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李澄, 1581-1674 이후)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함(子涵), 호는 허주(虛舟). 왕족 화가 이경윤(李慶胤)의 서자이며, 화원으로 주부와 사과를 지냈습니다. 1609년(광해군 1) 원접사(遠接使)의 수행화원으로 의주에 다녀왔고, 1623년(인조 1)에는 여항문인 유희경(劉希慶)의 요청에 의해 〈임장도 林莊圖〉를 그려주었습니다. 1628년 태조어진 개수에 참여하였고, 만년에는 1645년 소현세자를 따라왔다가 3년간 머물고 돌아간 중국인 화가 맹영광(孟永光)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산수·인물·영모(翎毛)·묵죽·화훼 등 모든 분야에 두루 뛰어나 일세의 명장(名匠)으로 이름을 크게 날렸습니다. 허균(許筠)은 그를 가리켜 이정(李楨) 사망 후 "본국제일수"(本國第一手)라고 했으며, 인조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궐내 가까운 곳에 있게 하고 화초와 산수를 즐겼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구하려고 애써 작은 조각이라도 얻으면 보배처럼 간직했다고 합니다.
부러진 대나무 잔가지에 한 마리 새가 쭉지에 부리를 묻고 잠을 자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대나무 잎 끝이 뾰족하니 날카로운 묵법은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41-1622)의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18세기 이전의 작가로는 전징작을 포함해서 가장 많은 작품을 전하고 있는데, 산수화와 영모화·화조화가 대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수화에서는 조선 초기의 안견파(安堅派)와 중기의 절파계(浙派系)를 융합한 화풍을 즐겨 구사했으며, 궁정취향이 짙은 이금산수화(泥金山水畵)도 잘 그렸습니다. 영모화·화조화에서는 절파풍이 가미된 묵법을 토대로 서정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말·기러기·원앙새 등을 많이 그렸습니다.
허주 이징 필 죽조도(虛舟李澄筆竹鳥圖)
조선시대 / 종이에 수묵(紙本水墨) 89.3×55.3cm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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