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능호관 이인상 필 어초문답(凌壺觀李麟祥筆漁樵問答)

鄕香 2012. 1. 6. 21:35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은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로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령(元靈), 호는 능호관(凌壺觀) 또는 보산자(寶山子)라고 했습니다.

삼대에 걸쳐 대제학을 낳은 명문 출신으로 1735년(영조 11년)에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증조부 민계(敏啓)가 서자였기 때문에 높은 관직에는 진출할 수 없었습니다.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한 성격으로 관찰사와 다투다 끝내는 관직을 버리고, 단양에 은거하며 벗들과 시, 글씨, 그림을 즐기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서출이지만 시문과 학식이 뛰어나 당시 문사들의 존경을 받았고 후대의 문인과 서화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그림은  쥘부채(摺扇)에 부착한 반원형의 종이에 그린 그림만으로 구성된 일련의 화집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선면화집(扇面畵集)」에 엮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어초문답'은 年記가 없으나 화풍으로 보아 연기를 가지고 있는 <청호녹음도/淸湖綠陰圖 1740年作>와 같은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그의 나이 31세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이 그림의 화제시(畵題詩)는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 <採於山 菜可茹 釣於水 鮮可食 戱作漁 樵問答 倣古人 筆意 / 채어산 채가여 조어수 선가식 희작어 초문답 방고인 필의.>(산나물을 캐니 먹을만 하고 물고기를 잡으니 먹음직 하다, 어부와 나뭇꾼의 문답을 장난 삼아 그리면서 옛사람의 솜씨를 모방하다.)라는 畵題가 특유의 전서체(篆書體)로 쓰여져 서 그림의 멋을 한층 높입니다. 이 그림은 화보풍이지만 채색을 절제하고 물을 많이 머금은 먹빛을 사용한 해맑은 필치가 돋보입니다.

 

 

능호관 이인상 필 어초문답(凌壺觀李麟祥筆漁樵問答)

조선시대(18세기) /  紙本水墨淡彩 26.5×60.5cm 국립중앙박물관 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