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고성리산성 . 동강 / 古城里山城 . 東江 (정선)

鄕香 2010. 10. 28. 17:39

제천에서 영월방면으로 가다 쌍룡에서 유턴하여 동강으로가던 중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난 길가에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있습니다.

" 본 터널은 상수도 도수관로의 효율적인 유지관리를 위하여 설치된 시설로써 동절기에 한하여 일시적으로 개방되오며 아래기간에 대하여 통행을 제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고 冬節期 이외에는 우회도로(군도6호)를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폐쇄기간 : 매년 4월1일부터 동년 10월30일까지(하절기) / 개방기간 : 매년 11월1일부터 명년 3월 31일까지(동절기)

정선군수 . 신동읍장

1차선 정도의 폭에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이 동굴모양 긴 터널을 가는 도중에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으로 터널을 나올 때 까지 진입해 오는 차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터널 출구 옆에서 차가 기다리고 있다가 내차가 나가니 터널로 진입을 하더라고요. 고성 쪽에서는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는지...

 

 

좁은 터널을 빠져나와 어느 정도 내려와 동강 쪽으로 가는 길에 도로 좌측에 고성산성이란 팻말과 함께 황갈색의 아름다운 낙엽이 소복하게 쌓인 아늑하고 운치 있는 곳이 있어 생각지도 않은 고적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고성산성 들머리

 

 

소담하고 낙엽 소복히 싸인 아담한 광장에 古城亭이란 현판의 작은 정자가 고적함을 더합니다..

 

 

예전에는 마을이 있었던가 연자방아 멧돌이 정겹습니다.

 

 

 발길 따라 바삭바삭 상큼함으로 다가오는 낙엽소리가 젊은 시절의 감성을 돋아 내려합니다.

 

 

고성리산성(高城里山城)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산 319 /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68호,

이 산성은 정선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은 동강이 휘감아 흐르는 天惠의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이 산성의 築造時期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三國이 對立하던 時期에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신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이곳에 산성을 쌓았다고 하나 성곽의 築造 형태나 오래 전 성내에서 석촉石鏃 . 石劍 . 土器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에 축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산성의 규모는 「조선 보물 고적조사朝鮮寶物古蹟調査」자료에 의하면 높이 5.4m, 둘레 630m 城郭은 石築과 토루(土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의 형태는 해발 425m의 山 頂上에 테를 두른 듯 둥글게 공간을 두고 주변의 길목에서 잘 보이는 곳에 네 곳으로 나누어 축성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산성 일부가 붕괴되어 있었으나 지방문화재 지정과 동시 지표조사를 통하여 1997~2000년까지 보수 . 복원하여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성산성 탐방로 안내도>

 

 

여기서 400m 정도 가파르게 올라가면 산성의 盆地가 있습니다. 

  

 

 

이 제1분지에서 다시 이길로 가파르게 500m 정도 올라가면 제1산성입니다. 4개의 산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나의 분지를  ∩형으로 4개의 산성이 둘러 싼 형태입니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에는 이곳을 찾는 발길이 드문지 잡초가 무성합니다.

 

 

산책도 하고 옛 자취도 음미하며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환경입니다.

 

 

뿌옇게 흐린 하늘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분지(軍營址)가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제1산성 앞에 1984년 8월 정선군수 명으로 세운 碑文입니다.

 

 

산과 동강으로 에워싸인 산성의 성채가 天祭의 제단처럼 보입니다.

 

 제1산성 : 정선방면으로 소골과 운치리 일원이 관망됩니다.(길이 63m, 높이 4~4.4m, 넓이 4~5.1m)

 본래 쌓은 성축 일부가 무너져 내린 것을 복원한 부분이 보입니다.  

 

바로 옆 山城 위에 앉아있는 산까치를 담았습니다. 금세 날아갈 것만 같아 급히 담았으나 흔들려 선명하질 않습니다. 

  

 

도자기 면에 문양을 새겨 놓듯이 성벽에 담쟁이가 무늬가 되어 보기에도 좋고 참 곱습니다.

 

 

산성과 저 산 사이에 동강의 맑고 푸른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산성 안의 盆地입니다. 옛 병사들이 생활하던 병영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방이 휜히 보이나 나무로 인해 아늑함을 줍니다.

 

 

대다수 산성이 그렇듯이 주변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에 강물이 감싸고 있는 산 정상은 넓고 평평하여 많은 병력이 주둔할 수 있는 요새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적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공격하는데 용이한 지리적 요건을 잘 갖춘 곳입니다.   

 

 

제1산성에서 조망되는 경치입니다. 계곡에 동강의 물줄기가 굽이굽이 산성을 끼고 흐릅니다.

