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사라져가는 情景」

鄕香 2011. 4. 22. 14:19

어느 지인(知人)이 청풍호반에 벚꽃이 너무도 아름답게 피었다기에, 울적한 마음 그 꽃에 흠뻑 적셔볼까 싶어 생뚱맞아 문갑에 늘 처박아 두었던 색안경을 꺼내 한껏 멋을 내고 한 달음에 달려갔다오. 그러나 어느새 꽃잎은 그 화사함의 빛을 잃고 꿈 많은 젊은 날의 추억이 되어 산들바람에도 꽃비되어 하염없이 나부끼고 있더이다.

 

 

 

 

수산면을 휘돌아가는 길에 참으로 정겨운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낮은 산허리 양지바른 언덕 밭에서 들려오는 워낭소리, ' 이려~' 느리고도 구수한 그 소리에 넉넉하고 순한 걸음 거리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누렁암소의 모습에서 어릴 적 엄마의 포근하고 아늑했던 참 편함을 느낍니다. 넓고 긴 고랑을 얼추 반은 갈아서인지 더러 발길을 멈추며 슬프도록 큰 눈을 껌벅이며 저 만치 고랑 끝을 바라볼 때는 집에 두고 온 목매기라도 생각하는 듯 다리사이 부푼 젖이 눈에 밟힙니다. 누렁암소 만큼이나 무던한 농부는 다시 순둥이 같은 음질로 '어뎌'하고 부드럽고 애정 어린 채근을 하면 다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걸음으로 쟁기를 끌고 갑니다. 그 시간의 그들은 힘들었겠지만, 그런 노동의 삶이 진정한 행복의 기쁨이란 것을 아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내 보기에 이 정경 포근하고 평화롭고 참 아름다운 부러움 있었기에... 

 

 

 

 

소와 농부의 몸가짐과 동작에서 서로가 신뢰와 정이 흐르는 두터운 교감에서 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기쁨으로 차오릅니다.

 

 

 위쪽 한 편에서는 농부의 아낙이 쟁기로 일군 밭을 괭이로 흙을 고루는 모습에서나 쟁기의 날이 깊게라도 들어갔는지 농부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쟁기에 더욱 힘을 주어 부여잡고, 누렁암소는 이에 부응하여 뒷발은 힘차게 버티면서 앞발을 힘껏 앞으로 내 딛고 있는 모습에서나 진솔한 노동의 성스러움과 농부와 쟁기 그리고 누렁소가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의 신선한 아름다움을 봅니다.

 

 

 

 흔하디흔하던 지난날의 이 모습이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 되어 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 고운 산천을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기계문명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편함은 그 편한 만큼 우리의 터전과 생명을 갈겨먹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환경을 우리 생활의 터전을,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능률을 떠나 거짓없는 흙과 순박한 소와 진솔하고 소박한 농부의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 삶이 고집스런 끈끈한 정으로 언제까지나 아름답게 이어가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훗날 한 폭의 그림으로나 볼 수 있을 정다운 모습이여, 아슴아슴 저물어가는 세월이여. 

 

청풍 수산면에서 - 鄕香 -  

2011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