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3세기경 한반도 북부 지방에 중원의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나라는 철기문화의 단계에 접어들게 됩니다.
청동기시대에 이어 시작되는 이시기를 초기철기시대(BC 3세기~ 서력기원 전후)라고 하며 이때의 철기는 대부분 중국
戰國時代(BC 403 - BC 221)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처음 철기문화가 들어오는 渭原 龍淵洞遺蹟과 같이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다량으로 발견되는 明刀錢出土遺蹟은
이러한 중국 철기의 전래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 유적에서는 중국의 전국시대 하북성 북부에 자리 잡고 있었던 燕(BC 323 - BC 222)나라의 화폐인 명도전과 함께
철제 창. 낫. 도끼. 괭이 등 중국제 鑄造品인 농. 공구류가 출토되어 이시기에 철기가 유입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상당히 늦은 BC 2세기경에야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철기가 자체적으로 생산되고 원재료의 수출단계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이며
이 때는 예리한 鍛造鐵器가 생산됩니다.
우리나라 철기문화의 전개는 대동강 유역의 樂浪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이 때 대동강 유역에서 수준 높은 철기 문화를 영위하였던 집단들이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퍼지게 되거나
주변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는데 기원전후경, 우리나라 남부지방이나 제주도 및 일본 각지에서 발견되는 중국제 거울을
비롯한 여러문물들은 그들과의 교류에 의해 전파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기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단단하고 예리한 여러 가지 무기류와 농기구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철기의 보급은 사회의 변화를 촉진 시키게 되었습니다.
철제 농기구의 보급은 농업 생산력을 급속히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製鐵集團이라고 할 수 있는
특수 전문집단이 출현하였으며 철이 富의 척도가 되는 등 사회의 階級分化를 가속시켰지요.
특히 철제 농기구의 발달에 따라 농경지가 확대되면서 생산력이 급증하여 잉여 생산이 이루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한 富의 집중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집단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여 비로서 국가로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지요.
중국의 秦. 漢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철기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철기가 갖는 이러한 실용적인 특성으로 인해 청동기는 점차 쇠퇴하여 儀器的인 성격을 띠게 되지만,
초기철기시대 전기(BC 3세기~BC 2세기 후반)는 오히려 한국식 동검문화의 전성기로 청동기의 생산이 활발해지다가
후기(BC 2세기 후반~기원전후)에 이르러 합금이나 주조 기법이 퇴화 . 소멸되어 결국 철기로 대체 됩니다.
충청도이남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초기 철기는 주로 청동기와 함께 출토 되고 있는데,
먼저 도끼와 끌 등의 공구류가 쇠를 부어 만든 鑄造鐵器로 대체되며 쇠낫 등의 두드려 만드는 鍛造鐵器는
BC 1세기경에 등장합니다.
철기 생산의 본격화 및 제작기술의 발전은
토기생산기술은 물론 농업생산력의 증대로 인한 새로운 질서의 재편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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