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6월4일 오늘은 산행카페 '아띠'의 공지산행으로 itx열차를 이용해 100대 명산에 속하는 천안의 광덕산,만경산,설화산을 찾아 산행을 하였습니다. 청춘열차.. 젊은 청춘만 타는 것보다 나이든 사람들이 타임머신으로 이용하기에 좋은 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청춘 즉 이십대의 옛날로 돌아가서 다시 마음으로나마 그 시절 그 사연으로 젊어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출발하여 1시간정도 되니 천안역입니다. 그 옛날 흐트러지게 늘어져 흥흥 거리던 수양버들 보이지 않네.
혹시나 다시 올 날 위해 천안역 앞에서 이곳까지 타고온 800번 버스를 기억하기 위해 버스를 담으려는 찰라 뛰어 드신 분 손짓을 하시는데 '어서 이리와 봐유' 하시는 것 같은데.. 어쩌나!
버스종점 이곳에서 좌측 '태화산 광덕사'들어가는 길로 꺾어 듭니다.
울창한 숲 좌우로 우거진 길을 잠시 걸어가면 일주문이 보입니다.
짙은 숲을 뒤로한 "泰華山廣德寺"라는 이름을 가진 일주문이 몸가짐을 엄숙히 하기를 要望합니다. 사진에 담자니 주변에 조화롭지 못한 차가 죽쑤고 있습니다.
광덕산 2.9km정상길을 몇 천 계단을 올라 정상을 오른 후 장군바위를 거쳐 만경산정상을 밟고 설화산정상까지 올라 건너편으로 하산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함께 가시지요. 붉은 원에 흰 숫자로 이어진 길은 오르기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이겠지요.
광덕사 입구 앞을 지켜보고 있는 근래에 세운 불상.
녹음 짙은 산길은 서서히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과 장군바위로 가는 길로 갈리는 곳입니다. 우리가 오를 길은 보기에서 급격히 가파릅니다. 결전을 앞둔 병사들처럼 행장을 다시 꾸리며 각오를 다집니다.
한 예쁜 자매님 옆모습 훔치려다 덜꺽 걸렸습니다.
오늘의 산행대장입니다. 안전수칙을 알려주니 여성대원들 시선으로 미소를 슝슝 발사합니다. 애고 나도 저런 화살 좀 맞아 봤음 원도 없겠다. ㅎㅎ 그런데 요것이 또 무슨 글자여 '하' 인지 '호' 인지 '흐흑' 인지..
행군복장 잘 갖춰는지 일일이 호명하며 점검 중입니다. 대장님 참 기억력도 좋다. 매일 보는 것도 아닐텐데.. 그 병사 이력까지 꿰차고 계시네.
초반부터 호된 신고식입니다. 가파른 계단이 끝도 안 보입니다.
계단만 보고 오르는데 작은 알루미늄 판에 숫자가 보입니다. 넌 뭐지?
아하! 알겠습니다. 계단 숫자입니다. 고무옷을 입은 나무계단 끝 번이 568번입니다. 어쨌든 땀은 머리에서부터 송알송알 맺혀 얼굴로 비 쏟아지듯 하는데 살았다 싶습니다.
계단을 오르고 보니 첫 쉼터입니다. 육각정이 있고 제법 넓은 마당에서 한 분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자선모금하나!
첫 봉우리 광덕산정상은 1.2km 남았으니 1.6km 정도 걸어왔습니다. 계단에 혼줄나고 보니 다음 길이 은근히 걱정입니다. 아, 이렇게 길을 두려워 한지가 언제부터인가 어느새 그럴 처지가 되었나 싶어 화들짝 놀랐습니다.
땀을 바람이 얼추 앗아간 뒤 다시 광덕산정상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오르는 길은 더욱 가팔라지며 이번에는 돌계단이 서서히 모습을 보이기 시작입니다.
계단이 안 보이면 이렇게 돌멩이 언덕입니다.
뾰족한 돌멩이들 때문에 하늘 한 번 못 쳐다보고 얼마나 올랐을까 햇쌀 하얗게 부서지는 넓은 공지에 밴치 두엇 거느린 푯말 셋이 덩그러니 서서 쳐다보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정표 님을 홀대해선 안 됩니다. 홀대했다간 큰 낭패를 당하는 지름길이니까요. 정상까지는 600m라지만 가는 길은 어떤 모습일까 모습에 따라 지옥과 천당으로 갈리니까요.
왜 안 나오지! 중얼거리는데 낼 기다렸나요? 소리에 고개들어보니 몽매에도 그립던 님이 나타나셨네 앞서 가는 남성이냐고요? 애고 망측해라 저 남정네가 아니고 바위라고욧!
