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학자(1762~1836).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자하도인(紫霞道人). 문장과 경학(經學)에 뛰어난 학자로 유형원(柳馨遠)·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본관은 나주(羅州). 소자는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庸)·송보(頌甫), 호는 사암(俟菴). 자호는 다산(茶山)·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 당호(堂號)는 여유(與猶). 아버지는 진주목사(晉州牧使) 재원(載遠)이며,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두서(斗緖)의 손녀이다. 경기도 광주시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에서 태어났다. 다산의 생애와 학문과정은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따른 유배를 전후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되며 그의 사회개혁사상 역시 이에 대응되어 나타난다.
정약용()은전형적인 文人餘技畵家로서 소박하고 순수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正祖의 총애를 받았던 그는 정조가 승하한 후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1801~1818)이란 긴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매화병제도>는 그의 외로운 유배생활을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으로 윗부분에 간단히 매화와 새를 그리고 그 아래에 시와 跋文을 적은 전형적인 문인화입니다. 詩에 이아서 작은 글씨로' 嘉慶十八年癸酉七月十四日洌水翁書于茶山東菴'이라는 연호와 간기, 그리고 款署가 있고 이어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 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奇敝裙六幅 歲久紅渝 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
'내가 강진에 가서 귀양살이 한 지 몇 해 후에 부인 홍씨가 해진 치마 6폭을 보내 왔는데, 너무 오래 되어 붉은 색이 다 바랜 것이었다. 그것을 오려서 족자 4폭을 만들어 두 자식들에게 주고 또 그 나머지로는 작은 칸막이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주었다.'
정약용은 두 줄기 매화가지와 두 마리의 새를 가느다란 필선으로 세밀하게 묘사하였는데, 새와 나뭇가지의 서툰 뜻한 표현으로 우리는 그가 餘技畵家답게 천진한 모습을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래서 이 그림이 더욱 그의 내면세계를 잘 표출하고 있는 것임을 아울러 느끼게 됩니다.
『 翩翩飛鳥 息我庭梅 有烈其芳 惠然其來 爰止爰樓 樂爾家室 華之旣榮 有蕡其實 』
" 휠휠 나는 새가 우리 집 뜰 매화나무에 와서 쉬네. 그 나무에 짙은 향기 있어 그리도 잘 온다네. 거기 머물다 살기도 하고 너의 집안 화락하기도 하다.
꽃이 활짝 피고 나면 열매가 가득 맺는단다."
매화병제도(茶山丁若鏞筆梅花屛題圖)
朝鮮19世紀 / 鄭若鏞 1762~1836 / 絹本淡彩(1813年作) /縱 44.9 × 橫 18.5 cm /高麗大學校博物館
'조선시대(朝鮮時代) > 조선 회화(繪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원 김홍도 필 죽리탄금도(檀園金弘道筆竹裡彈琴圖) (0) | 2010.02.13 |
---|---|
단원 김홍도 필 송하선인취생도(檀園金弘道筆松下仙人吹笙圖) (0) | 2010.02.13 |
호생관 최북 필 영모도 3점.(毫生館崔北筆翎毛圖) (0) | 2010.02.05 |
현재 심사정 필 초충도첩(玄齋沈師正筆草蟲圖) 皴 (0) | 2010.02.05 |
수운 유덕장 필 설죽도(峀雲柳德章筆雪竹圖) (0) | 2010.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