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 堤川>
중원의 한 부분에 위치한 모름지기 선사시대로부터 농경문화의 발상지적인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제천의 의림지는 그 이름이 말하듯 "의림지(義林池)"와 그 아래 펼처진 농경, 그리고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제천의 특징적 자연 유산인 북두칠성 모양의 7개의 독봉들인 칠성봉(七星峰)이 하나의 전설에서 현실로 펼쳐진 듯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북두칠성을 신격화 하여 섬겼으며, 사람을 태어나게 하거나 죽게하는 힘을 가졌다고 믿었으며,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고분 안 천정돌에는 북두칠성을 새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듯이 북두칠성은 상서로움과 치성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북두칠성의 7별자리와 같은 모양으로 제천시내에 7개의 봉우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상서로운 일입니다. 이처럼 하늘에서 내린 천혜의 보물들을 더욱 잘 보전하고 활용하여 다른 지방과 차별화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켜 더욱 살고 싶고 살기 좋은 자연건강문화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조선시대 고종9년 (1872년) 규장각에서 제작한 제천지도>
이 지도에 보면 의림지 아래 두 개의 못(池)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측의 못은 유등지(柳等地) 또는 柳等堤라고 불러오던 "솔방죽'이고, 좌측에 표시된 못은 '뒤뜰방죽입니다. 솔방죽은 의림지 아래 동편에 위치하며 의림지로부터 공급받은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제천평야 동편 일대 농경지에 적재적시에 물을 공급하는 역활을 하고, 뒤뜰방죽은 의림지 아래 서편에 위치하며 의림지로부터 공급된 물을 가두었다가 필요에 따라 제천평야 서편 일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합니다. 또 지도상에 보면 두 방죽 아래 독립된 일곱개의 봉우리가 7字머리를 북쪽인 의림지 방향으로 두고 제천시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에도 이처럼 잘 보존된 古代 수리시설과 연계된 농경지에 이어 독립된 봉우리 7개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솟아 있는 특이한 곳은 없습니다.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 하겠습니다.
2011년 3월 7일 서울에서 제천으로 거주지를 옮긴지 1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날씨도 화창하고 따듯하여 봄의 정령을 찾아 사진을 찍으려고 일전에 자전거를 타고 가본 적이 있는 솔방죽으로 가다가 전답뿐인 평야에 작은 봉우리와 정자가 보여 호기심에 들어선 칠성봉 중 제1봉인 독송정, 마침 안내게시판이 있기에 자세히 보니 제천에는 이어져 봉우리를 이룬 연봉(連峯)이 아닌 독봉(獨峯) 7개의 봉우리가 북두칠성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신기함에 끌려 솔방죽으로 가려던 생각을 바꾸어 칠성봉을 모두 찾아보았는데, 독송봉, 요미봉, 아후봉을 재외한 나머지 4개의 성봉(星峯)은 제대로 가꾸지 않았거나 소개글이나 표지판도 없는 것도 있고 마지막 제7성봉은 점봉산으로 명시되었는데 물어 찾아가는 처지라 점봉산이 어디냐고 붙잡고 묻는 사람마다 고개를 가로 저을 뿐 아는 사람이 없어 하루 해가 저물도록 애를 먹었습니다. 이튼날 다시 겨우 찾았는데 정작 제7봉에는 점봉산이라는 표시도 칠성봉 중 제7봉이라는 푯말이나 안내문도 없고 다만 이곳을 남산(南山)이라고 부르며 대한제국말 일제의 강제병합에 항거하여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장렬하게 전사한 의병들의 격전지 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특이한 이 성봉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더 훼손되기 전에 그중 잘 가꾸어진 제4봉 "요미봉"처럼 주변을 공원이나 칠성(七星)신앙에 걸맞게 조성하고 각 봉우리 정상에 이름과 유래의 글을 새긴 비석을 세워 어느 도시에도 없는 그 특성을 살려 농경문화발상지로서 최상의 면면을 갖춘 의림지와 솔방죽 그리고 그 주변 논답과 하나로 묶어 제천시 만 가질 수 있는 특색있는 도시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고대 농경문화 발상지와 토착신앙인 칠성이 천연으로 이루어진 것을 연계하여 공업과 상업적 공해도시로 치닫는 여느 도시와 차별화된 자연과 친환경 도시로 토속적 전통을 살린 농경문화도시의 표상 제천(堤川)에 걸맞게 그 역활의 가치와 문화적 