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畿道 河南市 美沙洞 일대에 위치한 미사리유적은 1960년 김원용 선생에 의해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학계에 보고된 이래로 수차에 걸쳐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1979년에는 미사리 섬의 북쪽 일부가 사적 26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후 1980년에는 사적지 일대에 대한 긴급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최근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유적 일대의 江流幅을 확장하여 江岸을 정비하고자 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유적에 대한 구제발굴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조사는 1987년부터 1992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3차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미사리유적 발굴조사 광경(1991년)>
이곳 미사리유적에서의 청동기시대의 유구는 37기에 달하는 많은 수의 움집터와 34기의 소형 저장공, 그리고 고상식건물과 책열유구(柵列遺具) 등이 조사되었습니다. 움집터는 모두 방형 또는 장방형의 수혈주거지이며, 주거지의 크기는 장축이 210cm~1,875cm, 면적이 4.28㎡~100.31㎡로 다양한데, 단축과 장축의 비율은 1:1에서 1:3,5까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몇 기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장축 방향이 남북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강물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미사리 청동기시대 장방형수혈주거지 전경(1992년)>
주거지 내부에는 노지와 기둥구멍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시설이 없으며, 예외적으로 바닥에 점토를 깐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은 모래층을 그대로 바닥으로 사용하였고, 별도의 출입구 시설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노지의 형태는 세 가지가 있는데, 장방형 주거지는 특별한 노지 시설이 없이 지름 50~70cm 가량의 조그만 토광을 파서 노지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형 주거지의 경우 3기의 노지가 설치되어 있는 예가 있습니다. 둘째는 10cm 내외의 조그마한 강돌을 돌려서 만든 노지인데, 이런 형태의 노지가 설치되어 있는 주거지는매우 적은수에 불과합니다.
<미사리유적 청동기시대 방형수혈주거지 전경>
셋째는 바닥에 넓적한 판석을 1~2매 깔고 둘레에는 길다란 돌을 돌려서 만든 것으로, 이런 형태의 노지가 설치된 주거지에서는 이른바 突帶刻目文土器라고 불리는 토기만이 출토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미사리 청동기시대 방형수혈주거지 내부 노지 전경(1992년)>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가 있으며, 토기는 형태에 따라서 深鉢形土器, 壺形無文土器와 小形土器, 赤色磨硏土器, 黑(褐)色磨硏土器, 突帶刻目文土器 등으로 구분됩니다.
심발형토기의 구연부에는 孔列文, 短斜線文, 口脣刻目文 등이 단독 또는 혼합되어 施文되며, 동체부의 형태는 구경에 비해 몸체가 긴 세장형이며, 구연부는 안으로 내만된 것과 직립한 것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덧띠새김무늬토기편 각종(突帶刻目文土器片 各種) / (左)高10.0cm幅10.5cm厚0.6cm>
<구멍띠토기(孔列土器)/高19.8cm口徑18.5cm底徑9.9cm>
<구멍띠토기(孔列土器)/高41.5cm口徑34.0cm底徑12.0cm>
<구멍띠토기(孔列土器)/高35.0cm口徑35.0cm底徑9.3cm>
<구멍띠토기(孔列土器)/高46.0cm口徑30.3cm底徑10.5cm>↑
<민무늬토기 바리(無文土器 鉢)/高11.2cm口徑13.3cm底徑7.5cm>↑
<민무늬토기 바리(無文土器 鉢)/高10.0cm口徑13.7cm底徑6.7cm>↑
<민무늬토기 바리(無文土器 鉢)/高7.5cm口徑14.6cm底徑7.5cm> ↑
<민무늬토기 바리(無文土器 鉢)/高8.8cm口徑14.6cm底徑8.1cm>↑
호형토기는 구연부가 직립한 것과 外反된 것의 두 가지가 있으며, 구순부에 각목이 되어 있는 例도 있습니다.
적색마연토기는 紅陶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외반된 구연의 圓底壺와 筒形 굽이 달린 高杯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밖에 토제품으로는 漁網錘와 紡錘車가 있는데, 방추차는 모두 원반형의 몸체 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것들입니다. 어망추는 형태에 의해 구형, 막대형, 원반형의 세 종류로 구분되며, 대부분 球形과 막대형이고 원반형은 소량에 불과한데, 형태에 따라 무게가 다른 점으로 미루어 형태별로 그물에 부착되는 부위가 달랐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민무늬토기 항아리(無文土器 壺)/高31.8cm口徑10.0cm底徑8.6cm>
<민무늬토기 큰 항아리(無文土器 甕)/高58.0cm口徑21.5cm底徑8.6cm>↑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高15.2cm口徑9.0cm底徑8.0cm>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高8.5cm口徑7.0cm底徑cm>
↑ <그물추 각종(漁網錘 各種) / 高(左上)7.3cm徑1.9cm>
石器類로는 磨製石劍, 石鏃, 半月形石刀, 石斧, 石鑿, 碾石, 漁網錘, 紡錘車, 숫돌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마제석검은 2점이 출토되었는데, 2점 모두 2단병식으로 柄部(손잡이)의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반월형석도는 날이 둥글게 휜 형태로 날은 單刃입니다.
석촉은 三角形灣入鏃과 1단경식, 2단경식의 세 종류가 모두 출토되었습니다.
삼각형만입촉은 단면육각형의 세장형과 이보다 길이가 짧고 단면의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육각형의 두 가지가 있고,
1단경식과 2단경식도 세부적인 형태에 있어서 약간씩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화살촉 각종(磨製石鏃)/(右)高5.2cm幅1.2cm厚0.6cm>
석기류 중에서 석부가 가장 많은데, 둥글고 긴 자갈의 한쪽을 양쪽에서 마주보고 갈아서 날을 세운 蛤刃石斧와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어 오던 납작한 형태의 半打半磨製 石斧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밖에 석착(돌끌), 대팻날석기, 방추차, 어망추 등이 있는데, 이 중 경희대 1호주거지에서 출토된 상아색의 석제 방추차는 매우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어서 일종의 장신구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밖에 장신구로는 경희대 1호주거지에서 출토된 연록색의 관옥파편과, 서울대 A-1호주거지에서 출토된 曲玉, 서울대 A-11호 저장공에서 출토된 飾玉이 있습니다.
↑<매단옥 및 곱은옥(飾玉 . 曲玉)/(左)高2.37cm幅1.27cm厚0.57cm>
↑<대팻날석기.가락바퀴(扁平石斧 . 紡錘車)/(左)高4.0cm幅3.2cm厚0.7cm>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出土地未詳/ 高12.4cm口徑7.9cm底徑cm 서울大博物館 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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