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방죽(堤) 과 물줄(川)

鄕香 2012. 3. 23. 09:34

<용두산과 의림지 주변 전경>

제천시의 영산(靈山) 용두산과 백곡산 사이 골짜기를 이룬 곳에 제2제방을 준설해 축성한 제2의림지(비룡담)에서 흐르는 물은 약 1Km정도의 물줄을 타고 흘러 제1제방인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의림지에 모여 호수를 이루고 다시 흘러 척박한 사질의 제천평야를 고루 촉촉이 적셔 비옥한 땅으로 거듭 나게 하여 작물은 물론이요 수많은 생물들의 탄생과 성장의 근원으로 생명의 젖줄이 되어줍니다. 의림지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고대 수리시설로 김제 벽골제(金堤 碧骨堤 : 사적제111호) . 밀양 수산제(密陽 守山堤 : 경상남도기념물 제102호) . 상주 공검지(尙州 恭檢池 : 시도기념물121호)와 함께 4대 저수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벽골제와 수산제, 그리고 공검지는 일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고, 古代 저수지로서 그 기능이 살아있는 유일한 저수지는 의림지뿐입니다.

     

<이 사진은 의림지 솔밭공원 게시판 있는 것을 재판한 것입니다.>

 

※  사진은 위에서부터 순서로 제2의림지(비룡담)를 먼저 올린 후 제1의림지를 올렸습니다.

 

용두산과 백곡산이 품은 울창한 나무와 무성한 잡초들의 생기를 머금었던 물들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 모인 비룡담저수지의 넓고 잔잔한 그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사토와 진흙과 돌(土泥石築)로 이루어진 뚝(堤防)의 동쪽 모습으로 수로가 위치해 있다. 

 

 

방죽의 서쪽 백곡산줄기 첫 봉인 까치봉 자락.

 

 

제2의림호비룡담 방죽 바로 아래의 전경입니다. 송림이 울창하지요. 그 소나무 숲 따라 제2의림호에서 유서 깊은 의림지로 흐르는 물길이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뚝 아래에서 송림 사이로 본 방죽.>

 

 

 <아래에서 올려다 본 저수지의 수로>

이 수로를 통해 흘러내려 온 물은 약1km를 흘러 제1호수인 의림지'로 들어갑니다.

 

 

<잘 꾸며진 수로> 이 물줄은 옆 울창한 소나무 숲을 끼고 있어 시민들의 사랑받는 공원으로서 주변에 분위기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과 함께 아름다운 휴식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운치 있고 잘 생긴 소나무들이 향긋한 향기와 좋은 환경은 찾는 이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상쾌한 기운과 기쁨을 아낌없이 드립니다.

 

 

제2호수에서 흐르는 물줄을 따라 이 솔밭길을 걸어서 약1km 정도 내려가면 고대(古代) 우리나라의 4大 방죽의 하나이며 유일하게 온전히 그 모습과 기능을 갖추고 저수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살아있는 유서 깊은 의림지'에 이르게 됩니다.

 

 

송림을 따라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제2방죽의 모습이 송림 너머로 그 모습을 보입니다. 물길 중간 중간 설치된 아치형나무다리(虹霓木橋)위에서 담은 모습입니다.

 

 

소나무 숲과 물길이 이처럼 나란히 '의림지'까지 이어 갑니다.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물길은 경사가 이루어져 많은 물이 흐를 때는 급류가 됩니다.

 

 

마침내 물길이 '의림지'로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보이는 홍예나무다리는 까치봉 자락아래 수면위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로 만든 의림지둘레길입니다. 호수를 끼고 돌아볼 수 있도록 방죽 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위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이 의림지로 유입되는 주변 모습입니다. 직선으로 마주 보이는 정자 경호루 바로 옆에 물이 넘치는 일이 없도록 방죽보다 많이 낮은 보湺가 있고 그 아래는 깊은 산골짜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남쪽에서 바라본 북쪽 용두산과 까치봉 사이에 있는 비룡담저수지에서 흘러온 물이 의림지로 들어오는 의림지 서측 북쪽 모습입니다. 의림지 서편에는 유락지를 준설하여 상류로부터 물과 함께 흘러들어오는 모래가 의림지 전역으로 유입되어 호수의 수심을 낮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의림지 서측에 남북 양방향으로 가르는 둑길을 두고 그 길 중간에 동서로 물이 통할 수 있는 다리를 두었는데 이 부분은 동쪽 호수입니다. 수면 끝 남쪽(제천시 방향, 농경지와 솔방죽 방향)에 아름답게 소나무가 서있는 부분이 의림지 방죽이며 또한 折枝도 아름다운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곳을 堤林이라고도 합니다. 