소산으로 곤고히 했으면 좋겠다는 글을 이 블로그와 제천32명산올레 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서울서 2년을 지내고 다시 제천으로 와서 의림지와 솔방죽 그리고 뒤틀방죽(신대방죽)과 농경지와 칠성봉이 얼마나 변화가 있었을까 궁금했으며, 이 귀한 문화유산을 제천의 모토로 구성하여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나날이 공업화되어 농경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유일하게 의림지와 주변 농경지는 고대 삼한 (古代 三韓)시대로부터 이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되어온 유일무이한 보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堤川"이란 한자의 의미와 유래처럼 古代의 수리시설과 전답이 함께 아우러져 1,500년 세월이 되어도 그 기능을 충실히 해내며 살아 존재하는 것은 우리나라 그 어느 곳에도 없는 무엇에 비견할 수 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문화로서 으뜸가는 소산이입니다. 이러한 농경문화와 우리민족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지녔던 토속적 칠성신앙이 깃들은 칠성봉이란 특이로운 지리적 천혜의 조건을 엮어 특색 있고 독특한 도시로 거듭 발전할 것임을 믿으며 어느 도시보다도 자연과 농경문화가 살아 있는 특별한 웰빙도시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도 제천시를 홍보하는데 큰 잇점이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2014년 6월17일 <鄕>
〈비룡담 저수지〉
의림지 상류 약2km 지점 용두산과 백곡산 까치봉 사이 계곡에 1970년에 설치한 저수지입니다. 주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장마철이나 우기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가파른 산의 나무들이 빨아들일 새도 없이 쏟아져 내리게 되면 제천의 상징이며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의림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물은 드넓은 제천평야의 생명수로서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가뭄으로 물에 잠겨있던 호수언저리가 하얗게 들어나 있습니다. 그 상흔을 보듬어 주기라도 할 양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룡담 저수지 제방에서 내려다본 주변 솔밭공원과 의림지 주변마을과 위락지가 울창한 소나무 숲에 가려 지붕들만 보입니다. 이 솔밭은 물줄과 함께 의림지까지 약1.5km 정도 이어져 있습니다.
1970년에 설치된 비룡담 저수지는 제방 높이 21m, 연장 221m, 총저수량은 621천㎥ (만수면적 8.4 ㏊,) 수혜면적 197 ha 입니다. 제방 동쪽으로 저수지의 물이 위험 수위에 이르면 넘쳐흐를 수 있도록 설치된 보(湺)와 수로가 있으나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 있습니다.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었지만, 간혹 눈물 짜듯 찔끔 거릴 뿐 시원스럽게 가뭄을 해갈시켜줄 비가 내리지 않아 점차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비룡담 저수지의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물이 넘쳐 흘러야할 곳에 풀이 파랗게 돋아나 있습니다.
비룡담 저수지 방죽을 내려와 솥밭에서 올려다본 방죽의 모습입니다. 가뭄에 거의 바닥을 보일 정도로 물이 줄었어도 목 타는 제천 벌의 농경지에 감로주 같을 물을 작은 수로를 통해 의림지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때맞춤인가 뽀얀 안개를 동반한 비구름이 비를 뿌리고 있습니다. 가던 발길을 멈추고 생각합니다. 온 몸이 다 젖어도 좋으니 흠뻑 적셔달라고..
이 수로의 규모로 보아 폭우나 장마철에 흘러내리는 물의 양과 그 위세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겠습니다.
가뭄으로 물이 흐르지 못하는 수로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비룡담 저수지에서 의림지로 이어진 수로 언저리는 이렇게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이처럼 시민들이 가족과 즐거운 야영도 합니다. 할머니들이 소나무 향기로운 그늘에 앉아 화투놀이에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이만한 행복도 드물겠지요.
소나무 숲가에 드넓은 잔디밭도 보는 이의 마음에 풍성한 즐거움이 됩니다.
비룡담 저수지와 의림지 사이의 수로와 소나무 숲은 이렇게 싱그런 모습으로 근 2km에 달하여 이어져 있으며 수로의 다른 한 편은 백곡산의 까치봉이 가파르게 솟아 있습니다.
