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伽耶)/가야 유물(伽耶遺物) 82

가락국 시조 왕릉 위치를 새긴 판(始祖駕洛國王陵圖板)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왕릉 위치를 새긴 도판입니다. 구지봉(龜旨峰) 아래 수로왕릉과 안향각(安香閣), 중문(中門), 외문(外門), 누각(樓閣) 등의 건물이 그려져 있고, 한쪽에는 읍기(邑記)가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에 있는 산청왕산릉도(山淸王山陵圖)는 양왕릉도(讓王陵..

대가야(大加耶)

대가야는 지리 고령군조(地理 高靈郡條)에 기록되기를 "대가야국은 시조 이진아고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릇16대, 520년에 이르렀다(大加耶國自始祖伊珍阿鼓王至道設智王凡十六世五百二十年)"고 합니다.삼한 때까지 반로국(半路國)으로 불린 고령지역의 정치세력은 주변지역과 동일한 문화기반 위에 있었습니다.고령 반운리유적(盤雲里遺蹟)의와질토기가 영남지방의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점으로 이러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4세기대에 접어들면서 고령의 세력은 야로면(冶爐面)일대의 철광(鐵鑛)을 개발하고 힘을 키워 가야의 하나로 성장하였습니다.  서기 400년 신라의 요청을 받아 내려온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가야를 공격하였는데, 금관가야를 비롯한 낙동강하류의 가야세력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

아라가야(阿羅加耶)

아라가야는 삼국지에 전하는 변한 안야국(安耶國)을 기반으로 함안지방에서 성장 발전한 가야입니다.아나가야(阿那加耶) · 안나국(安羅國)  · 아시라국(阿尸羅國)으로도 불렸으며, 가야 전기(前期)부터 멸망할 대까지 계속해서 남아있던 세력입니다. 바다와 육지로 나갈 수있는 함안지역은 교통의 요지로서 가야의 모든 지역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라가야는 통치자들의 거대한 무덤을 따로 만들었으며,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전쟁을 할 때 이에 대항하여 싸울 만큼 힘을 갖추고 있었던 큰 세력입니다.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들은 함안지역을 비롯해서 인근의 馬山.宜寧.晋州 일대에서도 다수 확인 되고 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에서 보입니다. 아라가야의 고분문화는 前期 · 中期 · 後期로 나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