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역사문화

아차산 유적

鄕香 2008. 3. 2. 16:16

아차산성(阿且,峨嵯山城).

 

아차산성의 축성은 문헌상 백제 漢城時代 책계왕(AD286년)때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름도 시대에 따라 阿旦城, 阿且城, 長漢城, 峨嵯城. 등으로 불리웠으며 또한 삼국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 등이  차례로 점령하였던 전략상 중요시 되었던 城이었습니다.

아차산성은 광개토왕비,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문헌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백제 제21대 개로왕(蓋鹵王재위455~476)이472년 위나라에 고구려 토벌의 원군을 청하였으나 실패하고 고구려의 간첩 仲 도림(道琳)의 계책에 빠져 토목 공사로 국고를 탕진하고 475년 고구려 제20대 장수왕(長壽王394~490.재위413~490)의 공격을 받아 왕도(王都) 한성(漢城)이 함락되며 고구려 장수(재증걸루再曾桀婁와 고이만년古爾萬年)에게 사로 잡혀 갖은 수모를 당하다 아차산성 아래에서 피살되었으며 고구려 제25대 평원왕(平原王 ?~590.재위기간559~590)의 사위로 용맹을 날리던 溫達將軍(平岡公主의 夫)이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하여 이 아단성(阿旦城)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고 합니다. 

 

온달샘, 석탑.

온달샘의 유래는 알 수 없으며, 옆에 있는 석탑은 기단부의 일부만 남아 있어 정확한 층수를 알 수 없습니다.

상대갑석 위에는 옥개석과 옥신석이 얹혀 있으며 정교하지 못 한 느낌을 주며, 제작시기는 대략 고려후기로 추정합니다.  

 

고분군(古墳群).

아차산 일대에 산재하고 있는 고분은 4개 지역에 60여기로 거의 대부분이 노출되어 훼손되었습니다. 고분은 풍화 암반층에 파고 조성하였으며 벽석(壁石)은 약간 손질을 가한 돌을 정연하게 쌓아 만들었으며 장축은 북서방향으로 산 정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③ 보루성(堡壘城).

보루성은 소규모 요새지를 말하며 보통 집터 넓이의 요새성인데 아차산 주요 정상부에 분포해 있으며 유물은 대부분 토기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④ 다비터(茶毘所).

다비식(火葬)을 거행하던 곳으로 주변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⑤ 석실고분(石室古墳)

우미내마을 서편 바위산 정상부의 넓고 평탄한 바위 위에 조성한 특이한 석곽분으로 석곽은 長壁 2매 短壁 2매의 대형 판석을 세워서 벽을 조성하고 천장에는 대형 판석 두장을 덮었으며 입구로 추정되는 남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입구를 막았던 판석은 우측에 있습니다.

   

⑥ 대성암.

신라시대 범굴사 터에 1954년 재건한 절입니다. 대성암에는 범굴사와 관련있는 뒷산 암벽에 범굴사 佛糧權, 불량시주기라는 암각문이 전해오고 있답니다.

 

⑦ 사지 3층석탑

대성암 좌측 뒤편100m 암반위에 있는 것으로 탑의 지대석은 거칠게 다듬어져 있으며 옥개석에는 삼단의 층단으로 옥개받침을 표현하였으며 규모가 작아 아담하고 경쾌한 멋을 풍기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탑이 훼손되어 부재가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96년에 원형으로 복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