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겸(金允謙1711~1775)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극호(克讓), 호(號)는 진재(眞宰), 산초(山樵), 묵초(默樵)입니다. 김창업(金昌業)의 서자(庶子)로 진주 동쪽 소촌역(小村譯)의 찰방을 역임했습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실경산수화풍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대표작으로는 극립중앙박물관 소장인 '금강산화첩'인 <봉래도권(蓬萊圖卷)>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쥘부채(摺扇)에 부착한 반원형의 종이에 그린 그림만으로 구성된 일련의 화집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선면화집(扇面畵集)」에 엮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송파진(松坡津)은 한강에 있는 남한산성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삼전도(三田渡)의 동쪽에 위치합니다. 이 그림은 강을 건너기 위해 건너편 언덕에서 배를 부르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 부름에 거룻배가 강 중간쯤에 와 있는 듯 하며 강 건너에 몇 척의 거룻배와 촌락이 보이고 그 원경에 남한산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표현이 다소 소략한 듯 하나 김윤겸의 진경산수가 가진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김윤겸의 진경산수의 특징은 둥글둥글하면서 간략한 외곽선과 담청을 주조로한 바림으로서 산수를 표현하는데 있으며, 이 점을 송파나루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갓과 한복을 입은 선비의 복색이 우리 식인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지만, 기다리는 선비의 시점에서 바라보이게 화면을 구성한 것도 실제 경물(景物)을 현장에서 바라보는 듯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여 줍니다.
진재 김윤겸 필 송파환도(眞宰金允謙筆松坡喚渡)
조선시대 / 金允謙(1711~1775)作 /紙本淡彩 26.0×60.0cm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김창업(金昌業)>
본관은 안동. 자는 대유(大有), 호는 가재(稼齋)·노가재(老稼齋). 병자호란 때 척화파였던 상헌(尙憲)의 후손이며, 영의정을 지낸 수항(壽恒)의 넷째 아들로, 역시 영의정을 지낸 큰형 창집(昌集), 둘째 형 창협(昌協), 셋째 형 창흡(昌翕)과 함께 도학(道學)과 문장(文章)으로 이름을 떨쳤다. 1681년(숙종 7)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한양의 동교송계(東郊松溪)에서 은거했다. 1712년(숙종 38) 형 창집이 사은사(謝恩寺)로 청나라에 갈 때 함께 다녀온 뒤 <연행일기 燕行日記>를 썼다. 이 책은 보고 들은 것을 원숙한 필치로 자세하고 흥미롭게 묘사한 책으로 수많은 연행록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에 뛰어나 김만중(金萬重)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그림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그의 그림으로는 〈추강만박도 秋江晩泊圖〉(간송미술관 소장), 후인이 전사(轉寫)한 〈송시열 77세像〉(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남아 있다.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士禍)로 형 창집 등 노론(老論) 4대신이 섬에 유배되자 울분에 못이겨 병이 나서 죽었다. 그밖의 저서에 <노가재집> 이 있다.
'조선시대(朝鮮時代) > 조선 회화(繪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자 미상 청록화조도(靑綠花鳥圖) (0) | 2012.01.12 |
---|---|
전 국오 정홍래 필 욱일응도(傳菊塢鄭弘來筆旭日鷲圖) (0) | 2012.01.11 |
단릉 이윤영 필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 (0) | 2012.01.11 |
단릉 이윤영 필 화심유원(丹陵李胤永筆花深柳遠) (0) | 2012.01.09 |
능호관 이인상 필 누상관폭도(樓上觀瀑圖) (0) | 2012.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