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선암사/仙巖寺

鄕香 2012. 11. 28. 14:23

 

나는 신앙에 마음을 담고는 있지만, 어느 종교에 국한된 신자는 아닙니다. 어떤 종교에 편착(偏着)하기보다는 어느 종교에 몸을 담고 있던 다만 가는 길과 과정의 형식이 다를 뿐이지 한 분 신께 向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 그 神의 이름이 하느님이든 부처이든 옥황상제이든 표현의 명칭만 다를 뿐이지 궁극적으로 신은 有一無二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당의 십자가를 보고 합장하고, 부처를 보면 합장하고, 성황당을 보고 합장을 하며 내 마음속 신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신이 마련해준 현세에서 스스로가 마음가짐에 따라 불행한 삶을 살거나 행복한 삶을 살다가 종래에는 우리 모두 한 곳으로 도달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내세의 일을 위해 구태여 고민하고 두려워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내세의 일은 내세에서 고민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나 착한 본질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그 타고난 착함의 초심으로 현세를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내가 이렇게 절을 찾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서 쉽게 접해 왔고 자연과 아름다운 곳을 찾다보면 그 아름다운 경치 있는 곳은 어김없이 사찰이 있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것뿐입니다. 또한 번다함 없이 고요가 흐르는 사찰은 왠지 마음에 안정과 아늑함을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고유의 건축물의 고즈넉한 지붕의 선과 운치 있는 처마의 끌림과 신비로운 나뭇가지의 절지가 어우러져 풍기는 멋스런 아름다움에 젖어드는 것은, 조상 대대로 이 땅의 기운과 정취가 배어 든 기질이 내 몸에 흐르는 까닭일 것입니다. 

 

  

 

<선암사 승선교(仙巖寺 昇仙橋)> 

두 번째 홍예교인 이 다리 아래 개울에서 다리 밑을 통해 강선루를 보면 다리 밑에 고여 있는 맑은 물에 강선루가 잠긴 듯 비춰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룹니다. 그래서 인지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풍경사진과 기념촬영을 선호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곳입니다.  오늘은 바람으로 수면에 파문이 일어서 물에 잠긴 강선루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지지난 해에 와서 찍은 사진은 참 좋았는데.. 본 블로그 '세월에 그냥'에서 10페이지로 가면 당시 선암사를 올린 것에서 보실 수가 있습니다.

 

 

<선암사 승선교(仙巖寺 昇仙橋)>

神仙이 노니는 바위(仙巖)을 찾아 굽어 휘어 돌아가는 길 모퉁이에 돌로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었다 해서 그 이름도 아름답게 虹霓橋라 부르는 昇仙橋, 굳이 두 개의 무지개다리를 놓아 길을 건너고 다시 휘돌아 건너게 하는 정성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현세와 선계를 구분하는 역활을 이 虹霓로 다하고 있으니 옛 선인들의 지혜와 심미안이 놀랍습니다. 그 어떤 아름다움이나 기교도 보탬도 없이 돌 하나로 쌓아  古拙한 虹霓..

昇仙橋 가운데 돌출된 용머리를 보면서 저 만큼 서있는 降仙樓에 목욕하러 내려오는 선녀를 훔쳐보는 절묘한 仙景을 어떤 아름다운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첫번 째 홍예교>

두 번째 승선교에서 뒤돌아서 본 첫 번째 무지개다리입니다. 선암사로 가는 길은 계곡을 끼고 가는데 그 계곡에 이런 다리가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딱히 다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용도로 놓은 다리가 아니라  선암사로 가는 길을 굽이굽이 휘돌아 가며 다리 위에서 계곡의 흐르는 물에 스스로를 비춰도 보며 지나온 나날을 회상하고 자성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강선루/降仙樓>

달빛 교교한 밤이면 선녀들이 이 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 누각을 짓고 그 이름을 강선루라 하였다고 합니다.

