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설악산 (장수대~12선녀탕~남교리)

鄕香 2013. 9. 22. 11:23

설악산국립공원장수대분소입니다. 용대자연휴양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나섰습니다. 이곳 장수대분소로 오는 도중에 용대삼거리 음식점에 들려 아침식사를 마치고 도착한 장수대분소입니다. 차를 주차장에 놔두고 대승령을 거쳐 남교리로 하산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 장소로 돌아오는 산행입니다.  

 

 

 

 

 

장수대에서 대승령까지 가파른 오름을 2시간에 걸쳐 2.7km를 가야합니다. 대승령 정상에서 우측으로 가는 능선은 귀때기청봉과 대청봉으로 가는 능선이고 왼편 좌측으로 가면 더 이상 오름은 없고 12선녀탕 계곡을 끼고 남교리 나들머리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의 계곡길입니다.

 

 

 

대승령으로 오르기 전의 모습입니다.

 

 

 

계곡 옆에 오름이 시작되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목조계단이 끝나자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오름이지만 길지는 않습니다.

 

 

 

 

 

가다가 가끔씩 돌아서서 건너 편의 산세와 풍경도 보며 가파지려는 숨을 고릅니다.

 

 

 

 

 

바위로 이루어진 가파른 오름에는 철골의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법 긴 계단 입니다. 

 

 

 

양지 바른 곳에서만 보이는 곱고 예쁜 색깔의 작은 꽃이 무리지어 피었습니다. 

 

 

 

나무는 죽었어도 그 기묘한 折枝는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산은 언제 어디에서나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저 봉우리들은 점봉산 줄기입니다.  

 

 

 

건강한 저 소나무의 향기로움이 정신을 상쾌하고 맑게 씻어 줍니다.

  

 

 

무리지어 바알갛게 피어 있는 보랏빛 분홍색 꽃들이 따사롭게 내리는 햇살만큼이나 아늑한 편함을 줍니다.

 

 

 

죽어서도 주변의 경관을 압도하는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는 저 소나무에서 스스로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장중한 저 바위산에 사람의 얼굴모습이 보입니다. 이마와 눈썹, 코와 입,  

 

 

 

잘 놓인 계단을 오르면서도 아찔함을 느끼고 두려운데, 가파른 석벽에 이 길을 내느라고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을까! 목숨을 건 그 수고로움에 고마움을 가집니다.

 

 

 

다시 계단은 이어지고 앞서가는 이의 배낭의 무게가 내 어깨에 느껴집니다.

 

 

 

장수대 나들목(여기서 나들목은 순수 우리말로, 나가고 들고 하는 입구를 말합니다.)에서 대승령(1210m)으로 가는 도중 900m 지점에 위치한 대승폭포입니다. 대승폭포는 그 높이가 88m에 이른다고 하며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 천마산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의 3대 폭포로 알려져 있습니다.

 

 

 

"먼 옛날 한계리에서 대승이라는 총각이 살았었답니다. 하루는 폭포가 있는 돌기둥 절벽에 동아줄을 타고 내려가서 돌버섯을 따고 있는데, 절벽위에서 '대승아! 대승아!'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 동아줄을 타고 올라갔으나 어머니는 간곳없고 동아줄에는 짚신짝만한 지네가 매달려 동아줄을 뜯어 막 끊어지려는 참이었다. 대승은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에 급히 동아줄을 타고 올라 무사히 살아날 수 있었다."후세 사람들은 죽어서도 아들의 위험을 가르쳐준 어머니의 외침이 메아리 친다하여 이 폭포를 대승폭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승폭포 뒤로 보이는 저 봉우리는 안내판에 게시된 위치로 볼 때 아마도 '안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승폭포 전망대에서 다시 대승령을 향해 발길을 돌립니다. 맨 앞서 가는 저 여인은 혼자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대청봉으로 간다고 합니다. 근력으로 볼 때 우세한 남자들도 선뜩 나서기 꺼려지는 산행을 여인의 몸으로 그 것도 동행도 없이 단독산행을 하다니 참 대단한 분입니다. 

