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山 連作 중의 하나인 이 작품은 1940년대 초기에 그려진 것 같습니다. 청전은 이 그림에서 또 다른 필법의 시도를 보입니다. 화면 前景의 바위와 溪流의 형태를 비롯하여 그 배경으로 끝없이 연장되는 안개 숲의 분위기 강조 등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의도이며 수법입니다. 특히 계류 위로 걸쳐진 다리 위의 두 등산객의 현대적인 모습은 청전에게서는 의외적인 일입니다. 전 생애를 통해 청전의 작품 속 인물은 한국고유의 농부상으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시골 농촌이 아닌 금상산 탐승의 寫景, 한번쯤 등산객의 현실적 광경을 삽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그림에서 보는 암반석과 계류의 조형적 질서의 강조와 나뭇잎의 독특한 표현미는 뒤에 가서 더욱 세련되고 무한한 자연의 정서적인 표현수법으로 약식화 되었습니다.
<산수화/山水畵>
韓國 近代 / 靑田 李象範 1897~1972)筆 / 紙本淡彩 65.5×88cm / 個人所藏
호는 청전(靑田). 아버지 승원과 어머니 김해김씨 사이에서 3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10세부터 동네 노인에게 한문을 배웠으며 그후 서울 사립 보흥학교를 거쳐 1914년 계산 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1914년 18세 때 경성서화미술회 부설 서화미술원에 입학, 본격적인 그림수업을 받았다. 서화미술원은 조석진·안중식·강필주·김옹원·이도영·강진희 등 당시 서화계의 대가들이 강사진으로 그림을 가르쳤으며 그중에서도 이상범은 안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안중식은 그의 호를 따서 '청년 심전(心田)'이란 뜻으로 청전(靑田)이라는 호를 지어주기도 했다.
서화미술원을 졸업한 이상범은 안중식의 화실인 경묵당(慶墨堂)에서 계속 그림수업을 받았다. 이때 창덕궁 내전 벽화 작업에 서화미술원의 동문인 김은호·오일영·이용우·노수현과 함께 참여하여 그중 〈삼선관파 三仙觀波〉를 제작했고 중국 남종화법을 두루 설립하여 화필의 기초를 다졌다. 1921년 제1회 서화협회전에 산수화를 출품하여 입선했으며 제3회 서화협회전에 〈하경산수 夏景山水〉와 〈해진 뒤〉를 출품했다. 1922년 일본 총독부에서 3·1운동 이후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개최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제1회 때 〈추강귀어 秋江歸漁〉를 출품하여 입선했다. 이때의 작품은 남·북종의 화법과 안중식의 영향을 많이 드러냈으나 〈해진 뒤〉와 제2회 선전에 출품한 〈모연 募煙〉 등에서는 중경이 강조되고 현실감이 강화되는 등 새로운 모색을 시도했다. 1923년 3월 노수현·변관식·이용우 등과 함께 최초의 미술동인 '동연사'(同硏社)를 조직했다. 그러나 동연사는 재정난 등으로 그룹전과 같은 활동은 못하고 해산되었다. 1923년 노수현과 함께 보성학교에서 2인전을 열었으며 선전과 서화협회전에 계속 출품했다. 1926년 〈조선일보〉에 삽화가로 입사했으며 1928년 〈동아일보〉 학예부로 자리를 옮겨 삽화를 그렸다.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에서 일장기를 지운 역할로서 직접 연루되어 일본경찰에 붙잡혀 40여 일 만에 풀려났다. 이후 동아일보사를 그만두고 금강산 등을 여행하며 실경 스케치를 했으며 후진양성기관 '청전화숙'(靑田畵塾) 운영에 전념했다. 선전에서 1회부터 연3회 입선한 뒤 제5회 〈첩장 疊嶂〉, 제6회 〈우후 雨後〉, 제7회 〈산그늘〉, 제8회 〈만추〉, 제9회 〈귀로〉 등 10회에 걸쳐 특선을 했으며 16회부터는 그해에 신설된 전년도 특선작가에 주어지는 무감사로, 1938년부터 심사참여 자격으로 참여했다. 그의 이런 활약으로 말미암아 선전에는 청전 아류의 그림들이 속출되기도 했다. 초기에는 안중식의 영향 아래에서 세심한 필선을 중심으로 관념산수를 그렸으며 후기로 들어가면서 미점(米點)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미점법으로 부드럽고 평온한 풍경을 표현했으며 한때 습윤한 분위기의 일본화풍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미점법을 사용한 것은 1930년을 전후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은 한국의 산천을 직접 보고 그리면서 중국 송대(宋代)의 화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10여 년 동안 같은 화풍을 답습적으로 반복하여 평론가들한테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8·15해방 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추천작가로 활동했으며 1950년 홍익대학교 전통회화 교수로 임명되어 1961년 정년퇴임 때까지 재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국전 심사위원 등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1971년 서울신문사 주최 '전통회화6대가전'에 김은호·허백련·박승무·노수현·변관식 등과 함께 초대 출품했다. 동아일보사 주최로 신문화랑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1982년에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10주기 기념 특별전이 있었다.
8·15해방 이후 그는 '청전양식'이라 할 수 있는 미점법으로 낮은 산과 언덕을 안정된 구도로 전형화시키기 시작했다. 1950년 에 그린 〈금강산 만물상〉에서 실질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청전양식은 언덕을 걸어가는 촌로(村老)와 바람에 휘날리는 자잘한 잡목과 초가집을 통하여 순박한 한국적 풍경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굵고 가는 짙은 먹의 획들을 반복하기도 하고 갈필의 가는 필선으로 잔돌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그의 독특한 준법(峻法)을 형성했다. 완숙기에 들어가면서 그의 작품은 외진 산골의 적막하고 소박한 풍경과 아주 낮은 언덕의 풍경 속에서 한국적 산야의 평범함을 표현했다. 그는 독자적이며 한국적인 산수화가로서 정선·장승업 이후의 최고의 작가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그의 그림을 평하기를 "한국의 평범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통하여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이룩하고 이를 특유의 한국적 감성과 미의 세계를 정형화시킨 그의 예술적 생명력은 한국화의 한 결정체"라고 했다. <백과 사전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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