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들길은 서호공원에서 출발하여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인 배양교에 이르는 길입니다. 서호(축만제)는 정조대왕께서 수원의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인공저수지로 지금도 농촌진흥청 시험장이 남아 있습니다. 호수 남쪽에 위치한 '항미정'에서 바라본 해질녘 서호의 풍경은 서호낙조라 하여 수원 8경 중 하나로 꼽히는 절경이기도 합니다. 서호를 따라 계속 걷다보면 옛 수인선 협궤 철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호공원 주차장 겸 광장.
서호천이 축만제로 유입되는 곳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방향으로 놓인 다리 산책로를 건너 호숫가 산책길로 들어섭니다.
다리에서 내려다본 물고기의 역동적인 모습
다리에서 바라본 西湖(祝萬堤)의 정경.
〈祝萬堤 /서호〉
여기산(麗妓山105m) 서쪽 아래 축조된 서호(祝萬堤)는 정조23년(1799년) 수원성을 쌓을 때 내탕금 3만냥을 들여 축조하였습니다. 문헌상의 규모는 길이1,46尺, 높이 8척, 두께 7.5척, 수심 7척에 수문 2개입니다. 제방에는 둑을 지탱할 수 있도록 심은 나무들로 짐작되는 고목들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울러 祝萬堤屯을 설치하여 이곳에서 생기는 수입은 수원성의 築城庫에 납입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제방 아래 물이 들어와 관개의 혜택을 받는 곳인 몽리구역의 농지는 나라에서 짓는 國屯田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祝萬堤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화성 서쪽에 있음으로 인해 일명 서호라 불리고 있습니다.
축만제를 축조할 당시 수원성의 동서남북에 모두 4개의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수원성 북문 북쪽에 1975년 완성한 北池(萬石渠), 남쪽에는 南地(萬年堤)를 1979년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시설한 것이고 東池는 수원시 지동에 위치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형체를 알 수가 없습니다.
호수 둘레산책로를 400m정도 가면 호수방죽과 서호천산책길로 갈리는 지점이 됩니다.
좌측은 수문이 있는 호수둘레길, 우측 길은 하천산책길로 이어집니다. 우측 길 둔덕 위에 항미정이 있습니다. 우측 길로~
항미정 앞 마당에 있는 인증함과 항미정 해설판
〈항미정/杭眉亭〉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
祝萬堤(서호) 수문 옆 둔덕에 자리한 杭眉亭은 정자로 순조3년(1831년) 당시 화성유수였던 박기수(朴綺壽1774-1845)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습니다. 1831년 2월21일 부임하여 1832년 윤9월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향미정을 창건 하였을 뿐만 아니라 '華城誌'를 편찬하기도 하였습니다.
杭眉亭이라는 이름은 蘇東坡의 詩句에 西湖는 "杭州의 眉目 같다." 고 읊은 것인데, 화성유수였던 박기수 선생이 이 정자를 건립한 후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宋나라 大文豪 東坡 蘇軾이 항주의 태수를 지낼 적에, 항주를 대표하는 절경인 西湖가 월나라 때 미인 西施의 눈썹처럼 아름답다고 말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서시는 월나라의 왕 勾踐의 신하인 范蠡가 서시를 吳나라 왕 夫差에게 바쳤고,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틈을 타서 오나라를 정복했습니다. 서시는 평소 지병이 있어서 항상 인상을 찌프리고 다녔는데도 아름다웠다고 하는대요. 그러나 찌푸린 얼굴조차 아름다워 보이기는 쉽지 않지요. 이와 같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하는 모습을 비웃으며 "찡그린 嚬자와 찡그릴 蹙자를 써서 嚬蹙(빈축)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항미정을 건립한 朴綺壽 선생의 본관은 潘南, 자는 眉皓, 호는 履坦齋으로 조부는 朴左源, 父는 우부승지 朴宗臣이며 母는 崔粹一의 따님입니다. 정조 19년(1795)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순조6(1806년) 별시 문과 을과에 급제하고 각신, 수찬, 동래부사, 등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에 초배된 후 부제학을 거쳐 전라도관찰사, 첨지중추부사, 사간원대사간, 지내고 이조참판, 함경도관찰사, 사헌부대사헌과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공조판서를 거쳐 다시 예조판서 규장각제학을 하며 지경연사에 이르렀으며, 도총관, 판의금부사, 의정부좌참찬 지냈습니다. 이어 보국숭록대부에 오르고 판돈령부사에 이르렀습니다. 헌종 9년(1843년) 다시 지경연을 제수 받았으나 고사하고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헌종 11년(1845년) 임종하였으며. 시호는 孝文입니다.
