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녘에 일찌감치 제천을 나섰다. 오늘밤 자정에 술루님의 이끌림 받아 설악의 비경길을 오르기 위해서다. '술루' 요즘 들어 나의 관심의 중점이 된 분이다. 텁텁하고(산행하는 모습만으로) 말수가 없고 표정이 없으며 재미있는 구석이라고는 한 곳도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끌리는 분이다. 외모는 외람된 말이지만 羅漢 같지만 풀어내는 감성은 올올이 엮은 비단처럼 섬세하고 쇠소깍 물빛처럼 곱고 아름답다면 표현이 될까! 아니다 그 과묵한 심성의 깊이를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 앙성온천을 지나 감곡톨게이트로 가는데 큰 산불이라도 난 것인가 싶게 앞산 그 너머 온통 번진 붉은 빛에 놀라 차를 길가에 세우고 자세히 보니 '석양'이다, 서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을 온통 덮은 구름이 동쪽으로 몰리면서 동트는 아침처럼 서편하늘이 온 세상을 태울 듯이 붉게 타오른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동트는 아침 햇살보다, 혼신을 다해 서편을 불사르는 노을빛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든 것은 아마도 새로 시작한 갑자(乙酉年)를 맞이하던 때였을 것이다, 저문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닌가,
날씨가 너무 좋은날, 파란하늘가 흰 구름 한 점, 관객도 없는데 혼자 제멋에 겨워 요술을 부린다. 토끼도 되었다가 달콤한 솜사탕도 되었다가.. 휠체어에 앉아계신 어머니께 '엄마 하늘 좀 보세요, 바다처럼 깊고 파랗고요. 구름이 파도처럼 하얗게 몰려왔다 몰려 가고요. 예쁘죠? 하고 말씀드리니, 아주 천천히 "조~아" 단 두 마디로 고개를 주억거리신다. 색다른 음식을 입에 넣어 드리며 맛있지요? 여쭤도 '조~아' 단 두 마디에 고개만 끄덕이시는 것처럼, 사람은 나이 들면 언어에서 행동에서 단순화 되는가보다,
이제는 나도 기억상자가 제 기능을 못하나보다. 좋으면 그저 좋을 뿐 감칠맛 깊은 수식어라도 끄집어내려고 찾아보면 도무지 어디에 저장했는지 상자 속만 뽀얗고 눈만 가물거린다. 이젠 무엇을 혀에 감기도록 묘사한다는 것은 글렀나보다 그냥 번거롭고 벅찰 뿐이다. 난생처음 대하는 아름다운 풍경이건만, 우리 엄마처럼 입으로 나오는 감탄은 그저 '아! 좋아.... '
<붉은 선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한밤중 02시경 감시초소 몰래 잠입하여 내 발자국 남기고 온 길 >
지난 한 갑자의 연(緣)들을 접고, 또 한 갑자를 맞은 세상, 그 인생의 길로 들어서며 지난 서러움 잊고 새로운 희망으로 찾은 자연의 산실인 산과 들의 길목에서 다가온 초목들이 예전의 풀과 나무가 아닌 저마다의 개성과 신비로움으로 견주어 질 수 없는 특성으로 물과 돌멩이들과 어우러져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꾸미는 경이로움에서 희망의 눈을 뜨고 신들의 경연장을 본다. 지난날 산다는 것에 더러 힘이 부칠 때 의지하고자 산사에서 교회에서 또는 토착신전에서 구원의 빛을 보고자 아무리 청해도 볼 수 없었던 신의 존재를 길가의 하찮게 보이는 풀포기에서 기괴한 바윗돌의 형상에서, 심산유곡 깊은 연소(淵沼)의 맑고 푸른 물빛에서 유영하는 한 점 구름의 해맑음에서 틀어지고 꺾어 뻗어진 나뭇가지들의 형언할 수 없는 몸짓에서 전능하신 신을 뵙고 겸허히 나 또한 자연의 한 티끌이 된다. 오늘도 감히 구린 입으로 읊을 수도 없을 미지의 신성한 자연의 경연장을 잠시라도 엿보여주고자 선계의 문을 열고 가교를 놓아주는 산행대장 술루님 따라 미밀 통로를 거쳐 신들이 빗어 놓은 장원으로 몰래 스며든다.
하루의 피로를 치유해야할 시간에 수 백리를 달려와 도깨비의 외눈처럼 이마에 섬광 번득이는 불 밝혀 어둠을 열며 탄광의 막장 같고, 석회동굴의 비좁고 치솟은 구멍을 기어오르듯이 가파른 바위틈을 헤집고 오르며 우리는 무엇을 찾아 어디로 가고 있을까!
