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르지 않았던 험준한 설악산 흰 바위봉우리에 녹갈색으로 얼룩진 바위의 표면이 억겁의 세월에 더께만 켜켜이 끼었다. 그 형태가 마치 세상 온갖 풍파와 고초로 거칠고 투박해진 내 엄마의 손길로 각인되어 엄마의 눈빛에서 읽었던 설움이 가슴에 먹먹하게 잠겨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는데, 돌아가시기 며칠 전 외롭게 자리에 누워계신 엄마가 떠오른다. 가슴은 미어지고 볼을 타고 입으로 스며드는 찝찔한 눈물, 이 높고 험한 바위 봉우리에서, 이제는 뵐 수 없는 엄마가 생각이 날 때 마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나도 모르게 불러지는 노래를 가만히 불러 본다. 눈을 뜨니 설악의 안산만 아득히 보이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한잎 두잎 따 먹었다요.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버선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길도 없는 설악산 깊은 골짜기, 새벽이내 헤치며 기어오를 때 엄마생각 그리움에 눈물이 나면 나도 모를 서러움에 구름만봅니다.
한 발짝 두 발짝 옮길 적마다. 구천이 여기인가 저기이련가 어둠속에 잡히는 건 칼날 같은 바위뿐 어느 틈에 외로움 찾을 길 없네."
이분들의 호기심과 경탄의 모습에서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 통로(chimney)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가를.. 그러나 누구도 모르리 서곡에 지니지 않는 관문(침니)임을.. 이제 닥쳐올 무한 시련을..
암벽을 오르기 전 배낭끈을 조이는 나..
직벽의 침니를 자일에 의존하지 않고 오르며..
산을 타고 내림의 고난에서 또한 자연에서 한 맺힌 혈연의 정 잊을 수 있음에..
생사를 가를 수 있는 하강을 바라보는 어느 산우의 눈빛은 羨望 인가! 憂慮인가..
어둠으로 길을 잘못 들어서 본의 아니게 비공개 된 칼날 같던 저 암벽의 봉우리를 넘어왔다는 것이 믿어지지를 않는다.
길도 없는 험난한 입산금지지역을 벗어나 귀때기청봉 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너덜겅에서 어둠 속에 헤매고 생사를 양손에 쥐고 넘어왔던 암벽의 봉우리를 뒤돌아보니 그 아름다운 모습에 감회가 서린다.
귀때기청봉 능선 중간에서 다시 비경을 훔쳐보기 위해 들어선 골짜기는 자일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 자일과 장비를 점검하고 암벽을 타고 내려갈 준비를 한다.
암벽을 타고 내려와 맑은 여울을 보니 어려서 정릉골짜기에서 물고기를 잡아 항고에 찌개를 끓여 먹여주던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그 악연 모두 잊고 싶어 切血單身으로 이리 산속을 헤매이건만..
저 능선을 타고 넘는 구름 같은 내 인생, 얼마나 한 곳에 머물고 싶었던가! 이것도 내 타고난 운명이겠지만, 아쉬움도 있었지 그러나 후회는 없다.
<鄕香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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