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초기철기시대(初期鐵器時代)

철기시대의 유적지 출토 유물(鐵器時代의 遺蹟址 出土 遺物)

鄕香 2007. 7. 16. 12:30

 

이 시기에도 간석기는 여전히 일상도구로 쓰였으나 질과 양에 있어 급격히 퇴보하고

재생된 석기가 보이며 금속으로 대체할 수 없는 숫돌과 같은 특수한 기능을 가진 것만 남아 있게 됩니다.

무덤에 껴묻히는 간돌검이나 돌살촉은 의기적 성격이 강조되어 특수한 형태로 나타나고

칼자루 끝에 붙은 장식(劍把頭飾)도 처음에는 돌이나 철광석으로 만들어 졌으나 차츰 청동으로 대체됩니다.

 

청동기시대에는 비록 청동기의존재가 알려져 있었지만 계속해서 석기가 주로 제작되어 사용된 것처럼

이 시대에도 앞(前)시대의 청동기가 계속해서 활발하게 만들어져서

이전의 제품들보다 더욱 다양해지고 수량도 늘어나게 되나 형태와 재질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즉 초기철기시대의 前期는 한국 청동기의 전성기로서 형태의 변화도 활발하고 재질도 백동질이 

대부분이지만 후기가 되면 청동기의 제작이 형식에 흐르고 양식상의 퇴화가 일어나

정성이 없이 구색만 갖추게 되며 합금이나 마무리가 매우 거칠어집니다. 

또한 수레갖춤(車輿具)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청동기가 등장하며,

일본 청동기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초기에 비하여 후기에는 일부 지역에서

광형꺾창(廣形銅戈).광형투겁창(廣形銅矛)등과 같은 일본계 청동기가 역수입되는 예도 보여

서로간에 교류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철기에는 검(劍).고리자루칼(環頭刀).화살촉(鏃).꺾창(矛)등의 武器類와

도끼(斧).끌().낫().낚시바늘().송곳(錐).가래(金+秋).괭이(鋤).밀개(推).반달칼(半月刀)등의 농공구가 있습니다.

남아 있는 철기의 수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은 당시에는 철기가 많이 사용되어 그 수량이 많았겠지만

부식성이 높기 때문에 남아 있는 유물이 적습니다.

철기는 회령 五洞의 경우처럼 집터에서도 나오지만,

주로 무덤에서 많이 나오고 있으며, 기술적인 면으로 보면 초기에는중국에서 수입된 주조품도 있었으나

두드려서 만든 단조품(鍛造品)이 주류를 이루다가 후기에는 주조품(鑄造品)많아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형식에 있어서도 초기의 것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흔적이 있으나

후기로 가면서 청동기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형태의 농공구들이 자체생산되었습니다.

철기의 보급과 더불어 눈에 띄는 새로운 현상은 뼈. 뿔연장의 비중이 높아지는 사실입니다.

남쪽지방에서 특히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서 뼈를 쪼게어 갈아 만든 송곳.바늘.화살촉 등이 있고 

사슴뿔을 깍아 만든 손칼자루가 등장합니다.

이런 연장들은 원삼국시대 조개더미유적에서 훨씬 많이 출토되고 있어 초기철기시대부터 사용되다가 

원삼국시대에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리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유리제작기술은

기원전 2세기 전반경에 중국을 통해 들어 왔다고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유리 제품으로는 부여 합송리.당진 소소리.공주 봉안리 등의

충남지역 초기철기시대 무덤유적에서 출토된 대롱옥이 있습니다.

 

 

 꺽창(銅戈) 傳 論山 기원전 3~2세기24.7cm

 

 

<상리 무덤유적>

이 유적은 대동강 지류에 남북으러 길게 면한 낮은 구릉의 동쪽 경사면에 위치하는 소규모의 덧널무덤입니다.

평양-원산(元山)간의 철로에 연이어 있는데 마풍(馬風)에서 원산 쪽으로 5km 정도 덜어진 곳에서 

흙을 채취하던 중 발견되었습니다.지표 아래 90cm 정도되는 곳의 두깨 20cm. 동서 200cm.남북 150cm 

크기의 범위 안에 유물이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무덤에서는 검.칼자루끝장식.말종방울.을자형동기.띠고리편.차축두(車軸頭).입형동기(笠形銅器)등의 

청동기를 비롯하여 검.투겁창.재갈.고리자루칼.도끼 등의 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토기로는 평양지방의 널무덤에서 철기와 공반되는 화분형토기와 단지(短頸壺)가 출토되었습니다.

이 유적은 서북지방에서 청동기가 소멸하고 철기문화가 본격화하는 단계의 유적입니다.

 

 

평양 상리 무덤遺蹟 유물 일괄 

 

 

투겁창.꺽창.꺽창집(銅矛.銅戈.銅戈緝)

 

 

<용연동 돌무지무덤> 

평안북도 위연군 숭정면 용연동에 위치합니다.

독로강(禿魯江)의 바로 아래에는 위원강(渭原江)이 동남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 강의 남쪽지류인 한백강(漢栢江)의 江岸에 만들어진 퇴장(退藏)유적입니다.

이 무덤은 바닥에 지름이 360cm 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냇돌로 쌓아 만든 형태로 땅 밑 30cm 지점에서

지름이 270cm인 점으로 보아 원래는 돌무지의 봉분이 있었으나 삭평되어 없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유구의 중앙부에서 많은 양의 명도전과 함께 창.낫.화살촉.도끼.반달칼.가래.괭이.밀개 등의 철재 무기와

농공구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밖에 청동살촉과 띠고리(帶鉤)등도 출토되었습니다.