칠흑 같은 탄광갱도의 막장처럼 수목도 바위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은 도깨비의 이마에 큰 외눈도, 부처 이마의 백호(白毫)도, 다 그 능력 밖의 일인가 보다. 손은 자연스럽게 더듬이로 진화되어 촉각을 세운다.
울창한 잡목을 헤쳐 가며 20여m 정도 어둠속으로 들어서니 바위로 성을 쌓은 듯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 바위들을 기어오르고 나니 할석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산이다. 손과 발을 옮길 적마다 그 할석들이 밑으로 굴러 뒤따라 오르는 분들로 하여금 긴장케 한다.
할석으로 이루어진 벼랑을 사활을 걸고 올라와서 빠져나오는 순간입니다.
여명이 깃을 내리는 시간, 저 깎아지른 높은 곳을 향하여 열린 엄중한 관문 앞 석대(石臺)에 올라서서 무의식적으로 내려다본 그곳에 우려의 기색이 서린 시선들이 선두를 바라보고 있다.
대장 술루님은 배낭에 밧줄을 등지고 안전장치도 없이 이미 침니(사람하나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바위틈. 마치 여물통처럼 생겼다.)를 타고 올라가 동아줄을 내려놓았다. 나는 저 줄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대장처럼 나도 그냥 기어오르리라..
내 앞서 오르는 여인이 뉘신지 아직은 몰랐다. 알았을 때 님은 경이로운 산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요즘 속된 말로 남녀를 통틀어 짱이다.
이분들의 호기심과 경탄의 모습에서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 통로(chimney)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가를.. 그러나 누구도 모르리 서곡에 지니지 않는 관문(침니)임을.. 닥쳐오는 무한 시련을 몰랐네.
이제 그 짱의 뒤를 이어 내가 오르기로 마음을 정했다. 아직까지도 앞서 오른 이가 한갓 고운 여인으로 보였는데, 거침없이 올랐으니 명색이 남아인데 미적거릴 이유가 없다. 사람 하나 기어 오를 수 있는 구유처럼 생긴 바위틈으로 기어오르기 위해 배낭허리띠를 조인다.
바위틈새를 오르는 하단에 틈이 좁아 배낭이 순조롭게 빠지지를 않아 오르는데 여의치 않았지만, 그 구간을 통과하니 오르기에 수월하였다.
자일에 의지하지 않고 통과한 첫 구간 침니. 대장 술루님이 내 뒤에 오르는 여 산우를 자일로 끌어주고 있다. 그런데, 시키니 형제님은 내 뒤에 따라오르는 자매님의 예쁜 엉덩이는 살짝 감춰놓고 나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드러내 놓으셨다. 그래도 즐겁다. 누가 이렇게 보기에도 좋은 내 뒤를 담아보여주겠는가, 아직까진 실한 것 같아 기분도 나쁘진 않네요~~. ㅎㅎ
그 좁은 바위 틈을 타고 오르고 보니 굵은 낚시줄을 열심히 당기고 계신 분이 계시다 무엇을 낚고 계실까!
이 높은 산상에서 무얼 낚으십니까, 덤덤히 고개를 돌리며 말씀하신다. '인어를 낚는 중이요.' 그 인어는 어디에 쓰시려구요. '놓아 줍니다.' 아, 이 분도 사람을 낚는 '베드로'같은 분이시구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올라오는 노랑 빛 예쁜.. 인어아가씨, ㅎㅎ
일차관문을 통과하니 전망이 좋다. 원경(遠景)을 돌아본 풍경사진이지만, 소나무가지 사이가 가깝고 전체적으로 구성이 맘에 안 든다.
바로 내려다보이는 골짜기에 예정되었던 코스와 거쳐 가기로 되어 있던 소승폭포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어둠으로 인해 길을 잘못 들어서 예정에도 없던 고난도 리지를 경험하고 있다. 예정을 벗어나 예기치 못한 경험과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고 즐거운 일 아닌가.
시키니 님의 사진은 잘 나왔는데, 내 사진기로 담은 사진은 너무 푸른 끼가 짙다. 아띠 산행을 다니며 수도 없이 부려먹었더니 나처럼 고물이 되었나보다. 그래도 함께한 소중한 추억으로 곰삭은 널 아끼고 사랑해...
설악의 산세도 웅장하고 이끌리지만, 그 위에 피어오르는 구름이 더 마음을 헤집는다.
