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풍 팔영루 (淸風 八詠樓)》
이 문은 청풍부(淸風府)를 출입하는 관문입니다. 안쪽에는 현덕문(賢德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종 7년(1870)에 세운 '팔영루사적비'에 의하면, 숙종 28년(1702)에 부사(府使) 이기홍이 중건하고 현덕문이라한 것을, 고종 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중수하고 사적비를 세웠습니다. 그 후 부사 민치상이 청풍팔경을 시제로한 팔영시가 있어 팔영루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본래는 청풍면 읍리 286번지의 청사 북쪽에 있었으나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습니다. 2m의 석축 기단을 쌓고 그 중앙에 방형의 문을 두었습니다. 문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고,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다락집을 세웠습니다.
《각종 비석 (碑石各種)》
대체로 이런 비석들은 마을 입구 길가에 세워진 것들로 공적비(功積碑) 또는 송덕비(頌德碑) 선정비(善政碑)들로 군민 즉 고을 백성들이 고을 원님이(군수 또는 부사 등) 재임 시 쌓은 치적이나 선정을 베푼 것에 고마움을 글로 새겨 세운 비석입니다. 그러나 진의(眞意) 없는 왜곡된 것들이 많습니다.
《청풍 한벽루(淸風 寒碧樓)》寶物 第528號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습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습니다. 이 누각은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 이른바 배흘림기둥을 쓴 층 아래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樣式)입니다.
누(樓)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階段式) 익랑(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습니다.
《제천 청풍 응청각(堤川 淸風 凝淸閣)》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寒碧樓)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李滉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인조 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規)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습니다. 고종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으며,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던 것을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엿습니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습니다.
《 제천 청풍 금병헌(堤川 淸風 錦屛軒)》
이 건물은 청풍부(淸風府)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東軒)건물입니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沙熱伊縣)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청풍현이라 하였습니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知郡事)가되고 조선 세조 때 군(郡)이 되었습니다. 현종 초에 도호부(都護府)로 되었으며, 고종 32년에 군(郡)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吳道一)이 처음 지었습니다. 그후 숙종31년(1705)에 부사 이희조(李喜朝)가 중건하고, 영조2년(1726)에 부사 박필문(朴弼文)이 중수하고, 권돈인(權敦仁)이 편액을 써서 걸었습니다. 고종37년(1900)에 부사 현인복(玄仁福)이 전면 보수하였습니다. 본래 청풍면 읍리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습니다. 정면6칸, 측면3칸의 팔작집입니다. 일명 명월정(明月亭)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淸風館)>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청풍 망월산성(望月山城)》
이 산성은 옛 청풍소재지(수몰되어 있음)의 동남쪽에 위치한 망월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석축산성입니다. 둘레는 500m이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약 4m입니다. 청풍문화재 단지에 인접되어 있으며, 본래는 남한강이 돌아 흐르고 있었으나, 지금은 청풍호가 감싸고 있으며 경관이 수려합니다. 청풍은 삼국시대의 사열이현(沙熱伊縣)이며, 신라 문무왕13년(673)에 사열이산성(沙熱伊山城)을 늘려 쌓았다고 하였으니 이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의 성황산(城隍山)과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의 태산(台山)이 군의 동쪽 3리에 있다고 하여 이 산성임을 짐작케 할 뿐입니다. 최근에 성벽을 보수하였습니다.
《청풍 망월산성(望月山城)》
《堤川 淸風 錦南樓》
이 門은 청풍부의 아문(衙門)으로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란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순조25년 (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습니다. 이후 고종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동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습니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입니다.
《淸風 石造如來立像》(寶物 第546號)
이 불상은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경)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습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옷은 통견의(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 입고 있으며 배에는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 까지 내려왔습니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 읍리(邑里)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습니다.
정문격인 이 문은 바깥쪽과 다르게 안쪽에는 '覽德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정문인 "八詠門"입니다. 안쪽에는 '覽德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청풍호와 주변 산세
의림지
2011년 4월 21일 - 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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