 

 

 

<삼인당 연못>

못 가운데 있는 섬봉우리에는 8~9월이면 상사화가 꽃과 잎에 담긴 애절한 전설과는 달리 그 화사함으로 보는 이의 가슴에 기쁨과 설렘을 함박 안겨주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비석 위에 올리는 두개석(頭蓋石)인데 포도덩굴로 보이는 무늬를 바탕으로 원숭이얼굴문양이 돋을새김 되었습니다. 비석으로는 흔치 않은 문양입니다. 문양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원숭이문양은 고려청자에서도 볼 수 있으나 그림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문양으로 당시 원숭이를 문양으로 쓰인 것은 대부분 원숭이가 부귀 다산을 의미하는 탐스런 포도 알을 따먹거나 포도 가지 사이로 다니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귀 다산의 의미를 지닌 포도 알을 따먹은 원숭이는 바로 부귀 다산의 상징이요 그런 기원(祈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그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십장생들과 등장하면서 천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인 원숭이, 불교 설화나 서유기와 관련하여 스님을 보좌하는 원숭이, 숲 속에서 사는 자연 상태의 원숭이 등이 있는데,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거나 먹고 있는 원숭이는 그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천도복숭아는 열매를 한 번 맺는데 3000년이 걸리고, 그 열매가 익는데 다시 3000년이 걸리는 나무로 장수(長壽)의 상징입니다. 이런 천도를 먹거나 손에 잡고 있는 원숭이도 바로 장수의 상징이며 기원의 의미를 가진 길상문(吉祥文)이라 하겠습니다.

 

 

 

<선암사 일주문>

 

 

<종고루>

 

 

 

 

대웅전 앞에는 괴나리봇짐을 걸머진 스님들이 몰려들고 있고 이 스님들을 맞이하는 스님 등으로 번잡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강연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선암사 팔상전(仙巖寺八相殿)>

석가여래의 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八相圖라고 하고, 팔상도를 모시고 석가여래를 기리는 佛殿을 팔상전이라고 합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옆에서 볼 때 '八'字모양)으로 된 이 팔상전의 기둥 윗몸은 평방없이 昌枋만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기둥 위에만 주두(柱頭: 공포를 받치는부재)를 놓고 첨차(檐遮:공포를 이루는 부재로 윗부재를 받친다)를 짜 올렸으며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꽃받침(花盤)을 놓아 도리 밑의 장여(혀바닥 모양의 부재)를 받치고 있는 익공식(翼工式)에 가까운 주심포식(柱心包式:치마를 받치는 부재인 拱包가 기둥 위에만 있는 형식)건축입니다.

 

 

<불조전/佛祖殿>

팔상전과 나란히 있는 건물입니다.

 

 

<조사당/祖師堂>

 

 

대웅전 앞 뜰에 스님들이 서로 상견례를 하는 것으로 보아 강론이나 행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경각/藏經閣>

 

 

<원통전>

 

 

<달마전과 진영당으로 들어가는 사잇문>

 

 

<선암매/仙巖梅>

이 선암매는 수령이 600년 가량 되었다고 하는 古梅로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2007년11월26일 지정되었습니다.

 

 

응진당으로 들어가는 문

 

 

<응진당/應眞堂>

 

 

예스럽고 소박한 원통전과 무우전 돌담장길 좌우로 기품 있는 고목의 매화나무들이 줄지어 50여 그루가 서있습니다. 3-4월이면 이 고졸한 돌담장 길에 멋스럽고 아름다운 매화꽃이 주변을 하얗게 물들이면 이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곳입니다.   

 

 

<종정원/宗正院>

종정원 현판이 있는 이 곳은 무우전입니다. 현재 태고종정이신 혜초스님이 머물고 계시며 종정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뒷뜰에는 철불(鐵佛)이 모셔져 있는 각황전이 있습니다.  

