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낙랑(樂浪)

낙랑군 시기의 나무곽무덤과 귀틀무덤

鄕香 2007. 12. 5. 09:05

 

 

『나무곽무덤과 동검문화』

 

낙랑군이 설치되기 전, 서북한 지역에는 한국식 동검문화로 대표되는 고조선 문화가 융성하였습니다.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고 해서 기존의 고조선 문화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1세기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한국식 동검문화를 기반으로 한 나무곽무덤이 널리 분포해 있습니다. 나무곽무덤은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덧널을 설치한 후 그 안에 나무널을 안치한 무덤입니다. 무덤에 껴묻은 유물은 고조선 시기와 마찬가지로 한국식 동검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양한 철제 무기와 공구 등이 있습니다. 삿갓 모양 청동기, 권총 모양 청동기 등 '고조선식(古朝鮮式)' 말갖춤과 수레 부속품, 그리고 짧은 목단지(短頸壺)와 화분형 토기(花盆形土器) 등은 중원(中原)과 구분되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 줍니다. 

기원전1세기대 나무곽무덤은 무덤 양식이나 껴묻거리 면에서 고조선 이래 한국식 동검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무곽무덤은 해방 이후 평양시 랑랑구역, 강서군 태성리, 은율군 은성리 등에서 본격적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해방 이전에 수집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대동군 상리 유적 출토 일괄 유물, 황주군 흑교리 출토 일괄 유물, 평양시 동대원동 허산 출토 일괄 유물도 나무곽무덤 출토품에 해당합니다. 

기원전 108년 한무제에 의한 낙랑군의 설치에도 불구하고 나무곽무덤과 한국식 동검문화가 그대로 존속한 것은, 한나라가 기존 고조선의 지배세력을 유지시킨 채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 지역을 지배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귀틀무덤과 중원계유물」

고조선을 멸한 후 한나라가 설치한 군현 초기의 나무곽무덤 단계에서 전통적인 한국식 동검문화가 우세하였으나 군현 지배의 과정에서 중원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아 점차 이 지역만의 독창적인 낙랑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면모는 기원전 1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귀틀무덤에 잘 나타납니다. 나무곽무덤이 한 단계 발전한 귀틀무덤은 나무덧널 바같을 외곽으로 다시 둘러 싼 대형 고분입니다. 무덤의 한 변이 4~5m 정도로 대규모이면서, 부장품의 양이 많고 종류도 매우 다양하며 특히 중원제(中原製) 또는 중원계(中原系)유물이 급격히 증가하게 됩니다. 낙랑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평양 석암리(石巖里)9호 무덤을 비롯하여 이미 알려진 왕근묘(王根墓 : 석암리 209호 무덤), 왕광묘(王光墓 : 정백리 127호 무덤), 우묘(王盰墓 : 석암리 205호 무덤), 등이 모두 귀틀무덤에 해당됩니다. 군현 지배가 장기화됨에 따라 고조선계(古朝鮮系)주민과 한계(漢系) 주민의 종족적 융합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귀틀무덤은 바로 이들의 무덤으로 파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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