   

 

 

대승령까지 오름 길이 1.8km임을 이정표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약간의 내려가는 길이어서 숨 좀 돌리며 가도 되겠지만, 내려간 만큼 다시 오름이 더해지니 이대로 내처 오름만 못하기에 좋은 기분만은 아닌 걱정이 앞섭니다.

 

 

 

숲에 가린 하늘을 처다보니 곧게 뻗은 나무들이 하얀 도화지에 청묵(靑墨)의 무늬를 그려 놓았습니다.

 

 

 

대승폭포에서 앞서가던 여인은 어느 새 한 남자를 앞질러 보이지도 않고 앞지르기를 당한 남자 분만 힘겹게 오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회에서나 체력에서나 승승장구 하는 여성시대임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갈라지고 속은 텅 비었어도 싱싱하게 잎을 피우며 살아가는 것은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와 토양 때문이겠지 생각하니 도심에 심겨진 나무들이 참 안쓰럽고 미안합니다. 사람의 발길가는 곳은 오염과 파괴뿐이니..

 

 

 

초롱꽃이 참 많은 곳입니다. 등산로 옆에서도 지천으로 피고 있습니다. 산 오르는 나그네의 밤길을 밝히기라도 할양인 듯이..

 

 

 

가로(橫)로 뻗어진 줄기에 노랑꽃이 아름답습니다.

 

 

 

흰 초롱꽃도 드문드문 피웠습니다.

 

 

 

장수대를 출발하여 이곳 대승령까지 2.7km를 2시간 4분이 걸렸습니다. 안내판에는 2시간 거리로 표시되어 있으니 얼추 맞춰온 셈입니다. 처음부터 이곳 대승령까지 2.7km의 가파른 산행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과 싱싱한 나무들이 품어주는 상큼한 피톤치드의 치유, 그리고 건강하게 흘린 땀으로 누적된 나트륨만 뽑아낸 그 상쾌함으로 즐거움이 넘칩니다.    

 

 

 

 

 

 

 

<투구꽃>

 

 

 

<흰꼬리엉컹귀>

 

 

 

 

 

<흰꼬리엉컹귀>

 

 

 

대승령정상 모습입니다. 인천 어느 산악회에서 왔다는 사오십대의 젊은 분들이 간식과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빛깔도 고운 자줏빛 보라색의 이 꽃은 새끼오리 모양을 하고 있고 옹기종기 모여 나들이를 가는 듯하여 재밌고 아름답습니다.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능선입니다. 아직 가본 적이 없어 이번 가을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행을 타고 이번처럼 장수대에서 시작하여 귀때기청봉을 거쳐 한계령휴게소나 오색으로 하산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자꽃>

 

 

 

대청봉 중청봉이 있는 능선입니다. 작년가을에 설악동에서 천불동계곡으로 해서 대청봉을 거쳐 오색으로 하산했을 때 저 준령들을 넘던 일들이 일순 스쳐갑니다.

 

 

 

길지 않은 오름이 있는 곳입니다. 주변에는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수줍게 피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눈을 돌리니 점봉산 줄기가 장대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승령을 떠나 이제 겨우 1km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남교리까지 7.6km의 가야할 길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골짜기입니다.   

 

 

 

죽은 나무 사이로 참 빛깔도 예쁜 초롱꽃이 정답습니다.

 

 

 

<그늘돌쩌귀>

고깔모자를 쓴 것처럼 처음 본 꽃입니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 녹색터널 속에 그 모양새는 어울리지는 않지만, 친환경 나무계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늘돌쩌귀>

 

 

 

나무는 죽어서는 서서히 모든 곤충과 식물의 양분이 되어가면서도 최후까지 그 꼿꼿한 기개를 잃지 않고 오히려 살아있을 당시보다 더욱 도도하기만합니다.  

  

 

 

깊은 골짜기면 어김 없이 군락을 이루는 천관은 이 계곡에서도 여기 저기 보입니다. 큰 고사리 잎과 비슷한 식물입니다. '천관' 신라 진평왕 때 화랑 김유신이 한 때 천관의 미모에 빠져 관계하다 끊었는데, 연회로 술에 취해 마상에서 졸던 김유신을 태우고 습관처럼 천관의 집에 당도하자 정신이 든 김유신이 칼로 愛馬의 목을 쳐 죽이고는 발길을 돌렸다는 사연이 얽힌 이름입니다. 당시 천관이 기생이었는지 천제를 관장하는 주술적 여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기생으로 기술하는 예가 많습니다. 

