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삼척 쉰움산 산행기

鄕香 2012. 4. 9. 09:36

 

『쉰움산(五十井山)

 

 

충북 제천은 빼어난 명산들에 둘려 싸인 아늑한 분지로 인구 10만이 좀 넘는 아담한 도시지만, 산악회도 많고 주변의 아름답고 웅대한 산을 닮은 심성과 자연의 뜻을 가슴에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렇듯 많은 것은 어쩜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이들을 실고 갈 버스가 무려 7대이니 이 자리에 모인 자연을 닮고 의림지처럼 맑은 심성어린 이들이 어름 잡아 250여명은 될 것입니다. 왠지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라도 떠나는 양 마음 설레고 풍선처럼 가슴 부풀어짐은, 오늘의 『쉰움산(五十井山)의 '움'은 집을 이르니 '궁(宮)'이요, 정(井)은 우물이니, 움과 우물 모두 여심(女深)과 같으니 '오십정'은 50 여심이 있다는 성스럽고 신비로운 곳이라는 말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 그 오묘한 <쉰움산>을 답방(踏訪)하기 위해 선녀선남들이 모인 곳에 이 촌부(邨夫)도 한 귀퉁이에서나마 기쁨을 가질 수 있는 영광을 안게 되었음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갖습니다.

 

 

봄의 정령들이 찾아 든 쉰움산 들머리에 당도한 버스는 우리를 산모처럼 해산하기에 여념이 없고... 

 

 

『두타산천은사중창공덕비(頭陀山天恩寺重創功德碑)』의 비개석(碑蓋石)의 용틀임문양은 마치 괴면(怪面)인양 형형한 두 눈, 큰 대자 모양의 콧대. 도톰하게 돋은 인중 그 아래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입을 가진 형태로 용틀임을 합니다.

 

 

 

 <천은사를 지나 맞이한 계곡> 이 사진은 정상을 향해 가는 여정의 한 자리매김으로서 의 역활일 뿐입니다.

 

 

천은사에서 100m 지점, 두타산 정상이 5km 임을 이정표는 알려줍니다. 그럼, 쉰움산은 ... ?

 

 

길가 따사로운 햇살아래 현호색이 옹기종기 모여 재잘재잘 정답게 길손의 눈길을 부여 잡습니다. 

 

 

철골로 된 다리가 말하길, 그저 나(다리)는 쉰음산 가는 길의 한 면면일 따름이라고..

 

 

두타산 정상을 향해 가다 보면 쉰우물(五十井)이 나오나 봅니다.

 

 

 능선 따라가는 길엔 잘 생기고 건강한 나무들이 참으로 예쁩니다.

 

 

 형이로은 암반과 괴석들과 소나무는 참으로 그 어울림이 금실 좋은 부부처럼 조화롭고 경탄스럽구나.

 

 

이 길을 걷노라니 배낭의 무게도 다리의 아픔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네 상큼한 즐거움만 온 몸 가득 기쁨으로 차오르네.

 

 

보는 이의 느낌은 천차만별 헤아릴 수는 없지만, 형상의 기묘함은 늘 같은 모양으로 수억만 년 변함이 없었다네. 형용할 수 없는 영원한 무제의 아름다움일세.

 

 

어느 산에나 있을 바위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싫증이 나지 않음을 뉘에게 비하리오.

 

 

무한한 공간을 향해 뻗어난 자유로운 가지의 아름다움, 어떤 제한도 제도적 구성도 없을 것 같지만, 그 아름다운 표현은 스스로 땅속의 뿌리와 정비례한다지요. 생존의 법칙대로... 

 

 

나는 뿌리도 없이 그냥 바위에 철퍼덕 앉아 있을 뿐이네.

 

 

사람들은 깎아지른 바위절벽을 보면 왜 그냥 덤덤하게 지나칠 수 없을까! 당신도 그 언저리에 서성이다 이름자 한 귀라도 남기고 싶어 떨칠 수 없는 유혹에 젖었으리.. 누군가 바위에 이름 석자를 새겨 놓은 것을 보고..

 

 

소나무는 언제 어디서나 나를 매료시키네. 청아하고 형언할 수 없는 가지의 구성과 이어지는 線으로...

 

 

너럭바위 끝자락에 바위 하나, 그 어울림으로 자리한 소나무 주변의 정경이 시골 초가집만큼 정겨워라 

 

 

누구의 치성인가, 한 돌 한돌 영글린 정성어린 염원일세.

 

 

오르다 뒤돌아보니 길을 경계로 한쪽은 소나무들, 다른 한쪽은 참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었습니다. 

 

 

앞을 봐도 오솔길을 중심으로 왼편은 사철 푸른 소나무들, 오른편은 가지만 앙상한 참나무와 낙엽관목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 자연스런 섭리를 보면서도 신기롭습니다.

   

 

왼편의 소나무 군락,

 

 

오른편의 참나무를 비록해서 여러 낙엽관목 군락 그 너머에 다시 소나무(침엽수) 군락이 보입니다.

