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구석기시대(打製石器.타제석기)

舊石器時代 桃花里遺蹟

鄕香 2011. 1. 2. 22:43

 

江原道 襄陽郡 桃花里에 위치한 이 유적은 1984년 9월 양양군 오산리유적을 발굴하던 중 주변지역의 지표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으며, 대략 100X200m 가량 되는 지역에서 많은 양의 석기를 수습하였습니다. 이 유적에서 수습된 석기는 다량의 양면가공석기(biface)를 포함하여 매우 다양한데, 이들 유물군이 후기 구석기시대의 것임을 보여주는 석기는 없습니다. 아주 작은 크기의 버리는 석재를 포함하여 이 곳에서 수습된 석기의 총 수는 4,000여점에 달합니다.

석기들은 대개 30~80cm 두께로 발달한 적색조의 실트-점토층 내부와 상면에서 수습되었는데, 이들 토양은 아마도 일종의 잔류토층으로 기반암인 선캠브리아기의 편마암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적이 위치한 일대의 체계적인 지질학적, 지형학적 조사는 실시하지 못하였으나, 유적 일원의 전반적인 지형과 지질에 대한 관찰과 지형도 및 지질도의 판독을 통해 볼 때, 이 유적은 원래 육성퇴적층내에 형성되었으며, 이후 융기되어 현재의 고도에 이른 다음 다시 심한 침식을 받아 현재의 상태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물포함층이 이미 침식에 의하여 제거되었기 때문에 시굴에서도 퇴적층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만약 일대의 지형이 위와 같은 과정을 겪어서 형성된 것이라면, 퇴적층이 플라이스토세의 지층임에 틀림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물의 대부분이 매우 심하게 '구른(rolled)' 것이지만 수습된 유물에는 풍부한 양의 버리는 석재와 未成品이 섞여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유적은 아마도 집중적인 원재료 채집이나 석기의 1차 가공활동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버리는 석재가 집중적으로 분포한 곳에 설정한 3개소의 사방 1m 지점의 표토층에서 모두 1,890점의 버리는 석재를 수습할 수 있었으며, 아마도 이 지점은 수렵채집집단이 선캠브리아기의 기반암내에 존재하던 맥석영을 이용하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찾던 곳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찍개 / 높이 10.9cm>

 

<참고도서 / 서울대학교박물관 발굴유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