    

 

 

완만한 내림길에 아기자기한 계곡의 모습은 재미도 있고 힘든줄 모르겠습니다.

 

 

 

물가 바위면에  이끼와 더불어 살고 있는 넓은 떡잎의 이 식물은 빨간 꽃술에 하얀 꽃잎이 너무 섬세하고 작고 가녀린 모습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고결한 귀품에 마음이 끌립니다.

   

 

 

<바위구실취>

 

 

 

 

 

 그리움을 주는 하얀 모래가 깔리고 살랑이는 바람결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잔물결은 없어도 퐁퐁 또르륵 졸졸 옥구슬 구르는 듯 들리는 소리 끊임이 없고 고개를 살짝 돌리기만하면 그 자리에는 앙징스런 폭포가 있던 계곡의 모습입니다.

 

 

 

계곡이 깊고 수림이 우거져 음습한 기운이 있고 완만한 내림길이어서 여성적 면모를 지닌 길입니다.

 

 

 

대승령에서부터 시작한 계곡길은 2.6km를 왔건만, 아직도 남은 계곡길은 십오리가 남았습니다. 등성을 따라 하늘을 보며 시원한 바람에 옷깃을 날리는 상쾌하고 유쾌함이 그립습니다.

 

 

 

잘 생기고 건강한 이 나무는 길고 끝이 뾰족하게 갈라져 뚫린 두 개의 구멍이 상하로 있습니다.

 

 

 

크고 매끄럽고 잘 생긴 나무의 기묘한 모습에 오묘한 구멍은 내 몸 하나를 통으로 받아 들이고도 남았습니다. 남성들이여 오묘한 매력에 끌려 그 안에 들어가선 안됩니다. 陽氣를 다 잃습니다. 여인들은 대승령 치고 오르는 길에서 소모된 陰氣를 보충 받을 수 있는 좋은 곳이지만... 

 

 

 

이 계곡의 물을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옛 직장이 있던 세종로를 할 일 없이 거닐 때 교보빌딩에 걸린 엄청 큰 현수막의 글귀가 해성처럼 눈에 들어왔습니다.  장석남 시인의 "그리운 시냇가"의 한 詩句인 '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깊고 깊은 골짜기에 시냇물이 흐르는 이 산중의 분위기 때문일까, 詩句에서 말하듯 아득하고 아무도 이르지 않는 시냇가여서일까 

 

이 시의 전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한 골짜기로 올라 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 잠도 자지 못하리라." 

 

이 詩는 보면 볼 수록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을 포근하고 훈훈하게 해주는 시입니다. 이 계곡에서 이 흐르는 물에서 이 시가 떠오르다니...  한 시절 예쁜 내 아이들과 우이동 골짜기 냇가에서 지냈던 고왔던 시절이 떠올라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돌출된 바위양 편으로 흘러내리던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 폭포를 이루고 있습니다.

 

 

 

 

 

산길은 험준한 벼랑을 피해 이편에서 저편으로 다시 저편에서 이편으로 다리를 놓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골짜기는 숲이 무성해서 앞을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길은 다시 다리를 놓아 계곡 건너편으로 길을 옮깁니다.

 

 

 

넓고 울퉁불퉁한 경사진 바위 바닥면을 흐르는 물이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쪼그리고 앉아 한 참을 머물었던 곳입니다.

 

 

 

위에 사진보다 조금 더 떨어져서 담은 사진입니다.

 

 

 

이제까지보다 길은 평평해지고 계곡의 폭이 넓어져 주변이 환해지는 것에서 생각이듭니다. 무언가 보일 것 같은 조짐이라고..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비단을 널어놓은 듯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경사진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봅니다.

 

 

 

계단으로 내려가며 하얀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 건너 안산의 계곡이 보입니다.