 

 

이미 죽어 고사목이지만, 파란 화선지에 그려 놓은 아름다운 선과 획이 되어 애잔함을 주는 한 폭의  그림이 되었습니다. 

 

 

 깊이도 알 수 없을 파란하늘이 두 손에 포옥 모아 담고 싶도록 맑은 호수처럼 마음이 잠겨듭니다.

 

 

 높은 산 중턱에 졸졸 흐르는 옹달샘,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겠네. 

 

 

거리 표시도 없는 이정표, 정말 그래요!  바람의 지휘에 율동하는 나무들과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얼마를 걸은 들 얼마를 더 걷든 개의할 일이 없지요. 이 우리가 구현할 수 없을 자연의 연주가 있고 그릴 수 없는 그림들이 마음을 앗아가는 길에서 ...

 

 

신비로운 '오십음'으로 접어드는 관문이랍니다.

기암괴석들이 근접을 엄히 단속이라도 하려는 듯이 험한 표정으로 막아서고 있습니다.

 

 

 산 넘어 산들의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우회로를 외면하고 모른 척 올라선 산등성이, 54km 몸무게로 버티기엔 너무 힘겨워라, 높새바람은 금시라도 나를 안고 북쪽으로 달려갈 기셉니다. 한 잎 낙엽처럼 날리기 전에 얼른 내려선 그 무서움 뒤에서 하얗게 눈 흘기던 산들의 준엄함이여...

 

 

 몸도 가눌 수 없도록 매몰찬 바람에 두 다리를 벌려 바위에 의지하고 흔들리는 손은 가누지도 못한 채 셔터속도를 빠르게 해서 겨우 담은 풍경입니다.

 

 

천은사가 있는 계곡 쪽 들머리가 아득합니다.

 

 

 쉰음정 아래, 바람이 못 미치는 곳의 정경입니다. 몰아치는 바람소리에 나무들이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쉰우물에 오르니 오십움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반기건만, 바람은 끝임 없이 시샘하여 어서 내려가라고 내 여인의 깊은 곳을 어디라고 넘보느냐고 몸을 가눌 수 없게 훼방을 놓습니다.

 

 

너도 나도 그 경이러운 모습을 보고자 모진 바람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서성입니다.

 

 

반질거리는 암반의 산상은 늘 접했지만 이렇듯 웅푹 파인 작은 웅덩이 모양을 수놓은 듯 형성된 암반은 처음 봅니다.

 

 

깊고 깊은 여심을 이렇게 많이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 역할은 같을 진데, 하나같이 그 생김을 달리하다니.. 나는 이제 껏 여심은 모두 같을 줄만 알았는데..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쉰음산에서...ㅎㅎ

 

 

쉰음정을 두루 거쳐 이 바위를 넘어서니 한 봉우리 위에 표석이 보입니다.

 

 

 해발 670m 봉우리 정상(頂上)위 자연이 움푹 파놓은 웅덩이에 아담한 까만 오석에 '쉰우물'을 새겨 넣었습니다.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님들이 서있는 바위아래 있는 오십음 중 한 우물(井)에 바람이 휘말아 올라 물이 용솟음치듯 솟고 있습니다. 님들이 넘어 올라선 자리에 나도 올라서는 순간 그만 모자가..

 

 

바람에 날려 잘 생기고 휘어 틀어져 멋진 소나무 너머로 바람에 안겨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엉금엉금 거북걸음으로 간신히 기어 내려가 찾아도 보일 듯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내 모자...

   

 

모자는 날아갔어도 오십음에 대한 미련이 더 없을 아쉬움으로 앞을 가리니 돌아서 이별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찾으려고 절벽아래를 헤매다가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을 여인들을 뵙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뛰어 내려오다 보니 양 갈래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 올라왔던 길을 외면하고 계곡으로 난 길을 택했어요. 새로우니까..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그 시원함에 마음도 씻고...

 

 

올라갈 때 지나친 '천은사' 그 고요한 사찰에 불청객이 되어봅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날아오를 뜻한 팔작지붕에 늘씬하고 아름다운 이 극락보전에는 유형문화재 제147호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본전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보살(脇侍菩薩)로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이 계시고, 불상의 크기는 등신대(等身大)로 본존불과 보살 사이에 법의(法衣), 수인(手印) 등에 큰 차이는 없으며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우아한 인상과 듬직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본존불인 아미타불은 불신이 101cm로 두부와 상체, 하체간의 비례가 훌륭하며 두 팔은 따로 만들어 끼웠으며, 상체를 세워 얼굴과 어깨는 그다지 움츠리지 않았습니다. 법의는 도식적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표현되었으며, 수인은 오른 손을 가슴 위로 올리고 왼손은 왼쪽 발목 위에 두어 하품중생인을 하고 있습니다. 협시불인 관음보살상은 높이가 96.5cm로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지장보살은 높이가 86cm로 머리를 깎은 민머리이며, 수인 상호(相好), 법의는 전체적으로 본존과 유사합니다.

