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호이안구 시가지로 가기 위해 해안을 따라 한참을 달려온 바닷가 신흥도시에서 점심으로 월남쌀국수를 먹고 잠시 여분의 시간을 이용해 주변 마을을 돌아보다가 구경한 가정집인데 앞마당에 연못도 있고 짜임새 있는 아담한 2층집이다. 담밖에는 큼직한 분홍빛원석도 큼직한 야자수의 멋진 자태도 그 모두가 아우러져 운치가 있다. 어느 자매님들도 썩 마음에 드는 눈빛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정원이나 잔디밭과 가꿀 수 있는 꽃밭이나 텃밭이다.
기웃이 들여다본 앞마당의 모습은, 연못에 수련이 수를 놓은 듯이 운치가 있고 자연대리석 탁자에 분홍빛대리석걸상이 놓여 있고 정원의 섬돌의 배치도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이국의 주택이지만 가옥에서 주인의 미적 감각과 마음이 엿보인다.
측면이 너무 아쉽다. 저 흰담이 지금까지의 좋은 기분을 모두 앗아간다. 마음마저 단절시킨 저 담을 헐고 테라스와 여분의 터에 잔디와 벤치라도 있었으면 아니면 꽃밭과 텃밭이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을..
점심을 끝내고 다시 바닷가를 달린다. 달리는 차창으로 담은 풍경은 논녹 해변이다. 갈대인지 조릿대인지는 모르지만 풀잎을 재료로 만든 파라솔이 처음보는 매우 이색적인 멋이 있다. 버스는 달리고 가이드는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난청인 내가 알아들을 길이 없다. 다만 그림같은 곳이요 그림처럼 아름답다.
해변을 한참 달려와 첫 만남은 예전에 중국유민이 놓았다는 내원교이다. 내원교를 사진에 담으려는 찰라에 웬 고혹적인 여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내 옆에 그의 동행이 사진을 찍고 있다. 내원교만 찍으려다 뜻밖에 얻어걸린 횡재? 내원교를 건너니 호이안의 옛 거리라는 '쩐푸'거리이다. 매표소가 있고 거리는 차량이 다닐 수 없는 보행자의 천국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마냥 흘려서는 곤란하다. 오토바이가 있으니까
처음으로 눈이 들어온 이 집은 오래된 전통가옥이란다. 전통가옥은 주로 이층으로 나무로 건축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손재주가 있는 것 같다. 대다수가 수공예품이니까
후에 전통마을에는 관광온 서양인들도 많다. 그들의 손에는 물건을 담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다수 서양인들은 수공예품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나무뿌리를 살려 조각한 인물상이다. 베트남에는 바위표면에 뿌리를 드러낸 수종이 많이 보인다.
서양인들은 스스럼없이 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전시된 물건을 살펴 보는데 그런 그들이 부럽다. 나는 필요한 물건이나 목적이 없는 한 거의 상점 안에 들어서기를 꺼린다. 이것저것 소개하는 친절도 부담스럽지만, 들어갔다가 살만한 물건이 없어 그냥 나오게 될 때 느끼는 미안한 마음이 개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도 지금 겨울이란다. 그런데 나무를 보면 비록 이파리는 적지만 푸르고 화초나 야생화나 나무들이 꽃도 피웠고 열매도 맺혀 있다.
오래된 전통가옥이 주를 이루고 있는 쩐푸 전통거리에 한국인도 많지만 외국인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특이한건 서양인들은 대부분 쌍이거나 혼자 여행하는 반면 우리나라사람들은 패키지여행자들이다보니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것도 대충 넘어가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거리 가운데에 河川이 흐릅니다. 서울의 청계천을 연상시키지만, 이곳은 수량이 풍부한 자연적으로 흐르는 투본강의 샛강입니다.
큰길이나 골목길이나 걸어갈 때는 잘 살피지 않고 무심코 방향을 바꿀 때는 사고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어디에나 바이크는 달리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불시에 달려들지 모르니까요. 길가에 있는 집들을 보니 노란색칠을 한 집은 콘크리트 집이고 검은색 집은 나무로 된 집이다. 무엇이 다를까 호이안 옛 거리는 일본식 집과 중국식 집 그리고 베트남의 전통가옥이 어우러진 곳이다. 다양한 양식의 건물 만큼이나 힘들었을 베트남 국민들이었으리..