드디어 수로는 의림지로 들어섰습니다. 의림지 서쪽 남측에서 상류에 있는 비룡담저수지가 있는 북쪽 방향으로 본 모습입니다. 분수 뒤 먼 산은 용두산과 백곡산의 까치봉으로 저수지의 水源이 됩니다.
의림지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멋진 소나무들이 제방 위에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의림지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1,500년의 향기를 느끼고 자부심을 함양할 수 있는 자랑스런 문화를 품고 있는 유명한 저수지입니다.
의림지는 백곡산줄기와 용두산줄기 사이 계곡으로 부터 흘러내린 물이 모래를 쓸어와 넓은 평지를 이루고 다시 백곡산 줄기인 까치봉과 용두산의 끝자락이 평지면을 호리병목처럼 좁게 감싸고 있는 그 병목에 제방을 쌓고 조성한 저수지입니다. 의림지의 물은 20~30m 깊이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용추폭포에서 떨어져 바로 협곡으로 이어진 약1.5km 정도의 골짜기를 통과해 제천평야로 나갑니다. 방죽 측면에서 가깝게 본 방죽과 소나무의 멋진 자태입니다.
<林湖雪馬戱/임호설마희> 朴守儉 詩
氷腹爭馳雪馬輕, 瓊沙屭贔漲前程 (빙복쟁치설마경 경사희비창전정)
銀河怳惚星槎逈, 白玉玲瓏世界平 (은하황홀성사형 백옥영롱세계평)
鮫室影忙飛電過, 鶴汀聲雜駕颷行 (교실영망비전과, 학정성잡가표행)
更攜餘興仙臺畔, 落日啣杯萬古情 (갱휴여흥선대반, 낙일함배만고정)
<의림호에서 썰매타기 놀이> 박수검
얼음 위에서 다투어 썰매를 경쾌하게 힘껏 내달려 옥같은 모래가 앞 길에 뿌려지네.
은하수 황홀하고 별은 비스듬히 비꼈으니, 백옥의 영롱한 호수 세상이 평화롭네
교룡은 그림자에 놀라 번개처럼 지나가고, 물가의 학은 시끌벅적 소리에 급히 날아오르네
다시 여흥을 끌어안고 선대가에서, 지는 해에 술잔엔 만고의 정을 머금었다네.
박수검(朴守儉) : 송시열의 문하로 조선 중기 숙종 때의 학자. 六經 . 四字 등 여러 서적을 탐독하고 역사에 밝았으며, 숙종15년(1689)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제천으로 돌아갔다가 숙종20년(1694) 인현왕후 복위 후 군수를 역임 했으며, 《임호집》.《절위여편》등이 있음.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쓸까요.
제천시에는 의림지와 칠성봉을 가족으로 엮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림지는 엄마요, 칠성봉은 일곱 아들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 술 더 떠서 이리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산은 (凸)로 남성에 비견되고, 물(호수.강.저수지)은 (凹)로 여성에 비견되며 농경지는 일과 생산이 있으므로 (房事)에 비견하고, 칠성은 예로부터 수명(壽命)을 내리는 토속신앙으로서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신으로 받들어져 왔으므로 칠성봉은 점지 받은 일곱 자녀로 엮을 때, 용두산은 아버지, 의림지는 어머니, 칠성봉은 자녀라고, 그런데 의림지로 들어오는 물이 용두산에서만 흘러드는 것은 아닙니다. 백곡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도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합류되어 의림지로 흘러드니 두 지아비에 한 지어미가 됩니다. 그럼 축첩도 아닌 한 여자가 두 남자와 산다는 것이니 말이나 되겠습니까! 아이들 교육에도 그렇고 그래서 상류에 조성된 비룡담 저수지를 할머니로 백곡산을 할아버지로 하고 용두산을 아버지로 의림지를 어머니로 두 방죽(솔방죽.뒤뜰방죽)은 할미자궁, 어미자궁으로 농경지는 역사(일 . 생산)하는 곳으로 칠성봉을 그 자손으로 이야기를 엮는 것입니다. 뜬구름도 아니고 실재로 존재하는 것을 재밌고 현실감 있게 이야기를 지어 전설을 만드는 것이지요. 먼 훗날 이런 이야기는 제천을 대변하는 좋은 전설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현재의 구전(口傳)을 세월이 좋은 전설로 이어주는 것입니다.