앞서 올라온 대단한 두자매님이 다음 코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분은 '가시사랑' 또 한 분은 '헤즐러' 오늘 우리는 이 두분의 도움을 받지요. 한 분은 궂은 일 챙겨주시고, 한 분은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보전하는데 도움을 주신 '가시사랑'님(빨간 재킷) 정말 멋진 분입니다. 좀 예쁘게 담아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적으로 기후의 변화가 있으니 정직한 사진기의 잘못은 아니고 변명이라면 산중의 아침 이내로 인해 더욱 푸른 끼가 나타나는 시각이기에..
첫 관문을 통과한 기념을 한다. 정작 기념은 내가 하고 나는 없네.
아,
나도 저토록 아릿다운 여인들 곁에 서고 싶다.
福 많은 이, 따로 있네. 세상사 일은 나에게 늘 안타까움이어라.
어긋나는 꿈길처럼.. ㅎㅎ
두 번째 오를 봉우리. 이제 이 봉우리의 정수리에 올라서면 우리의 산행길이 어떻게 펼쳐질까. 험할까, 순조로울까, 오고갈 수도 없는 최악일까 장비는 있을까, 그러나 은근히 헬리콥터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타 본지가 몇 십 년도 넘는 군 시절이니까,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헬기만은 사양해야겠다.
대장 술루님을 선두로 모두 10명 이든가, 나머지 일행은 우회를 했다는 총무 헤즐러님의 말씀, 선두로 오르지 않았다면 나도 우회했을까, 잠시 가져본 생각의 결론은 , NO,
손으로 잡을 틈새가 살아있어 대체로 오르기에 수월했다. 그런데 자일로 하강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구는 고 예쁜 엉덩이에 앵글을 두었지만, 나는 도덕적 차원에서 헤즐러님의 옆모습을 신사답게 찍어 드렸다. ㅋ
저 박진감 풍성한 궁둥이의 임자는 누구일까 안사람 되는 분의 웃음소리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네. ㅎㅎ
봉우리에 올라서니 한 곳에 모두 모여 앉을 곳이 없도록 협소하고 칼날 같은 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두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그 어느 쪽도 사방팔방 깎아 논듯 절벽이다. 아, 이제 어쩌지.. 건너 편 봉우리에 있는 대장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그냥 주변구경이나 하자.
두 번째 관문을 오르기 전에 둘러본 풍경이지만.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싶어. 이리저리 둘러본 풍경.
하단의 음영을 밝게 하려면 상단이 하얗게 탈색되고. 상단을 살리면 하단은 암흑이니..
하단에 바위봉우리를 살짝 올려 담았는데 먼 산들이 햇볕을 받아 서리맞은 양 멋있다.
나는 구름을 엄청 좋아한다. 유유히 떠돌다가 몸이 무거우면 물 필요한 곳에 시원하게 소변보듯 쏴아 내려 갈증을 달래주고 가벼운 몸으로 유유자적 흘러가며 토끼도 되고 고운님의 얼굴로도 변신할 수 있는 네가 나는 좋아 죽겠다.
대장 술루님이 가르쳐 주었는데, 장대한 저 산의 이름을 까먹었다
그 시각에는 궁금했지만, 좋으면 그걸로 족하지 이름은 알아서 무엇에 쓸까 싶은 은연중 깔린 생각은 아닐까 경계해야할 버릇이다.
우리가 내려 가야할 끝 봉우리는 낭떠러지다. 자일을 설치하고 대장 술루님이 선두로 내려가기위해 급조한 하기스를 걸치고 있다. 나는 긴장하는데.. 저 분들은 웃고 있다, 아마츄어와 프로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가시사랑'님의 노련한 하강지식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되고 그의 도움을 받는다. 정말 저 세 분이 미덥고 고마운 마음이 솟아난다.
시키니 님은 건너 편 봉우리 대기지점의 나와 채영님을 담고 나는 그를 담는다.
네 발로 기어 봉우리에 올라서보니 칼날같은 바위 능선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쪽 봉우리에서 저쪽 봉우리로 가려면 좁은 바위능선을 말타듯이 앉아서 넘어가야 한다. 시키니형제님이 담은 이사진을 보니 그 능선을 넘어가는 헤즐러자매의 얼굴이 담담하기 그지없는 것에서 그 예쁜 얼굴이 일순 보기조차 두렵게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은 참으로 담대하고 섬뜩한 면이 있음을 보는 순간이다. 모든 동물의 암컷들이 이러한 면이 없었다면 종족보전이 가능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성애란 그 무엇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인하고 날카로운가 하면 숭고한 사랑이라 하겠다. 나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맨 끝에 앉아 있는 내 얼굴을 보니 두려움에 근심이 가득하다.