 

 

가깝게 본 의림지 방죽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매와 휜칠한 키에 멋진 자태로 방죽에 뿌리를 내려 방죽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의림지 가운데 있는 섬입니다. 오리와 철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합니다.  

 

 

누각(鏡湖樓) 옆 보이는 다리 아래 지점이 우기에 많은 양의 물이 상류로부터 흘러들면 둑보다 낮은 저 보를 넘어 자연스럽게 깊은 골짜기로 물이 흘러내려 둑이 넘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합니다. 보 아래는 천연의 자연폭포(용추폭포)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아래 깊은 골짜기의 계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의림지를 가로질러 동서로 양분한 둑 중간에 설치한 다리입니다. 이 둑은 상류에서 유입되는 급류의 압력이 本堤에 직접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물과 함께 유입되는 토사가 의림지 전체로 쌓여 수심을 매립시키는 것을 방지하여 서쪽에만 쌓이도록 하여 준설에도 용이하게 한 시설입니다. 의림지 동.서간에 물이 유통하도록 중간에는 木橋를 놓았습니다. 제천의 토질은 沙土입니다.

 

 

가깝게 본 경호루와 의림지의 물이 흘러내려가는 출구(水遮口)인 보湺가 있는 곳입니다. 보 바깥쪽은 자연으로 이루어진 폭포가 있고 깊은 골짜기로 이어집니다.

 

 

물이 넘쳐 흘러나가는 곳을 근접해 본 모습입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콘크리트 수로가 아닌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20~30m 높이의 용추폭포와 골짜기로 이루어진 수로 입니다.

 

 

들판으로 흘러내려가는 물길은 사진처럼 골이 깊고 아름답습니다. 수백m를 이런 골짜기로 흐르다가 갑자기 탁 트인 들판이 나타나지요. 바로 의림지의 물을 먹고 비옥하게 살아 숨쉬는 논 밭입니다.

 

 

의림지는 산으로 둘려쌓인 분지에 위치합니다. 의림지방죽에서 북쪽 호수 끝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용두산과 의림랜드와 카페 등이 있는 마을이 보입니다.  

 

 

<의림지 설명문>

『義林池』 堤川의 龍頭山 끝자락에 자리잡은 이 호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의 하나로 충청도를 이르는 湖西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의림지는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였습니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義原縣) 또는 의천(義川)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로 저수지의 이름에 ‘의(義)’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우륵(于勒 : 新羅 眞興王)이 쌓았다는 말도 있고 박의림(朴義林 : 朝鮮 世宗)이 만들어 '의림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제천의 옛 이름이 고구려 땅이던 때에는 제방을 뜻하는 내토奈吐였고 신라가 이곳을 차지한 후는 내제奈堤 혹은 대제大堤라고 고쳐 불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의림지의 기원은 적어도 삼국시대이거나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삼한시기(三韓 : 馬韓.辰韓.弁韓)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산골짜기에서 들어오는 흙과 모래를 서쪽 끝자락에 있는 용추폭포龍楸瀑布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밖의 홍류동紅流洞쪽으로 내뱉는 뛰어난 얼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에 수축이 있었고 일제강점 초기에 水門을 다시 고쳐 그 규모를 키웠으며1972년 큰 장마로 둑이 무너지자 이듬해 복구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호수는 둘레 약2km, 면적 158㎡, 수심 8~10m이며 약 300정보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堤川 사람들의 기상을 전하듯 천년 묵은 이무기를 때려잡았다는 魚氏 다섯 형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 밖에도 전설이 깃든 제비바위(燕子岩) . 우륵샘(于勒井) . 신털이봉(新月山) 등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수백년 묵은 老松들이 볼만한 이곳에는 진섭헌振 . 임소정臨沼亭 . 호월정湖月亭 . 청폭정聽瀑亭 . 우륵대于勒臺 같은 정자와 누각이 마련되어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을 맞았다고 하며, '제비바위에서 낚시하는 늙은이의 모습(燕巖釣臾)' 이 제천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여겨질 만큼 사랑 받았으나 지금은 영호정瑛湖亭과 경호루鏡湖樓가 있을 뿐입니다. 다섯 가지 빛깔을 가진 붕어와 순채蓴菜가 이곳의 특산물로서 이름이 높았으며, 요즘에는 겨울이면 공어空魚를 낚는 태공들로, 날이 풀리면 산책이나 뱃놀이를 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제천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文化遺跡址입니다. <의림지에 게시되어 있는 안내문 >