의림지 동남쪽 우륵정과 제비바위(우륵대) 우륵샘이 있는 곳입니다. 우륵정은 큰 왕버들에 가려 보이지 않고 옆에 제비바위만 하얗게 보이며 그 뒤 도로 건너 산자락에 우륵샘이 있습니다.
제비바위(于勒臺)로 가는 길에 담은 우륵정과 큰 왕버들 그리고 제비바위가 보입니다. 제비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하여 우륵대라고 부릅니다.
우륵정 아래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노려보고 있는 백로의 모습을 줌으로 당겨서본 모습입니다.
왕버들 아래 제비바위에서 바라본 동남쪽 풍경입니다. 우륵은 이 자리에 앉아 가야금을 울려 고요한 호수면에 파문을 일게 하였을 것입니다.
<우륵샘 주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의림지와 제림(堤林) 주변에는 신라 때 가야금의 명인 '우륵'과 인연 깊은 곳입니다. 의림지의 동쪽 석봉 남쪽에 우륵이 거주하던 곳으로 당시의 주춧돌과 기와로 추정되는 조각들이 발견된 우륵당지(于勒堂址)가 있으며,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으로 제비바위(燕子岩)로도 불리는 우륵대(于勒臺)와 우륵대 한 쪽에 세운 우륵정(于勒亭), 우륵이 의림지를 내려다 보며 그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가야금을 연주하던 봉우리, 그리고 세 명의 제자 '계고', '법지', '만덕'을 데리고 가야금과 춤과 노래를 가르쳤던 장금대(長琴垈)가 백운면 애련리에 있습니다. 이곳 의림지와 주변은 국가 명승 제2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차도 건너 우륵샘 뜰에서 찍은 것입니다.
<우륵정/于勒亭>
우륵정은 의림지 동쪽 호숫가에 위치합니다.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金堤 碧骨堤),밀양의 수산제(密陽 守山堤)와 함께 고대 수리시설(水利施設)의 하나로 현재 벽골제와 수산제는 둑(堤防)의 일부와 흔적만 있지만 의림지는 온전히 남아 살아 숨쉬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이며 지금도 인근 제천평야에 펼쳐진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여 가뭄에 메말라가는 농작물에 생기를 주고 있습니다. 의림지 축조설 가운데 신라 진흥왕(眞興王534~576)때 우륵이 돌봉재(石峯)에서 살았다고 하며 유적으로 우륵당(于勒堂) 옛터와 우물로 사용했던 우륵정(于勒井)이 있었고 제비바위에서 가야금을 탔다고 전해 오는 것으로 볼 때 의림지는 천오백년 가깝게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제천시는 2007년 의림지 명소화 사업으로 우륵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옛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이곳에 정자를 건립하고 우륵정(于勒亭)이라 이름지웠다고 합니다.
우륵정(于勒亭) 옆에 지리좌표를 표시한 통합기준점인 십자선교점이 있습니다. 이 기준점은 2~3k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제천시 중앙로에 위치하는 칠성봉 7봉우리 중 제6성봉인 아후봉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왕버들과 우륵대>
지금의 우륵정 옆에 있는 왕버들과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입니다.
<의림지 왕버들>
왕버들은 버드나뭇과에
<왕버들 이파리>
<왕버들의 모습>
용두산 그 뒤로 감악산이 보이고, 의림지 뒤에 보이는 건물들은 놀이공원과 경양식, 한식 찻집 등이 들어서 있고 세명대학교로 가는 도로가 있습니다.
우륵대 옆에 있는 본래의 우륵정이 있던 자리입니다.
<우륵샘 / 于勒泉>
우륵샘은 우륵당지가 있는 석봉산자락 서쪽아래에 있으며 우륵정과 우륵대(제비바위)그리고 의림지와는 길 사이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우륵샘은 우륵이 석봉 우륵당(石峯 于勒堂)에 기거할 때 물을 길어다 쓰던 샘(泉)입니다.
<우륵샘>
샘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입니다.