한사람 두 사람 나를 떠나더니 내 앞의 채영 자매님마져 떠나니 내 뒤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 될 수가 없다.
저 떨리는 하강지 끝봉으로 가기 전에 먼산도 보고 구름도 본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동요도 부른다.
"저 산 넘어 새파란 하늘 아래는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만은 천리만리 먼 땅에 떠난 이 몸은 고향생각 그리워 눈물 짓누나,
버들 숲 둔덕에 모여 앉아서 풀피리 불며 놀던 그리운 동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생각사로 내 고향이 그립습니다."
나는 바위를 참 좋아한다. 오묘하고 기묘한 형상의 바위를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수억만 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우리가 거쳐야할 귀때기청봉에 너덜겅이 이색적인 문양으로 비친다.
홀로 남은 나를 위로라도 하시는 걸까, 채영자매님이 돌아보고 미소를 보내 주신다. 하강을 걱정하던 채영자매님은 여유롭게 잘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내려가서 듣게 된다. " 대장님의 수제자감이라고,"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한사람 두 사람 그렇게 무사히 하강은 진행되고 있다. 모두 심혈을 기울여 도와준 대장 술루님, 가시사랑님, 그리고 노마지지님 이 세분과 대장님 뒤에서 노심초사 했을 후미를 보아주신 분인데 닉은 모른다.
이제라도 피할 수만 있다면 꼭 피하고 싶은 좁은 능선을 말 타듯이 앉아 엉덩이를 들썩이며 건너서 하강지점인 건너 봉우리로 건너왔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위하여 로프로 하네스를 만들어 양 다리를 끼우는 안전장치를 해주신 '가시사랑'님, 하강한 모든 산우들을 안전하게 하강시킨 열정이 넘치는 멋진 분이시다. 처음 보는 하강기(전에 8자형 하강기를 다뤄 본 적은 있다)에 어리둥절하여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건너편 아래 우리를 쳐다보고 계시는 님의 모습이 하강을 앞두고 하강기를 꼭 붙잡고 있는 내 모습보다 더 애를 태우고 있는 듯하여 미안스럽다. 뉘실까! 나는 어떻게 내려 왔을까! 기억도 없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다만 생각나는 것은 건너 봉우리 위로 아침햇살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내 뒤를 이어 시키니 형제가 하강하고 있다. 경사진 좌측 골짜기로 쏠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려고 사람이 하나 매달린 자일을 손으로 잡고 올려 애쓰는 대장 술루님, 미덥고 든든하다. 이제 두 분 베테랑만 남았다. 누가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까싶어 열심히 위만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매님이 먼저 내려오시겠지,
잠시 바위로 눈을 돌려 안구의 피로를 덜어주고 하늘을 본다. 여기까지의 일들이 일순 바람처럼 지난다. 그러나 마음을 놓기에는 아직 이르다. 저 위 두 분을 믿지만, 그래도 안착하기 전에는..
나는 자연을 사진에 담을 때 사람이 합성되는 것을 거부한다. 연유를 알 수없는 반응이다, 다만, 까닭이라면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으로만 각인된 사고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그 집착 같은 반응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저 산상의 두 남녀를 보라 그렇게 자연과 일치되어 조화를 이룰 수가 없다. 더없이 아름답지 않은가! 뭇사람은 그 멋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암봉을 타고 오르는 것은 아닐까.
조금 시간이 걸린다. 과정을 모르는 나는 궁금하기만 하다. 막연히 두 분이 서로의 안전장치를 돕고 있겠지..
줌으로 보니 하강기를 형제님이 들고 있고 바위에 고착된 고리에 연결된 자매님의 슬링줄이 보이는 것 같다.
어, 뭐지! 하강기를 '노마지지님이 걸고 있네, 그럼 이 어려움을 종결짓는 사람은 '가시사랑'님이라는 얘기인데.. 의외로 상식 밖에 일이 아닌가. 여인을 남겨놓고 남자가 먼저 내려온다는 것은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만큼 '가시사랑'님이 담대하고 실력이 월등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대단한 분이다. 저 봉우리에 혼자 남는 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후미를 챙기시던 '운정'님 전혀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어려운 산행에서 만에 하나라도 파생될 수 있는 우려를 염려한 것이리라.. 더구나 이곳은 출입금지구역이 아닌가!
