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미천골자연휴양림정문과 관리소>
어제 12선녀탕을 산행하고 이곳 미천골에 늦은 밤에야 도착을 하여 미천골 주변을 둘러보질 못했습니다. 오늘은 점봉산 한 줄기인 곰배령을 가기로 한 날입니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고 곰배령으로 갈 예정입니다.
보이는 다리는 제가 하룻밤 머물렀던 '행복'실이 있는 숲속의 집 제1지구 미천골산림문화휴양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삼림문화휴양관 주변 전경>
미천골 계곡은 그 길이가 약 7km에 달한다고 합니다. 굽이쳐 흐르는 청정옥수는 곳곳마다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고 沼를 꾸몄습니다.
2층 우측 3번째 지붕이 '행복'실입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복도 모습.
철따라 고운 그림을 그려주는 창과 깔끔한 분위기의 방은 하루의 여독을 맑끔하게 씻겨 주었습니다. 방을 정리하고 짐을 차에 실고 마지막으로 빠뜨린 물건은 없는지 전기스위치는 모두 껐는지 점검을 끝내고 방을 나섭니다.
앞마당 옆 풀숲에 핀 예쁜 꽃이 오늘 하루를 즐겁게 열어줍니다.
미천골 골짜기를 끼고 들어가는 길이 보입니다. 저 길을 따라 숲속의 집 3지구가 있는 곳까지 둘러보고 다시 나와 곰배령으로 갈 생각입니다.
<정구터 / 井>
내가 묵은 산림문화휴양관이 있는 이 자리는 '정구터'라고 불리던 곳으로 신라시대 때 익성사(선림원址 : 양양의 진산인 설산)인 선림원지에서 800m 하단부에 떨어진 곳으로 이곳에 샘물이 있어 새벽에 스님들이 예불(도량식)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하였고 절을 찾는 신도들이 지나는 길목으로 물을 마시고 쉬는 장소로 일명 "정구터"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당시 종파분쟁으로 인하여 스님과 신도들의 신분확인을 하기 위한 일종의 검문소 역활을 하였던 곳으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차로 미천골亭이 있는 곳까지 5.2km를 거슬러 가며서 주변과 계류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골짜기 풍경을 볼 참입니다.
미천골(米川谷)은 선림원이 번성할 당시 한 끼 쌀 씻은 물이 계곡을 따라 하류까지 이르러 미천골(米川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골이 깊어서인지 수량이 풍부합니다.
계곡을 따라 가는 길에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참새가 방아간 그냥 갈 수 없다지요. 옛 신라 때 창건되었던 절터에 보물이 넷이나 있으니 저는 그만 여기를 둘러보기로 하고 친구는 예정대로 차로 계곡을 따라 미천골정자까지 갔다가 이리 오기로 했습니다.
선림원터 돌계단입니다. 미천골 계곡 옆 도로변에 있으며, '미천골자연휴양림'정문에서 안으로 900m 지점에 위치합니다.
<선림원지 /禪林院址 ><위치 : 양양군 서면 황이리>
선림원은 804년경에 창건되어 홍각선사가 번창시킨 사찰로 당대 최고 수준의 禪修鍊院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8세기 초 대규모의 사찰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10세기 전후 통일신라 때 대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국가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외 석등, 홍각선사비, 부도가 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선림원지 삼충석탑 / 禪林院址 三層石塔> (보물 제444호)
이 石塔은 二重基壇 위에 建立된 높이 5m의 3층 석탑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적 양식을 잘 계승한 석탑입니다. 6장의 판석으로 지대석을 짜고 그 위 下層基壇 面石은 대체로 各面 2매씩 8매의 長臺石으로 構成하였으며, 그 위에 甲石은 6매의 板石으로 덮었습니다. 上層基壇 面石은 각면마다 2매의 판석으로 모두 8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여 兩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돋움 표현하고 그 각면마다 팔부중상(八部衆像)을 2구씩 조각하였으며, 그 위의 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덮었습니다.
塔身部는 塔身과 屋蓋石이 층마다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있는데 그 어떤 꾸밈의 새김(彫飾)이 없이 단출합니다. 上輪部는 2층 단이 있는 노반(露盤)이 있고, 그 위에 寶珠形의 작은 석재가 있으나 본래의 것이 아닌 듯합니다. 조각이 거칠고 석재 구성도 규율성을 잃어 9세기 이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탑 앞에 안상이 있는 頂禮石이 남아 있습니다.
기단 부근에서 작은 탑(공양품) 64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팔부중/八部衆>
팔부중(八部衆)은 사천왕(四天王)에 딸린 여덟 神將, 「 건달바(乾
또 팔부중은 달리 불리는 이름도 있습니다 즉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장(神將).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迦)이다.
