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동문지,②남문지,③서문지,④북문지,⑤석현성,⑥주막거리,⑦성황당,⑧문경토끼비리,⑨봉생정⑩고문군,⑪진남숲,⑫영강.
<진남문/鎭南門>
지형적 특성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5세기 신라가 북진정책을 펼치면서 쌓은 고모산성과 조선시대의 官城인 석현성 등의 성곽유적지인 이곳을 옛날의 군사적 요충지임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오늘도 완전군장을 한 육군병사들이 진남문으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유혈목이/蛇巳>
<석현성 진남문/石峴城 鎭南樓>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위치에 있는 석현성은 고모산성 陣城으로 적의 침투를 차단하기 위해 쌓은 성입니다. 고모산성에서 관갑천(串岬遷)의 낭떠러지길인 토끼비리 방향으로 활짝 편 새의 날개처럼 이어진 성으로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옛길이 지나는 길목으로 옛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성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년)에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진남루 주변 석현성 성벽에는 서울 한양도성 성벽처럼 여장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고모산성에 보축한 조선시대의 석현성 서쪽 성벽입니다. 위에 보이는 성벽은 고모산성입니다.
고모산성은 영남지방을 서울로 연결한 대표적인 내륙교통로에 해당하는 영남대로에 위치한 삼국시대 산성으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길목을 지키는 국경지대의 요새라 할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 문경새재 부근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조령천과 문경시 가은읍에서 흘러내려오는 영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고모산을 둘러싸고 있는 包谷式의 이 산성의 지리적 조건은 영남지방에서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교통로인 문경새재 조령관문에서 남쪽으로 약 12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고모산성 동쪽으로는 오정산(810m)을 비롯하여 높은 봉우리들이 백두대간과 연결되어 있고 남서쪽으로는 어룡산(617m)을 연이은 봉우리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어 문경새재에서 남쪽으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고모산성 아래를 흐르는 영강과 마찬가지로 협곡으로 되어 있는 이곳을 거쳐야만 합니다. 영강이 보이는 옆 절벽이 '토끼비리'이고 거기서부터 이어져온 성벽을 따라 이어진 옛길이 진남문 안 돌고개(꿀덕고개)로 이어집니다.
<고모산성 남문>
2004년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에 따르면 남문터와 성내 용벽시설 투석용 몽돌무지(싸움할때 던지기 위한 냇자갈돌더미), 성외 보축성벽(채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바닥부분에 덧대어 쌓은 또다른 벽채)등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남문의 규모는 길이 16m, 너비 2~3m,로 남동향입니다. 남문의 구조는 성벽을 쌓아올려 성벽의 높이가 중단부 이상 높아진 다음 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개구부(開口部)를 내고 성벽과 직교하는 통로부 측벽을 축조한 현문(縣門)형태의 성문입니다. 산성 바깥에서 성문을 바라볼때 凹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루에는 문루가 있으나 발굴조사 결과 고모산성은 축성기법에서 삼국시대 축조기법을 보이고 있으며 문터에서 건물과 관련된 유구및 유물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상단부에 문루(門樓) 시설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복원된 남문 좌측 외곽 성벽 모습입니다.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초기인 2세기경 신라에서 계립영로(鷄立嶺路 문경~충주 미륵사址)를 개설하던 시기에 북으로부터 침입을 막기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성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주흘산 이남이 한 눈에 바라보이고, 남쪽으로는 불정지역으로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 수 없어 반드시 이 곳을 통과해야 하는 병목같은 곳이어서 임진왜란, 동학농민혁명, 한말 운강 이강년 선생의 의병항쟁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많이 이용되었던 곳입니다. 할미성이라고 불리는 이성은 둘레 1,270m의 장방형입니다. 높이는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11m이고 폭은 2~3m입니다. 동쪽에 암문이 1개 남아있고 남쪽 1km위치에 옛길인 토끼비리(串岬遷)가 있습니다.
고모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마고산성, 고부산성, 희양산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문경시청>
신라가 고구려의 남하를 막고 한강이북으로 진출을 도모하던 5세기경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이 산성은 경사진 언덕에 석축을 쌓았지만, 2~5m가 되는 비교적 높은 산성입니다. 안내게시판에 의하면 영강이 흐르는 옆 대로변에 서문이 있었고, 영남대로(옛길)지나가는 석현성 방향으로 동문과 남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벽은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사가 심하고 방어에 용이한 서쪽편 절벽에는 경사각도에 따른 바깥쪽에만 성축을 쌓은 석축산성으로서, 성벽이 경사면의 윗부분에 둘려 있는 테뫼식 산성이며 성벽의 구조는 내외협축(內外夾築 : 흔히 산에서 보는 돌탑 쌓은 방식)의 형식을 취해 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축조방법은 고구려 산성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됩니다. 보은의 삼년산성에서 이러한 방식의 가장 전형적인 예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모산성에서 내려다본 진남교반>
이 지방의 빼어난 명승지의 하나로 꼽히는 토끼비리라는 절벽에 영남대로 옛길이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오정산(810m)이 이어져 있고, 앞에 보이는 어룡산(617m)이 서쪽을 가로막고 있어 이 곳을 빠져나갈 길은 고모산성 아래 보이는 영강 주변을 이용해야 하는 병목같은 길목으로 군사요충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3번 국도가 터널로 관통하여 이어져 있으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굽어진 강가 절벽이 토끼비리입니다. 고모산성에서 내려다본 수려한 경관에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토끼비리 옛길 옆 터널(3번국도)을 줌으로 본 모습입니다.