 

 

 

<두문폭포>

 엄청난 암반에 명주 천을 널어놓은 듯이 고분고분 속삭이듯 흐르는 폭포에 넋이라도 잃었는가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 여인과 네 사내, 저들에게 갓 씌우고 흰 도포 입혀 곰방대라도 물리면 바로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한 폭 실경화가 아닐 수 없겠지요.

 

 

 

대승령에서 깊은 숲속 계곡을 따라 2시간10분에 걸쳐 4.5km 정도 내려오니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세월에 때로는 시악시의 타래머리에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물결로, 때로는 천지를 진동하는 우레와 함께 억수를 쏟아 부어 산더미 같은 바위를 노도처럼 휘몰아 장대하고 백옥 같이 흰 암반을 갈아 파고 깎아 놓은 물길은 벼랑 같은 폭포를 이루고 웅덩이를 만들어 하늘의 선녀에게 선물하였나 봅니다. 

 

 

 

두문폭포 아래 첫째 선녀탕

 

 

 

정면으로 바라본 두문폭포와 沼

 

 

 

두 번째 선녀탕.

 

 

 

세 번째 선녀탕.

 

 

 

네 번째 선녀탕. 첫 번째 선녀탕 못지않은 깊이와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沼 위와  아래로 이어진 폭포와 아울러 아름답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네 번째 선녀탕아래 이어진 폭포를 옆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등산로 옆 깎아지른 암벽에 쓰러져 가로놓인 고목에서 아름답게 뻗어난 가지들이 생기로운 잎들을 돋아내어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등산로 옆 깎아지른 암벽입니다. 경사에 맞춰 올려 찍은 사진이어서 평평해 보이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로는 다섯 번째 선녀탕이지만, 네 번째와의 사이에 작은 沼도 있었을 것입니다.

 

 

 

장마철에 위에서 쓸려 내려온 바위와 자갈모래가 쌓여서 아름다웠을 여울목이 아쉽습니다.

 

 

 

벼랑 아래 보이는 폭포와 여섯 번째 선녀탕(沼)입니다.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볼 수가 없었어요.

 

 

 

정면으로 본 폭포와 여섯 번째 선녀탕(沼)입니다.

 

 

 

폭포의 전체 모습과 소, 소에서 다시 폭포를 이루어 일곱 번째 선녀탕으로 떨어지기 전의 모습입니다. 여섯 번째 선녀탕 앞에도 쓸려 내려온 자갈모래가 沼를 메꿔 아름다운 모습에 옥에 티가 되었습니다. 

 

 

 

<십이선녀탕계곡/十二仙女湯溪谷>

열두개의 물웅덩이와 열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에 의해 유래되었지만, 노산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은 8폭 8탕이라고 기록을 남겼듯이 그 개수는 계절, 흐르는 물의 양과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암반이 패여 만들어진 물웅덩이나 沼가 많다하여 탕숫골, 탕수동(湯水洞)이라고 불리었으며, 여러 물웅덩이 중 하나인 용탕(龍湯)은 뒷벽의 큰 바위굴(龍穴)에서 용이 나왔다 하여 가뭄이 계속되면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던 곳으로 그 모양이 봉숭아와 비슷하다 하여 '봉숭아탕'이라고도 불립니다. 

 

 

 

 

 

 

<용탕/龍湯>

일명 복숭아탕이라고도 합니다. 일곱 번째 선녀탕입니다. 가파르고 높은 폭포수가 떨어지며 생긴 이 선녀탕 안에는 용이 나왔다는 동굴이 있습니다.

 

 

 

일곱 번째 선녀탕(龍湯/복숭아탕)에서 다시 폭포를 이루고 쏟아져 내리는 물살은 여덟 번째 선녀탕을 출산합니다. 

  

 

 

여덟 번째 선녀탕의 모습입니다. 가파른 암벽을 내려가 보니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짙푸른 물이 에메랄드 보석보다 아름답습니다.

 

 

 

계곡 가파른 측면에 놓인 철골목조다리를 걸어가며 바라본 깊은 계곡을 흐르는 맑을 물은 때로는 사나운 여울이 되고 때로는 잔잔한 시내의 모습으로 내 속에 있을 온갖 시름 만장홍진을 말끔히 씻겨주려는 듯 편린처럼 수많은 반짝임으로 눈짓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멋진 구름다리 위에서 정면으로 계곡의 위쪽과 아래쪽을 보는 행운도 가집니다.

