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제천역전장날

鄕香 2012. 4. 4. 09:17

 

 

문득 달력을 보니 오늘이 역전 장날입니다.

장날이라...   이 얼마나 설레든 말입니까, 어려서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장날이면 여러 곡식이나 닭, 계란 등을 내다 파시고 돌아오실 때면 어김없이 우리들의 운동화나 쇠 눈깔만큼이나 큰 사탕이나 집에서는 볼 수 없던 물건과 새 옷 등으로 기쁨을 안겨주시던 추억, 어쩌다 어머니 뒤를 따라 장에라도 가는 날에는 또 그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웠던가요. 그야 말로 신세계가 따로 없었던 그 정겨운 추억이 담긴 희망이 아니던가요. 그래서일까 이 나이가 된 지금도 장날이면 공연히 궁금하고 궁둥이가 들썩거려집니다. 책을 펴도 궁금증이 책을 온갖 풍물들로 겹쳐놓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자리를 차고 일어섰습니다. 꼭 무엇을 살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급히 필요한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발길은 서두르고 있습니다. 봐 둔 물건이 막바지 떨이로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역전광장을 조금 지나니 길가에 퍼질러 있는 온갖 옛 잡동사니들이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바야흐로 평생을 지냈던 직업병이 도지는 순간이지요. 지 버릇 남 주나요. 서서 한 참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아예 주저앉아 그럴듯한 것은 집어 들고 요리조리 요모조모 뜯어봅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그리 수월하고 만만하던 가요! 모조품이 아니면 물 건너온 중국젭니다. 어쩌다 우리 것이다 싶은 건 근대의 물건으로 소장 가치나 희귀성이 떨어지는 것에 값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래도 쉽게 일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대다수 물건들이 어린 시절에 쓰던 도구들이요 그 물건들이 풍기는 향수 같은 추억 때문이지요.

 

 

 

 약재를 파는 곳을 지나니 명자나무분재들이 그 앙증맞은 가지에 붉은 꽃망울을 올망졸망 굴리고 있습니다.

 

 

헛개나무열매가 간을 살린다니 무슨 말인가요?  그럼 간 아픈 사람은 뭘 하고 있을까 ! 어서 저걸 좀 사다 간 좀 살리시잖고.. 공연스럽게 멀쩡한 내가 조바심이 솟아나네.

 

 

 온갖 묘목들이 새로 맞을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몇 그루 사고 싶고 키워주고 싶은데.. 에휴 , 어쩌다 내팔자는 마당 한 칸 없는 아파트에 살게 되었는고... 아버지 하느님 은총 좀 내려주세유~~

 

 

 수국인지 함박인지 그 이름은 잘 모르지만, 요 녀석, 참! 예쁘네요~~

 

 

 오메~ 죤 것! 니는 꽃인지 잎새인지 몰것당 ㅋㅋ

 

 

 요긴 만물상, 옛날의 방물장수들이 발전한 것 아닌가유, 몇 해 전 영주 부석사를 가다가 잠시 쉬던 고개가 생각나는구먼유 왜 그 있잖아유  '동지여지승람'에 쓰여 있는 '아달라왕 5년에 신라의 죽죽(竹竹)이 죽령에 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殉死하여 그 고갯마루에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을 지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그 죽령고개마루에 있는 휴게소 말씀예유 아 글쎄 그 죽령고개에서 숨 좀 죽이고 있는데, 봉고 트럭에 닭장처럼 꾸민 칸 마다 온갖 잡동사니를 잔뜩 실은 차가 터 억 멈추더니 운전석에서 맵시 있게 차려입은 멋진 '데보라- 카'처럼 남정네 몇 쯤은 한 저녁에 죽여 줄 그런 멋져 부린 아짐씨가 쓰윽 내려서니 휴계소 사장님덜이 우루루 나와 이것저것 물건을 사고 주문도 하는데 그만 지는 그 '데보라-카'인지 '마리아- 셀' 인지 아니면 '비비안리' 인지도 모를 그녀의 엉덩이에 홀려 혼줄 놓은 일이 생각나는 구먼유~~  ㅎㅎ    

 

 

나는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하나 있는데유 어딘 고 하니 바로 여인네들 옷가게지유,

걸려있는 옷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부드럽고 알록달록 멋지잖아유 그런데 남정네 옷 좀 봐유 하나같이 투박하고 개성 없고 칙칙한 색깔뿐이 잖아유~~  이런 성차별이 어딧어유 그래서 말인데유 다음 세상에는 꼭 여자로 태어 날 거구먼유~~ 내 새끼도 낳고... ㅋㅋ

 

 

 

대구도 좋고, 쫄깃한 낙지도 좋지만, 한 바구니 담긴 저 홍합만한 것 있을까! 허참 저 아저씨 표정 좀 봐요. 조개가 그리도 좋을까 홍합 달라 시켜놓고 넘 좋아 슬며시 지갑 꺼내며 고개 돌리다 그 표정 지한테 딱 들켰구먼유~~ ㅋㅋ

 

 

역시 과일은 아짐씨들처럼 새콤달콤 아름답고 예뻐요. 보는 이의 눈빛도 파는 이의 표정도 알알이 익은 청포도를 닮았네요.

 

 

 이 안은 통로가 좁고 넘 복잡해서 자전거 끌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오늘은 여기 까지만 구경해고 다음엔 경매장에서 한 건 올리면 술 한 잔 사지요. ㅎㅎ

 

 

즐거운 제천역전장날...  - 鄕仁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