이제부터 찾아 갈 곳은 1.2km 앞 장군바위 얼마나 우람하고 큰 바위이기에 종3품 아님 종2품 감투를 썼을까 궁금하네.
드디어 첫 봉우리 광덕산(廣德山669.3m) 산세가 넓고 덕망스러운 산인가 보다.
난 그냥 遠境의 산너울과 구름을 담고 싶을 뿐인데.. 그 배경을 마주하고 앉아 하염없는 분홍빛 티의 묘령의 여인,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설 줄 모르니 어쩔 수 없이 담습니다. 뉘신지도 모르는 여인이여 절대로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요. (正色)
여기까지 오르는데 나무계단 568계단에 돌계단 및 기타 계단 합산 1,000계단이 훨씬 넘었으니 쉬어야지요. 그런데 시원한 천금 같을 수박은 어느 님이 주신 거였을까? 대장님이 챙겨주셨는데.. 이제라도 고마움 드립니다.
이제 다시 만경산정상을 향해 4.3km의 대장정의 길을 떠날 채비를 합니다.
모두 한결같이 쌍지팡이를 짚고 가십니다. 저는 쓰는 요령을 몰라 집에서 하품만 하고 있지요. 근래에 하도 산짐승이 출몰한다기에 비상 제압용으로 쓸 생각에 샀던 것인데..
언젠가 몇 년 전 목화축제에 합산 하신 닉도 예쁜 자매님이신데 그 때는 몰랐습니다. 이리 산행을 잘 하시는 분인 줄 정녕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옷 빛깔도 곱고 세련된 것이 닉 만큼 예쁘시네요.
좋아하는 돌길 끝에 소머리가 눈을 뜬 채 놓였습니다. 누군가 산신제를 지냈나 !
〈將軍바위〉앞면
잘 생긴 지게꾼이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지고와 등산객을 상대로 팔고 있습니다.
장군바위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가졌다.고
허약한 젊은이가 깊은 산속을 헤매이다 허기와 갈증으로 생사의 기로에 이르렀는데 어느 곳에서인지 물소리가 들려와 소리나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큰 바위밑에 물이 뚝뚝 떨어져 신기하게 여겨 손으로 물을 받아 먹었더니 그 물을 먹고 얼마되지 않아 몸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변하였다고 하여 이 바위를 장군바위라 부른다고 한답니다.
<장군바위 뒷모습>
광덕산을 떠나서 도착한 거리는1.2km의 장군바위, 여기서 만경산은 3.1km 거리입니다. 지금 보니 장군바위는 내가 생각했던 우람하거나 엄숙함을 느낄 정도의 바위는 아닙니다. 종2품은 고사하고 종3품도 못됩니다.
나보다 뒤에 오던 일행이 저만치 앞섰습니다. 장군바위를 담는 사이에 앞선 모양입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종대로 가는 것을 보니 군복무시절 달밤에 행군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 때 왜 달밤에 체조를 했었지!
장군바위를 떠나 1km를 걸어온 이곳은 마늘봉쉼터랍니다. 봉우리가 마늘모양 아니면 산마늘이라도 자생하는 곳이 아니겠어요. 이름에는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거든요. 망경산정상은 2km 밖에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릴 겁니다.
만경산 가는 길 오름은 할석이 촘촘히 널부러진 길이요 능선은 낙엽폭신한 길이요 내리막 비탈길은 먼지 폴폴 날리는 길입니다.
한 봉우리를 지나기 전의 모습이지요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편으로 갈라지고 쪼개지는 석회암입니다. 어쨌든 봉우리는 바위입니다.
놓칠세라 부지런히 쫒아가다 보니 숲 짙은 고개에 서있는 푯말 앞에서 공론 중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자 좀 많이 떨어진 위치에 숨어서 줌으로 담았다.
내려가고 올라가고 산은 셋인데 봉우리는 열 봉우리도 넘는다.
옛날에 누군가 단칼에 두 동강으로 베었나보다.
낙엽 폭신하게 쌓인 산길에 이정표는 만경산은 이쪽으로 700m라고 일러준다. 일행도 놓친 내가 네가 없었다면 산중 미아신세 될 뻔했다. 애고 예쁜 것!
으스스한 오름 길에 멧돼지가 나오면 통돼지감이지만, 늑대라도 나오면 팔이고 어느 한 곳 물릴 각오는 해야겠지요. 이럴 때 스틱이 아쉽습니다.
부엽토 깔려 숲 깊은 능선을 지나면 나타나는 작은 봉우리는 바위봉우리입니다.
연이어진 작은 봉우리의 연속출연입니다.
연달아 네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고 넘어 오르락내리락 너울을 탔습니다.
마지막 작은 봉우리에 올라 뒤돌아봤지요. 마지막은 제법 가파르고 길었거든요.