 

 

 제2산성 : 평창 군계와 덕천리가 관망됩니다.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길이 78m, 높이 5.5~6.8m, 넓이 3.9~4.2m)

 

 

 

성축 앞머리는 돌의 색깔로 보아 복원한 성축입니다.

 

 

성벽의 높이는 대략 5~6m 입니다.

 

 

 무너져 내린 곳을 근래에 다시 이어 복원한 흔적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정확히 고증할 문헌이나 기록은 없지만, 이곳에서 출토된 石器遺物들이 摩製石器라니 그 연유로 볼 때 원삼국(마한, 진한, 변한)의 三韓時代에 축성된 遺跡址로 본다면, 이 땅에 살던 선조들이 쌓아 남긴 것을 지금의 내가 2,000여년의 세월을 건너 소통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제3산성 : 산성 내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영월, 평창 군계와 동강 일부가 관망됩니다.(길이 120m, 높이 2.3~5m, 넓이 5~5.6m) 

옛 성축을 만지면 선조의 따스함이 내 손을 통해 느껴질 것만 같은 애틋함이 솟아오릅니다.   

 

 

 

제3산성에서 바라 본 전망입니다. 동강이 굽이 굽이 古城을 휘돌아 흘러갑니다.

 

 

높은 山勢 사이 걔곡에 숨은 듯이 흐르는 물결은 수억만 년을 그 자리에 변함없이 흐르며 수많은 역사속의 사연을 조잘조잘 들려주는 듯합니다.

 

 

겹겹으로 병풍처럼 둘려진 산세에 물들어가는 나무이파리의 색깔들이 한 폭의 그림인 양 아름답습니다.

 

 

 제3산성은 안쪽은 지면과 같은 높이로 쌓였습니다.

성벽 바깥쪽은 나무숲이 우거져 있어 현실감은 없어 보이지만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적군이 근접하기에 용이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서 좀 걸어가니 제4산성이 보입니다.

 

 

칡넝쿨이 우거진 저 편에 성체가 보입니다. 제4산성입니다.

 

 

제4산성 : 치성 형태는 망루로 신동리에서 넘어오는 길목과 고성리 고림부락 일원이 관망됩니다.(길이 75m, 높이 4.5~5m, 넓이 3.6~4.5m)

적군이나 적진의 동태, 주변을 살펴보기에 좋은 위치입니다. 

 

 

제4산성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갑니다

 

 

산성 가까이 걸어가는 발길에 곧 닥쳐올 겨울 삭풍을 목전에 둔 들꽃이 애처롭습니다. 적들과 전쟁을 앞둔 병사들인 양하여..

 

 

제4산성 안길로 내려오다 산성 끝 지점에서 길은 산성 밖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4산성 밖으로 나오니 안쪽 벽은 멀쩡했는데, 외벽은 무너져 내려 있습니다. 보기에 본래의 성축인 것 같은데 이번 雨期에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무너져 내린 성돌 표면이 오랜 풍파를 겪은 흔적을 지니고 있어 이렇게 고풍스런 옛 모습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더 무너져 내리기 전에 복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산성 밖으로 내려오는 길입니다. 제1산성과 제4산성 사이의 가파른 곳입니다. 이곳으로 내려가니 제1산성으로 올라가던 제1분지인 원점이 됩니다. 이곳 말고는 산성을 공격할 수 있는 곳은 불가능 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4개의 성벽을 차례로 거쳐 내려오니 옛날에는 성문이 있었을 제1盆地인 원점으로 왔습니다.  제1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양지 바른 산에 햇살에 붉게 물이든 단풍이 들고 음지는 아직도 그 푸름을 잃지 않고 있어 이채롭습니다.

 

 

 나무로 얼기설기 놓은 일명 '학다리'지요. 새로 놓은 것으로 보아 지난 여름 큰물에 다리가 무너져 떠내려 간 곳에 다시 놓은 듯합니다. 6번지방도로 변과 개울을 사이에 둔 고성산성주변을 잇은 이 학다리는 옆에 있는 고성초등학교 예미분교 학생들의 등하교 편의를 위해 놓은 다리로 짐작됩니다.

 

 

학다리의 상판입니다. 보통, 학다리는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위에 흙을 덮은 것 아닌지요.

