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구문소 (求門沼)

鄕香 2013. 9. 8. 14:56

태백 3박4일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입니다. 귀가 길에 드문드문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입구로 가는 길.

 

 

 

휴양림을 나서는 도로에 나비들이 무리지어 날거나 도로에 앉아 가을맞이 의식을 치르는가봅니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을 떠나 20여분을 달리니 '철암'이라는 국도변의 인적 없는 작은 시가지입니다. 상점들은 모두 폐업을 하고 건물도 방치되어 있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6~70년대 석탄이 에너지의 주종을 이룰 때 성시를 이뤘을 이 작은 도시는 석탄산업의 사양과 더불어 퇴색되어 탄광종사자들과 광부는 떠나고 이곳은 폐허의 도시가 되었겠지요. 

  

 

간판은 걸렸으나 주인은 없고,

거리는 있으나 오가는 이 없네.

 

문짝은 떨어지고 유리창은 깨지고

지난날 문전성시 다 어디로 갔나

 

그 쓸쓸함에 나그네 눈시울 적시고

지나는 길손 하룻밤 유숙할 곳 없네. <鄕香>

 

 

 

<구문소 (求門沼) >

낙동강 상류 황지천의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깊은 沼를 이루었는데 이를 求門沼라고 합니다. 또한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하여 '뚜르내'라고 부르기도 하며 주위의 낙락장송(落落長松)과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구문소(求門沼)와 우혈모기(禹穴牟奇) 

 

 

 

황지로 가는 국도가 우혈모기(禹穴牟奇)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 석회동굴인 구문소는 자개문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구문소 안쪽 벽에 보면 "오복동천 자개문(五福洞天 子開門)" 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에 그 연유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구문소 (求門沼) >

구문소는 낙동강 상류 황지천의 물이 거쳐가는 곳으로 백구백병(白拘白幷)의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옛날 구문소 옆에 '엄종한'이라는 사람이 노부모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어느날 구문소에 고기를 잡으러 간 그는 실족하여 그만 물에 빠졌는데 그 곳이 바로 용궁이었다. 용궁의 닭인 물고기를 잡은 죄로 용궁군사들에게 끌려갔으나 3일동안 잘못을 비니 용왕이 노여움을 풀며 주연을 베풀어 주어 융숭한 대접을 받은 엄씨는 집의 부모님과 자식 생각이 나서 떡 한 조각을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주연이 끝나자 용왕이 흰 강아지 한 마리를 주며 강아지 뒤를 따라가면 인간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강아지 뒤를 따라 물 밖으로 나오니 강아지는 죽어버렸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니 집안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엄씨가 용궁에서 가져온 떡이 생각나 꺼내보니 떡은 단단한 차돌이 되어 있었고 그 돌을 무심코 빈 쌀독에 넣어 두었는데 다음날 아침 아내가 쌀독을 열어보니 쌀이 가득차 있어 이상히 여겨 쌀을 몇 바가지 꺼내 보았으나 그대로 였다. 용궁석으로 인하여 쌀독은 아무리 쌀을 퍼내도 줄지않는 화수분이 되어 엄씨는 큰 부자가 되었다.

 

 

 

구문소에 대한 3가지 유래중 하나인 '백룡의 전설'을 낳은 구문소는 뚫리기 전 이 일대는 커다란 호수였으며 황지천은 사군드리(자동차학원이 있는 곳) 쪽으로 굽이돌아 철암천과 합류되는 뱀모양의 巳行川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감록'에 의하면,  "동강 최상류에 올라가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석문이 나오고 三災가 들지 않는 이상향이 나타난다."라고 했으며, 석문은 子時에 열리고(開) 丑時에 닫히는데, 門이 열릴 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도 없는 무릉도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글을 구문소 안 벽에 "오복동천 자개문(五福洞天 子開門)"이라는 7자로 새긴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문소를 매우 신성시 했으며, 자개문(子開門)을 통하면 태백의 땅(소도의 땅)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오복동천 자개문(五福洞天 子開門)"

수면 바로 위 석회암벽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혈모기(奇牟穴禹)

 

 

 

우혈모기(禹穴牟奇) 이 인공 석굴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석탄광산을 열면서 도로를 관통시키기 위해 뚫은 통로로 그 위에 禹穴牟奇라는 글을 새겼는데 풀이 하자면, "어쩌면 우왕이 뚫은 굴과 기이하리 만큼 가지런하게 닮았을까!" 라고 자화자찬한 것이라 보겠습니다.