<영호정/映湖亭>
영호정은 의림지 남쪽 제방위에 위치합니다. 조선 순조7년(1807년) 李集慶이 건립한 후, 6.25동란으로 파괴된 것을 그의 후손인 李範雨가 1954년에 중건하였습니다. 화강암 주춧돌 위에 건축된 목조 단층의 정자로 건평 13㎡(4평) 팔작지붕에 정면2칸, 측면2칸으로 되어있습니다. 丁未義兵 창의당시 제천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대장 李康年이 제천 천남 전투에서 승리한 후 1907년 음력 7월에 이곳 영호정에서 부하장수들과 정치를 논하였으며, 都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였다고합니다. 이범우는 3.1운동때 제천지방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의림지 제방에서 호수 북쪽 용두산을 바라보고,
방죽에는 이와 같이 키가 족히 25m에 이르고 건강하고 잘 생긴 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의림지 제방에는 수 백 년 묵은 소나무 군락과 버드나무 숲인 제림을 배경으로 주변에 영호정(映湖亭)과 경호루(鏡湖樓)로 불리는 정자와 누각이 있고, 제비바위(燕子岩), 용바위(龍岩), 홍류정지(紅流亭址) 등 전통과 유래가 있는 시설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名勝)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경호루 앞에서 의림지 제방을 바라본 모습,
경호루에서 내려다본 댐 주변입니다.
보(湺)를 넘쳐 흘러야할 물이 가물어 콘크리트 보만 하얗게 드러나 있습니다. 많은 비가 내려 호수에 물이 가득차면 보을 넘어 용추폭포로 흘러내리도록 설치된 댐 위에 놓은 다리와 용추폭포 바로 앞에 조성된 보의 모습입니다. 의림지는 자연적 천혜의 조건을 갖춘 저수지입니다. 높고 큰 산을 갖춘 골짜기를 수원(水源)으로 물이 많고 호리병 같은 호수의 구조로 큰 제방을 조성하지 않아도 많은 물을 가둘 수 있고 물이 적정 수치를 넘으면 자연적으로 폭포로 낙차하는 천혜의 구조입니다. 달리 큰 물을 뽑아내는 수로와 댐 시설을 설치 안 해도 호수의 물이 바로 폭포를 통해 깊은 계곡으로 떨어져 흐르는 자연적인 구조를 지닌 호수입니다.
<호수 안쪽 보의 모습>
의림지의 물은 만수가 되면 보을 넘어 바로 이어진 용추폭포(龍楸瀑布)에서 낙차하여 약1.5km의 협곡을 통과하여 홍류동(紅流洞)쪽으로 흐르는데 이 때 상류에서 쓸려 내려온 모래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내뱉는 뛰어난 얼개(협곡이 구조가 좁고 비얄져 물에 모래가 잘 쓸려 내려가도록 되어 있음 )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수 바깥쪽 보의 모습>
용추폭포 바로 밑입니다. 제천평야로 이어지는 이 협곡은 독봉과 백곡산 줄기의 까치봉자락 사이 좁고 깊은 협곡의 모습입니다.
용추폭포 위에서 내려다본 계곡의 모습, 이 협곡은 이런 모습으로 1.5km 정도 이어져 있습니다.
폭포 아래 계곡에서 올려다 본 용추폭포와 의림지 댐.
의림지 아래 계곡
계곡아래서 다시 의림지로 올라와서본 의림지 표석
제방아래 비석처럼 생긴 큰 돌이 서 있습니다. 선돌일까 아님 비석일까
의림지 제방에서 제천평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이 길 옆으로 농수로도 함께 따라 제천평야로 이어져 내려갑니다.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닌 본래 이 자리에 있는 자연석인 것 같은데, 근래에 누군가 자신의 함자를 음각해 놓았습니다. '人間 植樹 一松 金翼魯' 글의 뜻으로 보아 김익노라는 사람이 長壽에 뜻을 둔 것 같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오래살지, 아무리 자신이 나무라 자처한다고 나무처럼 수 백년을 살까!
의림지의 제방은 백곡산줄기와 용두산줄기 사이 계곡으로 부터 흘러내린 물이 모래를 쓸어와 넓은 평지를 이루고 다시 백곡산 줄기인 까치봉 끝자락과 용두산의 한 줄기인 석봉산 끝자락이 평지면을 호리병목처럼 좁게 감싸고 있어 병목을 이루고 있는데 그 병목 안에 또 한 개의 독봉우리(獨峰)가 있어 석봉산 끝자락과 독봉 사이에 사진에 보이는 제방을 쌓고 독봉과 까치봉자락 사이 협곡으로 이어진 용추폭포 위에 보를 두어 조성한 저수지입니다. 의림지의 물은 15~20m 깊이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용추폭포에서 떨어져 바로 협곡으로 이어진 약1.5km 정도의 골짜기를 통과해 제천평야로 나갑니다. 이 제방은 석봉산자락과 독봉 사이를 막기 위해 쌓은 제방입니다. 즉 의림지둑은 "용두산 줄기 석봉산자락-(제방)- 독봉- (큰 물이 흘러내리는 용추폭포)-백곡산까치봉자락,으로 구조를 이루고 있어 독봉이 둑의 중심역활을 하여 견고함을 더해줍니다.
