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인재 강희안 필 고사관수도(仁齋姜希顔筆高士觀水圖)

鄕香 2007. 4. 23. 19:06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은 조선 초기 대표적인 문인 화가로 자는 경우(景愚), 호는 인재(仁齋) 또는 청천자(菁川子)입니다.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으며,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부제학, 호조 참의를 거쳐 1454년에는 仁壽府尹으로서 謝恩副使가 되어 明나라에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을 천기(賤技)로 생각하는 것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이었는데,  강희안도 자신의 서화(書畵)가 후세에 전해지는 것을 굴욕으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전래되는 것이 드뭅나다. 그러나 문헌상에 나타나는 작품들로는 산수 외에 매화, 대나무, 화훼(花卉), 초충(草蟲) 등 수십 점에 이릅니다.

이 그림은 바위에 기대어 흐르는 물을 조용히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고사(高士)를 그린 것입니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고운공편심(高雲共片心)》과 사뭇 닮고 있으나 허리를 더욱 굽혀 느슨한 모습입니다.

남송(南宋) 원체(院體)에서 유래된 잔산잉수(殘山剩水)의 정형을 보여주며,  당시 상류 사회 사인화(士人畵)의 기법과 취향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강희안은 조선 전기 화단에 있어서 사대부로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으며 이 작품에 보이는 대로 조선 중기를 풍미한 절파(浙派) 화풍의 선구로서 영향력이 큰 문인화가였습니다.

이 그림은 북송대(北宋代) 회화의 영향을 토대로 발전된 안견파(安堅派) 화풍이 크게 풍미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색다른 경향의 화풍을 보이고 있습니다.

산수의 넓지 않은 한 부분을 배경으로 둔 인물 중심의 구성이라든가 가까운 앞쪽의 풍경 위주로 대담한 변각 구도(邊角構圖)는 조선 중기에 유행하였던 절파(浙派: 명대 절강지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던 화가들의 화풍)계 소경산수인물(小景山水人物) 화풍의 선구적인 요소로 여겨집니다.

이 <고사관수도>의 화풍은 조선시대 중기에 이르러 함윤덕(咸允德)의 <기려도(騎驢圖)>를 비롯하여 이경윤(李慶胤)∙김명국(金明國) 등의 절파계 화가들의 소경산수인물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왼편 가장자리 위쪽에는 ″인재(仁齋)″라는 그의 호를 새긴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인재 강희안 필 고사관수도(仁齋姜希顔筆高士觀水圖)

朝鮮時代 / 姜希顔 1419~1464 / 紙本水墨 /縱 23.4cm × 橫 15.7cm / 國立中央博物館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