《광조회관/廣肇會館》
쩐푸거리로 불리는 이거리 입구에서 얼마 안 떨어져 있는 광조회관은 1885년에 지은 건물로 광조란, 우리 한자로 볼 때 넓게 갖춘다. 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광동회관 또는 '꾸안꽁사원으로 부르는데 이는 이곳에 사는 광동성 출신 중국인들이 모임을 갖는 장소인 까닭입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붐비던 이곳은 일본 에도 시대 도꾸가와 막부의 쇄국정책으로 점차 쇄퇴한 반면 화교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호이안 거리는 중국의 색채가 짙어졌으며 화교들은 친목을 목적으로 지은 이 중국양식 건축은 지붕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지붕(용마루)에 용의 형상이 어지럽게 장식되어 있고 수키와도 우리나라와 달리 안정감이 없습니다. 이 건물은 유비,관우,장비를 모신 사당 성격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인들의 향우회관입니다. 건물 입구 양 옆에는 사자석상이 있고 건물 문전 양편에는 봉황이 세워져 있습니다. 호미안에는 중국 상인들이 세운 복건회관, 조주회관, 경부회관, 하이나회관 등 모두 5개의 사원이 있는데 광조회관은 그 중 하나입니다.
《 자운경해 호의가가 /慈雲鏡海 好義可嘉》편액이 걸려있는데, 이는 "자애로움이 구름처럼 비치는데 바다와 같다. 화기롭고 의리있으니 마땅히 기쁘지 않은가." 뭐 그런 뜻이 아닐까! 편액의 글로 보아도 이곳이 祀堂이라기 보다 친목성이 강한 건물임을 알 수 있겠다.
관우사당으로 가기 전에 방형의 못을 온통 차지한 한 마리의 용과 두 마리의 거북과 한마리의 잉어가 조형되어 있다. 거북과 용은 자기(세라믹)로 만든 것인데 장인의 솜씨가 경이롭다. 물에 잠겨 있는 거북은 자기를 조각조각 붙여 무늬를 만든 수준급이다.
관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전면의 제단이다. 안쪽에는 관우을 4단에 걸쳐 관우를 모셨고 검은말과 흰말이 좌우를 지키고 있는데, 검은말은 삼국지에서 관우가 조조로부터 받은 적토마를 상징하며, 흰말 즉 백마는 적토마 이전에 관우가 타던 애마를 의미한다. 관습과 민족의 차이겠지만, 수많은 꽃다발이 있는데 현지 중국인들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중국관광객들이 바친 것인지는 모르지만 화려함에 앞서 난잡한 생각이 앞선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사당이 있지만 하나같이 정갈하고 범접할 수 없는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저절로 조신한 몸가짐이 앞서지 않던가..
전면 중앙에 쌍룡을 배경으로 관우를 모셨고, 그 아래 3단으로 각 단 마다 투명한 상자 안에 관우상이 각각 모셔져 있다. 또 하나의 작은 제단에는 바다 위에서 화교들을 보호해 준다는 티엔 허우 여신상이 모셔져 있다.
세라믹으로 무늬마다 조각조각 붙혀 만든 솜씨도 솜씨지만, 혼백을 모신다는 사당을 이렇듯이 치장하는 것에 이질감이 더욱 깊어간다.
용의 형상이 있는 옆에 조성되어 있는 못과 주위의 모양입니다.
벽에 그린 벽화에 '삼고모려三顧茅廬'란 글이있다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아닌 '삼고모려三顧茅廬'라, 그림에서 보듯이 '풀오두막집' 보다 '띠집'이 더 적절한 것인가 동자가 마악 도착한 유비, 관우, 장비를 맞이하고 있다.
元나라에서 明나라로 넘어 갈 시기 때 사람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에서 비롯된 문구로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는(桃園結義)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관우가 유비의 부인과 아들이 탄 수레를 호위하며 가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 계주개래/繼注開來》옛 것을 잇고 내일을 열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삶은 옥수수를 파는 이 여인은 베트남민족일까 한민족일까 다민족이 살던 곳이고 사는 곳인지라 엉뚱한 관심도 가져 본다.
이 거리의 노란색의 건물도 검은색의 목조건물도 대다수가 2층 건물이다. 목조건물은 베트남의 전통건물이고 콘크리트로 지은 노란 건물은 대부분 화교의 건물이다.
자전거에 만두인지 송편 같은 쌀떡인지 모르지만 팔기 위해 자전거 뒤에 실린 광주리에 펼쳐 놓여 있다. 베트남의 가정주부의 솜씨가 담긴 음식들을 이것저것 사서 먹고 싶지만 예민한 장 때문에 속이 안 좋아 구경만 할 수밖에..
광조회관 인근 좀 넓은 터 안쪽에 외국인 부조상이 하나 세워져 있다. 알고 보니 이분은 폴란드 사람으로 베트남의 문화유산인 "미선 유적, 호이안 마을, 후에 역사유적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큰 공헌을 한 "카지미에르츠 크비아트콥스키(kazimierz Kwiatkowsky 1944~1997) " 카직(Kazic)이라는 이름으로 폴란드에 알려진 건축가로 1980년대 베트남에 와서 베트남과 폴란드의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협력 사업에 참가하여 발굴, 연구, 출판에 공헌하여 1990년 호이안 옛 마을의 세계유산 등재에 기여 했지만 1997년에 후에에서 운명하였다.
