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풍속화(風俗畵)

화재 변상벽 필 자웅장충(雌雄將雛)

鄕香 2009. 6. 23. 09:02

 

변상벽(卞相璧. 1730-?)은 18세기에 활약한 화원(畵院) 화가로 자는 완보(完甫), 호는 화재(和齋)이며,

초상(肖像)과 영모(翎毛)에 뛰어났는데,  특히 고양이와 닭 그림을 잘 그려 '변고양(卞古羊)'과 '변계(卞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화사한 봄날 어미닭이 새끼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그 옆에 다른 암탉을 시종인양 거느린 수탉은 빨간 벼슬이 유독 두드러지고 좀은 묵직한 부리 아래 벼슬은 위엄 있게 늘어진 턱수염 같고, 새까만 긴 꼬리를 세워 양 옆으로 드리운 모습은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조선시대 관복을 차려 입은 듯 멋이 풍기는데, 그 까만 수탉이 험상궂은 얼굴로 목의 깃털을 세워 잔뜩 힘을 주어 병아리들을 향해 위엄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없다는 듯 벌레를 입에 물고 구구구 부르는 어미닭에게만 정신이 팔립니다. 그 중 병아리 한 마리가 수탉의 허풍에 관심을 주고 있고, 어미 뒤에 다른 한 마리는 잠에서 덜 깬 양 졸고 있는 모습에서 봄날 오후의 한가로움을 봅니다. 오덕(五德)을 지녔다는 암탉과 병아리의 따스한 정이 듬뿍 담겨진 정경과 어미닭의 표정이나 자세, 수탉의 깃털의 질감, 앙증맞은 병아리들의 세세한 동작까지 절묘하게 잡아내어 완벽한 리얼리티를 구현하였습니다.

12지 띠 가운데 유독 두 발에 날개를 가진 것은 닭이 유일합니다. 또한 수 많은 날짐승 중에 고상하다는 학(鶴)도 아니오. 용맹스런 수리(鷲)나 매(鷹)도 아니오. 제왕(帝王)을 상징하는 봉황도 아닌 닭이 하늘을 날으는 금(禽)의 대표격으로 낮이 저물고 밤이 스며드는 초저녁녘의 중한(幕重) 시각을 지키며, 또한 모든 귀신을 물리치고 새벽을 맞는 之神의 자리에 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벼슬(官職), 공명(功名), 벽사(酸邪)>등의 의미가 있는 닭, 그 수탉이 서 있는 것은 집안에 길한 운세가 일년 내내 가득하기를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밝음을 예고하는 새로 신조(神鳥)로 생각했으며, 새벽에는 귀신을 쫓는 대길(大吉)의 새로 여겼습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옛사람들은 새해를 맞을 때 온 집안의 재앙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며 호랑이, 용, 닭 등의 세화(歲畵)를 대문에 붙였습니다. 이렇듯 닭이 백수의 왕이라 하는 호랑이나 신령스러운 동물인 용과 함께 세화로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어둠이 걷히고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온갖 귀신들이 물러난다. 시계를 사용하지 않았던 옛사람들은 새벽이 밝는다는 것을 닭의 울음소리로 알았고 귀신도 그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옛사람은 또한 닭이 오덕(五德)을 갖추었다고 여겼습니다. 머리에 관을 썼으니 문(文)이고, 발에 날카로운 발톱이 있으니 무(武)이고, 적을 보면 물러서지 않고 싸우니 용(勇)이고,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이고, 어김없이 때를 맞춰 우니 신(信)이라 했습니다. 머리의 관(冠)이라 함은 닭의 볏을 은유한 것으로, 관을 썼다는 것은 관직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닭은 벼슬길에 나아감을 기원하는 의미의 그림으로 그려졌으며, 지금까지도 닭의 볏을 닭 벼슬이라 부르는 사투리가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수탉은 웅계(雄鷄)라 하여 영웅을 상징하며 수탉의 울음소리를 공계명(公鷄鳴)이라 하여 부귀공명의 공명(功名 :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과 같은 의미로 파악했습니다. 닭과 함께 맨드라미를 그리기도 하는데, 이를 관상가관(冠上加冠 : 관 위에 관을 더함)이라 하여 입신출세의 최고의 경지를 뜻하는 길상적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맨드라미 역시 그 모양이 닭의 볏과 같기 때문입니다.
병아리를 돌보는 닭 그림 또한 여러 점 전하는데, 이러한 그림은 닭이 병아리를 돌보듯이 자식들을 잘 키워 출세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듯 예부터 닭은 신성시 되었으며 상서로움의 길상물로 전해오는 동물입니다. 

 

 


화재 변상벽 필 자웅장충(和齋 卞相璧 筆 雌雄將雛)

朝鮮時代 / 卞相璧(1730~?)/紙本彩色 cm / 澗松美術館 所藏