<각황전/覺皇殿>

석가의 몸이 보통사람의 두배 정도 큰 1장 6척에 이르러 장육전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이는 석가여래의 모습을 장륙존상(丈六尊像)이라고 일컫는데서 따른 것입니다. 각황전은 신라 경문왕 원년(861)에 대각국사가 새롭게 고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고 이후 조선조 현종 원년(1680)과 영조 36년(1760) 두 차례에 걸쳐 고쳐 지은 후 순조 1년(1801)에 다시 지은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정면1칸, 측면1칸의 작은 전각으로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기단을 형성하고 주춧돌은 큰 자연석으로 그 위에 훤형 기둥을 세웠고 낮은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얹은 후 공포(처마를 바치는 부재)를 두어 건물의 높이를 한 층 더 높였습니다. 기둥 사이에 3개의 공포를 둔 다포식 건물로 팔작지붕에 겹처마입니다.

 

 

<삼성각/三聖閣>

 

 

<무량수각(无量壽閣>

스님들의 강론 및 교육시설입니다.

 

 

설법행사 참석을 위해 설선당 뒷담을 지나는 스님의 발걸음이 활기가 넘칩니다.

 

 

 

<선암사 측간(仙巖寺 厠間)>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스럽고 멋진 이 측간은 앞면 6칸, 옆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며, 바람을 막을 수 있는 風板으로 처리되었습니다. 평면은 "丁"字形으로 북쪽에서 출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구 지면에서 정면으로 건물을 바라보면 단층으로 보이나 남쪽(뒷면)에서 보면 2층 건물입니다. 이는 2층을 축대를 쌓은 지면과 높이를 맞춰 붙여서 건축하여 지대가 높은 앞에서 보면 단층 건물처럼 보이고 안에 들어가거나 지대가 낮은 건물 뒤에서 보면 2층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2층의 마루바닥이며 그 밑 1층은 창고처럼 넓은 공간지대인 아랫바닥은 地面입니다. 그 지면에 낙엽을 깔아 이층에서 일을 보면 그 위에 변이 떨어지게 되었으며, 사람이 손수레를 끌고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어 그 문을 통해 수레를 끌고 들어가 변을 모아 수레에 실어 내올 수 있도록 설계 되었습니다. 앞(북쪽)의 출입구에 들어서면 가운데 통로가 있고 통로 양 옆은 어깨 높이의 판자로 만든 벽으로 좌측은 남자용 우측은 여자가 사용하는 칸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통로에서 좌우로 문 없는 통로가 두 개씩 있고 그 통로로 들어서면 문짝 없는 변소가 횡대로 나란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공중화장실 안에 문 없이 낮은 칸막이만 된 화장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따라서 옆 칸에서 일 보던 사람과 동시에 일어서면 상체를 서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칸막이는 가슴 높이이니까요. 또한 문이 없어 끝에 있는 칸으로 가려면 앞소 나열되어 있는 칸에서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보기 드문 구성입니다. 건물은 전후좌우 자연지형의 높고 낮음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상층과 하층을 분리한 특징이 돋보입니다. 정면의 풍판은 가운데와 양 끝을 들어 올림으로서 곡선미를 주는 한편 드나드는 사람의 머리 높이를 배려하였습니다. 건물의 짜임새도 튼튼하고 보존상태 또한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이 측간은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1920년 이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측간 뒤편 모습입니다. 건물가운데 아래 있는 문은 사람이 수레를 끌고 들어가 낙엽이나 볏짚위에 쌓인 변을 쇠스랑으로 걷어 수레에 담아 내오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안에서 올려다보면 천장은 바로 2층 마룻바닥에 여러 개의 변구가 뚫려 그 구멍을 통해 2층 천정이 보입니다. 용변 보는 이라도 있어 잠지라도 볼 양 올려다 보았다간 돈벼락 맞기 십상이지요. ㅎㅎ 지면으로 된 바닥에 낙엽이나 풀, 또는 볏짚을 깔아 그 위에 떨어진 변을 퇴비화 하여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옛 先人들의 지혜로움이 돋보입니다. 20십여 년 전 용무 차 왔을 때 이 측간 주변건물도 없고 울타리도 없던 시절 측간 뒤로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1층 측간 안에 짚과 낙엽이 깔려 있기에 들여다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2007년 6월에 촬영한 것입니다.>

 

 

2012년 10월30일 - 鄕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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