 

 

 

 

 

구문소 주변공원.

 

 

 

구문소위 적벽으로 가는 길

 

 

 

구문소적벽으로 이어진 산줄기

 

 

 

<태백 구문소 전기고생대지층 및 물에 깎인지형/太白 求門沼 前期古生代地層 및 河蝕地形> 천연기념물 제417호

이 지역은 약 4억9천만년 내지 4억 4천만년 전에 퇴적된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 퇴적암층(조선누층군 막골층, 직운산층, 두위봉층)이다. 구문소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하천의 침식작용에 의해 석벽에 구멍이 뚫려 만들어진 연못으로 주변의 기암 벌벽들과 함께 침식지형을 잘 보여 주는 곳입니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옛 문헌에 천천(穿川)으로 표기되어 있고, 낙동강의 발원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지역 석회안층(막골층)에는 건열구조, 연흔구조(물결자국), 스트로마 톨라이트(박테리아에 의해 생성된 돔상의 퇴적구조), 새눈구조, 생교란구조, 증발광물(소금이나 석고)의 흔적 등 이 퇴적암이 퇴적될 당시의 환경을 지시하는 매우 다양한 퇴적구조가 잘 관찰된다고 합니다. 구문소 상류에 분포하는 직운산층은 석회암이 아닌 이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층 안에서 삼엽층, 완족류, 두족류, 필석류 등 고생대의 화석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문소의 지형과 지질학적 특성은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함께 하부고생대의 퇴적환경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자료 고생대 연구소>

 

<경사진 암반 위로 흘러 구문소로 들어가는 물줄기 모습>

 

 

<상류(黃池)로부터 내려 오는 물줄의 모습.>

얕은 여울이건만 옥빛 맑은 물이 끊임없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구문소를 향해 달음박질 하고 있습니다.  

 

 

 

<황지천을 가로질러 구문소 석벽위로 올라가는 길과 연결한 다리>

 

 

 

구문소 석벽위에 있는 자개루(子開樓)로 올라가는 길옆에서 바라본 구문소로 흘러가는 물줄기, 드센 물발에 마치 미끄럼틀처럼 움푹 파였습니다.

 

 

 

구문소로 쏟아 붓듯이 곤두박질해 들어가는 물줄기. 이렇게 드센 물줄기는 오랜 세월을 통해 가로 막힌 석회암벽을 뚫고 구문소라는 동굴 같은 소를 만들고 스스로 물길을 냈습니다.

 

 

 

구문소위 석벽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자개루(子開樓)>

구문소가 있는 석벽 산위에 있는 이 亭子는 팔작지붕 겹처마에 모로 단청이 되어 있습니다. 이름하여 '자개루' 이 자개루에 오르면 구문소 인근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이나 무성한 소나무들로 시원스럽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자에서 소나무사이로 내려다본 동쪽 구문소 앞 물줄기

 

 

 

서쪽, 구문소로 흘러 들어가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물줄기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길입니다.

 

 

 

건너왔던 다리를 다시 건너며 쳐다본 건너 편의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건물.

 

 

 

이름 모를 꽃이여.. 참 곱구나!

 

 

 

대한민국의 하늘을 날으는 대한의 나비라서, 태극무늬를 지녔구나!

 

 

 

 

 

청룡과 백룡의 전설을 담은 청용의 형상 (龍像), 서쪽 황지천 용입니다.

 

 

 

조선중기 문신 권만(權萬숙종14년~영조25년)의 詩碑 "穿川求門沼"

권만(權萬)은.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인물입니다. 1728년 정자로 재직시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장 유승현(柳升鉉)을 도와서 반역을 꾀한 무리들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1746년 병조좌랑으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정조 때 창의의 공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저서에 『강좌집』이 있습니다. 아래 시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천천 구문소 」  (권만)

" 좁고 담담한 골짜기는 귀신 도끼질로 뚫은 것이 틀림없는지라 돌문은 둥근 무지개 모양으로 뚫린 골짜기에 걸쳐 있네, 천둥치듯 소리 내어 오랜 세월동안 세 갈래 폭포는 쏟아졌고 눈처럼 하얗게 물보라 열며 천길 아래에서 한줄기 냇물로 흘러갔네. 용의 기운은 웅덩이에서 비를 뿌리려고 비릿한 입김을 뿜어대지만 햇빛은 절벽에서 이를 물안개로 하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네 사람들은 제아무리 담이 커 겁이 없다 해도 마유산 꼭대기에 있는 말봉에는 오직 날 수 있는 새들만이 날아들고 있을 뿐이네."