드디어 '노마지지'님이 하강을 한다. 하강의 하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자세가 좋아 보인다. 주신 도움 고맙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분 '가시사랑'님만 봉우리에 우뚝 서 있다. 지그시 내려보는 저 눈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가시사랑'님은 하강기를 로프에 걸고 있는데, 대장은 우리가 하강할 때와는 너무도 상반된 모습이다. 마냥 태평스럽다. 이 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이제 오늘 산행의 절정의 묘미를 장식할 마지막 하강(下降)을 통해 모범을 보이는 퀸의 하강식이 시작되었다.
저 안정감 넘치는 자세와 멋진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황홀케 한다. 오늘 산행에서 단연코 퀸이라 하겠다. '가시사랑'님 그야말로 '으뜸'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사히 내려온 '가시사랑'님의 해말간 소녀의 얼굴처럼 청순한 표정을 보는 순간 어려웠던 하강이 언제였던가 싶게 한 순간에 잊게해 주는 아름다움에 잠시 눈길이 머문다.
밧줄을 사리고 있는 대장 술루님의 얼굴에 고심초사가 역력하다. 나 같은 얼치기를 포함해 많은 형제자매님 모두를 안전하게 하강시키느라 얼마나 마음을 쓰셨을까! 한량없는 고마움과 저 로프의 무게가 천근의 무게로 내 가슴에 와 맺힌다, 드릴 수 있는 건 그저, 고마움,
단 한번 답사했던 알려지지 않은 길도 아닌 길을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되짚으며 찾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선도하는 대장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지나오면서 겪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침니를 타고 올라선 슬랩에서 대장 술루님이 저 좌측 능성이 우리가 가려던 곳이고 저 아래가 소승폭포라고 말씀주신 곳과 우리가 어둠으로 잘못들어서서 멋모르고 오르던 할석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며 회상에 젖는데 그 모습을 고맙게도 나도 모르게 스키니형제님이 추억으로 남겨주었다.
이제부터 가는 숲은 우리가 거쳐 감으로 해서 이름 하여 길이 된다. 얼기고 설겨 틈새도 없는 잡목을 헤치고 조각난 바위를 기어오르며 길을 열어 간다.
아무도 오르지 않았던 험준한 설악산 흰 바위봉우리에 녹갈색으로 얼룩진 바위의 표면이 억겁의 세월에 더께만 켜켜이 끼었다. 그 형태가 마치 세상 온갖 풍파와 고초로 거칠고 투박해진 내 엄마의 손길로 각인되어 엄마의 눈빛에서 읽었던 설움이 가슴에 먹먹하게 잠겨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는데, 돌아가시기 며칠 전 외롭게 자리에 누워계신 엄마가 떠오른다. 가슴은 미어지고 볼을 타고 입으로 스며드는 찝찔한 눈물, 이 높고 험한 바위 봉우리에서, 이제는 뵐 수 없는 엄마가 생각이 날 때 마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나도 모르게 불러지는 노래를 가만히 불러 본다. 눈을 뜨니 설악의 안산만 아득히 보이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한 잎 두 잎 따 먹었다요.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버선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길도 없는 설악산 깊은 골짜기, 새벽이내 헤치며 기어오를 때 외로움에 엄니생각 눈물이 나면 나도 모를 서러움에 구름만봅니다.
한 발짝 두 발짝 옮길 적마다. 구천이 여기인가 저기이련가 어둠속에 잡히는 건 칼날 같은 바위뿐 어느 틈에 외로움 찾을 길 없네."
<鄕>
오늘 저 산을 몇 번을 보는지 모르겠다. 여명이 들 무렵부터 여물통을 세워 논 것 같던 침니를 타고 올라선 바위봉우리에서부터 줄 곳 보며 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웅장하고 넉넉한 산세에 질리지도 않는다.
큰 나무 숲길을 나오니 다시 가시나무와 잡목이 바지자락을 휘어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바지를 걷어 올려보니 듣긴 상처가 온 정강이에 불규칙한 문양을 붉게 수를 놓았다.
등성이의 바위들이 어찌 저리 백상아리의 이빨을 닮았을까 그래서 우회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회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
다시 잡목우거진 덤불속으로 들어간다, 애고, 정강이 뜯기느니 차라리 바위봉우리에서 마음 고생하는 것이 났겠다.
입맛이 따로 없다, 나무뿌리 든 풀뿌리 든 무엇이든 붙잡고 올라서야할 판이다.
발도 잘 디뎌야 한다 돌이든 부토든 자짓하면 무너져 벼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벼랑이든 암벽이든 발 가는 곳이 길입니다.
수평 아니면 수직절리 된 바위들이 막아선 저곳을 또 어떻게 넘을까, 곤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지만, 일찍이 이런 산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더욱 새롭고 투지가 솟는다.
