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통인시장

鄕香 2014. 6. 30. 11:26

내 어려서 왕십리 살적에 친한 동네친구형제가 경복고와 청운중학교를 다녔는데, 당시만 해도 교통이 불편해 왕십리에서 이곳 효자동까지 통학하기 어렵다며 학교근처인 옥인동에 방을 하나 얻어 놓고 있을 때 일요일이면 가끔 찾아가 셋방에서 책도 보고 인왕산도 오르고 하던 통인동은 한옥들이 줄지어 오손 도손 정답던 인적 드문 한적한 동네였고,  내가 국립중앙박물관 근무하던 경복궁시절 70년대 후반 ~80년대만 해도 크게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통인동 골목길에, 한 집이 벽을 헐고 구멍가게하나 차리니 그 앞집 옆집 하나들 생긴 반찬가게, 기름집, 떡집, 과일가게, 채소가게, 음식점 등 등 골목가득 성시를 이루었다. 이름 하여 통인전통시장이 생긴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제일 즐겨 찾는 관광코스인 경복궁과 옛 총독관저자리였던 청와대 그리고 경복궁과 청와대 언저리에 있던 옛 총독부고관들이 살던 적산가옥(일본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던 궁정동, 통의동, 창성동과 아울러 길 건너 주변 한옥들과 어우러져 있는 이 통인시장을 자연스럽게 거치게 되니 식판하나 구해들고 다니며 구경도 하고 이 가게 저 가게에서 선호하거나 호기심 가는 소담스런 음식들을 조금씩 사서 담아 시장 안에 마련된 휴식공간에서 먹는 재미가 제법 즐거운가보다. 근래에는 중국관광객들이 가세하여 더욱 번다해지고 있다.  

 

 

<통인시장 주변 약도>

 

 

3호선광화문역 2번 출구로 나와 자하문으로 가는 대로로 좀 가다 자동차의 소음과 매연을 피해 체부동과 통인동, 옥인동에 걸쳐 있는 누각길을 이용해 통인시장뒤쪽 입구가 있는 통인오거리로 들어서서본 모습입니다. 노랑현수막을 건 누각이 통인오거리이자 통인시장 뒤쪽 입구가 있는 곳입니다.  

 

 

통인시장 뒤 골목길 입구에는 정자가 하나 있습니다. 이 정자있는 곳 우측이 통인시장 후문입니다.

 

 

인왕산 오르는 동네 길 쪽 통인시장 후문입구로 들어서면 야채, 과일, 기름집, 음식점, 떡집이 맞아줍니다. 좀 들어서면 음식거리입니다.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일회용 식판에 여러 가지 반찬을 사서 담아들고 오다가 돌아서 오던 찬가게 쪽으로 다시 가는 표정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 같아 다행스럽다.

 

 

먹는 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신명나는 일이지요. 타고난 3대 즐거움에서 먹는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즐거움의 두 번째가 된다지요. 초등학생 쯤 되는 아이 둘이 누나로 보이는 소녀를 부리나케 따라갑니다.

 

 

여러 가지 튀김과 산적, 부침개를 파는 가게 앞에 중년의 여인들이 몰려 이것저것 고르기에 눈길이 바쁩니다. 식판을 들고 이집 저집 요것조것 조금씩 사서 먹을 수 있는 재미도 재미지만, 이곳 상인들의 재치가 엿보이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겠지요. 

   

 

주인아주머니의 손맛이 담긴 빛깔 좋고 맛깔스런 여러 가지 반찬에 나도 얼마나 서성거렸는지 모릅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두부양념졸임과 돼지고기김치찌개에서 눈길을 떼기 힘들었습니다.

   

 

한 끼 양을 입맛대로 찬을 여러 가지 사려는 손님을 배려해서 조금 아주 조금씩도 팔고 살 수 있습니다. 시장정문 앞에서 한 꾸러미(엽전10개 5천원)단위로 엽전으로 환전해줍니다. 엽전 1개 오백량이 기본단위입니다. 본인 식성과 양에 따라 3천원도 되고 5천원도 될 수 있는 고정가격이 없는 시장 전체가 하나의 뷔페음식점이고 점포는 음식이 담긴 그릇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고양시에 계신 어머니를 뵈려 갈 때면 꼭 들리는 이 전통시장, 90노모께서 좋아하시고 맛있게 드시는 팥찹쌀시루떡을 사기 위해서 입니다. 이 떡집 팥찰시루떡은 100% 찹쌀로 만들어 부드럽고 차진데다 주홍빛 호박고지를 넣고 팥고물도 옛 맛이어서 팥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 드시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그런데 팥찰시루떡은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답니다. 할 수 없이 녹두 찰시루떡을 샀습니다. 녹두찰시루떡 가운데에는 연한완두를 넣어 만들었는데 한 근(600g)에 4천원 팥시루떡보다 배가 비쌉니다. 맛은 달지 않고 고소하고 녹두향이 그윽하고 부드럽고 좋았습니다. 

 

 

평일에다 점심을 먹기에는 아직은 좀 이른 시각이어서 일까 손님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이 집 찰떡은 서울의 떡으로 이름난 낙원동의 내 노라 하는 낙원떡집도 비견할 수 없지요. 콩과 대추 등 여러 가지를 넣고 만든 찰떡을 방금 찜통 틀에서 쏟아놓은 것입니다. 이 콩찰시루떡은 속에 까지도 내용물인 콩 호박꼬지, 완두콩, 대추 등이 꽉차있어 내 입맛으로는 최상의 맛입니다.

 

 

이미 식판은 가득한데 무슨 찬을 더 사려는지.. 찬가게아주머니의 손길이 바쁩니다.  

 

 

각종 전과 밑반찬만을 만들어 파는 집입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학생들도 즐겨 찾습니다.

