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한 끼를 위한 日常

鄕香 2020. 3. 15. 19:50

요즘 우한이 두렵고 무섭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맘먹고 곤지암 가는 날인데 바람이 몹시 분다.

내 부모, 조상님께서 영민하고 계신 곳이라서 만도 아니다.

먼 거리지만 안타깝게도 안 가고는 견뎌낼 재간이 내게는 없는 일상의 사연이다.

어쩔 수 없이 전철을 타고 또, 또 갈아타고 간다. 전철 안은 두어 사람이 십리거리를 두고 앉아 서로가 내외하고 있다.

왜 우리가 이래야만할까! 달리는 전철처럼 만감이 꼬리를 문다.

 

그렇게 찾아든 욕쟁이 아줌마국밥집, 참! 지금은 할머니가 되셨지

탁자 앞에 앉자 이내 윤기 자르르한 흰 쌀밥에 부드럽고 먹음직스런 쇠머리고기 푸짐하게 담아낸

국밥 한 그릇에 맛깔스런 김치 깍두기에 파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에 썬 양파에 맛 장이 곁들여 수저와 함께 내온다.  

쫄깃하고 구수하고 넉넉한 국밥에 행복해진 몸, '쥔장 행복한 밥상 정말 고맙소.'

고마움에 인색치 않게 치례하고 문을 나서니 손 절로 뒷짐 지고 최고의 양반걸음에 거들먹거리며 곤지천 둑길로 들어섰다.

바로 이것이 먹을 만한 한 끼의 위력이 아니겠는가?

 

얼마쯤 걸었을까 풀 섶에 진한 색깔이 눈길을 끄네. 고개 숙여보니 오, 귀여워라! 웃음 활짝 내게 주는 너, 민들레였구나!

바람이 찬데 춥지 않니? 어쩔 수 없죠! 봄을 꾸며야 하니까요. 그렇겠구나! 그럼 수고해요.

다시 곤지천 물 따라 가는데 어디선가 왁자지껄 요란하다 물가를 둘러보니 조만치서 백로들과 오리 떼가 오찬을 즐기고 있다

나도 한몫 끼고 싶어 다가서는데 모두 기겁을 하고 날아오른다.

 

하, 난 이방인? 순간, 미안하고 다급한 마음에 얘들아! 가지마라! 나 우한이 아녀, 어여 돌아와! 소리쳐 보았지만.

때맞춰 부는 바람결에 공허함만 맴돈다. 맥 놓고 휘적휘적 물길 따라 맘 길 따라 도착한 전철역엔 휑하니 바람만 차오네.

 

   

일찍이 40여 년 전 압구정이 서울로 편입되기 전 광주군 언주면의 속리였던 시절,

고향 압구정 선산에 모셨던 선조를 이곳 곤지암 궁평리에 산을 구입해서 모신 후  해마다 봄 .가을 또한 기제 때마다 제를 올린 후 

귀가 길에 종친들과 함께 소박하고 맛있는 소머리국밥을 먹기 위해 간판도 이름도 없는 최미자 씨의 초가를 찾았다. 

  

    

최미자 씨는 40년 전 곤지암 시내 골목 안 초가 툇마루 밑 아궁이에 무쇠가마솥 하나 걸고 마당에 야외식탁 둘 놓고

우직스럽게 솔직한 손맛 하나로 오늘의 곤지암 소머리국밥 타운을 일궈낸 분이다.

그 여파는 전국으로 번졌고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소머리국밥의 맛집이자 기준이 된 원조이다.

  

 

 초기부터 손수 소머리를 정갈하게 손질하여 밤새도록 푹 고아 잡내가 없고 육질이 부드럽다. 또한 넉넉한 양에 구수하고 담백한 국물은 가히 일품이다. 그 맛에 최미자 소머리국밥집 단골이 된지도 어언 40년이 되어 청년의 나이가 칠순을 넘긴 老耉가 되었지만 최미자 씨 손맛은 처음처럼 변함이 없다. 지금은 슬하의 남매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것이겠지만, 그 어머니의 손맛을 제대로 이어 받았으리라.

  

 

 

 

 

 예쁜 민들레야! 올 들어서 네가 처음으로 내게 기쁨을 주는구나!

 

 

 소머리국밥 한 그릇에 기 받아 여유로워진 腹力에 곤지암 천을 걷는데 백로들과 오리 떼가 의좋게 어우러져 유영을 하고 있다. 그 모습 평화롭고 아름다워 폰에 담으려는데 그대로 날아오른다. 그들에게는 검은 마스크까지 한 내 모습이 놀라웠던가 보다.

 

 

 귀품 있고 우아한 목련아! 이른 봄 바람이 차구나! 고결하고 순결한 네 모습만큼 상할 가 봐 보는 마음 걱정이 앞선다.

    

 

2020년3월15일 -鄕村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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