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하늘에 흰 뭉게구름 한가로운 5월5일 아침 갑자기 故 육영수 영부인 생가를 가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투합하여 도착한 충북 옥천, 그러나 공교롭게도 고 육영수 영부인 생가와 인접해 있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도 모두 휴관하는 날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두 분의 생가를 밖에서 기웃거리며 외형만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나마 사립문에 초가 담장이 낮은 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그런대로 여러 장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지만 솟을 대문에 높은 담장으로 둘려 싸인 故 육영수 영부인의 생가는 담장만 쳐다보다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시인 정지용 생가 / 詩人鄭芝溶生家>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너무나도 가슴에 그리움을 자아내게하는 주옥같은 詩,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의 작가 정지용 시인이 태어나 꿈 속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입니다. 옛 모습을 되찾아 복원된 생가의 모습입니다.
시인 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15일 아버지 정태국(鄭泰國), 어머니 정미하(鄭美河)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당시 옥천 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고 구국하여 모교인 휘문고보 영어교사로 재직하였고, 1945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경향신문사 주간(主幹)을 역임하였으며 서울대학교 강사로 출강하기도 하였다. 그는 천재적 기질과 소박한 인품을 가지고 '향수, 고향, 백록담,' 등 珠玉같은 名詩를 연이어 발표하였고, 文章誌를 통하여 이른바 청록파시인(靑綠派詩人)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을 문단에 등단 시키는 등 현대 시문학의 선구자로 現代詩史를 장식한 분이다. 그의 시와 글은 '정지용 시집, 지용시선, 문학독본, 백록담 등의 간행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1988년 3월 "지용회"가 창립되었고, 그해 5월15일에 지용제가 처음으로 거행된 이래 해마다 옥천에서 지용제가 군민축제로 또 전국적인 문학축제로 성대히 거행되고 있어 그의 시세계가 더욱 값지고 빛나고 아울러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생가 / 詩人鄭芝溶生家>
이 집은 1930년대 詩文學派의 순수시 정신을 고양시킨 한국 시단의 대표적 시인인 정지용 선생(鄭芝溶 1902~)이 소년기를 보냈으며 "향수"를 비롯한 아름다운 시를 탄생시킨 문학산실이다.
문학의 해를 맞아 이 유서 깊은 곳에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한국문인협회가 현대문학 표징사입의 일환으로 이 글을 새긴다.
1996년 5월18일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황 명.
SBS 문 화 재 단 이사장 윤세영.
정기휴일로 사립문에도 걸쇠(잠을쇠)가 잠겨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도탑게 다가오는 온기 뿜어내는 초가에서 알 수 있듯이 정지용 시인의 품성과 감성이 그냥 생성된 것만은 아님을 봅니다. 그 어머니의 비단결 같았을 온화한 품성과 아버지의 너그러운 인자함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져 지금의 시인 정지용을 탄생시킨 것이겠지요.
이엉을 올린 흙돌담너머 아늑한 온기 흐르는 초가에서 도란도란 정다움이 봄바람 타고 솔솔 풀려나와 들리는 것만 같아 흙돌담아래 얼마나 서성였는지 모릅니다.
비록 실개천의 모습은 변했어도 시인이 읊은 그 실개천처럼 휘돌아 나가고 있음에, '향수'의 노랫가락처럼 지줄 대며 흘러가겠지 언제까지나..
내 어린 시절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 외가의 사립문을 보는듯한 감정에 눈물이 왈칵 솟습니다. 그 땐 모두 그랬지요. 돌담이나 흙돌담에 이엉을 올렸고 외할머니의 인자함처럼 포근히 온기를 담은 초가지붕이 보름달을 닮은 누나의 얼굴 같은 박 두어 개 쯤 보듬고 있었지요.
마침 휴관으로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정지용 시인 생가 바로 앞에 흐르는 실개천.>
지금은 축대를 쌓았지만, 당시는 인위적인 시설이나 축대가 없는 시인이 읊은 자연 그대로였을 실개천을 꿈꾸듯 그 정경을 마음에 그려본다.
2014년 5월5일 <鄕香>
'◈ 세월에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돈사지 / 居頓寺址 (원주) (0) | 2014.05.09 |
---|---|
'마당넓은집' (옥천) (0) | 2014.05.08 |
해운대해수욕장과 동백섬산책길. (0) | 2014.03.16 |
송정 죽도-송정해수욕장- (부산) (0) | 2014.03.16 |
부산 할매돼지국밥집- 용궁사 일출 - 공수포구 (05시20분~07시20분) (0) | 2014.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