<의림지제방과 소나무>
소나무의 뿌리가 제방에 그물처럼 뿌리를 뻗어 제방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습니다.
독봉(獨峰)으로 이어진 의림지제방 밑에서부터 제천평야로 이어지는 농수로입니다. 가뭄으로 저수지가 메말라 가는 중에도 농수로를 통해 제천평야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 의림지 출수구로 나온 물은 다시 동서 두 줄기로 나뉘어 동편으로는 솔방죽, 서편으로는 뒤뜰방죽으로 보내져 저수되며 각각 필요에 따라 제천평야의 동편과 서편의 농경지로 공급됩니다.
제천시는 우리나라 고대 수리시설인 의림지와 농경지 그리고 제천평야 동서에 위치한 두 개의 중간 저수지인 솔방죽과 뒤뜰방죽과 아울러 칠성봉(제천시에 북두칠성모양으로 솟아있는7개의 獨峯)을 연계하여 고대문화유적으로 새롭게 가꾸고 있습니다. 나는 4년 전인2011년3월에 이와 같은 생각을 사진과 함께 이 블로그와 제천시산악연맹카페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새로 길을 넓히고 산책로와 자전거전용로를 구분하여 멋진 소나무로 단장된 이 길은 솔방죽을 거쳐 칠성봉 첫 봉우리인 독송정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은 의림지 제방에서 제천평야를 가로질러 솔방죽과 칠성의 제1봉 독송정으로 이어진 길(수로겸)을 새롭게 단장한 것으로 양 옆으로 자전거 도로를 갖추고 산책길 좌우로 소나무를 운치있게 심어 "삼한길"을 새롭게 꾸몄습니다.
물길은 의림지제방 아래서 갈려 하나는 직선으로 뻗어 솔방죽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물줄기는 이렇게 길(복개된 수로)과 함께 물을 흘리고 있는 작은 수로를 대동하고 우측으로 꺾어 계곡을 끼고 가다가 다시 좌측 제천평야 서쪽 가운데로 꺾어들어 뒤뜰방죽으로 이어집니다.
원경으로 보이는 새로 단장한 삼한길이 솔방죽을 향해 뻗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뒤뜰방죽으로 가는 이 길(수로)과는 ┌ 字를 이루고 있지만 이 길이 다시 좌측으로 꺾이니까 두 물줄을 전체적으로 볼 때 제천평야 동측과 서측으로 평행을 이루며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정한 위치에 사진에서처럼 물을 세분하여 농경지에 고루 미치도록 되었습니다.
뒤뜰방죽으로 이어가는 수로의 모습입니다. 길은 복개된 큰 수로이고 그 옆 좌우로 작은 수로가 딸려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큰 수로 옆구리에 마련된 수문을 열거나 조절하여 작은 수로로 물을 공급하게 장치되어 있습니다.
제천평야 서편에 위치한 뒤뜰방죽입니다.
석양을 안고 찍은 풍경입니다. 사진이 어둡지요?
가뭄으로 물이 많이 줄었습니다. 방죽내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입니다.
뒤뜰방죽에는 갈대를 위시로 창포, 물억새, 노랑꽃창포, 수련, 어리연꽃, 순채, 꽃창포 등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보기드문 휘귀종이 된 순채는 6월부터 8월까지 검은 홍자색 꽃이 단 이틀만 핍니다. 열매는 물속에서 성숙하고 꽃받침과 입술대가 달려 있습니다. 번식을 위해 옮겨와서일까, 때가 일러서 일까, 예쁜 꽃은 볼 수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어리연꽃>
8월에 흰바탕에 중심부가 황색인 작은 꽃이 물 위로 나와 피며 10여개가 한군데에 달립니다.