군복무 시절에도 이런 유격을 받은 적 없다. 그래도 그 때는 힘들다 했는데..
나는 고난을 즐기느라 이 고생이지만, 지리산의 빨찌산들은 부모형제 처자식 버려가며 이런 고행을 왜 했을까 그 이념이 참으로 무섭구나!
지난 군시절의 고행을 지금은 그리움으로 즐긴다. 시키니 님이 나를 담아준 사진
잠시, 뒤돌아보니 시키니형제님, 앞서 간 줄 알았는데, 언제 뒤로 갔었을까? 길이 없으니 님들마다 가는 곳이 모두 길이니 험한 곳을 질러 왔는가 보다.
뒤돌아보니 대청 중청 소청봉이 한눈에 보인다.
귀때기청봉기슭을 향해 팔부능선 상에서 숲을 헤쳐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암벽을 기어 오르며..
반바지를 입고 정강이만큼은 단단히 갈무리를 한 그 까닭을 누구보다 잘 알지요. ㅎㅎ
지난 번 산행 때 토왕성계곡에서 나만큼이나 많이 뜯기셨는가보다.
눈은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참으로 눈빛이 선하십니다. 자연의 순수 그대로의 품성이 엿보입니다.
녹색의 싱그러움을 담았을 뿐인데, 숲의 요정이 담겼습니다.
저 봉우리에서 생사를 같이했던 님들은 모두 앞서 가기 바쁜데, 무슨 미련으로 나만 이렇게 그 봉우리를 못잊어 돌아보는지..
다시 힘겹게 지나온 발길 흔적없는 숲을 담았다. 앗, 이번에는 요정이 여럿 담겼네, 요정은 다 어여쁜가 보다. 미소도 곱고..
송이처럼 생겼는데, 빛깔은 더욱 곱다.
엄청, 피곤하고 지치게 하는 길인데, 웃는 것은 고난을 즐길 줄 아시는 형제님이시다. 준수한(?) 얼굴에 아쉽게도 나뭇가지가 심술을 부린다.
녹색 싱그러움이 은은하신 자매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 높은 곳 귀때기청봉을 오르기 전 마지막 일직선의 암벽을 혼신을 다해 오르고 있습니다.
암벽을 오르고 보니 귀때기청봉은 거인처럼 장대한 모습으로 우뚝 앞을 가리고 있습니다.
칠흑처럼 어두운 깊은 밤에 장수대 지나 출입금지구역의 미지의 숲으로 숨어 들어서 골짜기와 바위봉우리들을 넘고 넘어 많이 힘들게 거쳐온 곳인데, 지금은 봄햇살처럼 포근함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처럼 생긴 저 봉우리들의 끝날부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니 어느새 꿈만 같아 미소를 짓는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숲을 무사히 통과한 기쁨을 만끽하는 대단한 자매님을 통해 나도 그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나 언제 다시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을까 싶으니 아쉬움도 남습니다.
기념도 남기고..
어쩜, 그리 바위를 밝히십니까? 남정네 이상으로 담대하신 그 외모는 천상 여인이건만..
엄마만 강한줄 알았는데, 여인들은 모두 강하다는 걸 산행에서 보고 느꼈네.
이제 너덜겅을 향해 그물망처럼 얼기고 설긴 나뭇가지를 또 뚫고 나가야 합니다. 저 곱고 여린 몸으로 어쩌지.. 그러나 이런 나의 걱정은 기우로 끝나고 맙니다.
나도 그랬지만, 오히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자매들이 아닌 형제들이었습니다.
한 치의 틈새도 허용치 않는 이 난감한 숲을 어떻게 헤쳐가야할지 대책이 없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홀로 웃자란 마가목나무가 한들한들 마냥 여유롭습니다.
다시 고개를 바로 하고 본 앞의 상황입니다. 기어서도 갈 수 없고 서서도 갈 수 없고 쪼그려 앉아 나갈 수도 없이 뒤엉킨 나뭇가지가 내 몸을 가두고 있습니다. 얘들아 나 한테 왜 이러는데!
겨우 빠져나온 후 악몽처럼 진저리를 치며 돌아봅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속이 상합니다. 그 거부하는 가지들을 얼마나 많이 상하게 했는지 마음이 편치를 않습니다.
수많은 이 너덜겅들은 태고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바위봉우리였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에 절리 되어 무너져 내려 지금의 돌더미로 쌓여 또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을 주고 있습니다.
