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역은 중앙선을 경유하는 태백선, 영동선 열차가 거쳐 가는 역으로 무궁화 열차가 정차하는 역입니다. 양동면에 있는 다른 역들이 모두 역이 위치한 마을에서 이름을 따온 것에 반해 양동역은 면소재지에 있는 역답게 ‘양평의 동쪽에 있다.’는 면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역들이 마을 중심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 잡는 경향이 있는 반면 양동역은 마을의 중심지에 있습니다.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농협하나로마트, 도서관 등이 역 주변에 늘어서 있습니다. 인근 주민들이 양동역을 이용하면서 이곳에서 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거의 다 해결할 수 있지만, 기차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겠습니다. 문론 양동면에 있는 다른 역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어서 무궁화 열차가 상행선9회 하행선10회 정차합니다. 중앙선 복선화가 시행된 후 양평군과 양동면에서는 전철을 연장운행 문제를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지평역과 양동역 사이에 있는 역들의 승객 수요가 적어서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옛 양동驛舍는 구둔역과 같은 시기(1940년)에 똑같은 모양으로 건축한 건물로 영업을 시작하여 2012년 중앙선 복선전철화 할 때 헐어내고 지금의 驛舍를 새로 지었습니다.
솔치길은 평해길 총 10개 코스 중 마지막 구간으로 시골 마을의 정취와 전나무 숲을 이룬 임도를 걸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젖어볼 수 있는 치유의 산책로 입니다.
면소재지로서는 제법 큰 건물(양동면도서관?)입니다. 그 우측 여주식당 샛길로 들어섭니다.
사거리에서 우측 학둔지아래길로 들어섭니다. 학둔지는 지형이 마치 학의 둥지 같다하여 유래된 지명이겠습니다.
사거리에서 150m 정도 걸어가니 단석천 제방길이 가로 막습니다. 좌측 제방길로 들어섭니다.
단석천 다리 건너 좌측 제방에 데크로 산뜻하게 산책길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신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경쾌합니다.
약1km 정도 길이의 데크산책길은 경쾌한 즐거움을 줍니다.
데크길은 끝나고 100m정도의 콘크리트 포장된 길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 좌측 제방길로 들어섭니다.
제2단석천교에서 바라본 하천 정경.
콘크리트로 포장된 하천제방길을 따라가는 저 만치 육교로 건설된 중앙선철길이 길게 선을 긋고 있습니다.
살짝 더운 날에 길게 뻗은 하얀 제방길의 눈부심에 동공이 놀란다.
저만치 지방도로가 가로 놓여 있다.
로터리에서 우측 삼산2리 웟배내길로 들어섭니다.
산자락을 끼고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호젓은 하다마는 옛 정취를 느낄 수가 없네
농촌길도 그 질박한 황토냄새 사라지고 모두 감각 무뎌진 아스팔트 아니면 콘크리트 포장길 일색이라네.
길가에는 집들이 바짝 붙여 있고 대문이랄 것도 없는 가옥의 출입문이 바로 나있어 사고라도 날 것 같아 보는 마음조차 조바심이 납니다.
마을을 지나 배내교 건너 우측으로 꺾어 들어갑니다.
