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단원 김홍도 필 병진년화첩 제5폭 도담삼봉<金弘道筆丙辰年畵帖島潭三峯>

鄕香 2011. 4. 3. 14:16

 

한 전설에 의하면 남한강 한가운데 봉우리 세개가 솟아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는 늠름한 장군처럼 위엄 있는 자태를 하고 있는데 이를 남편봉이라 부르고 그 보다 좀 작은 북쪽 봉우리는 처봉, 남쪽 봉우리는 첩봉이라 부릅니다. 이 삼봉 가운데 처봉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 앉은 모습을 하고 있고 첩봉은 아기를 밴 모습으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선생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 이곳에서 청유하였다고 전해지는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

"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한 것도 아니오,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담삼봉의 빼어난 절경에는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지요. 예로부터 이곳을 찾아와 그 경치를 글로 찬양한 선비가 수없이 많았는데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도 저녁노을 지는 도담삼봉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남겼습니다.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爲泊仙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待看星月湧金波 (대간성월용금파).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적에.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이처럼 일찍부터 알려진 이곳 단양의 절경을 정조대왕께서도 연풍현감으로 있는 김홍도에게 명하여 그림으로 그려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그림도 당시 그런 연유로 그린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양의 명승 도담삼봉을 폭넓게 조망한 작품입니다. 삼봉을 정중앙과 그 좌우에 배치하였으나 삼봉은 물론 그 전후의 강기슭을 비스듬하게 둠으로써 포치는 전혀 답답하지 않습니다. 특히 먼산은 간결한 윤곽과 상큼한 버림으로 묘사된 뒤 하늘에 붕 떠 있는 듯이 넓은 여백 위에 놓음으로써 그 아래 도담삼봉 표면의 자잘한 준법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며 작품에 생기를 더 하고 있습니다. 도담삼봉 아래편의 모래톱도 깔끔합니다 언뜻 눈에 잘 안 뜨이지만 우측 아래 구석에 갓 쓴 선비 두 사람과 말 두 필, 그리고 일산(日傘)을 잡은 종복과 마부가 보이며, 그 좌측에도 갓 쓴 두 인물과 댕기머리 총각의 또 다른 일행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막 강 한복판에서 노 저어 오는 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우측 아래 구석의 인물들은 분명한 선묘로 되어 있어서 도담삼봉 아래 아룻배까지의 넓은 공간을 이들의 기다리는 심정으로 메워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단원 김홍도 필 병진년화첩 제5폭 도담삼봉<金弘道筆丙辰年畵帖島潭三峯>

朝鮮時代 / 金弘道 (52歲그림) 紙本淡彩 26.7 × 31.6cm / 湖巖美術館所藏 

 

 

《嶋潭三峯》2009년 4월 29일 촬영  - 仁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