너덜겅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우리 일행이 자일로 내려온 하얀 바위봉우리가 이제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대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도 남습니다. 역발산도 무색할 힘을 지니신 듯 지칠 줄 모르는 대장 술루님, 손을 만져보니 상 노동꾼의 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크고 거칠고 억셉니다. 그 손에서 수많은 이의 안전을 일궈내고 주옥같은 글이 여울진 물결의 편린처럼 반짝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북능선 귀때기청봉을 향해 너덜겅지대를 오르고 있습니다.
고사된 나무의 아름다움도 눈에 담고 아까와는 달리 마음에 안정이 찾아듭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건 억겁 세월의 더께입니다. 바위에 훈장처럼 수놓은 이끼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자리했습니다.
구름과 안개로 덮인 틈새로 파란 하늘이 아름답고, 경사지게 쌓인 너덜겅을 오르는 여인의 모습에서 서정이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산에 산에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무리지어 핀 꽃 '아띠'라네.
고사목 그 너머 귀떼기청봉이 보이네.
칼날처럼 얇고 날카로운 미지의 저 세 암벽의 봉우리, 내 잊지 못하리, 님들과 함께..
바위도 나무도 파란 하늘 흰 구름도 하나로 아름답다.
갈 길은 너덜겅에 있고 너덜겅에 길은 없네. 오직 너덜겅일뿐..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세월을 보낸다는데 그 자태 참으로 고고하다.
오르고 올랐건만, 오른 그 만큼 귀때기청봉은 늘 저만치서 손짓하네.
나무 사이로 빼꼼 얼굴 내밀고 희죽이는 너덜겅, 이제까지 지나온 원시림에 비하면 신작로나 다름없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잠시 목을 축이며 둘러봅니다. 끝도 없을 것 같은 준엄한 산세의 웅장함을..
구름이 걷히며 내리 쏘는 햇살의 따가움에 저 산도 열이 바치나 보다 수증기같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높디높은 산마루를 쉬고 넘은 저 구름아 너는 알겠구나, 부평초처럼 떠다니는 내 심경을 그러나 너와는 달리 나는 무척이나 머물고 싶단다. 아늑한 내 邃宮과 같은 곳에..
이제 대승령에서 귀떼기청봉으로 이어진 서북능선에 올라서서 귀떼기청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서북능선에서 좌측을 바라본 정경으로 앞쪽 바위 능선이 우리가 장수대 좀 지나서 좌측 출입금지구역으로 들어서서 거쳐온 능선이다.
마침내 오름은 끝나고 귀때기청봉. 우린 초면은 아니지요. 홀로 찾아본 적 여러 번 있었으니.
자매님 사진이 늦어 미안합니다. 카페에 사진을 올렸는데, 사진이 마음에 드실지..
수도 없이 많은 추억을 담아주셨는데, 달랑 이 한 장 뿐인 것에 미안합니다.
훗날 이 모습도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으리..
이건 무슨 의미일까,
이렇게 이산 저산 여쭤봤는데, 지금 기억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귀때기청봉밖에..
무슨 말을 하고 무든 생각을 했을까..
소모된 체력에 양분 보충은 필수
이제 다시 출발이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상투봉으로 간다.
이제 오름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귀때기청봉을 내려서는 발길이 가볍다.
숲이 우거진 곳도 흙 한 줌 없는 바위 뿐이니 설악은 모두 돌산임에 틀림이 없다.
이 능선은 대승령을 거쳐 안산으로 이어지지만, 도중 골짜기로 내려갔다 했는데 그 지점이 어디쯤 일까 사진을 담다보니 선두는 어디 쯤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앞에 가는 님을 따라갔으면 될 일인데..
다시 돌아서서 귀때기청봉도 담고,
방금 내려온 바위를 살펴보았을 뿐인데, 앞을 보니 아무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여기서부터 옆도 안 보고 대승령쪽으로 치달렸지만 님들을 찾을 수가 없다 더 앞으로 가야할지 돌아서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한 분이 뒤쫓아 오며 앞에 가는 님들을 보았느냐 묻는다. 못 보았다니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목을 지나온 것 같다고 하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통화는 안 되고 그런 낭패스런 절차 끝에 다시 돌아서서 오던 길로 3km는 족히 와서야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뛰어내려가다시피 했지만 님들은 보이질 않는다. 들어선 계곡은 무너져 내려 깔끔한 면면은 없다. 시키니님의 사진으로 보건대 여기서 대장 술루님과 여러 님들이 우리 두 사람을 지루하게 기다리던 곳인 것 같다. 다음 두 장의 사진은 님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시키니님이 담으신 사진이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님들의 무료함을 모두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계곡에 시원한 물이라도 있었다면 지루한 기다림도 견딜만 했으련만, 사진으로 보는 내가 정말 미안합니다. 술루님은 연신 전화기만 보고 있다.
