름하게 비닐하우스에 세워 그 안에 전시된 귀중한 자료들을 관람하면서 느낀 것은 가슴 뭉클한 고마움과 그런 감동을 우리에게 주신 분에 대하여 정부와 국민의 무성의함을 이 허술한 전시공간을 통해서 본 것만 같아 부끄럽고 심히 미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뼈아픈 역사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민병갈 박사는 전란의 아픔을 생생한 기록사진으로 남겨 우리의 교훈으로 삼게 하고 있습니다. 전시된 사진 일부를 여기에 게시합니다.
『11주기 추모전을 열며』
1962년에 수목원 부지를 매입하여 1970년에 수목원 조성을 시작하여 2009년 4월 일반에 개방한 천리포수목원<면적 562,492㎡(170,154평)중 개방지역 61,156㎡(18,532평)> 설립자 민병갈(미국 이름 Carl Ferris Miller.)박사께서 서거하신지 11주기를 맞아 고인의 한국 사랑과 나무사랑을 재조명하는 사진 기획전을 마련합니다. 전시된 사진들은 대부분 민병갈 원장님의 시선이 머문 광복 후 격동기 한국의 시대상과 풍물 그리고 수목원 조성초기 모습입니다.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林山 민병갈 박사의 시각과 숨결이 담긴 이 전시가 돌아가신 분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공익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
오늘의 민병갈 박사를 있게 해준 정신적 지주였던 그의 어머니와 고모, 그리고 그의 일대기.
<청년장교 시절의 "칼 밀러 중위">
1945년 9월8일 미 해군중위로 한국(인천항)에 첫 발을 디딘 그는 24세 젊은 나이에 운명적인 '한국인 민병갈'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민병갈(미국명 : 칼 페리스 밀러/Carl Perris Miller)과 어머니 '에드나 오버필드 밀러/Edna Overfield Miller)>
<민병갈 박사의 꽃상여 행렬 모습.>
민병갈 박사는 미국에서 태어난 파란 눈의 미국인으로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인이 되었고 한국인으로 살다 2002년 8월4일 한국 태안보건의료원에서 영민하여 천리포수목원 목련나무 아래 잠들었습니다.
지금의 청주 플라타너스나무터널 길을 연상케 하는 한가로운 신작로에 달구지에 장작을 가득 싣고 가는 모습입니다. 하얀 흙길을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나 그 고삐 줄을 잡고 가는 훤칠한 키에 멋진 주인이나 한 낮의 내리는 하얀 땡볕에 모두 하얗게 바래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 사진은 민병갈 박사가 주한미군사령부고문관 시절인 1950년대에 충남 당진 포구를 방문했을 때 타고 간 차입니다.
당시 어촌의 어린이들에게는 당시 흔치않은 이 자동차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을 것이기에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을 테지요.
1949년 여름 진해항에 내려온 이승만 대통령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정부 요인들과 함께 충무공 동상 앞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이 나라를 세우고 그 기틀을 마련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잘못이 있기 마련입니다. 후반에 간흉들이 충정보다는 권력에 눈이 멀어 대통령의 귀를 막고 눈을 가려 잘못된 보좌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에 한 점 오점을 남겼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건립에 혼신을 다했고 북한 공산당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고 국민을 사랑했습니다.
마포대에 담은 짐과 그 위에 활짝 핀 진달래꽃나무 한 그루를 얹은 지게를 지고 가는 젊은이의 옷은 비록 헤어져 깁고 초라하지만, 가슴속 마음은 봄날의 진달래꽃처럼 밝고 화사하게 열렸을 겁니다. 머리에 동여 맨 흰 천(수건 대용) 양 쪽 귀에 장식한 꽃가지가 붉고 화사하게 물든 그의 마음을 내보이고 있으니까요.
1950년 6.25 전쟁이 터져 서울이 점령되기 직전 텅빈 서울 세종로의 모습으로 옛 총독부이자 중앙청이었던 건물 앞 거리가 한산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 피난으로 극심한 수송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모습입니다. 도시민들은 화물열차 지붕 위에 올라 피난길에 나서고(왼쪽 아래 인물) 지방에선 달구지에 짐을 싣고 폭격 맞은 다리 옆 가설한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
삼각산이 보이니 종로의 어디쯤이 되겠지요. 6.25전화로 다 허물어진 잿더미에 붉은 벽돌의 창가 벽이 전쟁기념탑처럼 우뚝 솟아 아비규환의 비극을 잊지 마시라 호소하는 듯합니다. 이런 전쟁잔해는 교육적 자료나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도 기념비적으로 보존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서울의 한 지역입니다 아이들조차 시름없는 얼굴에 사진을 찍는 사람(민병갈 박사?)을 시무룩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 쯤 66~74세의 노인이 되었겠지요. 이런 잿더미를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발전시킨 역발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아온 우리의 세대를 수구세력이라고 비하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이런 아픈 지난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여 그 자녀들에게 바른 역사관을 심어야합니다. 요즘의 교육자들의 삐뚤어진 시각과 역사의식 또한 참으로 개탄스럽고 근심스럽습니다.
민병갈 박사는 우리나라의 전통 유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1968년 봄 창덕궁의 낙선재를 찾아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윤비를 찾아 뵙고 정중히 인사를 올린 후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무를 지극히 사랑하여 나무의 분신처럼 산 민병갈 박사의 작고하시기 전의 모습입니다.
2013년 5월20일 천리포수목원에서,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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