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송학면 점말동굴 유적>
이 유적은 제천시 용두산 북쪽 면에 위치한 송학면 포전리 산 해발 430m 석회암벽에 위치한 구석기인 들이 생활하던 동굴유적입니다. 마을에 세운 안내판은 동굴유적지가 1km 남았음을 알려줍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들길가의 파릇 솟아나는 새싹들과 대화도 하며 좀 가다보니 보이는 것은 유적지 입구 전경입니다. 주변의 산재했던 잡석을 동굴유적 입구 길가 양쪽에 담처럼 정리해 쌓았습니다.
<제천 점말 동굴 유적>
(위치 :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산 28-1) 충청북도 기념물 제116호.
이 동굴은 용두산 북쪽 자락에 있어 예로부터 점말용굴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유적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1973년~1980년까지 발굴조사 하였으며, 조사에 의하면 석회암 동굴로 30m 높이의 석회암 바위벽이 동굴을 둘러 싸고 있고, 동굴내부는 주굴인 용굴과 6개의 가지굴로 이어졌으며 동굴의 규모는 입구 너비 3m, 전체 길이는 현재 확인 된 것이 12~13m라고 합니다.
동굴 중 제일 밑에 위치해 있는 동굴로 좌측 하단에 있으며, 동굴입구 바로 옆 오른 편에서 풍부한 수량의 샘물이 솟아나와 도랑을 이루고 있습니다. 동굴 입구에 철책문으로 굳게 잠겨 있어 그 깊이나 동굴의 형태는 확인할 수가 없었으나 입구 안쪽은 대략 높이 3m 폭 3.5m 정도의 규모로 추즉됩니다.
<샘물이 솟아나는 곳>
솟아나는 이 샘물은 사철 내내 마르지 않고 흐른답니다.
동굴 중 맨 아래에 있는 동굴입구 옆에서 샘물이 솟는 동굴의 안 모습입니다.
좌측에 위치한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샘물가의 동굴을 제외한 석회암벽과 동굴들의 모습입니다.
점말동굴은 30m 되는 병풍바위의 절벽면에 뚫려 있고, 유적의 퇴적층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밑으로부터 석회마루 아래층, 석회마루층, 석회마루 위 퇴적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유물은 석회마루 위에 쌓인 후기 홍적세층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동굴 입구는 모두 6개로 확인 되는데, 출입이 가능한 3개에만 철조물을 설치하여 출입을 통제하여 훼손을 방지하고, 나머지 3개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합니다.
철문이 있는 동굴로는 가장 윗쪽에 있는 동굴의 모습입니다. 바로 아래에 철창이 있는 동굴과 통합니다.
동굴입구 옆 바위면에 발굴조사기관의 명칭과 조사기간을 새긴 돌을 시멘트로 접합한 것입니다.
위에 있는 동굴의 내부 모습입니다. 아래 있는 동굴로 내려갈 수 있게 뚫렸고 위로도 뚫려 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동굴입구입니다. 위의 동굴처럼 문이 마련된 것이 아닌 창틀처럼 만들어 들어갈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발 밑을 보니 무슨 글자가 있어 낙엽과 덮힌 흙을 쓸어내고 확인해 봅니다.
철창 앞 바닥에는 "제3-4 빙하기 구석기시대유적"이라는 글자를 시멘트를 바른 위에 작은 돌멩이로 조합해 글자를 만들어 붙혔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 동굴의 내부입니다.
아래 동굴 내부입니다.
석회암 절벽 가운데에 있는 동굴들의 모습입니다.
접근할 수 없는 절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유적 주변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석회암동굴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동굴 앞 광장 발굴과 바위절벽의 암각자 조사>
동굴 앞 광장 발굴조사에서는 기와, 토기, 석조탄생불, 금동불상편 등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물로 볼 때 석굴사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동굴 앞암벽에서는 음각(陰刻字)된 글자가 확인되었는데 글자들를 분석한 결과 신라시대 화랑(花郞)들이 다녀간 것으로 밝혀져 점말동굴이 화랑들의 심신수련 장소였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아래 사진 내의 영자표시는 각자(刻字)된 곳의 위치표시입니다.
鳥. 郞. 祥, 蘭, 大, 長, 之 (조 랑 난 대 장 지)등 외에도 여러 각자를 볼 수 있습니다.
吉, 香, 夲, 行, (길 향 토 행) 등의 각자가 보입니다.
響, 孫, 大, 先, 義 , 去, 敬, 本, 吉,(향 손 대 선 거 경 본 길 ) 등의 각자(刻字)가 보입니다.
陽, 仲, 吉 (양 중 길)등의 각자가 확인 됩니다.
각자가 보이나 일기가 어렵습니다. 가장 높은 거리인 PQ 지점입니다.
발굴당시 구석기 유물로는 원숭이, 코뿔소, 사슴, 곰, 하이에나 등의 동물화석, 나뭇잎, 열매껍질, 숯, 꽃가루 등의 식물자료와 뼈로 만든 연모 장신구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 짐승들이 점말동굴 주변에 살았음을 알려주며 , 지층의 토양분석을 통해 얻어진 꽃가루와 식물자료를 통해 당시 식물상과 자연환경을 알 수 있습니다.
<점말동굴 빙하기 생태복원그림> ↓
<점말동굴 간병기 생태복원그림> ↓
<인물상이 새겨진 코뿔소 뼈>
<석조 탄생불>
발굴된 유물의 대부분은 구석기시대에 속하며, 신석기시대 토기와 뼈연모 등의 유물도 나왔습니다.
이 문화층은 중기와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가늠되며, 중기 구석기시대의 윗부분 지층은 우라늄계열원소(U/Th/Pa)에 의한 절대 연대측정에서 66,000±30,000BP라는 연대값을 얻었습니다. 점말동굴에 살았던 중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하이에나·곰·들소·말·노루·사슴 등을 잡아먹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특히 노루나 사슴과 같은 순한 초식동물을 많이 사냥했는데, 이와 같은 종류는 주로 가을부터 겨울 동안에 잡힌 것으로 보입니다. 불을 피우고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는 불자리, 나무숯, 불탄 뼈 등이 굴 안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굴 안에서 고기를 바르고 조리하여 먹었을 뿐만 아니라 뼈를 쪼개 그 안에 있는 골수도 빼먹었고, 뼈에 간단한 잔손질을 하여 뼈연모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굴 안의 살림터에서는 뼈연모가 많이 나오는데, 전자현미경 조사에 의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사용 자국이 관찰되었으며, 또한 코뿔소 앞발뼈에 사람 얼굴을 새긴 조각품이 중기 구석기시대층에서 나와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후기 구석기시대층에서 나온 방사성탄소연대측정값은 13,700±700BP였습니다. 이 층에서도 여러 종류의 짐승화석과 문화유물이 나와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맨 위쪽에 있는 신석기시대층에서는 새김무늬토기와 간 뼈연모가 나왔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출토 유물 모습>
2012년 3월29일 - 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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