항미정은 1908년 10월2일 순종황제가 기차를 타고 수원 陵行을 하였을 때, 융건릉 참배 후 서호 임시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둑길을 지나 항미정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던 유서 깊은 亭子입니다.
항미정의 구조는 정자로서는 좀 특이하네요. 남북으로 一字形 4칸과 前退가 있는 건물을 기본구조로 하고, 북쪽 끝에서 서쪽으로 2칸의 公廊을 붙였고 남쪽 끝에는 동쪽으로 1칸의 마루칸을 내어 달았습니다. 공중에서 정면 위치로 내려다보면┏┛ 와 같습니다.
항미정을 나와 50m 정도 걸어가면 삼남길은 좌측 하천산책길로 내려갑니다.
다리 밑으로 내려갑니다.
좌측에 보기에 좋은 징검다리가 있기에 담은 것이니 건너가지 마시고 그냥 지나가세요.
하천과 산책길이 산뜻한 것으로 보아 새로 정비한 것 같습니다.
벌말교에서부터는 서호천 정지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삼남길은 다시 서호천 둑으로 오릅니다.
둑길에 나무가 숲을 이룬 흙길로 자연스런 환경이 걷기에 나쁘지 않네요. 서호천 공사가 끝나면 좀 더 멋진 삼남길이 되겠습니다.
큰길이 가로 막고 있어 횡단 시 따르는 위험을 피하고 안전을 위해 다리 밑으로 통과하기위해 다리 밑 서호천으로 내려갑니다.
이곳 서호천은 정지작업 전으로 하천산책로가 없으므로 다리 밑을 통과 후 다시 둑으로 오릅니다.
둑으로 오르니 저만치 철길로 보이지만 난간이 있는 다리가 보입니다.
다리와 둑길의 교차지점입니다.
수인선 철교의 추억입니다.
다리는 옛 수인선협궤철교 였습니다. 지금은 옛 추억과 고통을 품은 채 인도교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푯말 위에서부터 "六色수원둘레길, 뒤쪽 모수길, 좌측 모수길(협궤철교) 전방 수원둘레길, 하단 삼남길 제5길 중복들길 등의 이정표가 나뭇가지처럼 붙어 있습니다.
둑길은 아스팔트로 치장하고 곧바로 제 갈 길 가고 삼남길은 우측 큰길로 들어섭니다.
큰길로 들어서자 수십m거리에 큰 사거리 길 건너 좌측에 공원이 보입니다. 이름하여 "중보들공원" 삼남길 제5코스의 이름이자 중추지요.
공원입구 안쪽 모퉁이에 얼핏 삼남길 안내판이 보입니다.
안내판을 눈여겨 본 후 '중보들길'의 종착지 배양교를 향해서 길나섭니다.
중복들공원에서 바라보이는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 건물 사이로 들어서면 공군예비군훈련소와 하천길로 이어집니다.
다리(평리교)를 건너 우측 방향 하천 좌측 둑길로 들어섭니다.
평리교 앞에 서면 공군 훈련장 닫혀 있는 문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문 앞에서 우측으로 들어섭니다.
좌측은 공군부대 담장이 우측에는 하천이 둑길과 평행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대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는 하천 따라 휘어지는 둑길 따라갑니다.
포장된 둑에 들어서기 전에 주면을 둘러 봅니다.
뒤 풍경이 보고 싶어 돌아서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걸어온 길도 돌아봅니다.
허허로운 들판에 넓지는 않지만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포장된 하천둑길에서 노래도 부르고 좌우를 둘러보며 몸도 마음도 훌훌 털며 휘적휘적 걷습니다.
이름도 보이지 않는 다리에 이르렀습니다. '중보들길' 종착지가 배양교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인데 이 다리는 아닌 것 같다 싶습니다.
무심코 하천 위라래 풍경을 보려는데, 배양교라고 써넣은 양은철판(알루미늄板)을 난간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허참 이런 경우도 있네. 어쨌거나 제5코스 중복들길이 끝나는 종착지입니다.
제6코스 '화성효행길'은 배양교 건너 좌측에서부터 세마교까지 이어집니다.
2021년 6월19일(토)10시49분.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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