 

우리나라의 고대 수리시설로  꼽히는 것에는,

제천 의림지(堤川 義林池), 김제 벽골제(金堤 碧骨堤),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상주의 공검지(恭檢池), 의성의 대제지(大堤池) 등이며, 그 중에도 제천 의림지(堤川 義林池 : 충북도유형문화재제11호) . 김제 벽골제(金堤 碧骨堤 : 사적제111호) . 상주 공검지(尙州 恭檢池 : 시 도기념물121호)는 조선시대 3대 저수지로 꼽히고 있으며, 그 중 저수지의 기능을 충실이 이행하며 살아 숨 쉬고 있는 저수지는 의림지 하나뿐입니다.

 

 

의림지 방죽입니다. 휘어 틀어지고 멋진 노송들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방죽입니다.

 

 

의림지를 떠나 제천평야를 가로지른 농로를 따라가다 뒤돌아본 모습입니다. 이 논과 밭들은 古代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의림지로부터 생명수를 받아 먹고 지금까지 살아왔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내에서 이 길을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시내에서 이 길을 통해 제1 .제2 의림지를 돌아서 가면 약 6~7km는 될 것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나무 숲 있는 곳이 솔방죽입니다. 솔방죽은 의림지에서 내려온 물의 일부를 저장해서 필요시 농경지에 공급하는 저수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토사가 많이 내려와 습지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솔방죽 저수지 가운데에 설치한 전망대의 일부입니다. 작년 봄에만 해도 수면위에 있던 이 시설이 지금은 토사가 쌓여 육지가 되었습니다. 제천시 일대 지역은 토질이 사질이어서 우기(雨期)에는 토사가 많이 생깁니다.

 

 

솔방죽 동쪽으로 시가지가 보입니다.

 

 

동쪽에서본 솔방죽의 저수지 입니다.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저수지 가운데 설치된 전망대에서 서쪽을 바라본 전경입니다. 제방이 보이고 다리와 그 다리아래 농경지 수로로 통하는 수문이 있습니다.

 

 