서문지 아래 3번국도와 옛 철길이 있고 그 옆에 영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보이는 산은 어룡산입니다.
서문지와 남문지 중간 성벽 위에서 남문지방향을 본 풍경입니다.
고모산성 안에서 남문지와 동문지 사이의 성벽을 바라보고 담은 사진입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옛 성벽의 성축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본래의 성벽의 석축을 살펴보면 삼년산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삼국초기의 산성축성 기법을 보입니다. 동문지로 가는 길가 복원되지 않은 옛 성벽의 모습입니다.
복원된 남문지 안에서 바라본 남문지 주변 모습입니다. 성벽 외곽과 내곽의 경사가 완만하거나 비교적 평편한 지대에는 성벽의 높이가 높고 내측과 외측의 높이에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성벽 안에서 보았던 남문지 옆 성벽의 바깥 모습입니다. 성벽 높이가 안에서 본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래 사진에서 보이 듯이 경사가 많은 곳에서는 바깥쪽 성벽은 높아도 안쪽은 성벽의 높이가 경사진 만큼 지면과 가까운 1m 이내인 곳도 있습니다.
고모산성 외곽성벽 밑부분에서 이어져 축조된 석현성곽 모습입니다. 조선시대 축성된 성에는 여장이 설치 된 것에 비해 석현성에는 진남루 언저리에만 여장이 설치되었고 그 이외는 사진에서와 같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관갑잔도/串岬棧道> (면곡어변갑 시/綿谷 魚變甲 詩)
" 설험협관장 행난촉도기 전제유욕속 국책물언지. 設險函關壯 行難蜀道奇 顚隮由欲速 跼蹢勿言遲."
'요새는 함곡관처럼 웅장하고 험한 길 촉도 같이 기이하네 넘어지는 것은 빨리 가기 때문이요 기어가니 늦다고 꾸짖지는 말게나. '
* 면곡 어변 < 綿谷 魚變甲1380(고려 우왕6년)~1434(조선 세종16년)) 조선초기 문신 집현전 응교, 의정부 좌찬성 추증. 위의 詩는 변갑 선생이 이 길을 지나며 쓴 시로 토끼비리를 지나가는 것이 매우 험난하고 힘이 들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시입니다. 이외에도 권근, 서거정 등 많은 과객들의 시가 있습니다.
<토끼비리> 명승31호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41.산42번지에 위치한 이 길은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험한 벼랑에 개설된 길(棧道)로서 영남대로 구간 중 가장 험난한 길임을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의의가 큰 옛길입니다. 이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영강과 주변 경치가 아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합니다. 또한 석현성 진남문에서 불정원(佛井院)에 이르는 구간 가운데, 벼랑길 약 500m는 벼랑의 석회암 바위를 인공적으로 절단하여 암석 안부를 (巖石鞍部)를 파낸 곳으로 오랜 세월동안 이 길을 밟으며 지나간 선인들의 발자취가 빤질빤질한 바위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옛길 가운데 그 역사성과 지형적 특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존된 한국의 대표적 옛길이라고 문경시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돌고개 주막거리>
예로부터 주막은 오고가는 길손들의 휴식처로서 술청과 식당, 여관을 겸한 곳입니다. 이곳은 영남대로 구간 중 가장 통행이 빈번해 오래전부터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달리 '꿀덕고개'로도 불렸습니다. 문경시에서는 주막을 복원하고자 지난 2003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2006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주막은 문경에 남아 있는 마지막 주막인 영순주막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한채의 주막이 있는데 예천지역에 남아 있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한양천리길이 그 어드메뇨,
오늘도 시름없이 넘어가는 고갯마루,
고즈넉기 앉아 계신 성황님네
그 얼마나 많은 나그네 설움을 풀어 주셨을까 <鄕揆>
이 주막거리에서 마지막 주막이었던 '영순주막'입니다.
여독에 지친 몸 한시름 덜고 하룻밤 의지하려 찾았건 만
넉살스레 반기던 주모의 달덩이 같던 얼굴 오간데 없고
행주치마 펄럭이며 술상 내오던 부엌 문 굳게 닫혔네.
마당의 평상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 자리에 이끼만 푸르네,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렸는데 어느 곳에서 하룻밤을 머문단 말인가.
한가락 가을바람에 낙엽만 자지러진다. <鄕揆>
이 거리는 석현성 진남문을 들어서면 고모산성 남문지입구 앞을 거치는 고갯길로 옛길의 맏형 답게 지난 2007년 명승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라는 옛길의 한 자락 꿀떡고개로 길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졌던 나그네의 애환과 여독을 보듬어 주던 주막과 길손들의 안녕과 소원을 이루어 주던 성황당이 고즈너기 남아 아스라한 그리움을 줍니다.
진남문을 나서기 전 석현성동쪽에서 바라본 진남문입니다.
2013년 10월17일 고모산성(姑母山城), <香仁鄕> 明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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