 

 

 

구름다리에서 본 내가 지나온 계곡 위쪽.

 

 

 

때로는 뻥 뚤린 하늘이 보이면 산봉우리도 쳐다보고 가슴 벌려 신선의 공기도 훔쳐 마시며.. 

 

 

 

다시 작은 폭포와 선녀탕들이 이어지는 계곡을 봅니다.

 

 

 

굽이치고 휘어감아 돌아내려가며 하얀 포말을 뿜어내는 저 물길에서 참 아름답다는 말조차 그 빛을 잃었습니다.

 

 

 

다시 구름다리를 건너 나무들의 정원으로 들어서고,

 

 

 

차츰 가파름은 퇴색하고 완만한 비탈길과 호젓한 오솔길에 이제까지의 긴장과 떨림은 눈녹듯 사라지고 아늑함과 평온함에 다리의 무거움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폭포와 선녀탕이 이제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거센 물길에 깎이고 떨어지고 파여 깊어진 골짜기에는 맑은 물빛이 보석처럼 빛납니다.

 

 

 

이정표는 내가 가야할 길이 아직도 3km나 남았다며 웃습니다. 

 

 

 

분명 이곳도 沼인데 자갈모래로 가득 메워져 여울목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가파른 폭포를 이루고 있습니다.

 

 

 

沼에서 폭포로 떨어지기 전 潽모양 턱진 곳 가운데 돌출된 곳이 있어 물이 솟아 흐릅니다.

 

 

 

옆에서 본 모습입니다.

 

 

 

다시 돌아본 폭포와 선녀탕(沼) 아마 11번째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도 혹이 생기나 싶습니다.

 

 

 

구유통처럼 생긴 沼입니다. 열두 번째가 되는 선녀탕이겠지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본 사진입니다.

 

 

 

물빛을 보니 검푸르고 물결이 마치 마그마가 굳은 용암(화성암)처럼 보입니다. 

 

 

 

위 12선녀탕이 흘러내린 아래 끝부분입니다.

 

 

 

오늘 장수대를 출발하여 대승령을 거쳐 12선녀탕을 지나 이제 남교리까지 남은 거리는 2km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빛이 고와 찍은 풍경인데, 이제 보니 그 모양이 여인의 샘, 성스러운 곳을 닮은 것 같습니다. 

 

 

 

줌으로 담은 모습입니다. 내 말이 맞지요. 얼마나 고운 물빛이고 물결인가요.

 

 

 

이제 남교리(12선녀탕들머리)공원지킴이센터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정표가 있던 곳을 돌아보고 담은 사진입니다. 되돌아오지 마시라는 듯 나무들이 몸으로 가위표를 짓습니다.

 

 

 

 

 

마지막으로 담은 계곡의 모습입니다.

 

 

 

산행에서 11.3km는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결코 쉽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산행이었던 것은 열두 선녀가 목욕을 한 까닭일까 함께 내려온 여인들을 더욱 생기가 넘쳤지만, 남정네들은 기진 한 것으로 볼 때 陰性인 여성은 陰氣를 받아 氣가 충만했졌고 陽性인 남성은 12선녀의 음기에 양기가 다 소진되어 지치고 힘든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그래도 12선녀탕의 아름다운 여운은 끝이 없겠습니다. 

 

 

 

<남교리지킴터>

이제 7분 정도 걸어 나가면 47번 국도로 원통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원통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속초로 가는 버스를 타고 산행 출발지였던 장수대에서 내려 주차장에 두었던 차를 가지고 국립미천골자연휴양림으로 가야 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소 옆 음식점 인근에 핀 꽃들을 담은 사진입니다.

 

 

 

 

 

 

 

 

 

 

 

 

 

 

 

버스정류장 뒤쪽 풍경입니다.

 

 

 

오늘 산행한 12선녀탕 골짜기 모습입니다.

 

 

 

2013년 9월5일 인제군 북면 남교리 설악산에서,

고맙습니다. <仁瓊 .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