《정미의병 때의 격전지 삼산리》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는丁未義兵의 본거지 중 한 곳입니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의 강제퇴위와 정미7조약, 군대해산이 벌어진 해, 이에 분노한 백성들이 전국 각처에서 봉기하여 의병을 이르켰습니다. 이중 양동면은 이인영 의병대장이 이끄는 의병진이 주둔했던 곳입니다. 양동면은 산악지대가 많아 분지형 지형을 이루고 있어 구둔치, 벗고개, 모른고개, 송치 등 양동면으로 들어오는 여러 고개에서 적들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새였기에 적의 공격이 있을 경우 응전하면서 시간을 지체할 수 있고 반격과 대피도 손쉬울 뿐아니라 서울이 가까우면서도 군사적 요새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 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의병을 토벌하려는 일본군과 삼산리에 주둔하는 의병들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곳입니다. 당시 양동면에는 삼산리, 석곡리, 단석리, 매월리, 석우리 등 전역에 걸쳐 의병진들이 분산되어 주둔하였는데그 수가 5천여명에 달하였고 이들의 본진은 삼산리 였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은 토벌작전을 개시하여 정미년 11월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일본군은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말을 이용하여 이동이 빠르고 신신무기로 무장한 반면 의병들은 개인화기는 미약하였지만 수적으로 우세하고 지형지물에 밝아 나름대로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며 용감히 싸웠다고 합니다. 이 전투로 일분군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지만 의병진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결국 산속으로 흩어지며 훗날을 도모하게 됩니다. 서울 진공작전을 위하여 양주와 원주 등지에 재집결했지만 서울진공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삼산리 전투는 이 작전을 계획대로 수행할 수 있게 한 의병항쟁사에서 의의가 큰 전투였음은 분명하겠습니다.
중앙선 철교 밑을 통과합니다.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마을길 따라 오릅니다.
당산堂山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과 여주시 강천면 그리고 강원도 원주시 지장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입니다. 541m 높이에 험준한 바위지대가 없는 반면 넓은 계곡이 환히 트여 있어 산행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소히 말하는 육산이기에 다래나무 군락을 이루고 호랑이와 산신령의 석고상이 모셔진 자연석굴 들 볼거리가 있으며 정상은 참나무 수림이 군락을 이루었고 남쪽 능선에는 바위를 감고 있는 특이한 소나무도 볼만하며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곰지기골도 있습니다. 예전 양평에서 원주시 지정면 안창마을로 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솔치와 대솔치의 두 고개가 당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교통은 중앙선 삼산역을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이제 당산자락 임도 3.2km 거리의 자락길로 들어서는 길목입니다. 입구에 평해길10코스 인증함과 길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차도와 마을을 떠나 이제 堂山자락길의 흙냄새 풀내음 향기로운 숲길로 들어선다오. 임도 3.2km
정겨운 맑은 도랑을 건너 푸른 꿈길 같은 희망의 숲으로 나는 갑니다.
아시는가! 그대는, 한스런 인척의 인연들을 잊고자 미움을 털고자 산길을 걷나니
나도 모르게 한 포기 잡초가 되고 나무가 되고자 그 향기를 따라 산길을 걷나니
산길을 휘적휘적 가노라면 자연이 내 속안으로 필름처럼 감겨듭니다.
굽어지고 상큼한 길 따라 산자락을 무상무념 가벼운 몸짓으로 휘돌아갑니다.
임도차량이 들고 나는 길입니다. 청해길은 좌측 이정표 있는 오솔길로 꺾어집니다.
소나무 향기로움 짙게 번진 싱그러운 길
원주시와 양평,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도 이제 800m 남았습니다.
쩔고 지친 몸과 마음을 예쁘고 호젓한 길에 마음껏 내려 놓을 수 있는 아름다운 오솔길.
평해길 10코스 종착점에서 내려다본 솔치고개
청해길 마지막 코스 제10코스의 종착점 안내판 모습.
차도에 내려서서 평해길 제10코스 종착점을 바라본 정경입니다.
한 전신주에서 경기도와 강원도로 전선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솔치 마루턱에서 강원도 원주 방향을 바라본 정경입니다.
현재 시각은 16시31분, 이제 다시 귀가를 위해 달리기 편한 이 차도를 타고 양동역에 도착하니 16시58분, 16시56분 열차가 방금 떠난 뒤 였기에 다음 열차 19시 출발 기차를 승차하려면 2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다시 역사밖으로 나가 적당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1시간을 기다린 후 19시 무궁화호를 승차할 수 있었습니다.
솔치를 뒤로하고 돌아보며 오늘로서 평해길을 끝낸다 싶으니 서운함이 가슴을 채웁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5월 8일(토요일) - 鄕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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