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新羅時代)/신라 유물(新羅 遺物)

영태이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

鄕香 2008. 1. 14. 10:54

 

사리호는 일종의 사리용기로서 일반적으로 탑파에 봉안되는 사리구, 즉 사리장엄구 속에 포함됩니다.

  영태2년명납석제사리호는 1981년 부산시립박물관에 입수된 것으로 당시 부산시립박물관에 있던 박경원(朴敬源)선생의 꾸준한
추적 끝에 산청 석남사지(石南寺址)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납석제사리호의 표면에는 세선을 돌리고 모두 15행의 비로자나불상 조상기를 이두 문자로 음각하였습니다.
바닥에도 명문이 남아 있으나, 바닥의 명문은 동체 표면의 서체와 달리 정연하지 않고 긁힌 곳이 많아 판독이 어렵습니다.
명문은 [영태 2년(766) 병오 7월 2일에 법승(法勝), 법연(法緣) 두 승려가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추복(追福)을 위하여 석비로자나불(石毘盧遮那佛)을 조성하고 무구정광다라니(無垢淨光陀羅尼)를 함께 봉안하여 석남암수(石南巖藪) 관음암(觀音巖)에 안치하였는데, 이 공덕으로 두온애랑의 영신(靈神)과 발원인 두 승려와 함께 일체중생 모두가 삼악도(三惡道)의 업(業)을 멸하고 성불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이 명문의 내용은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불상을 조성하는 공양승과 그에 동조하여 불덕을 희구하는 중생들의 업멸(業滅)을 비는 일종의 서원문입니다. 글자체는 해서이며 초서를 쓴 것도 섞여 있습니다.
  불상대좌 중대석에 법사리를 봉안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사례로서 복장(腹臟)의 초기양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리호의 가치는 사리봉안 개념이 탑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이후 유행하는 불상 복장 납입의 가장 오래된 형태라는 점이며, 불교조각사적인 측면에서도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불의 조성연대를 8세기(766)로 끌어올려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리호 표면 명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永泰二年丙午七月二日 釋法勝法緣二僧幷 內奉過去爲尤(?)?豆溫哀 郞願爲石毗盧遮那佛 成內無垢淨光陀羅尼幷 石南巖藪觀音巖中 在內如願請內者豆溫 哀郞靈神?那二僧米那 若見內人那向 頂 爲那 遙聞內那隨喜爲內那 影中?貌那  吹風 ??方?一切象生那一切 啓三惡道業滅 自毗盧 遮那是等覺去世爲 誓內之內物是在之
止者思木博推爲 ○○反藥者 ○○○○○
 

 

영태이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 국보(國寶)233호

韓國 - 統一新羅  《世紀》 / 出土址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폐암사지 / (石製) 높이 12 cm 입지름 9cm 바닥지름 8.5 cm 뚜껑지름 7.5cm  / 釜山市立博物館 所藏 

참고문헌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불사리신앙과 그 장엄, 통도사성보박물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