호이안(hoi an)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남지나해 연안의 베트남 중부 투본강 하구에 자리를 잡은 인구 8만 정도의 작은 도시입니다. 이곳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거점이었으며 동남아시아의 중계무역도시로 번성했던 유서 깊은 역사도시라고합니다 당시 일본, 중국, 프랑스, 포르투갈, 인도 등을 대상으로 한 베트남의 최고의 무역항인 호이안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프랑스, 중국, 일본, 베트남식의 건물들이 그 시대상을 어렴픗이 보이며 융성했음을 느끼게 합니다. 지금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 호이안 구시가지는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840여 채의 가옥들이 거리 주변에 있습니다. 호이안의 쩐푸 거리와 강변의 박당 거리 그리고 타이옥 거리는 100년 전의 도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올드하우스라고도 불립니다.
이 올드 하우스들은 낡은 건물들이지만 관광지가 되면서 기념품점, 음식점, 수공예점, 화방 등으로 변신하여 지금도 당시의 문화적 분위기를 연상하여 엿볼 수 있습니다.
《메콩/Memong》
본체를 나무로 만든 특별한 자전거입니다. 이 자전거를 보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납니다. 해방(1945년) 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당시 우리나라 엄복동 선수가 나무로 제작된 자전거를 타고 대회에 잠가하여 일본선수를 제치고 1등을 했다는 그 자전거 이야기를 일간지 조선일보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 새삼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카페 같은 곳 실내전시용으로나 취향으로 소장가치가 있겠습니다.
메콩이란 상호의 점포 안에는 자전거 외에도 여러 가지 수공예품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자수를 놓은 이불, 방석, 옷가지, 등 고급스럽고 예쁜 물건들이 눈을 현혹시킵니다.
《소다 / S0VA》
한 땀 한 땀 수로 놓은 작품을 제작하는 공방(Embroidery)입니다. 안의 작품들은 촬영을 원치 않아 담지는 못하였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 훌륭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수예품도 있지만 유화도 있군요. 얼핏 보아도 색의 배분이나 구도 전체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아름답습니다.
작품이 진열된 것을 밖에서 살짝 담은 것입니다. 한 점에 보통 3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가는 작품도 있답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 수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트 소바'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사고 싶은데 높은 가격에 엄두가 나지 않나 봅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을 가로질러 투본강이 흐르는 잡화시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호이안 전통거리에서 골목을 빠져나오니 또 한 전통거리 웅웬타이혹 거리이다. 웅웬타이훅은 베트남 독립운동가로 1930년 프랑스에 대항하여 엔바이 총봉기를 주도하였으나 실패하여 사형당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 거리는 그를 기념하여 응웬타이혹 거리라고 하였습니다.
떤키 고가 (려가사/黎家祠)가 위치해 있는 거리이다. 오색초롱과 늘어진 보랏빛 이름모를 꽃드이 예쁜 소박한 거리이다. 떤키고가(려가사)는 좁고 긴 2층 건물인데 그 이름으로 보아 사당으로 생각된다. 응웬타이혹 정문이 있는 이거리는 '응웬타이혹' 거리로 향하고 후문은 투본강이 있는 박당거리로 나가게 되어 있다. 응웬타이혹 옛집은 1985년 호이안시에서 최초로 문화유산 판정을 받은 집으로 당시 실크, 차, 목재, 계피, 한약재를 판매하던 상점이었다.
떤키고가 (려가사/黎家祠)의 오벽의 모습이다. 푸른 띠와 향로와 탑 형태는 자기(ceramics)로 치장한 것이다.
건물의 목재가 대체로 검고 단단한 것으로 볼 때 흑단이 아니가 싶다. 현재 7대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 떤키 고가는 베트남, 중국, 일본의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조합된 건물로 평가됩니다. 격자식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베트남형식 건물이지만 육각형 천장과 대들보와 세겹 서까래는 일본 양식이며 나전기법으로 치장한 기둥과 자개장식과 한자 현판등은 중국방식이다.
떤키고가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다 명함, 증명사진 사인 지폐 등 이 수북하게 놓여 있다.