명도전은 한반도 서북지역의 청천강 이북지역에서는 한꺼번에 1000개 이상씩 무더기로 발견되는 예도 있는데 

이것은 연나라 사람이나 인접한 요동지방의 주민들이 난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해 오면서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

용현동 출토의 주조철기들은 한반도에서 출토된 것 가운데 가장 빠른 형태로서

무순(撫順) 연화보(蓮花堡)유적과 종류,형태,조합상에서 매우 흡사합니다.

이로 보아 용현동 출토의 철기들은

중국 연나라에서 제작되어 유입된 것으로 그 연대는 기원전 3세기 정도로 추정됩니다. 

 

 

용연동출토유물일괄(龍淵洞出土遺物一括) 

 

 

 

 

 

 

<長水 南陽里 遺蹟 >

냇돌을 이용하여 측벽을 말련하고 내부에 목관을 안치한 형태의 무덤으로

둘레에 상당한 규모의 돌무지를 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후기 형식의 정문경(精文鏡)과 한국식동검.검파두식.동모.점토대토기.흑도장경호와 함께 

주조철부(鑄造鐵斧).철착(鐵鑿).철사(鐵 사=쇠금변에 다를타자를 붙임, 뜻은 작은 창을 말함.)

삼각형 무경식석촉과 석도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일괄유물에 나타나는 유물의 조합상, 그리고 각 유물에 보이는 특징으로 보아 이 유적이

금강유역의 청동기문화가 초기철기시대로 들어서는 시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롱옥.끌.거울.삼각창.검파두식.한국형동검.

장수.남양리 장수 4호출토 (全北大學校) 

 

 

대롱옥.쇠창.쇠끌.쇠도끼.한국형동검.검파두식.

장수.남양리 장수 2~3호출토 (全北大學校)

 

 

정문경.동모.검파두식.한국형동검.쇠도끼.쇠칼.반달돌칼.

장수.남양리 장수 1호출토 (國立中央博物館) 

 

 

 철칼.철끌.주조철도기.

장수.남양리 장수 4호출토 (全北大學校) 

 

 

 

<소소리 무덤유적>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소소리에 위치하는 낮은 구릉의 남서사면에서 인삼밭을 경작하다가

초기철기시대의 유물 13점과 고려시대의 유물 6점이 일괄로 발견되어 매장문화재로

신고되면서 알려진 유적입니다. 이들 유물로 보아

초기철기시대와 고려시대의 무덤이 축조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초기철기시대의 유물로는 한국식동검.칼자루끝장식.잔무늬거울 등의 청동기를 비롯하여

도끼.글 등의 철기.유리대롱옥.돌살촉.숫돌.흑색토기편 등이 있습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일괄유물은 장수 南陽里.부여 合松里.공주 봉안리유적 등에서 출토된 유물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중국 동북지방에서 서북한지역을 통해 유입된 철기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당진 소소리유적 출토 유물 일괄

 

 

 

 

(부여 합송리유적)

깬돌을 이용하여 무담칸을 만들고 그 위에 돌무지를 쌓은 돌널무덤 계통의 유적이다.

출토 유물은 한국식동검.꺽창.잔무늬거울.동탁.뚜겅모양동기.쇠도끼.쇠끌.유리제대롱옥.검은간토기 등이며

철기가 남한으로 유입되는 과정과 전파로를 알려주는 유적으로 남부지방에서 기원전 2세기 전반에

초기철기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출토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금강유역의 남양리.소수리유적과 같이

주조된 쇠도끼가 포함된 청동기 일괄 유물을 내는 유적들과 연관되고 있습니다. 

 

 

한국식동검.꺽창.이형동기.거울.뚜껑(韓國式銅거劍.銅戈.異形銅器.銅鏡.圓蓋形銅器)

夫餘 合松里遺蹟.初期鐵期時代

 

 

동탁(銅鐸) 夫餘合松里遺蹟出土 .高16.2cm

 

 <주조철부 . 철착 (鑄造鐵斧 . 鐵鑿)>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인 당진 소수리, 장수 남양리, 부여 합송리 등에서는 한국식동검을비롯한 각종의 청동기와 함께 주조철부 . 철착이 출토됩니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식동검 문화가 철기문화보다 우세해 철부, 철착을 제외한 무기류는 여전히 청동으로 제작됩니다. 이들 鐵器는 세죽리 - 연화보유형문화유적인 위원 용현동, 영변 세죽리유적 등에서 출토되는 주조철부, 낫, 반월도, 괭이 등의 철제농구에 대비되는 것으로 기원전 2세기전반 충청도를 중심으로 하는 서남부지방에서 도입된 대표적인 철기입니다. 

  

 

쇠끌.쇠도끼(鐵鑿.鐵斧) 夫餘 合松里遺蹟出土 16.7cm

 

 

유리관옥(琉璃管玉)夫餘 合松里길이6cm

 

<남부지방 출토 유물>

경주 조양동 등 남부에서는 철제칼에 청동제 자루가 결합된 유물도 나오고 있으며,

청동기가 나오는 경우에도 쇠녹이 쓸어 묻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동기.철기. 남부지방 출토 유물 일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