조금 더 오르니 만경산정상이었습니다. 어쩐지 오름이 가파르고 길더라 싶습니다. 앞서온 님들이 앉아 쉬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정상 모습도 담고 주변도 둘러보고 주저앉을 생각입니다.
이정표를 보니 마지막으로 도전해야할 설화산은 6.9km 떨어져 있습니다
정상의 넓은 곳은 헬기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헬기장 끝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확 트였을 뿐 큰 감흥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올라온 안쪽 풍경입니다. 설화산으로 가려면 다시 내려가야할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벌새라고 부르는 이 녀석은 정확히 말하자면 생김은 벌새지만 나방의 한 종이라고 한다. 입을 보니 나선처럼 둥글게 말린 대롱이다 꿀을 빨아 먹을 때는 대롱을 곧게 펴 꽃샘에 넣고 빤다. 날개 짓이 얼마나 빠른지 셔터속도 700으로 촬영했는데도 날개모양이 선명하지 않다.
옛날의 어느 댁의 며늘님인가 따님인가 티 남 없이 참하고 곱다. 얼굴도 그렇고 자세도 그렇다 다만 옷 색깔이 좀 밝은 색이었다면 고운 얼굴과 자세가 바쳐주니 화사하지 않고 천박하지 않고 우아했을 것이다.
보는 이 편안하고 후덕한 얼굴이다.
만경산정상에서 1.6km 내려온 절골 임도라는 곳입니다. 올라올 때는 옆에 살짝 보이는 장군바위로 가는 길입니다.
오른편은 기존의 잡목을 베어내고 소나무를 심었다. 비가 적당히 와야 저 소나무가 잘 자랄 텐데 너무 가물어 걱정스럽다. 모두 잘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남의 자식이라 무관심하여 행여 그 아이가 부량아가 되면 그 해악 누구에게 오겠는가! 바로 내 아이요 당신의 아이에게 미친다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옛 시절에는 네 자식 내 자식 없이 보듬고 사랑했기에 존경받는 어른이 되었고 칭송받는 젊은이가 되었었지.. 교육은 너나없이 편애 편견 네 자식 내 자식 구별 없이 고루 모두가 모두에게 하는 것.
잠시 숨도 고를 겸 옆으로 바라보니 만경산정상이 아득하다. 이렇게 한 걸음 두 걸음 가는 것이 이렇게 먼 거리구나 새삼 놀랍다.
치솟아 하늘을 가린 삼림 숲은 기분이 저절로 좋아 진다. 모두가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와 수액의 덕분이겠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어디 그 뿐인가 아름다운 감성을 주고 잡다한 마음을 한없이 순화시켜 평안함을 주는 것도 엄청난 혜택이다. 죽어서도 우리에게 온갖 좋은 재료로 희생하지 않는가! 아름다운 나무여, 고마운 나무여..
만경산정상에서 어느새 2.8km를 걸어 나 이곳까지 왔구나 그런대도 설화산정상은 4.3km나 남았네. 앞서간 동행들 그 꼬리도 안 보이고 내 뒤에 5사람 어디쯤 오는지 어림도 할 수 없다.
한 봉우리 올라서니 묘가 있고 오래된 긴 의자가 있다. 앉아 쉬고 싶지만 앞에 일행이 있는지 다른 길로 빠졌는지 알 수 없고 혼자여서 누될까싶어 불안하다. 그냥 지나친다.
묘 앞을 지나 다시 봉우리를 향해 가파른 오름이다.
참 잘 생긴 반석입니다. 그 위에 신선들이 앉아 졸던 자리 아닌가 싶네요.
(305갈림길) 우측이 내가 가는 설화산정상이다. 설화산 전 1.1km 지점이다.
이제까지 못 보던 화강암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햇살이 심심한가보다 하얀 바위 면에 나뭇잎은 그렸네.
바위가 나타나니 그 많던 참나무 스리슬쩍 사라지고 소나무가 등장했다. 나로서는 반가운 징조다 얼마 안 있어 내가 좋아하는 바위봉우리가 나타날 것이다.
ㅎㅎ 좋은 것! 나무와 바위의 어울림이 예쁘고 풍경도 아름답고 그 이름 애기봉이란다. 그럼 설화산 애기라는 말인데, 아 알겠다. 설화산은 바로 엄마 봉우리요 큰 바위봉우리라는 것을..
설화산정상까지 0.7km,
애기봉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앞 봉우리너머보이는 것은 천안시가지겠지요 봉우리가 낮아서 그런지 뛰어내려도 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냥 바위등성일 텐데 나뭇잎이 쌓여 부엽토가 되어 살짝 덮었을 뿐이지만 쌓인 적색 솔잎을 밀고 올라온 것이 듬성듬성 섬돌을 놓은 양 구성도 아름답네요. 내 눈이 콩깍지에 씌었다고요?