사천왕(四天王)은 동쪽의 지국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이르며, 위로는 제석천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을 지배하여 불법에 귀의한 중생을 보호합니다.
* 비사사(毘捨闍) : 동방의 지국천왕의 권속으로, 사람의 정기나 피를 먹는다는 귀신입니다.
* 아귀(餓鬼) : 동방의 지국천왕의 권속으로 계율을 어기거나 탐욕을 부려 아귀도에 떨어진 귀신으로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배가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한다는 귀신.
* 제용중(諸龍衆) : 서방의 광목천왕 권속으로 모든 용을 다 망라하는 귀신입니다.
* 부단나(富單那) : 서방을 관장하는 광목천왕의 권속으로 냄새나는 혹은 열병을 앓게 하는 귀신으로 아귀를 말하기도 한다.
* 건달바(乾闥婆) : 남방의 증장천왕의 권속으로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며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사는 천신의 일종. 제석천(帝釋天)을 섬기고 음악을 담당하는 신으로 언제나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에 나타나 찬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 구반다(鳩槃茶) : 남방의 증장천왕의 권속으로 사람의 몸에 머리는 말의 모양을 하고 있는 귀신임.
* 야차(夜扠) : 북방을 관장하는 다문천왕의 권속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힌다는, 모습이 추악하고 잔인한 귀신. 다문천왕이 통솔하는 여덟 야차는, 보현(普賢), 만현(滿賢), 산지(散支), 중덕(衆德), 응념(應念), 대만(大滿), 무비력(無比力), 밀엄(密嚴)을 이릅니다.
* 나찰(羅刹) : 북방을 관장하는 다문천왕 권속으로 푸른 눈과 검은 몸, 붉은 머리털을 하고서 사람을 잡아먹으며, 지옥에서 죄인을 못살게 군다고 하며.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 가루라(迦樓羅) : 팔부중의 하나로 상상의 큰 새로, 매와 비슷한 머리에는 여의주가 박혀 있으며 금빛 날개가 있는 몸은 사람을 닮고 불을 뿜는 입으로 용을 잡아먹는다고 함.
* 긴나라(緊那羅) : 팔부중의 하나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신으로,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 또는 말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는 등 그 형상이 일정하지 않음.
* 마후라가(摩睺羅迦) : 팔부중 하나로 몸은 사람과 같고 머리는 뱀과 같은 귀신.
* 아수라(阿修羅) :육도(六道)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 싸움을 일삼는 나쁜 귀신.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귀신.
(2층 지대석 남쪽 면에 새겨져 있는 八部衆의 二像입니다.)
좌측에 조각된 형상은 여러 개의 팔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 '아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팔부중에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입니다.
(2층 지대석 서쪽 면에 새겨져 있는 八部衆의 二像입니다.)
(2층 지대석 북쪽 면에 새겨져 있는 八部衆의 二像입니다.)
(2층 지대석 동쪽 면에 새겨져 있는 八部衆의 二像입니다.)
<선림원 건물지>
일정한 크기의 正方形 주춧돌이 4×5 20개가 직사각형 구조로 이루어진 큰 규모로 보아 강연이나 선을 하던 중심 건물로 추정해 봅니다.
<선림원지 부도 / 禪林院址 浮屠>(寶物 第447號)
부도란 석가모니부처사리 또는 고승의 유골이나 다비식을 거쳐 나온 사리를 안치한 일종의 무덤으로 부처의 법신이나 경전을 안치한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의 부도는 원래 지대석 위에 上中下臺의 基壇部를 놓고 그 위에 塔身石, 屋蓋石, 相輪部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도는 일제침략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65년에 흩어져 있던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있습니다. 본래 위치는 현 위치 뒤 산 중턱 50m정도 올라간 곳이 었습니다. <위치 : 양양군 서면 황이리>
이 부도의 건립연대는 新羅 定康王 元年(886年)으로 추정됩니다. 네모난 지대석과 8각의 下臺까지는 한 장으로 이루어진 돌로 2매로 구성되었는데 사각의 지대 부분은 땅위에 드러난 부분만 다듬고 땅 밑에 묻힌 부분은 원석 그대로입니다. 하대 팔각의 면 중 하나 씩 걸러서 음각 안상연화문 안에 사자상을 돋을 새김 하였고, 다른 4개의 면에는 안상연화문만 음각처리되었습니다. 하대 위에는 둥근 모양의 蓮花臺石이 놓여 있고 그 위에 石竿柱(돌기둥)모양의 中臺石과 원반모양의 上臺石이 1개의 돌로 만들어져 놓였습니다. 중대석 표면에 雲龍紋이 있는데 이는 부도 중대석에 나타나는 운용문의 始原이라 할 수 있습니다. 上臺 부분에는 앙련(仰蓮)이 장식되고 윗면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한 괴임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선림원지 석등 / 禪林院址 石燈>(寶物 第445號)
이 석등은 4장의 네모난 돌을 조합하여 만든 지대석 위에 상 . 중 . 下臺를 모두 갖추어 건립된 8각의 석등으로 신라시대 기본양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붕돌(屋蓋石)은 전각에 귀꽃이 있고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지 않으며 8각의 합각은 사선이 뚜렷하고 그 정상부에 복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작은 원형의 연화대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석등은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와 마찬가지로 신라 정강왕 원년(886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8각의 하대 옆면에는 각각 眼象이 음각되고, 그 위 복련에는 귀꽃 치장이 뚜렷이 새겨졌고 複蓮 윗면에 구름무늬와 1단의 높임 괴임을 새겼습니다. 간석은 중간 부분에 타원형 꽃잎이 8곳에 배치된 고복형으로서 그 윗 부분에는 대칭적인 연화판(蓮花瓣)을 새겼습니다. 간석 상.하단에는 권은문이 있으며 상대석에는 곂잎앙련이 있습니다.