의림지와 이 농경지는 그 어느 쪽도 개발되어서는 아니 될 제천의 귀중한 문화적 재산이요 보물입니다. 어느 도시에 이렇게 수리와 농경이 온전히 잘 보존된 곳이 있습니까? 빌딩을 짓고 도시화하기는 쉬워도 이렇게 자연이 살아있는 천연의 보물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김제 벽골제(金堤 碧骨堤 : 사적제111호) . 상주 공검지(尙州 恭檢池 : 시도기념물121호)와 더불어 제천 의림지(堤川 義林池)는 조선시대 3대 저수지로 꼽았으나 벽골제는 안타깝게도 저수지는 시가지로 변하였고 그 제방의 일부만 남았습니다. 의림지는 비록 1972년 큰 장마로 둑이 무너져 이듬해 복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기본 틀과 용도는 옛 모습으로 주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살아있는 저수지로는 '의림지'가 유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천시처럼 고대 수리시설인 저수지와 농경지가 한 틀로 보존된 도시는 없습니다. 또한 어느 도시에서도 없는 북두칠성처럼 7개의 獨峰이 도심에 점성(占星)되어 있습니다. 제천의 영산인 용두산(아버지)을 머리로 의림지(어머니), 솔방죽과 뒤뜰방죽 그리고 농경지(딸)에 연이어진 칠성봉(일곱 명 아들),  이러한 특성있는 유산의 전통을 잘 살려 특색 있는 농경문화 전원도시로 가꾸어 그 어디에도 없는 누구나 살고 싶고  살기 좋은 선망의 명품도시가 될 것은 물론 유네스코에까지 등재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천' 『 방죽(堤) 내(川) 』 이 가리키듯 그 이름은 그냥 지은 것이 아닙니다. 고대의 조상이 마련해 주신 유산 의림지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솔방죽과 뒤뜰방죽 그리고 주변 농경지와 천혜의 선물인 칠성봉을 하나로 묶어 아름답게 가꾸고 보존하여 유일무이한 보물로 삼아 堤川의 이름을 길이 살려야 합니다. 또한 위로부터 용두산을(아버지), 의림지는(어머니), 솔방죽과 뒤뜰방죽 그리고 농경지는(딸) 연이어진 칠성봉은 (일곱 아들)로 엮어 화목과 복락으로 풀이할 수 있는 상서로운 하나의 전설로 엮어질 수 있겠습니다. 전설이란 후손을 위한 선대의 지혜입니다.  

佛家에서는 북두칠성을 북두(北枓)의 일곱 星群, 탐랑성(), 거문성(), 녹존성(祿), 문곡성(), 염정성(), 무곡성(), 파군성() 있고 존성왕() 일곱 개의 기념한다고 합니.  

 

민간신앙에서의 북두칠성은, 일(日), (), (), (), (), (), () 정수라 간주하고 이를 믿는 신앙으로 가신(家神)의 하나로서 신앙되고 있습니다. 보통 집안의 뒤뜰 장독대에 위치하며 칠석날 밤이면 집안의 부녀자가 제주(祭主)가 되어 장독대 앞에 돗자리를 깔고 백설기와 정화수를 올리며 촛불을 밝힌 채 동서남북 지방에 절을 하고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축원하고 소지(燒紙)를 올립니다.

 

무속의 칠성은, 충청도 남부권과 전라북도권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승되는 것으로 알려진 <칠성풀이>는 무속의례에서 칠성신을 청배하여 자손의 무병장수와 출세를 기원하는 과정으로 불립니다.

칠성봉(七星峯)의 머리격인 제1봉인 독송정(獨松亭)으로 시작되는 칠성봉은 청전동과 시내 중앙로을 거쳐 내토 제7성봉인 남산(丁峰山)을 끝으로 각각 독자적으로 솟은 7개의 봉우리로서 그 배열되어 있는 모양이 북두칠성을 닮아 칠성봉(七星峯)이라고 전해오는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한 제천의 자랑입니다. 불가의 북두칠성論이든 민간신앙의 북두칠성신앙이든, 무속에서 풀이하는 칠성이든 모두 아우러 제천의 북두칠성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것이 제천의 북두칠성만의 전설이 되는 것입니다. 

 

 

이 농로(農路)가 끝나는 지점에 제천의 상징이라 할 칠성봉(七星峯)의 머릿격인 제1봉인 독송정(獨松亭)이 있습니다. 

의림지 -  솔방죽 뛰뜰방죽 농경지 - 칠성봉- 제천역이 연결되어 자연관찰 및  문화적 관광요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지리적으로도 순차적인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열차를 이용하여 자전거로 당일로 탐방하기에도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장날과 엮어 홍보하고 더불어 홍보지에 실어 제천역을 비롯하여 중앙선 각역에 비치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2012년 3월 12일 <鄕>  

 

 

 

 

'◈ 세월에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천시 점말동굴 구석기 시대 유적(舊石器時代遺蹟)   (0) 2012.03.30
1년 만에 다시 본 칠성봉  (0) 2012.03.27
제천 솔방죽   (0) 2012.03.22
봄을 찾아서..  (0) 2012.03.20
제천 '타고르'  (0) 201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