힘들다가도 이렇게 바위길이 있으면 보약 먹은 것처럼 갑자기 힘이 납니다. 그냥 바위와 사이사이 소나무에 매료되어 즐거우니 힘든 줄 모르는 거예요.
아 내가 좋아 못사는 바윗길 중학 시절 왕십리 건너 응봉산을 오르며 즐겨 부르던 가곡 바우고개가 생각납니다. " 바우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응봉산 가기 전에 무학여중이 있었는데 동네 한 여학생을 무척 좋아했지요. 그녀가 다니던 학교가 무학여중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집 앞'도 부르고 싶네요. ㅎㅎ
소나무가 자라면서 바위를 쪼게도 바위는 그저 소나무에게는 내리사랑이다.
바위와 소나무, 소나무와 바위는 어쩔수 없는 죽마고우?
참말로 바위도 예쁜데 소나무까지 잘 생겼다. 선남엔 선녀라지..
에그, 이제 다 왔네 500m쯤이야 게 눈 감추듯 한 걸음이지..
어쩜! 이리 내 맘을 알까!
누가 봐도 길은 아니지요. 그러나 길입니다. 그것도 내가 좋아죽어 못 견디는 길이지요.
지칭 애기봉에서 나무사이로 본 설화산봉우리 끝이 내가 본 젖무덤처럼 소복한 그 선이 유려합니다. ㅎㅎ
설화산 봉우리 정상 전에 후진을 기다리는 대장, 보너스까지 뛰고도 헤맑은 얼굴 그 모습에서 초인의 모습을 봅니다.
여기를 오를 때 탈진기가 있어 정말 힘들었는데..
정상에 오르니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6.25전쟁 때 고지를 점령하면 국군병사가 꽂았을 그 태극기처럼 엄숙햐여 숙연해 집니다.
이리 험한 바위산정상에 평상이.. 좀 아이러니합니다.
태극기를 몸서리나도록 사랑하는 대장 산타모님" 그 몸과 표정에서 능히 알 수 있지요.^^
고운 모습에 나절로 옛 시인의 戀詩가 흥얼거려진다. "꽃밭에 앉아서"
《화원(花園) / 조선조 최한경(朝鮮朝 崔漢卿) 漢詩》
이 漢詩의 원문은 조선조 세종 때 강원도 관찰사와 이조참판를 지낸 언보(彦甫)'최한경(崔漢卿)'이란 분이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쓴 연시(戀詩)입니다. 이 연시는 최한경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 속 깊이 간직했던 '박소저'라는 여인을 그리며 지었다고, 최한경은 이 시를 자신의 문집 반중일기(泮中日記)에 화원(花園)이라는 詩題로 수록하였습니다.
"坐中花園 膽彼夭葉, (좌중화원담피요엽)
兮兮美色 云何來矣, (혜혜미색운하래의)
灼灼其花 何彼(艶)矣, (작작기화하피염의)
斯于吉日 吉日于斯, (사우길일길일우사)
君子之來 云何之樂" (군자지래운하지락)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이렇게 좋은날에 좋은날 이렇게,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좋을까,
臥彼東山 (觀)望其天 (와피동산 관망기천)
明兮靑兮 云何來矣 (명혜청혜 운하래의)
維靑盈昊 何彼藍矣 (유청영호 하피람의)
吉日于斯 吉日于斯 (길일우사 길일우사)
美人之歸 云何之喜 (미인지귀 운하지희)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푸른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장님 애 쓰셨습니다. 함께한 형제자매님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설화산정상에서 초원 아파트까지 1.8km를 내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국기를 보니 생각이 납니다. 어제 현충일을 보냈지요. 호국영령을 생각하며 꽃다운 나이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산화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잊지 말자는 다짐의 날이지요.
휘날리는 저 태극기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모두 내려가신 뒤 곱게 담아 온 것입니다. 태극기는 우리의 표상이자 호국영령의 기상이요 혼백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이 나라와 민족의 존립을 위해 당신의 고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생명을 북한과 중공의 공산당들을 물리치다가 초개같이 산화하신 선열들의 교훈입니다. 마땅히 받들어 경의를 드려야할 깃발입니다. 공산이년으로 인하여 남북으로 분단된 비극의 민족, 오늘의 우리는 지금의 자유와 민주를 지켜주신 선열과 앞으로 지켜나아 갈 이 나라 국군에게 진실로 감사하고 존경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두 태극기를 대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 세워 경의와 존경심을 함양해야 하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공산주의자들이 침략하거나 자생하는 일이 없도록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자유,정의,진리의 민주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나갑시다. 〈鄕香享〉
2017년6월4일 설화산 산행. 〈鄕香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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