 

애초에는 어려운 시절 한옥의 길가 담벼락을 헐고 호구지책으로 문을 열고 주부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가정에서 익힌 그 솜씨대로 이 주변의 단칸방 세살이 하는 외지에서 온 유학생과 직장인들을 상대로 음식이나 찬거리를 팔던 가게들이 발전하여 오늘의 전통음식시장이 된 곳입니다. 

   

 

 이 동네 근처에서 기숙이나 집을 얻어 지내던 유명 인사들이 살던 집이나 기념관을 소개하는 안내판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지내던 집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먹을 음식을 다 샀으면 들려야할 곳입니다. 왜 들려야하느냐고요? 여기가 음식을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제공된 홀이 있으니까요. 아니 들고 다니면서 먹어도 뭐랄 사람은 없으니 마음대로입니다. 안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평일이건만, 시각이 정오라서인지 많은 사람으로 자리의 여분이 없습니다.

 

 

시장 정문격인 동쪽입구입니다. 통인시장에서만 통용되는 엽전으로 환전하는 곳입니다. 엽전이 꾸러미로 쌓여 있습니다. 한 꾸러미에 엽전 열개씩입니다. 1개에 오백량, 한 꾸러미 오천량이지요. 오천량을 환전하면 도시락 하나를 줍니다.

 

 

어머니를 뵈러갈 때면 3호선전철경복궁역에서 내려 통인시장까지 족히 1.5km는 걸어와 떡을 사서 배낭에 넣고 도로 3호선경복궁역으로 가서 다시 3호선전철을 타고 고양시로 가야하는데, 시간상 아침 겸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 먹고 갈 생각입니다. 이 시장 말고 3호선광화문전철역 2번 출구 앞으로 나오자마자(사직단 방향)골목시장이 있는데 그 안에 순대국밥과 소머리국밥을 파는 집이 있는데 보기 드물게 잘 하는 집이 있습니다.

 

 

통인시장 앞 돌로 만든 보도불럭입니다. 종로구내에 거주하는 유명인사들의 어록과 이름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다시 걸음을 옮겨 적선시장으로 가는 길가에 표석 하나, 나의 직계 선조이신 세종대왕께서 탄생하신 자리가 근처라는 이 표석이 반가움보다 왠지 서글픔으로 가슴에 스며듭니다. 한국인의 자긍을 얼에 담아주신 대왕의 탄생지조차 복원해 놓지 못한 후손으로서의 부끄럽고 죄송함에 지날 적마다 고개를 숙입니다.   

 

 

내 젊음 30년을 보낸 이 주변의 구석 구석 건물 하나하나가 나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 여전하건만 옛 벗, 동료들 오간데 없어 그리움이 애닯습니다. 야은(冶隱) 선생의 시 한 구가 절로 떠오릅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통인시장에서 3호선광화문역 방향으로 200m정도 내려오다 우측 골목길에 있는 삼계탕으로 유명한 '토속촌' 특히 일본관광객이 필히 한 그릇 사먹고 가야 한국에 다녀왔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유명세를 타는 집입니다. 오늘도 토속촌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 길(자하문로)건너 길가 통의동에 있었는데 당시 (30년 전)에도 점심 때 동료들과 한 그릇 먹으려면 사전에 예약을 하고 와야지 그냥 왔다가는 낭패이기 십상이었습니다.  

 

   

3호선광화문역을 앞에 두고 우측에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입구입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이 골목으로 50m 들어갑니다.

 

 

세종로 한 복판에 이렇게 60년대 분위기를 느끼고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온 양 기분마저 들뜹니다.

 

 

박물관 재직하던 경복궁 시절 가끔 옛 생각이 나면 들리던 집입니다. 옛 어린 시절 배 주리고 지낼 때 서울에는 이렇게 길가 담을 헐고 호구지책으로  설렁탕이나 선지해장국집을 연 집들이 많았습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을 가다보면 발길을 붙잡아매는 그 구수한 냄새에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지금도 생각이 날 때면 이 집을 찾아들고, 옛 어렵고 힘들던 생각이 눈시울을 촉촉이 적셔줍니다.

  

 

이 음식점은 잡부위는 모두 가려내 치우고 살부위만 손님께 내줍니다. 어떻게 고았는지 잡내 없고 연하고 고소한 맛이 입맛을 홀립니다.

 

 

아는 사람만 찾아드는 이 집, 세 분 아주머니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그릇 거뜬히 비우고 나오다 식사하는 분들의 눈치가 보여 얼른 찍은 사진입니다.

 

 

가격도 저렴합니다. 내가 시킨 일반 소머리국밥이 6,000원입니다. 순대국밥은 5천원, 보통 다른 집은 순대국밥 6~7천원 받습니다. 수저를 놓을 때까지 고기가 푸짐합니다.

 

 

넣어주는 고기가 혐오스런 부위 없이 양질의 순살 부위로 양도 적지 않고 담백하며 국밥에는 무엇보다 김치와 깍두기 맛인데, 쌈박하고 깔끔한 서울김치가 또한 맛이 좋아 한 보시기로는 어림없고 두 보시기는 먹어야 성이 찹니다.

 

 

며칠 전에 왔을 때는 순대국밥을 먹었기에 이번에는 소머리국밥을 시켰습니다. 다음 올 때는 순대국밥을 먹을 것입니다. 저는 곤지암 욕쟁이아줌마의 소머리국밥 못지않게 이 집 소머리국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양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니 더없이 흡족합니다. 이 소머리국밥은 6천 원짜리 보통입니다.

 

 

 

이제 다시 3호선전철을 타고 내 어머님께 발길을 향합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이 어두워질 때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오는 밤, 기러기 울음 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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