그리도 안 되던 전화가 마침내 통화가 되고 나와 길따라님은 이 계곡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쑥스럽고 미안하기도 하다. 기다림이란 지루하고 짜증스런 일이 아니던가 죄인이 따로 없다. 하지만 갈림길에서 배려의 아쉬움도 있다.
길없는 곳에 계곡은 유일한 길이다.
저 아래 님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일행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어느 정도 내려오니 아름다운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골짜기 위로 나란히 배열된 봉우리와 아우러진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드디어 웅장한 폭포가 보인다.
폭포는 가파른 경사에 제법 길다.
출입금지구역에 숨어 있는 이 폭포 따라서 이름도 모르겠다. 알아볼 수도 없고..
이름 모를 폭포 옆 바위봉우리
2단을 이룬 폭포의 하단 폭포의 모습
폭포 옆에 설치한 자일을 잡고 하강을 시도하고 있는 나를 아래서 시키니님이 담아주신 사진이다. 그 많은 산우들을 한 분도 빠짐없이 추억으로 담아주신 그 열성과 성의와 성실에 배려하는 마음과 진정한 봉사정신을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가파른 암벽지대를 벗어나 자일을 놓고 내려오는 모습을 담아주셨습니다. 시키니 님 고맙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지금은 기억에도 없기에..
남몰래 스며들어 오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반원형태의 폭포의 암반과 그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아름다운 어울림으로 자리합니다. 마치 어안 렌즈를 통해 보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폭포 앞에 서니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앨범에서 보았던 사진들 중 아버지께서 금강산 비룡폭포에서 찍으신 오래된 사진이 떠오른다. 당시 일제강점기였는데 금강산 유람을 하신 것을 보면 어쩜 나도 아버지를 닮아 이리 방방곡곡 심산유곡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폭포 옆 바위에 킹콩의 얼굴이 ..
이 물을 보며 떠올린 것은 이 지점에서 나를 기다렸다면 한결 덜 미안했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쫓아오느라고 땀으로 절은 몸을 어쩌지 못해 배낭을 짊어진 채 서성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스스로도 안쓰럽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 아래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이렇게 나를 담아 주신 것을 보면 시키니님은 어정쩡한 나만 보고 계셨나 보다.
또 다른 폭포의 모습
폭포는 제1, 제2, 제3, 제4로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경관에 취한 순간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아까 선생과 시키니 형제님, 그리고 대장 술루님이다. 이분들은 과연 이 경치에서 어떤 표현을 할까 그 느낌을 글로 옮긴다면, 수면위에 떨어지는 물방울로 파생되는 물보라처럼, 진주알갱이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내리거나 또는 주악천인들이 울리는 비금소리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화톳불처럼 튄다. 이 소(沼)는 표주박 같기도 하고 여심 같기도 하다. 이 소를 거친 물은 다시 소를 이루고 낭터러지를 낙차하여 큰 소를 이룬다.
두려워 감히 근접도 못하고 이렇게 밖에 담을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지금 사진을 보며 좀 더 소들을 연결 지어 찍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없었던 것일까.. 다시 가볼 수도 없는 것에 못내 아쉽다.
이 아래 소는 보지 못하고 하산 길로 들어섰다.
이 사진은 이곳 비밀 장원을 사전 답사할 때 대장 술루님이 담아 공지에 올렸던 것을 떠 온 것입니다.
마치 이무기라도 솟아올라 물고 들어갈 것 같아 접근도 하지 못했습니다.
계곡을 올라서니 또 한 차례 대장 술루님의 인어낚시의 희생양이 되었고,
대장 술루님은 또 한 번의 어린 양을 살리는 막중한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그 빛깔도 아름다운 붉디 붉은 열정의 시키니님이 솟아 오른 구유 같은 절벽은 높이3.5m 정도의 높이였습니다.
하산 길은 다시 계곡으로 이어지고
작은 폭포에 피로를 씻어내며..
계곡의 陰氣로 자매들은 암봉에서 소진한 생기를 되찾고, 형제들은 암봉에서 받은 양기를 이 계곡에서 소진하여 평상시의 氣로 돌아온 몸은 어느 덧 오후의 기울어 가는 해를 맞습니다.
마침내 신들의 정원을 벗어날 명암의 경계선상에 이르렀습니다. 고맙습니다.
2014년 8월9일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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