호이안 거리에서 떤키古家 정문은 호이안의 상인들이 들락거렸을 것이고 어느 정도 좁은 내부를 지나면 후문으로 나갈 수 있으며 바로 투본강이다. 전통거리에서 정문으로 들어가면 안마당이 있고 바로 후문으로 나갈 수 있는 건물이 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여러 가지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고 실내에서 올려다 보면 2층에 감실에 위폐와 향로 등을 모신 사당 형식으로 구며졌습니다. 후문은 정박한 배에 물건를 싣고나 하역하기 편리해 외국 상인들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투본강변 도로(박당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서 둘러본 풍경입니다. "hồng phúc" 큰 행복.이라는 간판이 있는 2층 건물 안 에는 햄버거나 아이스크림, 또는 차를 파는 곳인데 손님은 서양 사람들 뿐이다.
투본강의 모습
투본강가의 박당거리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유람선이 대부분입니다.
"메모리/Memory"
내부는 베트남형식 와관은 일본식에 지붕은 중국식이 복합적으로 형성된 가옥인데 옥을 주제로한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곳이다.
서양인들이 투본강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강가에 이젤을 세우고 캔버스에 옛 가옥을 그리고 있는 여학생? 들이 주변 풍경을 한층 돋보여 줍니다. 프랑스의 통치하에 한 영향일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내 모습을 하나 그려 달라고 청하고 싶었다. 이들이 보는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싶어..
담벼락에 둥근 표현은 까닭이 뭘까. 마치 복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릴 것만 같네. 실제로 福을 염원하는 주술의 의미일까..
쿠기인지 피자인지는 모르지만, 표정으로 보아 가게의 이름처럼 큰 행복은 아닌 것 같다. 인류의 3대 기쁨인 '사랑한는 것, 먹는 것, 보는 즐거움' 이 3대 행복에서 먹는다는 것도 그 중 하나이기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붙어 있는 이 건물들은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둥 같은 벽을 보니 붙여서 따로 지은 건물이다.
박당B거리이다. 지붕에 심은 나무뿌리가 주렴처럼 아래로 늘어져 있다.
종이로 만든 궁궐, 인력거 용다리 연꽃, 잠자리비행기, 돛을 올린 범선, 베트남의 청춘들 들 각가지 모양으로 만든 종이공예품 그 색깔 참 이쁘기도 하다.
베트남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서양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결코 가벼운 체중도 아니 건 만 걸어다니며 여러 가지 물산들이나 풍습 살아가는 모습과 풍경을 보며 체험하며 즐기지만, 한국인은 타인의 동력으로 힘들게 움직이는 인력거와 같은 것을 타는 멋으로 관광을 하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이니 어쩔 수 없이 타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보이는 그대로 잡화점이지만, 울긋불긋 화려하기 그지없다. 젊은 시절에는 무언가 사고도 남았으련만.. 그런대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인력거가 손님을 태우면 일정한 코스가 있겠지만, 내 느낌은 이곳 전통거리를 모두 헤집고 다니는 것만 같이 지루하고 쑥스럽기만 하다.
그냥 앞으로만 가니 보고 머물고 살펴보는 기쁨이 없다. 어디를 가든 다시는 이런 것은 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도 경험이리..
인력거에서 해방되니 더없이 마음이 후련하다. 그 기분으로 강가 박당 거리를 따라 내려가 본다.
유람선 사이에 낀 작은 배를 강으로 띄우려는지 한 베트남 여인이 그 여린 몸매로 양 옆 유람선을 발로 밀어 사이를 넓이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남녀 모두비대한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특히 여인의 몸매는 비너스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대도 강인한 기운이 있다.
박당 거리를 동쪽으로 투본강을 따라 좀 내려가니 시장이 나온다. 바로 호이안 시장이다.
쌈을 먹을 수 있는 채소도 보이는 군요. 유람선을 타기 전에 20분의 여분 시간을 활용하여 일정으로 가볼 수 없는 곳을 돌아보고 있는 중이라 시각적으로나 행동 즉 걸음을 빨리 놀려야 한다.
과일이 풍성하고 매우 아름답습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나나,와 망고 뿐입니다.
시장 끝머리입니다. 캄남다리에서 쩐훙다오 거리로 이어지는 호앙디에우 사거리입니다.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하나의 줄기가 아닌 여러 갈래의 뿌리가 하나로 뭉쳐진 기묘한 나무입니다.
캄난다리 풍경입니다. 이 다리 저편 세상이 궁금하여 다리 건너까지만 가보기로 마음 먹고 건너가는 중입니다.
캄난다리 중간에서 바라본 왼쪽 풍경입니다.
캄난다리 건너서 다리 끝에서서 바라본 우측 풍경입니다.
캄난다리 끝에서 바라본 다리아래 풍경입니다.
캄난다리 우측 아래의 모습. 투본강 따라 이어진 강변길이 발길을 유혹한다. 하지만 다시 캄난다리를 건너 일행이 모이기로 한 유람선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무궁화 아닌 무궁화를 닮은 꽃.
2016년2월25일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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