백곡산과 용두산을 배경으로본 뒤뜰방죽의 모습입니다. 백곡산자락 아래 세명대학교가 보입니다. 의림지는 우측 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천의 산과 들의 토질은 굵은 마사가 섞인 사토(砂土)입니다. 물 흐르는 곳이면 크던 작던 냇가에는 상류로부터 흘러내려온 모래가 축적되어 쌓입니다. 이곳 뒤뜰방죽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랜 세월 모래가 쌓여 갈대밭이 된 것을 근래에 수자원공사에서 원형대로 복원한 것입니다. 복원한지 얼마돼지 않아서인지 제방에 풀과 나무들이 미쳐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하얗게 속살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세월이 가면 사철마다 아름다움을 달리하는 한 폭의 풍경화로 자리매김 할 것입니다.
뒤뜰방죽 앞을 측면에서본 풍경입니다.
복개된 큰 수로에서 작은 수로로 물을 공급하는 작은 수문은 가뭄으로 굳게 닫혀 있습니다.
이 정자 기둥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패색이 짙은 일본은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족한 비행기 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 톨루엔이 함유되어 있는 송진을 채취하기위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여 우리 산하에 산재한 소나무마다 이렇게 껍질일부를 v자 모양으로 도려내고 송진이 한 곳으로 흘러 내리도록 톱으로 상처를 내어 송진을 채집하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송진을 증류하면 톨루엔 같은 액체가 나옵니다. 이 액체는 휘발성이 강하여 대체 연료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톨루엔 등 화학물질로 가짜휘발유를 만들기도 합니다. 일본은 이런 점을 이용하여 부족한 비행기 기름을 대용한 것입니다. 이 나무기둥도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의해 수난을 당한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뒤뜰방죽을 지나 수로를 따라 가봤습니다. 때로는 지형에 따라 굽어가며 농경지의 동맥으로서 구석구석까지 고루 미치며 그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표석에 의하면 모래가 쌓여 평지가 되다시피 한 것을 작년인 2013년 5~12월 반년에 걸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림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솔방죽과 뒤뜰방죽으로 배분되는 의림지제방아래 삼한 초록길(三韓 草綠路)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솔방죽으로 이어진 물줄기를 따라 둘러볼 생각입니다.
의림지 제방을 내려와 농경지와 칠성봉, 제1성봉인 독송정 방향으로 담은 사진입니다. 새롭게 단장한 삼한(三韓) 초록길의 모습입니다. 3년 전 나의 바람이 반영된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점차 사라져가는 찾아보기 어려운 옛 농경문화를 길이 보전하고자는 제천시의 의지와 확고한 정책이 나의 생각과 같다는 것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이 완성되고 연이어 칠성봉들이 제대로 가꾸어진다면 공해로 찌든 산업화된 다른 도시와는 현격하게 차별화된 귀품 있는 명품도시로 선망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유종의 미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천을 사랑하는 제천시민과 시장님을 위시한 관계공무원들이 일치하여 일궈내는 정성과 노력이라 하겠습니다.
아직도 조성공사중입니다. 청사진에 보면 이 길은 농로를 아름답게 꾸며 독송정 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수로를 콘크리트로 □形管으로 만들어 그 위를 길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속은 큰 물길이고 표면 위는 사람이나 농기계가 다니는 길입니다. 옆으로는 작은 수로가 붙어 있습니다. 이 길은 복개된 수로이며 솔방죽으로 이어집니다.
도로로 활용하는 복개된 큰 수로 옆에 있는 작은 수로에 물이 흐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뭄에 이렇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천오백년 전 우리 조상님들은 지형을 살펴 물색하고 최적의 자리에 의림지를 축성하였다니 그 지혜로움이 놀랍습니다.
솔방죽 앞에서 의림지방향으로 돌아본 모습입니다. 이 길(큰 수로를 복개(覆蓋)한 것임)은 일직선으로 의림지로 이어집니다.
솔방죽입구의 모습입니다.
솔방죽 높은 지대에 마련된 휴식문화공간입니다.
호수에 설치된 관찰대에서 휴식문화공간쪽을 돌아본 전경입니다.
솔방죽의 출입구는 동쪽과 서쪽 두 곳에 있습니다. 지붕을 아치형으로 만들고 옆 벽은 창살모양으로 만들어 세운 여러 개의 시설은 넝쿨식물을 심어 올리기 위한 시설로 동쪽 출입구 길에 설치한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넝쿨식물 안으로 걸어가며 운치를 느낄 수 있게 고안한 것입니다.