이 불상의 제작연대는 고려후기 단아양식(端雅樣式)의 불상이 조선전기를 거쳐 중기로 넘어가는 15세기 후반~16세기경으로 보이며 과도기 양식으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큽니다.

 

 

법고(法鼓)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목어(木魚)가 걸려 있고, 오른편에는 주로 청동으로 만든 운판(雲板)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구들은 아침저녁 예불하기 전에 범종(銅鐘)과 법고(鼓) . 목어(木魚) . 운판(雲板)을 울립니다. 목어는 큰 통나무를 겉은 물고기형상으로 조각하고 속은 파낸 것으로 막대기 두개를 양손에 쥐고 안쪽 양편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佛具입니다. 목어는 목어고(木魚鼓)·어고(魚鼓)·어판(魚板)이라고도 하며 보통 잉어의 형상으로 만드는데, 용의 얼굴로 표현 한 것도 있습니다. 법고(法鼓)는 범종(銅鐘) · 목어(木魚) . 운판(雲板)과 함께 불전사물(佛殿四物)의 하나입니다.

 

 

법고루와 범종각 건물사이 石臺의 풍경

 

 

극락보전, 법고루, 법종각 전경

 

 

스님들의 정진소 또는 요사채로 보입니다. 스님들의 거처이니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푯말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위에서 내려오신 분, 흔치 않은 미모에 자의반 타의 반으로 나는 찍었고, 그리 찍힌 분입니다. ㅎㅎ

 

 

사찰 바로아래 있는 물방아입니다. 이제는 사용은 안하지만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처음 본 방아입니다.

 

 

첫 번째로 있는 물방앗간입니다.  모양은 신석기시대의 움막처럼 생겼는데요, 다만 지붕이 다를 뿐입니다. 신석기시대 움집은 지붕을 갈대나 볏짚 같은 풀로 잇은 초가지붕인 것에 반해 이 물방앗간은 참나무 껍질이나 나무를 쪼개 만든 너와로 만든 점입니다. 안에 나무기둥을 원뿔처럼 모아 세우고 그 겉에 너와로 돌려 덮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칡넝쿨 같은 끈으로 엮은 다음 다시 나무기둥으로 돌려가며 눌러 놓았습니다.   

 

 

내부 모습입니다.

 

 

물이 채워지면 안의 공이가 올라가고, 물이 비워지면 절구공이 내려 찧겠지요.

 

 

아름다운 여인이 비운 자리를 다시 찍었습니다. 왠지 님들도 보시기에 허전하시지요? ㅎㅎ

 

 

첫 번째 물방앗간을 거친 물줄기는 이 수로를 타고 내려가 두 번째 물방아에 도달합니다.

 

 

두 번째 물방앗간 모습입니다.

 

 

안을 통해 물줄기가 흐르는 수로가 어렴프시 보입니다.

 

 

 두 번째 물방아 내부입니다. 절구와 공이의 모습이 보이지요?

 

 

세 번째 물방아입니다. 모두 똑 같은 방식과 똑 같은 크기와 모습이어서 이 지방만의 특색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물방아 옆 모습입니다.

 

 

 

<고려시대 대학자 이승휴>

천은사 와 물방아 아래 위치한 이 곳은 고려시대 청렴강직한 관리이자 대학자 이승휴(李承休1224~1300)가 우리역사서에서 귀중한 자료의 하나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한 곳입니다. 이승휴는 가리 이씨(加利 李氏)의 시조로 호(號)를 동안거사(動安居士)라고 하였으며 고려 고종 때 문과 시험에 합격한 신진관리로 직간(直諫)으로 파직을 반복하였으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원나라에 다녀온 이후 우사간(右司諫),전중시사(殿中侍史)등을 역임하였으나 관직을 버리고 외가인 두타산 구동(龜洞)으로 돌아와 용안당(容安堂)이라는 건물을 짓고 살면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습니다. '용안당'은 후에 간장사(看藏寺)라 하였고, '간장사'는 다시 천은사(天恩寺)로 이름이 바뀌었으므로 현재의 천은사 일원은 이승휴가 거처하였던 유허지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제왕운기는 중국과 우리나라 역사를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로 엮은 서서시로 민족문화의 우월성과 역사적 전통을 강조한 귀중한 자료입니다.

 

 

불이교(不二橋)

양극단의 세계인 세속을 떠나 일체법을 평등하게 보는 법문, 즉 극락으로 들어간다는 불이문(不二門)에서 인용한 이 다리 불이교(不二橋)를 건너 극락의 세계를 유락(遊樂)하다 이제 다시 이 불이교(不二橋)를 건너 속세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리운 고향의 품속 내 어머니가 계시기에...

 

 

이 바다의 깊이는 알 수도 있겠지만, 하늘을 품은 이 바다의 그 깊이는 헤아릴 수도 없겠구나....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듯이...

 

 

2012년4월8일 삼척 쉰움산 산행에서  - 鄕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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