 

 

 

구문소석벽 옆을 뚫어 도로를 낸 동쪽모습입니다.

 

 

 

물은 세 개의 작은 폭포를 지나 다시 하나의 물줄로 합쳐 階段層으로 이루어진 경사진 지대를 작은 폭포를 연이어 놓은 듯 흐르며 물 흐름에 가속을 합니다.

 

 

 

 위의 3줄기 폭포를 크게 찍은 사진입니다.  

 

 

 

경사진 석회암반으로 이루어진 곳을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구문소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

 

 

 

구문소 동쪽 모습 黃池로부터 발원하여 수많은 작은 물줄기와 합류하여 川을 이루어 이곳을 거쳐 철산천과 합류하여 낙동강을 이룹니다.

 

 

 

구문소 서쪽 황지천이 흘러와 구문소 앞 바위로 이루어진 狹谷을 성난 노도처럼 지나 구문소로 쏟아져 들어가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세찬 물줄기에 구문소는 생길 수밖에 없었으리..

통소와 사다리굴, 여물통 같이 길쭉한 沼라 하여 통소라고도 합니다. 태백의 모든 물이 바로 이 좁은 통소를 통과하기 때문에 물살이 엄청나게 셉니다. 통소 위를 보면 사다리굴이 보입니다. 아마도 구문소가 생기기 전에는 사다리굴로 황지천의 물이 흘러들어가 내부에 커다란 동굴이 생기게 되었고 동굴 외벽에 홍수 때마다 급류에 휩쓸린 바위나 커다란 나무들이 계속해서 감돌며 연마작용으로 갈아내서 적은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여 지금의 구문소가 생겼으리라 생각을 가져봅니다.

 

 <사다리굴>

 

 

사다리굴沼에 이어 여물통처럼 생긴 것에 통소라고 하며 . 통소 위를 보면 사다리굴이 보입니다. 아마도 구문소가 생기기 전에는 황지천의 물이 흘러들어가 내부에 커다란 동굴이 생기게 되었고 태백의 모든 물이 바로 이 좁은 여물통 같이 길쭉한 昭를 통과 하기 때문에 엄청 쌘 물살에 홍수 때마다 급류에 휩쓸린 바위들과 커다란 나무들이 계속해서 감돌며 동굴 외벽을 갈아내는 연마작용으로 작은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여 지금의 구문소가 생겼으리라 생각됩니다.

  

 

 

<구문소 전설>

옛날 구문소에 구멍이 뚫리기 전에는 石壁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철암천(鐵岩川)이 큰 沼를 이루어 그 소에는 靑龍이 살고 있었고, 서쪽에는 황지천(黃池川)이 큰 소를 이루고 그 沼에 白龍이 살았다고 한다. 두 용은 서로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항상 다투었다. 매일 석벽꼭대기에서 싸움을 하였는데 항상 뇌성이 일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천지를 분간치 못하였고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느날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위에서 싸우다 내려와 석벽 밑을 둟으며 공격을 하여 청룡을 물리치고 그 여세로 昇天하였다고 한다. 백룡이 승천할 때 지나간 산을 용우이 산이라 하는데 구문소 앞에 솟은 산입니다.

 

<구문소 안 좌측에 쓰레기 부유물이 있는데 우측 門이 생기기 전에는 이 동굴에 구유처럼 생긴 좁은 통소로부터 쏟아져 내린 세찬 급류들이 바윗돌이나 자갈 등을 휩쓸고 와 저 쓰레기부유물이 있는 沼에서 소용돌이 쳤을 것이고 그 마찰로 벽이 갈려 구멍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

 

 

 

구문소주변 공원설치물

 

 

 

2013년 7월18일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