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역대 왕릉

조선국 제 2대 정종·정안왕후 김씨/定宗·定安王后 金氏.

鄕香 2009. 7. 4. 09:12

 

정종(定宗 1357-1419)의 이름은 경(曔). 초명은 방과(芳果)·자는 광원(光遠). 태조와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 사이에서 함흥부 귀주동에서 1357년 7월26일 둘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비는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김천서(金天瑞)의 따님이신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1355-1412)이시다.

1377년(우왕 3) 아버지 이성계(李成桂)를 따라 지리산에서 왜구를 토벌했고, 1389년(창왕 1) 절제사 유만수(柳曼殊) 밑에서 해주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했다. 1390년(공양왕 1) 밀직부사(密直副使)·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삼사우사(三司右使)를 역임하셨다. 조선이 개국되자 영안군(永安君)에 봉해지셨고,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李芳遠)의 영향력 아래에서 태조양위를 받아 1398년 10월22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오르셨다. 1399년(정종 1) 3월에 개경으로 천도했고, 집현전을 설치하셨다. 그해 8월에는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을 제정하여 권귀(權貴)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1400년 2월 제2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하여 아우 방원을 세제(世弟)로 책봉하셨다. 그해 사병(私兵)을 혁파하고 병권을 의흥삼군부에 집중시켰다. 또한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고치고, 중추원을 삼군부로 고치면서 군·정 분리체제를 이룩하셨다. 6월에는 노비변정도감(奴婢辨正都監)을 설치하셨고, 같은 해 11월 세제 방원에게 선위(禪位)하셨다. 그뒤 상왕(上王)으로 인덕궁(仁德宮)에 거주하면서 격구·사냥·연희를 즐기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다. 1419년(세종 1) 10월24일 인덕궁 정침에서 돌아가셨다. 같은 해 온인공용순효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의 시호를 받으셨다. 그러나 1420년 명나라에서 '공정(恭靖)이라는 시호내리자 '공(恭)'이라는 글자가 겹친다는 이유로 시호에서 '공용(恭勇)'을 삭제하였다. 이로서 '온인 순효' 단 4자에 명나라에서 내린 '공정'을 합해도 6자에 불과했다 조선에서 국왕에 내리는 시호는 기본이 8자이고 인물에 따라 추가적인 글자를 더했다. 이에 조선에서 묘호(廟號)도 받지 못한 정종을 대하는 대접을 알 수 있겠다. 아예 종묘에서 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선대 왕으로 인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명나라로부터 조선 국왕으로 책봉받지 못했다는 문제와 태종의 왕통을 이은 후손으로서 방계인 정종을 제대로 인정하기 뭣하다는 문제까지 합쳐진 것이겠다. 1681년(숙종7)에 비로서 정종(定宗) 의 묘호를 받으셨다. 능은 풍덕에 있는 후릉(厚陵이다.  재위(1398-1400)2년에, 상왕(1400-1419)18년을 지내셨다.

공정온인순효이었다가, 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의 시호를 받으셨다.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1355-1412)는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김천서(金天瑞)의 따님으로

1398년(태조 7) 8월 정안군(靖安君: 태종) 등에 의한 정도전(鄭道傳)일파의 제거 및 이를 계기로 신덕왕후 소생 둘째 아들로 세자에 오른 의안대군(宜安大君)의 폐출로 영안군(永安君 : 정종)이 세자가 되면서 세자비가 되셨고, 같은 해 9월에 덕빈(德嬪)에 봉해졌다가 영안군(定宗)이 즉위하면서 덕비(德妃)에 진봉(進封)되셨다.

1400년(태종 즉위년) 정종이 정안군(태종)에게 전위하고 상왕이 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의 존호를 가상(加上)받았다. 인자하고 후덕하였으며, 정종에게 선위하고 정양할 것을 권하여 정종이 조기에 선위 및 천수를 다하게 한 내조가 있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었고, 능은 후릉(厚陵)으로 경기도 풍덕(豊德: 개풍군 白馬山)에 있다. 1681년(숙종 7) 의 휘호를 추상받았다. 

 

 〈 후릉(厚陵)〉 경기도 풍덕(豊德: 개풍군 白馬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