 

 

산뜻하지만 조용하고 호젓한 교정에 정서가 흐릅니다. 수십 년 지난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예미초등학교 고성분교의 전경입니다. 이런 분교나 시골 학교를 보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것에 마음이 찡하고 서글픕니다. 다시 동강을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동강유역은 4억5천만년 전의 거대한 석회암 지질의 모암층과 2억5천만 년의 역암층 및 퇴적사암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생물학적 원시성과 자연성이 잘 보전되어 있어 학술적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는 멸종위기종인 백부자, 산작약, 솔나리, 개병풍, 가시오가피와 신종인 동강할미꽃, 중부지방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한국사철란 등의 식물과 천연기념물 및 멸종위기종인 산양, 수달, 붉은 박쥐, 검은 독수리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동물이 서식 분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백룡동굴 등 확인된 동굴만 71개소가 분포하고 있으며 직경 2km의 둘리내(구덩이), 60m의 단층, 다양한 습곡 등 특이한 지형을 갖추고 있는 등 자연경관이 우수하고 생물 種類의 다양성이 풍부한 생태계의 寶庫로 알려져 있습니다.

 

 

돌아 본 이정표로 보아 지나온 길이 동강길의 일부임을 알겠습니다.

 

 

동강가의 산세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험준합니다. 돌들이 대부분 퇴적암이나 석회암이어서 반질거리고 검은 빛깔에 가깝습니다.

 

 

물의 흐름은 여울처럼 빠르고 맑지만 석회암지대 특유의 비취색을 띠고 있습니다.

 

 

강을 따라가는 길은 아이처럼 언제나 즐겁습니다. 

 

 

석양을 안고 담은 사진입니다. 해 저문 늦저녁처럼 어둡습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각이면 왠지 마음이 쫓기고 피돌이가 빨라지니 혈액순환이 빠르면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이지요.  

 

 

 

강을 따라가는 길인지 길 따라 강을 보고 가는지 알 수 없으나, 강 따라 길을 낸 것만은 분명하니 강 따라 길을 간다해야겠지요. 

 

 

정선읍 가수리의 번들길이란 푯말이 보입니다. 윗길로 300m 정도 들어서니 서너 가옥이 있는 작은 마을에 막다른 곳이였습니다. 

동강가 벼랑을 끼고 참으로 멋있는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든 단풍으로 갈아 입은 산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털모자를 쓴 모습입니다.

 

 

강을 향해 엎어진 듯 숙인 이 소나무는 크기도 크지만 건강하고 그 특이한 모습에 반하여 두 번이나 찾아 온 곳입니다.

 

 

다른 소나무들에 비해 보면 품종이 다른 것 같습니다.

 

 

 홍송이나 해송이나 금강송이나 우리나라 소나무 품종들은 아무리 보아도 그 자태의 아름다움에 실증이나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백운이라 불리는 산은 전국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가본 곳도 여럿 있는데, 이 백운산은 아직 올라보지 못했습니다.

 

 

백운산은 보기에는 오르기에 별 어려움은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평범해 보여도 올라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또한 산입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에 달리는 차창으로 붙잡은 모습입니다. 산 정상 언저리 부분에 산의 주름인 양 나무들이 층을 이루며 얽혀 자라고 있습니다. 가파른 돌산의 표면이 층을 이루고 있음입니다.

 

 

하얀 모래자갈과 푸른 물이 반원을 그리며 매우 아름답습니다. 옛날 한강모래밭처럼 새끼자라에 강소라 말조개 등이 있을까 불쑥 달리는 차를 멈추고 달려가 보고 싶은 충동이 솟아납니다.

 

 

늘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이 산세山勢이고 대자연의 모습입니다.

 

 

목적지 제천으로 가는 일반국도로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쌍용양회 채굴장이 있는 곳인데 지명을 쌍용양회에서 따온 것인지, 쌍용이란 지명을 인용하여 회사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일대를 통틀어 쌍용으로 부릅니다.

 

 

터널 이름도 쌍용터널입니다.

 

 

제천 시내에 들어와서야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에 있는 이 " 산해진미"란 식당에서 동태찌개를 주문해서 식사를 했는데, 정말 맛이 좋습니다. 제가 제천으로 옮겨와 이 식당을 찾은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는 아주 음식솜씨가 좋은 집입니다. 수더분하신 두 자매분이 음식을 만드는데, 정갈하고 정말 맛있습니다. 

  

 

누구라도 저를 찾는 분이라면 기꺼이 한 상 대접하지요.

 

 

이 찌개에 소주라도 한 잔 걸치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식사는 맛있고 가격은 저렴합니다.

단돈 오천원짜리 찌개백반 찾아보기 귀합니다. 더구나 양적으로나 맛으로나 이만한 음식 없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속여 먹었을 수법을 잘 표현한 시가 너무 구수하고 서민적입니다.  "얼렁 갔다 오시게~~"

 

 

 2010년 10월20일 <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