솔방죽 동쪽 수면의 모습입니다. 갈대가 무성하여 수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 갈대 숲에는 오리를 비롯하여 많은 물새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호수의 서쪽입니다. 제방에 걸쳐놓은 듯 보이는 다리 아래에 농경지로 물을 공급하는 수문이 있습니다.
솔방죽 내에 자연생태학습을 위한 공간이 있는데 수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자생 또는 가꾸어져 있습니다.
동남쪽 방향으로 담은 풍경입니다. 호수에 물억새와 갈대가 가득 들어찬 모습과 그 너머로 제천시가지 일부분이 보입니다.
호수 남쪽 방향을 본 모습입니다. 농경지 끝나는 곳은 제천시내입니다.
솔방죽을 나와 칠성봉의 첫 봉우리인 독송정으로 가다 돌아서서 지나온 길과 용두산 아래 의림지를 가늠해 봅니다. 수로 옆 큰 나무에 가려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농수로변에 때도 아닌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었기에 자전거를 길에 눞히고 꽃을 보며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 어려서 불러주던 "꽃밭에서"를 읊조리며 잠시 상념에 젖어 있는데, 어디선가 가곡 '오빠생각"이 섹소폰의 구성진 음색으로 들려옵니다. 귀 기우려 살펴보니 독송정 정자에서 흘러나오는 듯합니다.
독송정언저리 논둑으로 다가서보니 초로의 남자분이 멋진 자세로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노년을 멋있게 보내기 위한 좋은 선택을 한 분이다 싶습니다.
우측에 독송정봉우리자락과 입구가 살짝 보입니다. 솔방죽으로부터 5~6백m 떨어진 농경지 內 길(큰 수로를 복개한 위) 옆에 위치합니다.
<칠성신앙/七星神仰>
칠성(七星)은, 우리의 전통적인 민족신앙으로 명(命)줄을 관장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불교에서는 가족들의 수명장수(壽命長壽)와 자손창성(子孫昌盛)을 구하는 신(神)으로 일반적으로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라고 일컫고 있고, 일광 . 월광보살을 협시보살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 두 보살님은 본래는 약사여래부처님의 좌우 협시보살이므로, 옛날에는 질병과 가난에 많은 고통을 겪었으므로 이를 극복하고자 약사여래부처님을 칠성으로 대치하는 신앙으로 발전된 것으로 봅니다. 지금의 칠성신앙은 한국불교의 특색에 맞게 발전, 융화된 한국적 불교 신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제천의 머리격 주산인 용두산 정기를 머금은 물이 그 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의림지를 이루고 다시 솔방죽에 머물러 제천평야를 비옥한 땅으로 일구며 칠성봉의 첫 봉인 독송정에 이릅니다. 그 정기는 다시 북두칠성을 타고 제천시를 거치니 곧 그 상서로운 기운은 제천 시민들의 기백으로 태동되어주니 가히 성스러운 하늘의 은총이라 하겠습니다.
〈 현 행정구역상 칠성봉 위치〉
1봉 독송정(獨松亭) : 청정동 398
2봉 연소봉(燕召峯) : 청정동 261-2
3봉 성 봉(星 峯) : 청정동 416-3
4봉 요미봉(要美峯) : 청전동 652
5봉 자미봉(紫美峯) : 중앙로 2가 15-4
6봉 아후봉(衙後峯) : 중앙로 2가 26-1
7봉 정봉산(丁峰山) : 화산 2동 191-3
독송정(獨松亭) 옆에는 잔디를 조성하여 야유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서쪽 끝머리에서 담은 칠성봉의 모습입니다.
<제1봉, 독송정(獨松亭)> 청정동 398
제천군지(堤川郡誌)에 기록은 독송정이라고 부르고, 북두칠성에 의한 별자리 이름은 탐랑성(貪狼星)입니다.
독송정은 북두칠성에서 국자머리 모양에서 첫째 자리입니다.
독송정을 나와 농경지가 끝난 자리에서 의림지 방향(북쪽)으로 담은 독송정의 전경입니다.
<2봉. 연소봉(燕召峯)> : 청정동 261-2
글 사진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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