화사석(火斜射石)에는 4개의 장방형 火窓이 있는 외에 각면의 아래쪽에 橫으로 장방형의 額을 장식하였는데, 그 액 안에 각각 1구씩의 안상을 새겨 넣었습니다.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귀부 . 이수 / 禪林院址 弘覺禪師塔碑 龜趺 螭首> (寶物 第446號)
이수(螭首)에는 『弘覺禪師碑銘』이라는 전서체의 머릿글(篆額)을 양각으로 새기고 주위에는 구름과 용 무늬(雲龍紋)로 장식하여 신라 말기 석비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신(碑身)은 가로 94.0cm, 세로 173.5cm의 크기로 재현하여으며, 대략 1,340자의 글자를 복원하였는데 비문의 내용은 비명(碑銘), 비문 찬술(撰述), 관련자, 홍각선사의 생애, 선사 사후(死後) 비석건립 경위, 관련인물, 건비(建碑)시기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부는 용의 머리가 곧게선 모습이고 직사각의 비신 자리(碑座)에는 구름무늬, 면에는 안상, 위에는 연화무늬가 둘려져 있습니다.
비교적 긴 꼬리는 위로 휘어 올라갔고 네 다리에는 서기(瑞氣)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탑비는 홍각선사(弘覺禪師 811~815~880)의 부도 탑비로서 신라 정강왕 원년(886년)에 세운 것입니다. 17세기 중엽 이전에 이미 파손되어 碑身 殘片 일부는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남아 있던 것을 2008년에 잔편을 토대로 새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홍각선사비와 석등이 있는 주변입니다.
선림원지 전경입니다.
선림사지를 둘러보고 길로 내려와 숲속의 집 3지구 쪽으로 둘러보러 간 친구가 간 방향으로 걸어가는 중입니다.
길 옆 계곡의 모습입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암반 위로 흐르는 물길이 굽어지고 소용돌이치며 작은 못을 이루며 여울져 흐릅니다.
계곡의 범상치 않은 풍치와 흐르는 물소리에 온 하루를 보내도 싫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위에 돌단풍도 노란 물 들어가는 아름다운 가을이여..
강원도의 계곡은 모두 선녀들이 목욕하던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묘하고 아름답기가 이를 데가 없으니..
작은 폭포지만 여인의 품처럼 아늑할 못이 어우러져 참 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개구쟁이시절 외가인 성남시 모란개울(옛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에서 발가벗고 놀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게 합니다.
동년배로 보이는 세 여인이 참으로 정답습니다. 저렇게 정감이 흐르는 모습들을 볼 적마다 내 가슴은 촉촉이 젖습니다. 왜...!
많은 미련을 남기고 또 다른 추억을 위해 곰배령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38선, 판문점에서는 북한과 유엔군이 38선을 정점으로 정전회담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 국군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점령하기 위해 숭고한 정신으로 다시없을 그 고귀한 생명을 가랑잎처럼 불태웠습니다. 그 신성한 곳에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어 고개를 숙입니다. 그 분들의 영혼이 피어낸 자유의 꽃인양 주변의 예쁜 꽃을 보듬고 담았습니다.
총탄에 뿜어져 나온 핏발처럼 붉고 붉은 꽃이여, 숭고한 아름다움이여, 이 나라의 수호신이시여, 이 꽃을 바칩니다.
2013년 9월6일 국립미천골자연휴양림을 떠나며,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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